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구 없는 브렉시트, 도대체 뭐가 문제야?
  • 이종태 기자
  • 호수 634
  • 승인 2019.11.15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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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영토인 북아일랜드와 독립국인 아일랜드공화국이 있는 아일랜드섬이 ‘말썽’의 핵심이다. 메이 전 총리의 ‘협정문’과 존슨 현 총리의 ‘수정안’을 통해 브렉시트가 쉽지 않은 이유를 분석했다.
ⓒAP Photo지난 10월19일 런던에서 브렉시트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제2 국민투표’를 요구하며 행진을 벌이고 있다.

2192년이다. 영국 총리가 벨기에 브뤼셀의 유럽연합(EU) 본부를 방문한다. 물론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의 연기를 요청하기 위해서다. 매년 전 세계의 관광객이 이 ‘전통적 행사’를 보기 위해 브뤼셀을 방문한다. 그러나 누구도 이 전통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불가리아의 전 환경부 장관이며 유럽기후재단(ECU) 자문위원인 줄리앙 포포프가 10월20일 트위터에 올린 우스개 이야기다. 영국인들이 2192년까지도 브렉시트 연기를 계속 협상하고 있을 것이라는 비웃음. 그러나 뼈 있는 조롱이다. 영국은 올해 들어 지난 10개월 동안 브렉시트를 무려 세 차례나 연기했다.

영국은 2016년 6월 국민투표로 브렉시트를 결정했다. 이 사태 이후 총리에 취임한 테레사 메이는 2018년 11월, 유럽연합과의 지루하고 혼란스러운 협상을 마무리하고 협정문(메이 협정문)을 발표한다. 메이 협정문에 따르면,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날짜는 2019년 3월29일. 다만 영국과 유럽연합이 새로운 상황에 적응할 ‘이행 기간’을 설정하기로 했다. 이행 기간에 영국은 유럽연합 회원국일 때와 동일한 조건으로 유럽연합과 교역한다. 이와 동시에 유럽연합과 새로운 무역협정을 체결해야 한다. 이행 기간이 끝난 뒤, 양측은 새 무역협정에 따라 교역하게 된다.

존슨, ‘백스톱 조항’ 반대하며 메이 물어뜯어

어떻게 보면 너그럽고 합리적인 협정문이지만 영국을 발칵 뒤집어놓고 말았다. 가장 큰 말썽의 소지는 아일랜드섬이다. 영국 본토의 서쪽에 있는 분단된 섬 말이다.

아일랜드섬은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경제·문화적 공동체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대외적으로는 영국과의 전쟁, 섬 내에서는 ‘자주파 대 친영국파’ ‘보수 대 진보’의 피비린내 나는 내전을 겪으며 분단되고 만다. 섬의 북부는 영국 영토인 북아일랜드, 중남부는 독립국인 아일랜드공화국이다. 두 지역은 정치적으로는 엄연히 다른 나라지만, 20세기 말 이후 경제적 통합성을 유지해왔다. 북아일랜드(영국 영토)와 아일랜드공화국이 모두 유럽연합 회원국이기 때문이다. 유럽연합 회원국들은 상호 간에 관세를 물리지 않으며(관세동맹), 농산물이나 공산품을 제조하는 기준(제조표준)에서도 유럽연합 규범을 따른다. 그 덕분에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공화국 사이의 국경선은 사실상 무용지물로 남았다. 인력과 상품이 국경을 넘을 때 통상적으로 치러야 하는 절차인 관세 부과, 제조표준 검사, 보안검색 등이 면제된다. 아일랜드섬의 국경선은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유령과도 같았다.

영국이 유럽연합을 떠나면 어떻게 될까? 아일랜드공화국은 여전히 유럽연합 회원국이지만 북아일랜드는 비회원국으로 전환된다. 국경에 세관, 검역소, 검문소 등을 설치해서 인력과 상품의 이동을 통제해야 한다. 이렇게 아일랜드섬의 경제적 통합성이 해체되면 경제에 치명적인 타격이 불가피하다. 최근 일본이 반도체 일부 중간재의 대(對)한국 수출 절차를 복잡하게 만든 것만으로 어떤 파란이 일었는지 상기해보면 된다. 물론 영국과 유럽연합이 이행 기간에 순조롭게 새로운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면 그나마 괜찮다. 그러나 실패하면, 아일랜드섬은 하루아침에 ‘경제적 분단’이라는 격랑에 휘말리게 될 것이다. 테레사 메이 전 정부와 유럽연합 측이 ‘백스톱(backstop)’으로 불리는 안전장치를 지난해 말의 ‘메이 협정문’에 삽입한 이유다.

