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위원장이 백두산으로 간 까닭은?
  • 남문희 기자
  • 호수 633
  • 승인 2019.11.04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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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위원장의 금강산 시설물 철거 지시는 하루아침에 일어난 사태가 아니다. 하노이 회담 이후 북한의 대외 전략이 크게 변했다. 남북 관계는 북·미, 북·일 관계보다 후순위로 밀렸다.
ⓒ조선중앙TV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말을 타고 백두산에 올랐다고 조선중앙TV가 10월16일 보도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행보가 어지럽다. 백두산에 첫눈이 내렸다는 10월15일, 그는 백마를 타고 백두산 정상에 올랐다. 스톡홀름 북·미 실무회담이 결렬된 지 10일여 지난 시기였다.

세계의 눈이 백두산에 쏠렸다. 김정은 위원장이 백두산을 오른 뒤에는 예외 없이 큰 사건이 터졌기 때문이다. 2013년 11월30일 그가 백두산의 삼지연 혁명사적지를 다녀간 뒤 장성택 당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처형당했다. 2017년 12월9일 백두산 등정 후에는 남북 관계와 북·미 협상의 동시 진행을 결단했다. 10월16일자 <조선중앙통신>은 “또다시 세상이 놀라고 혁명이 한 걸음 전진될 웅대한 작전이 펼쳐질 것이라고 확신한다”라며 분위기를 북돋았다.

ⓒ평양 조선중앙통신김 위원장은 2017년 12월9일에도 백두산에 올랐다.

김 위원장의 다음 행보를 지켜보는 와중에 느닷없이 금강산에서 사달이 벌어졌다. 10월23일자 <조선중앙통신>이 김정은 위원장의 금강산 관광지구 현지지도 발언을 보도했다. 이 발언은 남북 경협에 마음을 졸여온 남쪽 당국자들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표현부터 거칠었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너절한 남측 시설들”을 “남측의 관계 부문과 합의하여 싹 들어내도록 하라”. 정부 당국자들은 “남측의 관계 부문과 합의하여”라는 대목에 방점을 찍고 추후 남북 협의를 기대하는 분위기다.

그런 기대를 갖기엔 김정은 위원장의 한국에 대한 감정이 격하다. 굳이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너절한” 같은 표현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닐 터였다.

이튿날인 10월24일 공식석상에 잘 나오지 않던 김계관 외무성 고문이 담화를 발표했다. “국무위원회 위원장 동지를 며칠 전에 뵈었다”라며, 그 담화문이 김정은의 의향을 반영한 것임을 드러냈다. “우리는 미국이 어떻게 이번 연말을 넘기는지 보고 싶다.” 이번 연말 안에 뭔가를 해보자는 것이다. 김계관 고문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간의 친분을 강조하며 “두 나라 관계를 보다 좋은 관계로 전진시킬 동력이 마련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북·미 정상회담을 한 번 더 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드러낸 것이다.

하나씩 정리해보자. 10월15일 백두산 백마 등정을 통해 김정은 위원장이 어떤 전략을 마련했는지 구체적으로 알기는 힘들다. 다만 2017년 12월9일 백두산 등정 이후 유지됐던 ‘두 개의 날개’ 중 ‘남북 관계’를 쳐내고 ‘북·미 관계’에 힘을 쏟아붓겠다는 의지가 보이긴 한다. 김정은 위원장의 ‘금강산 발언’ 중에는 시설 철거뿐 아니라 대외관계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전환하겠다고 암시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국력이 여릴 때 남에게 의존하려 했던 선임자들의 의존정책이 매우 잘못됐다”라는 대목이 그렇다. 여기서 ‘선임자’는 아버지 김정일 위원장으로까지 확대 해석할 수 있는 용어다. 즉, 국력이 약했던 자기 아버지 시절 이뤄진 대남 의존 개발정책이 잘못됐다며 이를 혁파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전문가들 사이에 ‘당장 개성공단도 위험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만하다.

북한의 이 같은 움직임은 이미 예고된 바 있다. <시사IN>과 접촉한 대북 소식통은 8월 하순께 북한이 남북 관계를 후순위로 돌리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그동안 한국 정부는 남북 관계와 북·미 관계, 북한 비핵화를 선순환 관계로 파악해왔다. 대북 제재 때문에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 등 지난해 9·19 평양 공동선언에서 약속한 사업을 추진하지 못하고 있지만, 일단 북한 비핵화가 시작되면 남북 경협이 본격화할 수 있다고 봤다. 또한 남북 경협은 북한 비핵화를 촉진하는 마중물 구실도 할 것으로 여겼다.

ⓒ평양 조선중앙통신김정은 위원장이 금강산 지구의 남측 시설물 철거를 지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0월23일 보도했다.

