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롱의 연금 개혁 최선인가, 위선인가
  • 파리∙이유경 통신원
  • 호수 633
  • 승인 2019.11.08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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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마크롱 정부가 추진 중인 연금제도 개혁안은 ‘직군별 연금제도 통일 조치와 연금 수급 연령 변동 가능성’ 탓에 비판을 받고 있다. 개혁안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낮은 편이다.
ⓒEPA지난 10월12일 프랑스 툴루즈에서 열린 노란조끼 시위에서 한 시민이 프랑스 국기를 흔들고 있다.

프랑스에서 연금제도는 ‘모든 논쟁의 어머니’라고 불린다. 제도를 손볼 때마다 큰 파장을 낳아왔다. 1990년대 이후 프랑스 정부는 반발을 무릅쓰고 연금제도를 개혁해왔으나 오늘날 상황은 좋지 않다. 지난 6월 은퇴연금자문위원회(COR)에 따르면, 프랑스의 연금재정 적자는 100억 유로에 달하며 2042년에야 안정화된다. 마크롱 정부 역시 개혁의 칼날을 연금제도에 들이대려 한다.

2003년 프랑수아 피용 노동장관은 ‘평등성’을 이유로 결국 공무원을 정책 적용 대상에 포함했고, 2007년 사르코지 정부는 ‘특별연금 제도’까지 적용 범위를 확장했다. 2010년에는 은퇴 연령 하한을 60세에서 62세로 올리는 정책을 통과시켜 또다시 국민들의 반발을 불렀다. 이 정책은 사르코지 대통령이 2012년 대선에서 패배한 주요 원인 중 하나였다. 이때 승리한 올랑드 정권은 이 정책을 전면 무효화하고, 재임 기간에 어떠한 연금 개혁도 시행하지 않았다.

마크롱 정부는 신중하게 접근했다. 먼저 장폴 들르부아예 연금개혁위원회 위원장이 2018년 6월부터 노사합의 및 개혁안 작성을 맡았다. 그는 약 1년6개월 동안 주요 노조 대표,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개혁의 기초가 될 보고서를 작성했다. 지난 7월 130장에 달하는 보고서를 받고 에두아르 필리프 총리는 “모두에게 더 올바르고 뚜렷한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새로운 국면의 의견 수렴과 협상을 시작하겠다”라고 밝혔다. 2020년 법안 발의에 앞서 다시 한번 협의 과정을 거치겠다는 것이다.

“더 늦게 은퇴하도록 강요하는 정책”

개혁안에 따르면 먼저 연금 책정 기준이 ‘포인트’로 바뀐다. 노동자가 은퇴 연령까지 일한 기간에 상응하는 연금을 받게 하는 게 주된 목적이다. 현 제도에서 연금 책정 기준을 보자. 민간기업 노동자는 ‘가장 높은 임금을 받았던 25년’, 공무원은 ‘마지막 근무 6개월’을 기준으로 연금을 책정한다. 포인트 제도는 납입한 만큼 연금을 받게 하고 임시직·사고·질병으로 인한 경력 단절, 출산휴가 기간도 포인트를 지급해 연금 책정을 받도록 한다. 노동자는 월 연금 납입액 10유로당 1포인트를 받고, 1포인트는 연당 0.55유로의 연금으로 전환된다. 예를 들어, 최저임금 월급의 1.5배인 2282유로를 받는 노동자는 매달 577.50유로를 납입하고 매달 57.75포인트, 1년이면 693포인트를 모은다. 이렇게 은퇴까지 43년 납입하면 총 2만9799포인트를 모으게 되고, 매년 1만6389유로, 한 달에 1366유로를 연금으로 받는 방식이다. 이 밖에 배우자를 잃은 경우 남은 배우자가 66%까지 대신 받던 연금을 70%까지 인상하고, 세 번째 아이부터 아내 연금의 10%를 증액하던 제도를 첫아이부터 5%씩 증액하는 내용도 포함되었다.

