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몸보다 마음이 먼저 여행을 한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고심을 거듭해 가이드북을 고르고 해당 지역 이름이 들어간 다른 책도 살펴본 후 구입하곤 한다. 이를테면 몇 해 전 일본 오키나와에 가기 전에는 〈오키나와에서 헌책방을 열었습니다〉(효형출판)를 가이드북과 함께 읽었다. 정작 내가 방문한 날은 헌책방 ‘울랄라’가 쉬는 날이라 들어가보지 못했다. 여행은 사진으로도 남지만 이렇게 책으로도 남아 기억의 두께를 더한다.
2017년 봄 〈당신에게 말을 건다〉(알마)를 낸 저자 김영건씨를 만나기 위해 김씨가 3대째 대를 이어 일하는 동아서점을 방문한 적이 있다(〈시사IN〉 제494호 ‘오늘도 동아서점은 문을 열었습니다’ 기사 참조). 당시 동아서점이 매달 집계하는 베스트셀러 목록에는 서울의 서점에서는 마주치지 못했던 〈속초에서의 겨울〉(북레시피)이라는 낯선 책이 순위권 안에 있었다. 김영건씨는 그 책을 고른 내게 “속초 얘기는 되게 조금 나와요”라며 조용히 웃었다. 나는 요즘도 책꽂이에서 그 책을 만나면 영건씨의 웃음을 함께 떠올린다. 내게 〈속초에서의 겨울〉은 동아서점과 속초를 떠올리게 하는 기념품인 셈이다.
동아서점이 2019년 9월 집계한 베스트셀러 1위는 〈속초:대한민국 도슨트 01〉였다. “속초에 관한 책은 어디에 있죠?”라고 묻는 여행객들에게 김영건씨가 작정하고 내놓은 대답이다. 김영건씨가 태어나고 자라고 떠나고 결국 돌아왔던 속초를 한 권의 책에 꾹꾹 눌러 담았다. 따라 읽는 동안 ‘언젠가 속초’를 기대하며 소개된 곳을 지도 애플리케이션에 표시해뒀다. 영건씨는 봄이 오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로 ‘보광미니골프장에 가는 일’을 노트에 적어두었다고 했다. 1963년 평양 출신 실향민 이춘택씨가 만든 ‘세상에서 하나뿐인 골프장’에서 게임을 마친 뒤 감자전을 먹으며 막걸리 마실 날을 나도 덩달아 기다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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