이는 한국 측의 구상일 뿐이었다. 지난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후 북한 내부에서 벌어진 정치적 격변을 고려하지 못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금강산 시설물 철거 지시는 하루아침에 일어난 사태가 아니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북측은 ‘남과 북은 조건이 마련되는 데 따라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사업을 우선 정상화하자’는 9월 평양 공동선언의 이행을 일단 기다려보는 것으로 입장을 정했다고 한다. 그 시한이 8월 말까지였다. 그 사이에 8월15일 광복절이 있다. 북측은 그날 문재인 대통령이 발표할 대북 메시지를 기다렸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북핵 문제의 가닥이 잡히지 않고 유엔 대북 제재가 엄존하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재개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북한은 한국 정부의 그런 사정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자신들은 남측 대통령의 약속을 믿고 평양 능라도 5·1 경기장에서 평양시민 10만명 앞에서 연설까지 하게 해주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최고 지도자의 존엄이 훼손된 문제로 보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8월11~20일 진행된 한·미 연합 지휘소훈련에 평양 점령계획이 포함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북측의 분위기가 급격히 악화됐다고 한다. 10월15일 평양에서 열린 무관중 월드컵 축구 예선전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북측으로서는 ‘8월 말까지 기다렸으나 기대했던 남측의 반응이 없었다’라는 명분을 쌓은 셈이다. 이때부터 남북 관계가 다른 주변국과의 관계 보다 후순위로 밀렸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북한이 9~10월까지 기다려보고 변화가 없으면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에 대한 조치가 시작될 것이라는 소문도 돌기 시작했다. 금강산의 남측 시설 철거뿐 아니라 개성공단의 기계설비 등 한국인 자산을 몰수한다는 것이다. 북한이 이런 조치들을 실제로 단행할지 아니면 압박으로 양보를 끌어낼 심산인지는 앞으로 지켜봐야 한다. 현 시점만 놓고 보면, 김정은 위원장이 아버지 김정일 시대의 남북 경협을 단절시키는 쪽으로 한발 내디딘 것으로 볼 수 있다.

통전부에서 외무성으로 주도권 변화

한국 처지에서는 북한의 조치가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이다. 하노이 회담 결렬 후 북측은 한국에 불만을 간헐적으로 표시해왔다. 하지만 북측이 금강산의 남측 시설물을 철거할 정도로 남북 관계가 악화되었다고 평가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10월22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한반도 평화경제 기반 구축에 힘쓰겠다며 “북한의 밝은 미래 역시 그 기반 위에서 가능하다”라고 밝혔다.

북한은 왜 이렇게 격앙됐을까. 하노이 회담 이후 북한 내에서 대외관계 주도 세력의 교체가 격렬하게 진행되어왔다. 통일전선부(통전부)가 몰락하면서 외무성으로 주도권이 넘어갔는데, 이로 인한 대외 전략의 변화가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김 위원장의 백두산 등정 행보로 돌아가 복기해보자. 2017년 12월9일 김정은 위원장의 백두산 등정은 바로 통전부 노선의 등장을 의미한다. 북한 통전부는 이미 2017년 6월께부터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접촉하고 있었다. 남북 관계와 북·미 관계의 동시 진행이라는 당시의 백두산 구상은 2018년 2월의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미 정보기관이 주도하는 3자 관계를 정착시켰다.

통전부의 과도한 욕심이 문제였다. 통전부는 원래 남북 관계 담당이다. 외무성의 영역인 북·미 관계 및 북핵 문제까지 전담했다. 그뿐 아니라 통전부 산하에 있는 조총련을 활용해 북·일 관계도 넘보고, 조선족을 활용해 북·중 관계까지 손대려 했다. 남북 관계에서 통전부의 주된 임무는 산하단체인 민경련(민족경제협력연합회:북한의 대남 민간부문 경제협력 문제를 전담), 민화협(민족화해협의회), 조평통(조국평화통일위원회) 등에 대한 감독이다. 그런데 통전부는 남북 경협으로 업무 영역을 넓히려 했다. 직접 경제 부서를 운영하려고 시도했다. ‘감독’이 ‘선수’로 직접 뛰려 한 격이었다.

이 같은 통전부의 월권은 지난 2월 하노이 회담이 성공리에 끝났다면 묻혔을지도 모른다. 하노이 회담이 실패하자 당내 불만이 분출하고 말았다. 지난 3월 열린 김정은 위원장 주도의 노동당 비서 총화에서 당의 국제부·경제부 소속 간부들의 통전부에 대한 비판이 컸다고 한다. 이어 4~5월까지 이어진 조직지도부 검열 이후 통전부 산하 조직들은 모두 후방으로 내몰렸다. 결국 대외정책의 주도권은 통전부에서 외무성으로 넘어갔다. 이에 더해 통전부 산하 민경련, 민화협, 조평통 등의 대남 접촉이 금지되고 해외동포 사업만 맡게 되었다고 한다. 최근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전 통전부장)이 해외동포 관련 행사에 나타난 바 있다.

