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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당선은 나에게는 작은 한 걸음이다. 그러나 모든 콜롬비아 여성들에게는 엄청나게 큰 진전이다.” 10월27일(현지 시각)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에서 첫 여성 시장이 탄생했다. 클라우디아 로페스(49)는 커밍아웃한 동성애자이다. 콜롬비아는 물론 남미 전체 주요 도시 중 처음으로 동성애자 후보가 당선됐다. 파트너인 앙헬리카 로사노 역시 같은 정당(녹색연합당) 소속 정치인으로, 당선 직후 두 사람의 입맞춤이 소셜 미디어를 달구기도 했다.

인구 720만명인 보고타는 남미 3대 도시이자 전 세계에서도 30위 안에 드는 큰 도시다. 콜롬비아에서는 대통령 다음으로 가장 강력한 권력을 가진 자리가 보고타 시장이다. AFP는 남성 엘리트 중심인 콜롬비아 정치권에서 로페스의 당선은 매우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유명한 가문 출신도 아니고,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지도 못했다. 6남매 중 장녀로 태어난 로페스가 선거운동 기간 중 가장 강조한 점도 ‘나는 부패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이야기였다. 정부 관련 비리를 비판한 칼럼을 써서 해직된 기자 출신으로 상원의원을 지낸 로페스는 2018년 부통령 후보로 나서기도 했다. 성소수자를 위한 연구소 ‘뉴 레인보우 그룹’의 연구원으로 콜롬비아 내 성소수자 권익 보호에 앞장섰다. 또 민간에서 조직된 선거 감시단원으로 활동하며 부패 정치인을 적발하고 정치 스캔들과 선거 부정을 폭로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수없이 살해 위협에 시달리며 한때 국외로 도피할 수밖에 없었다.

로페스는 역경 끝에 영광을 얻었다. 콜롬비아에서 선거 출마는 여전히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다. 2016년 정부와 반군인 콜롬비아 무장혁명군(FARC)이 평화협정을 맺었지만, 정치인에 대한 테러는 이번 선거도 피해 가지 않았다. 반군 잔당에 의한 공격도 있었지만 다른 이유가 있었다. 한 지역 내에서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해온 지역 유지 등 정치·경제적 이해관계로 얽힌 이들의 대립이 선거를 계기로 폭발했다.

콜롬비아 정부는 ‘비상사태’에 대비해 하루 약 9억원의 돈을 쏟아부었다. 후보자들에게는 방탄차와 방탄조끼가 지급되고 경호 인력도 늘렸지만 사건 사고는 끊이지 않았다. 총격 등으로 인해 숨진 후보자는 7명, 이 밖에도 크고 작은 폭력 사건은 108건에 달했다. 정부는 아예 ‘선거운동 장소를 알리지 말라’는 비현실적인 지침을 내리기도 했다. 콜롬비아 선거관리기구에 따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지방선거가 최근 실시된 선거 중 가장 평화로웠다고 전해진다.

기자명 장일호 기자 다른기사 보기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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