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시 확대’가 가져올 딜레마
  • 천관율 기자
  • 호수 634
  • 승인 2019.11.11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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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 정시 비중을 늘린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구상은 조국 사태 이전부터 다듬어지고 있었다. 정시 확대는 직관적이고 타당해 보이지만, 한국 같은 ‘병목 사회’에서는 문제를 더 심화시킨다.
ⓒ연합뉴스문재인 대통령은 10월22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대학입시제도 개편 방안을 밝혔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 취임사에서 가장 유명한 문장이다. 이 문장은 시간이 갈수록 ‘자명한 시대정신’이라기보다 ‘해결 불가능한 딜레마’에 가까워지고 있다. 만약 공정한 과정을 거쳐 정의롭지 않은 결과가 나온다면? 과정을 불공정하게 구부려야만 기회가 평등하게 돌아간다면?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는 조화되기 어렵고 자주 서로 충돌한다. 이번 충돌은 대학입시제도다.

10월22일 문재인 대통령 국회 시정연설. 대통령은 대입제도 개편 방향을 밝혔다. “정시 비중 상향을 포함한 입시제도 개편안도 마련하겠습니다.” 대통령이 정시 비중 상향을 공식화한 첫 발언이었다. 정시의 핵심은 수능 전형이므로, 이를 지금보다 늘리겠다는 의미다. 수능 전형은 일반 여론에서 가장 공정하다고 인식된다.

징후는 9월1일부터 있었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문제로 논란이 커져가던 때다. 이날 대통령은 동남아 3개국 순방을 떠나면서 배웅 나온 당·정·청 관계자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장관 후보자 가족을 둘러싼 논란이 있는데, 이 논란 차원을 넘어서서 대학입시제도 전반을 재검토해 달라. 공정의 가치는 교육 분야에서도 최우선 과제가 돼야 한다.” 대통령은 ‘조국 대란’의 본질을 과정의 공정성 문제로 인식했다. 9월9일에는 조 장관을 비롯한 신임 장관들이 임명장을 받았다. 이 자리에서 대통령은 “고교 서열화와 대학입시의 공정성 등 기회의 공정성을 해치는 제도부터 다시 한번 살피겠습니다”라고 말한다. 10월22일의 “정시 비중 상향” 발언은 이런 흐름에서 나왔다.

“집권 초부터 정시 확대 원해”

정시 비중 상향은 교육부의 정책방향과 민주당 계열 교육정책 그룹의 노선을 정면으로 뒤집는 것이다. 9월1일 대통령 발언으로 정시 확대 가능성이 거론되자, 유은혜 교육부 장관은 9월4일 “굉장한 오해이자 확대 해석”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날 유 장관의 말은 단호하고 분명했다. “정시와 수시 비율을 조정하는 문제로 불평등과 특권의 시스템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정시 확대 방향이 공표된 후 ‘교육부 패싱’ 논란도 나왔다.

대통령의 방향 전환은 너무 급격해 보여서, 이를 ‘조국 대란’과 연계시키는 해석도 자연스럽게 등장했다. 지지 기반이 흔들리니 정시 확대론으로 반전을 노린다는 해석도 그럴듯했다. 그러나 청와대와 교육부 양쪽의 흐름을 살펴보면, 정시를 늘린다는 대통령의 구상은 ‘조국 대란’ 한참 전부터 다듬어지고 있었다.

“청와대는 집권 초부터 정시 확대를 원했다. 이럴 거면 왜 공약에 ‘정시 확대’라고 올리지 않았나 생각했다.” 김상곤 전 교육부 장관의 참모로 교육부에서 일했던 한 인사는 집권 초기의 기류를 이렇게 평가했다. 2017년 대선 공약에는 ‘정시 확대’라는 명시적 표현은 없지만, ‘대학입시 단순화’ ‘사교육 유발하는 수시 전형 대폭 개선’ ‘대학입시 공정성 확보’ 등 현재의 방향을 암시하는 표현이 다수 들어가 있다. 논의 과정을 아는 한 청와대 관계자의 설명도 비슷하다. “대통령의 의중이 정시 확대 쪽에 있었다. 그런데 교육부가 정말 안 움직였다. 교육부 관료들과 전교조 출신 외부 인사들이 의견이 맞는 경우가 잘 없는데, 정시 확대는 둘 다 절대 안 된다는 기류였다. 대통령도 도리가 없었다.”