ⓒAP Photo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왼쪽)이 1월18일 미국에서 고위급 회담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2013년 장성택 처형 이후 북한 권력 내에서는 중국과의 사업을 입에 담는 사람이 사라지다시피 했다. 지금 남북 관계가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 적어도 노동당 내에서는 남북 관계를 거론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닌 셈이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북한은 미국이 올해 말까지 셈법을 바꾸지 않으면 ‘새로운 길’을 가겠다고 경고해왔다. 다행스러운 것은 새로운 길이 과거로의 회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즉, 2017년처럼 선군 노선이나 핵·경제 병진정책으로 후퇴하지는 않을 듯하다. 이는 ‘새로운 길’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신 자력갱생을 부쩍 강조하고 있다. 지난 4월12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제시한 키워드가 바로 자력갱생이었다. 10월15일 백두산 등정 이후의 화두 역시 마찬가지다. 당초 북측은 북·미 관계가 풀리기 전이라도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사업이 재개되기를 기대했다. 그 꿈이 깨졌다. 결국 대남 의존 정책에서 탈피하겠다는 결의를 내비친 것이다. 그렇다고 말 그대로 자력갱생만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최근 중국·러시아 등과 관계를 강화해 당장 급한 불은 끈 상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경제 재건은 어떻게 할 것인가. 대남 의존이 아니면 그 대안은 뭔가. 바로 일본이다. 그동안 북·일 관계는 일본인 납치 문제라는 걸림돌 때문에 벽에 부딪혀왔다. 아베 총리가 조건 없는 북·일 정상회담을 주장하면서 접촉 중이다. 이미 양측 당국자가 지난 6월 초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열린 국제회의에서 비공식 접촉을 했다. 8월 하순에는 북·미 관계 개선 이후 북·일 경제협력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1.5트랙(반관반민) 회의가 열렸다. 이 같은 일련의 움직임 직후 남북 관계가 후순위로 밀리는 조짐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정리하자면, 북·미 관계 다음은 북·일 관계, 그다음이 남북 관계 순서다.

이는 통전부 대신 대외정책 주도권을 쥔 외무성의 전략 노선이다. 하노이 회담 후 북한이 중국, 러시아와 관계를 우선시할 것이라는 일부 예상에도 불구하고 북한 외무성의 북·미 관계 최우선 전략에는 변함이 없다. 더구나 내년 미국 대선이라는 이벤트를 앞두고 북한은 김정은 위원장을 ‘만난을 극복하고 북한의 비핵화와 북·미 관계 개선이라는 위업을 달성한 위인’으로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시사IN> 제631호 ‘북·미 대결전으로 김정은 위인 만들기’ 기사 참조). 김계관 고문이 운을 뗐듯이 조만간 북·미 실무회담을 한 차례 연 뒤 12월 중에 북·미 정상회담을 가지려고 한다. 내년 상반기에는 북·일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다.

한국 대신 일본 택한 북한의 구상

한국은 무엇을 할 것인가? 그동안 북·미 관계를 중재하기 위한 문재인 대통령의 노력을 떠올리면 북측에 대해 서운한 생각을 떨칠 수 없다. 하지만 북측 시각에서 보면 기본적으로 남북 관계는 여전히 체제 경쟁 상태다. 북한 체제를 지금보다 개선시킨 뒤에 한국과 대화를 하든 경쟁을 하든 접촉을 다시 시도할 것이다. 북측에서는 현재 체제 개선을 위한 협력 대상으로 일본을 염두에 둔 듯하다.

ⓒAP Photo2004년 5월22일 열린 고이즈미 일본 총리(오른쪽)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의 정상회담.

김정은 위원장은 앞으로 대일 교섭에서도 과거 ‘국력이 여릴 때’, 즉 아버지 김정일 시대의 패턴에서 벗어나려 할 것이다. 과거 북·일 교섭에서 북한은 일본에 ‘항일전쟁’에 대한 보상과 경제협력을 요구한 바 있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는 보상이나 경제협력이 아니라 ‘전쟁 배상’을 요구하겠다는 방침으로 재정립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해야 일본에 요구할 수 있는 수교 자금이 약 200억 달러(약 21조6000억원) 이상으로 커질 뿐 아니라 한국과의 정통성 경쟁에서도 우위에 설 수 있다고 판단했을 법하다. 북한이 1965년 한일협정의 한계를 뛰어넘어 일본과 협상할 수 있다면, 궁극적으로 한국에도 나쁘지는 않다. 한국은 사회적 내실을 다지면서 북한이 한국을 필요로 하는 시점이 올 때까지 인내하며 지켜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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