‘백스톱’ 장치의 핵심은, 영국과 유럽연합 간의 새로운 무역협정이 2020년 말(이행 기간 종료일)까지 합의되지 않는 경우, 북아일랜드를 포함한 영국 전역이 유럽연합의 관세동맹에 그대로 머무른다는 것이다. 기한은 새 협정이 체결될 때까지다. 메이 전 총리 처지에서 볼 때, 유럽연합의 압박(아일랜드공화국은 유럽연합의 회원국) 때문에 북아일랜드만 관세동맹에 남겨두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차라리 영국 전체가 관세동맹에 한동안 잔류해야 국가적 통일성을 유지할 수 있다. 제조표준 부문에서는 북아일랜드만 유럽연합의 규제 체계를 따르도록 허용했다.

ⓒAFP PHOTO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아래)는 취임하자마자 ‘10월31일 유럽연합 탈퇴’를 공언했다.

아일랜드섬의 경제 파탄을 막기 위한 미봉책이지만, 강경 브렉시트 지지자들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했다. 예컨대 영국이 유럽연합 규범을 벗어나는 범위의 유전자조작 농산물을 새로 허용하는 경우(제조표준), 그 상품은 자국 영토인 북아일랜드로 들어갈 수 없게 된다. 그야말로 영국 본토와 북아일랜드 사이에 새로운 국경선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메이 전 총리는 강경파들의 공세를 견딜 수 없었다. 의회 비준은 당연히 부결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브렉시트 일자는 당초의 지난 3월29일에서 4월12일로, 다시 10월31일로 연기되었다. 지난 7월에는 당시 메이 총리가 사임했다. 새 총리는 보리스 존슨 전 런던 시장이다. 백스톱 조항을 결사반대하며 메이 전 총리를 물어뜯던, 바로 그 사람이다.

보리스 존슨 총리의 취임 일성은 “10월31일에는 반드시 유럽연합을 탈퇴한다”였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에 걸쳐 기세등등하게 다짐했다. 심지어 유럽연합과의 협상에 실패해도 정해진 시일(10월31일)에 브렉시트를 단행하겠다고 말해서 ‘노딜 브렉시트(유럽연합과 무역협정 없는 브렉시트)’의 현실화 가능성이 주가를 밑으로 짓누를 정도였다. 더욱이 그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비견될 정도의 독특한 개성으로 유명하다. ‘어떤 상황도 가능하다’는 시장 심리를 형성하는 데 부족하지 않은 지도자다.

그러나 존슨 총리 역시 유럽연합과 협상할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협상에는 그가 무시할 수 없는 전제가 있었다. 적어도 아일랜드섬의 경제적 통합성을 훼손하면 안 된다는 것. 브렉시트 이후의 북아일랜드가 영국 영토라는 조건을 유지하는 동시에 유럽연합 회원국인 아일랜드공화국과 마치 하나의 국가 내에서처럼 자유롭게 교역할 수 있는 해법이 존재하기는 할까? 메이 전 총리가 직면했던 딜레마이기도 하다. 세계의 시선이 존슨판 해법인 10월17일 ‘협정문 수정안’에 집중된 이유다. 실제로 백스톱 장치가 상당히 변경되었다.

수정안에 따르면, 이행 기간이 끝나는 동시에 북아일랜드를 포함한 영국 전역이 유럽연합 관세동맹을 떠나게 된다. 이후 영국은 세계의 어떤 나라와도 자유롭게 무역협정을 맺을 수 있다. 영국 전체가 유럽연합 관세동맹을 떠난다는 것이니 이전의 브렉시트 협정문(‘영국 전체가 새로운 무역협정 체결 때까지 관세동맹에 잔류’)과 정반대 방향인 듯하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브렉시트 강경파를 만족시킬 내용이 전혀 아니었다. ‘아일랜드섬의 남북이 계속 무관세로 교역해야 한다’는 전제조건 때문에 오히려 영국 본토와 북아일랜드 간에 ‘관세 국경선’이 새로 그어지고 말았기 때문이다.

ⓒAFP PHOTO존슨 총리는 아일랜드섬의 경제적 통합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유럽연합과 협상해야 했다. 위는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공화국의 경계 지역.