집권 3개월째인 2017년 8월, 교육부는 수능시험 개편안 발표를 1년 유예한다. 교육부는 돌연 의제를 수능에서 대입제도 전반으로 확대하면서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국가교육회의에 논의를 요청한다. 2018년 4월,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위원회(공론화위)가 설치된다. 일련의 과정이 뜨거운 감자 떠넘기기로 보인 탓에 “하청에 재하청”이라는 자조가 나오기도 했다. 일반인 여론에서는 정시 확대가 우세하므로 결론도 그 쪽으로 날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하지만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정시 비중을 현행 20%에서 45%로 올리자는 주장(‘의제 1’)은 2박3일 숙의 토론회 전후에 지지도 변화가 거의 없었다(53.8%→52.5%). 정시 비중을 대학 자율에 맡기자(사실상 정시 확대 반대론)는 주장(‘의제 2’)은 숙의 토론회를 거치며 지지도가 눈에 띄게 올랐다(40.8%→48.1%). 정시 확대 반대론이 2박3일 토론회를 거치며 찬성론을 따라잡았다. 공론화위는 ‘의제 1’과 ‘의제 2’의 지지도 차이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지 않다”라며 결론을 내리지 않기로 결정했다. 정시 확대를 만지작거리던 청와대의 의중이 또 한 번 꺾였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10월22일 대통령의 “정시 비중 상향” 선언을 ‘조국 대란’에 대한 졸속 대응으로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대통령이 교육 전문가들의 반대를 뚫고 정시 확대 3차 시도를 하고 싶어서 ‘조국 대란’을 명분으로 동원한 사건에 가깝다. 그러니 정시 확대를 둘러싼 정확한 질문은 “왜 이리 졸속인가?”보다는 “대통령은 왜 정시 확대를 원하고, 교육 관료와 정책가들은 왜 반대해왔는가?” 쪽이다.

대입 전형의 큰 줄기는 셋이다. 정시의 핵심 축은 수능이다. 수시 전형에는 학생부교과전형과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이 양대 축이다. 학생부교과전형(이후로는 이해를 돕기 위해 ‘내신’으로 쓴다)은 내신 성적으로 대학에 가는 전형이다. 학종은 학생부의 내신 성적 말고도, 교사들의 학생 다면평가, 그리고 면접 등을 통한 대학의 평가를 종합하는 전형이다. 2020학년도 기준으로 보면, 내신이 가장 비중이 크다. 42.5%다. 학종이 24.4%로 그다음이다. 수능이 19.9%로 세 번째다.

이 비율은 이른바 ‘괜찮은 대학’으로 갈수록 달라진다. 수도권 대학만 따로 놓고 보면, 학종이 33.1%로 가장 많고, 수능이 25.6%로 그다음, 내신이 21.9%로 3위다. 상위권 대학으로 갈수록 학종을 선호한다. 고교 교사들의 다면평가에 대학 측의 자체평가를 결합해 우수한 학생을 뽑을 수 있다고 본다(이 과정에서 대학들이 고교 수준에 따라 점수를 달리 주어 실질적 ‘고교등급제’를 한다는 의혹도 꾸준히 제기된다). 중도탈락률(자퇴 등)은 선발 시험이 잘 작동하는지 보여주는 한 지표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 자료를 보면, 서울 10개 사립대학에서 학종 입학생의 중도탈락률은 2.5%, 내신 입학생은 3.1%, 수능 입학생은 6%였다. 수능이 학종보다 두 배 이상 높다.  

ⓒ연합뉴스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2018년 11월15일 제주중앙여자고등학교 정문에서 학생과 교사들이 수험생을 응원하고 있다.

