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잘못하면 소년원에 가고, 대학생이 잘못하면 대학원에 간다.” 요즘 유행하는 ‘대학원생 유머’ 중 하나다.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이 대학원생을 ‘잘못된 선택을 한 자들’로 묘사한 이후, 대학원생에 대한 유머가 넘쳐나고 있다. 포털사이트에서 ‘대학원생’을 검색하면 수많은 ‘짤(이미지)’을 볼 수 있다. 구글에서 ‘graduate meme’을 검색해도 만만치 않은 검색 결과가 쏟아지는 걸로 봐서 영미권이라고 크게 다른 것 같지는 않다. 애초에 대학원생 노동조합 운동이 가장 활발한 나라가 미국이기도 하다.
대학원생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변하고 있다. IMF 외환위기 이후 대학원 진학률이 크게 늘면서 ‘취업으로부터의 도피’ ‘학생 신분의 연장’이라고 대학원생을 대상화하는 사회적 시선이 만들어졌다면, 요 몇 년간은 대학원생을 ‘불쌍한 존재’로 생각하는 경향이 증가해왔다. 그 배경에는 교수-대학원생의 수직적 위계질서에서 항상 약자일 수밖에 없는 대학원생의 처지를 드러내는 사건·사고가 언론을 통해 보도되고 또 공론화된 과정이 존재한다. ‘인분 교수’ 사건이 대표 사례다. SNS를 비롯한 온라인 매체 환경이 발달하면서 당사자인 대학원생들이 내밀한 고충을 털어놓을 수 있는 공간이 늘어난 덕도 있을 것이다. 단적인 예로 ‘김박사넷’ 교수 평가 시스템의 내용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대학원생 사이에 입에서 입으로 은밀히 ‘구전’되던 설화 같은 것이었다. 그것이 가시화되고 또 자유롭게 공개되었을 때의 파급력은 크다.
이제 대학원생의 삶이 힘겹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다. 마치 모바일 게임의 ‘가챠(뽑기)’ 시스템처럼, 얼마나 좋은 지도교수를 만나느냐에 대학원 생활의 성패가 달려 있다는 점도 널리 알려졌다. 문제는 이러한 공론화가 대학원생을 둘러싼 제도적 모순을 타파하는 데에까지 이르지 못하고, 대학원생의 표상을 희화화하는 것으로 추진력을 상실해버렸다는 점이다. 과거 대학원생들의 고충 토로가 ‘(경제적 여유 있는 자들의) 배부른 소리’로 치부됐다면, 이제는 그 고충 자체가 웃음거리로 여겨진다. 대학원생이 스스로를 희화화한다면 최소한의 주체성과 저항성이라도 찾아볼 수 있겠지만, 사회적으로 대학원생 집단을 희화화하는 현상에는 씁쓸한 뒷맛밖에 남지 않는다.
‘잘못된 선택’ 취급받는 대학원생의 삶과 연구
대학원 진학은 연구자의 삶을 택하는 것이다. 〈심슨 가족〉이 말했듯 때때로 이는 ‘잘못된 선택’이 될 수도 있다. 미국에서나 한국에서나, 국가도 사회도 대학원생의 연구와 삶의 조건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유머는 유효하다. 그 어떤 대학원생도 스스로를 괴롭히기 위해, 가난해지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하지는 않는다. 학부 과정에서 갖게 된 학문적 호기심이나 사회적 관심을 좀 더 깊이 탐구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이다. 대학원생이 한 명의 연구자로 성장해나가며 만들어내는 ‘앎’은 개인적 성취인 동시에 사회적 공공재이기도 하다. 대학원생의 삶과 연구를 ‘잘못된 경제적 선택’의 문제로 치환해버리는 ‘대학원생 유머’가 씁쓸한 이유다.
10여 년 전, 청년 세대를 지칭하는 ‘88만원 세대’라는 표현이 유행한 바 있다. 그 세대 규정에는 당사자성이 부재한다. 그렇게 지칭된 청년들은 스스로를 ‘88만원 세대’로 지칭하고 싶었을까? ‘88만원밖에 못 버는 너희는 (우리가 과거에 그랬듯) 마땅히 분노하라’는 것이 그 세대 규정의 배후에 있는 명령이었다. 청년들은 그들을 규정한 자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분노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지금의 ‘불쌍한 대학원생’ 담론에도 가장 중요한 당사자의 자리가 비어 있다. 단지 공부가 재미있어서, 연구와 실험이 즐거워서, 학문적 호기심에서 연구자의 삶을 ‘선택’한 대학원생 당사자들의 주체성을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이야기해야 한다. 우리의 고통만이 아니라 즐거움도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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