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기업 대표는 슬며시 웃지 않았을까
  • 윤지선 (‘손잡고’ 활동가)
  • 호수 633
  • 승인 2019.11.07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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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현지 그림

“당사는 한국 법령과 한국 법원의 판결을 존중하지만 해당 사안은 고등법원에 계류 중이며 본건이 원만히 해결되길 바란다.” 10월4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 국정감사에 출석한 아사히글라스 파인테크코리아(이하 아사히글라스) 홋타 나오히로 대표가 불법파견과 관련해 내놓은 답변이다. 아사히글라스 측은 지난 8월 불법파견 1심 선고에서 패소했다. 아사히글라스 측이 1심 판결을 존중해 항소하지 않았다면 ‘해당 사안이 고등법원에 계류 중’일 이유가 없는 셈이다.

국정감사 보도를 보며 1심 선고를 참관했던 날이 떠올랐다. ‘아사히글라스에 고용 책임이 있다’라는 1심 선고 결과를 듣기까지 채 10초가 걸리지 않았다. 숨죽여 결과를 기다리던 지회 조합원들은 너무 빠르게 지나간 단 한마디를 제대로 듣지 못해 기뻐하지도 못했다. 그중 한탄하는 조합원도 있었다. “우리가 이 한마디 들으려고 3년을 기다린 거냐!”

3년을 기다려 들은 1심 판결도 소용없었다. 곧 이은 회사 측의 항소에 또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맥 빠지는 와중에, 홋타 대표의 ‘한국 법령 존중’ 발언은 노동자들에게 비웃음으로 들릴 수밖에 없다. 설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무성의한 답변으로 일관하는 홋타 대표에게 “자꾸 그런 식으로 하면 한국에서 사업하기 힘들 겁니다”라고 경고했다고 한다. 아사히글라스가 한국에서 무상임대, 세금면제 등 각종 혜택을 받는 부분을 염두에 두고 한 말로 읽힌다.

아사히글라스 불법파견 1심 선고가 나고 일주일 후, 한국도로공사 톨게이트 노동자들이 대법원 승소 판결을 받았다. 기쁨과 축하의 시간은 짧았다. 한국도로공사 측은 1500여 명 가운데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은 인원만 직접 고용할 것이며, 수납 업무가 아닌 현장조무직무로 배치하겠다고 발표했다. 남은 인원은 또다시 기나긴 소송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는 의미였다.

한국도로공사 외에도 민간에서는 현대·기아차가 대표적인 불법파견 기업이다. 이번 국감 때 한국 기업에 대해서는 증인 출석도, 질문도 없었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에 대한 질의도 아쉬웠다. 이재갑 장관은 아사히글라스 불법파견에 대해 “할 수 있는 시정조치를 다 했다. 노사 간 대화를 통해 해결할 수 있게 노력하겠다”라고 답변했다.

1년 전인 2018년 9월, 문재인 정부 적폐청산 특위 중 하나인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는 불법파견 문제에 대한 고용노동부 행정조치의 미흡함과 제도적 한계를 지적하고 재조사 등을 권고한 바 있다. 위원회는 현대·기아차 사례를 대표적 불법파견 사례로 꼽기도 했다. 위원회 권고를 고용노동부가 제대로 이행했다면, 현대·기아차는 물론 도로공사 대량 해고도, 아사히글라스 불법파견 문제에도 좀 더 나은 해결책이 나오지 않았을까.

고용노동부가 ‘위원회 권고’ 이행했더라면

국회도 고용노동부도 눈감은 자리에 농성하는 노동자에 대한 탄압만 더 심해지고 있다. 김천 도로공사 본사에서는 생필품조차 가로막는 경찰의 행태에 대한 소식이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온다. 현대·기아차 노동자들은 서울고용노동청 앞 단식농성을 이어가던 중에, 고용노동부가 불법파견 공정에 해당하는 전체 인원이 아닌 법원 판결로 불법파견을 인정받은 절반에 대해서만 시정조치를 내렸다는 소식을 들어야 했다. 홋타 대표에게 한국 국회의원의 경고와 한국 고용노동부의 시정명령은 대체 어떤 의미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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