입시 제도를 평등·공정·정의의 문제로만 따져보면 이렇다. 수학능력시험 점수에 따라 학생을 뽑는 정시는 과정이 공정하다고 받아들이기에 가장 좋다. 같은 시험문제를 풀고, 교사나 대학의 자의적 판단이 개입할 여지가 거의 없고, 단순·자명하며 객관적이다. 그 정반대에 학종이 있다. 고교 교사와 대학 입학사정관의 판단이 당락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주관적이다. ‘불공정한 무언가’가 작동하리라고 의심받기 쉽다. 줄 세우기 시험은 공정하고, 정성평가가 들어가면 믿을 수 없다는 인식은 한국에서 보편적이다. 사법시험이 로스쿨로 대체될 때도 비슷한 논란이 거세게 일었다. 차이라면 줄 세우기 사법시험 폐지를 주도한 정치세력이 지금은 줄 세우기 수능을 옹호한다는 정도다.

정시는 과정의 공정성을 성취하는 대가로 결과의 정의에서 중요한 문제를 발생시킨다. 여러 통계자료와 학술연구의 결론은 일관된다. 고소득층에게 가장 유리한 전형은 수능이다. 아래 <그림 1>은 국가장학금 자료를 이용해 대입 전형별 소득 분포를 추출한 결과다. 내신·학종·수능을 놓고 보면, 수능이 고소득층에 더 유리하다는 사실이 잘 드러난다. 그래서 국가장학금을 받는 학생 비율부터 차이가 난다. 국가장학금은 소득수준을 따져서 주기 때문에, 고소득층 자녀일수록 받을 가능성이 떨어진다. 내신 입학생 중 48.8%, 학종 입학생 중 45.3%, 수능 입학생 중 35.2%가 국가장학금을 받는다(<그림 2>).  

정시 확대와 ‘교육특구 입장권’

좋은 대학은 좋은 일자리로 이어지므로, 정시 확대는 부잣집 아이가 고소득 일자리를 얻을 가능성을 높인다. 즉, 수능 전형이 늘수록 불평등은 더 크게 재생산된다. 최필선·민인식의 논문 <부모의 교육과 소득수준이 세대 간 이동성과 기회 불균등에 미치는 영향>(2015)은 이렇게 결론 내린다. “개인의 노력과 무관하게 부모 배경변수가 개인의 수능 성적 불균등을 9.7% 정도 설명하고, 임금 불균등은 3.0~3.5% 정도 설명하였다. 부모 세대 특성이 자녀의 교육수준에 계승되고, 또한 교육수준에 따른 임금 격차가 크다면 사회계층 역시 지속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정시는 왜 수시보다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효과가 더 큰가? 내신 시험은 원리상 같은 학교에서의 경쟁이다. 출발선이 비슷한 학생들이, 출발선에서 얼마나 더 멀리 갔는지를 놓고 평가받는다. 가난한 지역 학교에도 전교 1등은 나오게 마련이다.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효과는 줄어든다. 수능은 전국 단위 경쟁이다. 부모가 고소득자이고 교육환경이 좋은 동네에 살수록 유리하다. 또래집단의 경쟁 압력이 크고 역할모델을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교육 효과도 있다. 강남에 사는 고소득층 자녀는, 학습능력이 비슷한 비강남·저소득층 학생보다 수능을 잘 본다. 김영철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가 KDI 재직 시절 쓴 논문 <고등교육 진학단계에서의 기회형평성 제고방안>(2011)을 보면, 능력 변수를 통제하더라도 거주지 학습 환경과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수능 성적이 달라지는 효과가 있다.

전국 단위 시험의 경쟁에서는 강남과 같은 교육특구에 진입하는 게 결정적으로 중요해진다. ‘교육특구 입장권’은 비싸다. 수능 비중이 늘어나면 더 비싸진다. 정시 확대 방안이 나오면 강남 부동산 가격이 들썩거린다. 이 입장권 가격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은 자녀를 좋은 대학과 좋은 직업의 트랙에 더 쉽게 올릴 수 있다. 지역 단위 경쟁인 내신과 학종은 이 악순환 구조를 완화한다. 지역 단위 경쟁이 중요해지면, 성적 좋은 아이들에 둘러싸이는 교육특구 입장권의 매력은 떨어진다.