개혁안 가운데 특히 논쟁이 되는 부분은 두 가지다. 우선 직군별 연금제도 통일 조치다. 42개에 이르는 직군마다 달랐던 납입 비율과 은퇴 연령을 평준화했다. 현재 경찰·의료·철도·전기·가스·은행·예술 등 다양한 직군은 저마다 특별연금 제도를 적용받는다. 그간 정부는 연금제도를 개혁할 때마다 직군별로 새 정책을 도입해왔다. 분산된 연금제도를 통합하면 모든 직군에 은퇴 연령을 비롯한 여러 규정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다. 가령 지금은 민간기업 노동자에게 세금을 제한 최저임금의 81%, 농업 종사자에게 75%가 최저연금으로 적용되지만, 연금제를 통합하면 직군에 상관없이 85%를 하한선으로 정한다.

상대적으로 낮은 연령인 52세였던 철도업계의 은퇴 연령이 62세로 통합돼 큰 반항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공무원과 기타 프리랜서, 자영업 직군의 연금 납입 비율을 민간기업 노동자와 같이 28%로 올리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염려도 뒤따른다. 자영업자의 경우 연금 납입보다 ‘영업재산’을 구매하는 식으로 노후 대비를 해왔기 때문에 각 직업의 특수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개혁이라는 평가도 있다. 피해를 보는 몇몇 직군에서 이의를 제기하자 필리프 총리는 지난 9월12일 경제사회이사회에서 법안에 “충분한 대책이 마련될 때까지 특별제도에 새로운 방안을 적용하지 않는” 규정을 넣겠다고 발표했다.

ⓒEPA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가운데)이 지난 10월3일 시민 500명과 연금 개혁을 주제로 토론하고 있다.

두 번째 논점은 연금 수급 연령이다. 후보 시절 마크롱 대통령은 수급 연령을 62세에서 변동시키지 않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이번 개혁안은 실제로 최저 수급 연령을 바꾸지는 않았지만, 64세를 ‘균형 연령’으로 정했다. 균형 연령이란 일종의 기준이 되는 나이인데, 64세를 기준으로 은퇴한 해에 따라 감액과 증액을 적용한다. 64세를 채웠을 때 연금 1375유로를 받는 노동자가 62세에 은퇴하는 경우를 보자. 개혁안에 따르면 이 사람은 1375유로에서 10% 감액된 1237유로를 수령한다. 63세에 은퇴하면 5% 감액해서 1306유로이다. 그런데 만약 그가 66세까지 2년 더 일을 한다면 오히려 10% 증액된 1512유로를 받게 된다. 65세까지 일한다면 5% 증액해서 1444유로이다.

정치권에서는 이 정책을 두고 거센 비판이 나왔다.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FI)’의 에리크 코크렐 의원은 개혁안 보고서가 발표되자 이 개혁이 “근무 기간을 늘리기 위한 위선적 방안”이라고 비판했다. 노동조합인 ‘노동자의 힘(FO)’ 이브 베리에 총장도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 정책은 적정 연금을 받기 위해 더 늦게 은퇴하도록 강요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프랑스 정부는 “들르부아예 위원장의 보고서는 밑바탕일 뿐, 각계와 구체적인 협상을 이어나가겠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초안에 대한 여론은 우호적이지 않다. 각 직군 노조는 9월 중순부터 대규모 시위와 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프랑스 <일요신문(JDD)> 의뢰로 여론조사 기관 Ifop가 시행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34%만이 “마크롱 정부의 연금제도 개혁을 신뢰한다”라고 밝혔다. 마크롱 대통령은 10월3일 남부 소도시 로데즈에서 시민 500명과 이번 개혁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마크롱 대통령은 “우리는 더 오랜 기간 연금을 납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어떻게 납입하는 게 올바른지의 문제이다. 만약 누군가 여러분께 ‘(이전처럼) 다시 60세에 은퇴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건 사실이 아닐 것이다. 어느 순간, 누군가는 값을 치러야 한다”라고 말했다. 마크롱 정부의 요청에 따라 은퇴연금자문위원회는 11월 말까지 새 개혁안에 따른 재정 전망을 발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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