야당이 집권하면 브렉시트 철회할 수도

예컨대, 북아일랜드 기업이 영국 본토의 기업에 중간재를 주문한다고 치자. 한 국가 내에서의 유통이다. 해당 상품은 한국의 경상도에서 전라도로 이동되는 것처럼, 특별한 수출입 절차 없이 영국 본토에서 북아일랜드로 넘어갈 수 있어야 한다. 존슨 수정안에 따르면, 영국 상품은 북아일랜드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일정한 절차’를 밟는다. 북아일랜드에서 유럽연합 회원국인 남쪽의 아일랜드공화국으로 넘어갈 상품들을 골라내는 골치 아픈 과정이다. 영국에서 북아일랜드로 무관세 이송된 상품이 다시 무관세로 아일랜드공화국으로 넘어가는 사태를 차단하기 위해 필요한 절차다. 영국 본토와 북아일랜드 사이의 거래에 면세하는 동시에 북아일랜드에서 아일랜드공화국으로 넘어가는 상품에만 관세를 물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수정안의 해법은 매우 절충적이고 까다롭다.

먼저 영국과 유럽연합 측이 공동 결성한 합동위원회가 ‘북아일랜드에서 아일랜드공화국으로 넘어갈 위험성이 큰 품목’(위험 품목)을 선정한다. 북아일랜드 기업이 위험 품목들을 영국으로부터 수입하면 일단 관세를 내야 한다. 이후 그 상품이 영국 영토인 북아일랜드 내부에서만 사용되었다고 입증되면, 해당 기업은 관세를 돌려받는다. 위험 품목이 아일랜드공화국으로 이송되는 경우 관세를 돌려받지 못한다.

이론적으로는 목표(영국 본토와 북아일랜드 간에는 무관세,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공화국 간에는 관세 부과)를 대충 성취한 듯하다. 그 결과는 기가 막힐 정도다. 영국 본토에서 북아일랜드로 가는 상품의 길이 복잡하게 얽혀버렸다. 즉, 영국 내부에 ‘관세 국경’이 새롭게 그어진 것이다.

더욱이 제조표준에서는, 북아일랜드가 영국이 아니라 유럽연합의 규범을 따르도록 합의되었다. 영국 본토와 북아일랜드 사이를 오가는 상품은 제조표준을 검사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이쯤 되면 존슨 총리의 수정안이 ‘메이 협정문’보다 나은 방안이라고 평가하기는 쉽지 않다. 영국 의회가 거세게 반발했다. 특히 북아일랜드의 친영국 세력이며, 보수당과 함께 의회 다수 세력을 형성해온 DUP(북아일랜드 민주연합당)로서는 수정안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북아일랜드가 더 이상 영국의 일부가 아닌 상태로 빠질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10월19일이 ‘운명의 날’이었다. 이날 수정안이 하원에서 비준되어야 10월31일에 예정대로 브렉시트를 단행할 수 있다. 하원에 출석한 존슨 총리가 아침부터 간곡하게 호소했다. “이제 제발 이 사안을 끝냅시다. 더 이상의 브렉시트 연장은 영국 국가를 좀먹는 일입니다.” 수정안은 표결에 부쳐지지도 못했다. 비준안 처리 자체를 무의미하게 할 법안이 먼저 통과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 법안의 핵심 내용은, 국가 간 조약인 브렉시트 협정문을 비준하기 이전에 ‘브렉시트 시행을 위한 영국 국내법들’을 먼저 통과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국내법들은 10월19일 현재 계류 중이었다. 결국 영국 의회는 수정안을 상정조차 할 수 없는 지경으로 내몰렸다. 더욱이 해당 법안에 따르면, 10월19일까지 비준되지 않을 경우, 총리가 유럽연합에 브렉시트 연기를 요청하도록 되어 있다.

망연자실한 존슨 총리는 저항했다. “유럽연합과 연기 협상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떼를 썼다. 세계에서 가장 유서 깊은 법치주의 국가의 최고 지도자가 공공연하게 법률을 위배할 수는 없었을 터이다. 10월19일 밤, 총리는 유럽연합에 브렉시트를 3개월 더 연기해달라는 요청서를 보냈다. 다만 본인은 이 요청서에 서명하지 않았다.

유럽연합은 10월29일 영국 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여 브렉시트의 최종 시한을 10월31일에서 내년 1월31일로 다시 3개월 연기했다. 보리스 존슨 총리는 2022년으로 예정된 총선을 오는 12월12일로 앞당기는 법안을 하원에서 압도적인 표 차이로 통과시켰다(찬성 438표, 반대 20표). 보수당이 압승한다면, 수정안이 하원에서 통과될 것이고 브렉시트를 성사시킬 것이다. 야당인 노동당과 자유민주당이 승리하면 정권을 인수하면서 브렉시트를 철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조기 총선에 대한 압도적 찬성은, 여야가 모두 영국과 브렉시트의 운명을 걸고 건곤일척의 싸움을 벌일 결의로 충만해 있다는 의미다.

영국 의회는 11월5일 해산된다. 이후 총선까지 5주 동안 선거운동이 진행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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