그러므로 전국 단위 경쟁인 정시가 지역 단위 경쟁인 수시보다 불평등 재생산 효과가 크다. 이 명제는 제도의 구조와 원리에서 예측 가능하고, 실제 통계도 예측을 뒷받침한다. 그런데도 수능보다 학종이 ‘금수저 전형’이라고 비난받는다. 정성평가의 신뢰 기반은 언제나 객관식 정량평가보다 취약하다. 조국 전 장관 딸의 논문 제1 저자 파동(학종의 전신 격인 입학사정관 전형이었다)에서 보듯 뾰족한 사례의 힘은 뭉툭한 통계보다 강하다. 학종과 같은 정성평가는 신뢰가 핵심 조건인데, 이런 뾰족한 사례는 신뢰를 뿌리부터 뒤흔든다. 학종을 지지하는 전문가들은 그래서 더 학종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입제도 문제를 처음 거론한 9월1일 이런 말도 했다. “이상론에 치우치지 말고 현실에 기초해서 실행 가능한 방안을 강구하라.” 교육 원리상 수시가 더 나은 제도라고 해도(“이상론”), 과정의 공정성을 바라는 국민의 뜻(“현실”)에 기초해서 방안을 찾아달라는 의미로 읽힌다. 반면 9월4일 유은혜 장관은 “정시와 수시 비율을 조정하는 문제로 불평등과 특권의 시스템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대통령은 과정의 공정성에 방점을 찍었고 장관은 불평등 재생산 문제에 방점을 찍었다. 이러면 전혀 다른 결론이 필연인데, 이 갈림길에서 대통령이 뜻을 관철했다.

대통령은 평등·공정·정의를 조화시키는 문제가 얼마나 까다로운지를 드러냈다. 과정의 공정을 대표하는 제도(수능)가 교육특구의 입장권을 살 부모의 능력에 좌우되는 한, 이 제도는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고 있지 않다.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결과를 정의롭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반대편 대안, 내신과 학종은 평등·공정·정의를 함께 보장하는가? 내신과 학종은 결과가 정시보다는 덜 불의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내신과 학종은 학생들이 훨씬 더 싫어하는 제도다. 고교 생활 3년 내내 입시를 치르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대학입시가 인생에 갈림길이라는 인식이 있는 한 이 압력을 완화할 방법은 없다. 더욱이 학종은 교사의 권한을 크게 올리는데, 교실에서 교사와 학생의 권력관계가 잘못 작동하면 학생의 삶은 더 팍팍해진다. 이것은 다른 차원의 불의다. 또, 어느 학교에서 어떤 교사를 만났는지에 따라 학생부 기록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기회의 평등 관점에서도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연합뉴스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10월28일 자택에서 외출하고 있다.

이것은 마치 정육면체 큐브 퍼즐과도 같다. 모든 면의 색깔을 동시에 맞추는 정육면체 큐브는, 한쪽 면 색깔을 맞추다 보면 꼭 다른 쪽 면이 흐트러진다. 과정의 공정성은 주관이 개입하지 않고 같은 기준이 적용될 것을 요구한다. 결과의 정의로움은 불평등 재생산을 막지는 못하더라도 최대한 억제할 것을 요구한다. 2019년 현재 한국의 현실에서 이 두 요구는 구조적으로 동시에 달성하기 어렵다. 고도성장기보다 불평등이 심화되어 출발선이 달라지는 정도가 커졌다. 그 출발선의 차이가 다시 성취의 차이에 명백히 영향을 끼친다. 그걸 차단하려면 과정에 개입해야 한다. 형식적 공정성이 흔들린다.

출구가 없을까. 정치철학자 조지프 피시킨이 흥미로운 관점을 제공한다. 책 <병목 사회>에서 피시킨은 ‘전사 사회’라는 비유를 든다. 일종의 원시 부족사회인 전사 사회에서, 좋은 직업은 오로지 전사 하나뿐이다. 전사가 되어야만 부와 명예를 누릴 수 있다. 아이가 성인이 되는 해에 치르는 전사 시험은 공정하다.

그렇다면 이 사회는 공정할까? 그렇지 않다. 이런 사회는 기회의 종류가 지나치게 제약되어 있다. 전사가 아닌 다른 재능은 쓸모없고, 아이들의 소망과 목표는 전사 하나로 강요된다. 완벽하게 공정한 시험이라 해도 전사의 자녀가 유리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지원자들은 전사 시험에 과몰입하고, 시험의 가치를 기를 쓰고 긍정한다. 그게 유일한 통로라서다. 피시킨이 ‘병목’이라고 부르는 원리다.

이런 사회는 구조적으로 공정할 수 없다. 통과하는 병목 자체가 아무리 엄격하게 관리되더라도, 병목의 입구와 출구를 ‘공정’하게 만들 방법이 없어서다. 전사의 자녀를 부모로부터 떼어놓을 수 없는 한 병목 입구에서 출발선을 통일시킬 수 없다. 전사의 자녀는 유전·가정교육·동기부여 모두 다른 아이들보다 유리하게 출발한다. 전사가 아니라 상인의 재능을 타고난 아이는 쓸모없는 취급을 받을 것이므로 재능이 있어도 평가받을 수 없다. 출구가 고장 나 있는 것이다. 피시킨은 병목 자체만 보지 말고 입구와 출구를 모두 보아야 진정한 의미로 ‘공정’을 말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중요한 시험 몇 개로 삶의 경로가 결정 나는 나라는 현실에도 많다. 전사 사회의 현실판이다. 피시킨은 미국의 대학입시가 병목의 한 전형이라고 논하는데, 그가 한국의 입시를 알았다면 완벽한 사례로 가져갔을지 모른다.

이제 평등·공정·정의를 동시에 맞추는 큐브 퍼즐이 왜 어려운지 설명할 개념을 손에 쥐었다. 병목 구조가 있는 한, 병목의 입구와 병목 자체와 병목의 출구를 동시에 공정하도록 만들 방법은 없다. 출구를 정당하게 만들려면 병목 자체의 공정성을 훼손해야 한다. 병목의 공정성을 틀어쥘수록, 입구와 출구가 뒤틀린다. 피시킨은 유일하고 필연적인 결론에 도달한다. 병목의 우회로를 최대한 많이 만들어서 병목 속성 자체를 완화시켜야 한다. 즉, 기회의 평등이 아니라 기회의 다원성이 필요하다. 경쟁 규칙의 공정성이 아니라 경로 자체의 다원성이 필요하다. 정의로운 결과가 아니라 서열화되지 않는 다원적 결과가 필요하다.  

병목 구조 완화하는 ‘기회 다원주의’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이 친숙한 문장은 이제 완전히 새롭게 읽힌다. 병목 사회에서는 셋을 동시에 달성할 수 없으므로 이를 구현할 방법이 없다. 병목 구조를 완화하는 길, 피시킨이 ‘기회 다원주의’라고 부른 길만이 이 취임사에 다가가는 유일한 경로다. 대선 시기 문재인 후보의 교육 공약을 보면 이런 기회 다원주의적 접근법이 여럿 있다. 국공립대 네트워크 공약, 고졸 비진학 청년 지원 공약 등인데, 아직은 뚜렷한 성과를 말하기가 어렵다. 정책 우선순위가 높다는 인상도 주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이 정시 확대를 내걸면서 준 시그널은 기회 다원주의보다는 병목 자체의 공정성을 강하게 틀어쥐겠다는 쪽이다. 가장 직관적이고 타당해 보이는 접근일 수 있으나, 병목 사회에서는 딜레마를 오히려 강화한다. 반대쪽 길, 병목 구조를 완화하는 ‘우회로 만들기’는 힘들고 오래 걸리고 여론의 주목을 끌기도 어렵다. 민주사회는 그런 힘들고 오래 걸리고 빛나지 않는 일을 감당해달라고 지도자에게 권력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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