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들 엉뚱하다고 생각했다. 남녀가 한데 엮이는 것을 기피하는 케이팝 아이돌 세계에 혼성 그룹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심지어 노래와 안무에는 관능이 가득했다. 멤버 중 전소민이 5년 전부터 두 번이나 걸그룹 데뷔를 경험한 인물이라는 데 이르면, 별 생각이라고는 없이 기획된 아이돌이 (또) 나왔다는 결론을 내리기 십상이었다.
그러나 이 그룹은 해외에서 더 빠른 반응을 얻으며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갔다. 비교적 인기가 덜 가시적인 국내에서도, 케이팝 좀 듣는다는 사람이면 매번 좋은 노래를 들고 나온다는 신뢰도를 쌓는 데 성공했다. 살가운 ‘친남매 케미’에 깊은 호감을 느끼는 이들도 많아졌다. 2017년 데뷔한 혼성 4인조 카드(KARD)다.
어떤 정념도 없는 섹시 퍼포먼스
전소민을 알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어둡고 야성적인 비트 속에서 퇴폐미 넘치는 안무를 소화하며 베일 듯한 눈매로 노래하는 이가 그다. 섹시한 분위기 속에서도 이 혼성팀이 불편함을 주지 않는 데는 멤버들의 담백함이 주효했다. 특히 표정과 자세까지 싸늘하게 도도한 전소민은 일종의 철벽과 같다. 섹시한 퍼포먼스를 함께 연출하지만 그저 정해진 루틴일 뿐이라는 듯, 틈새로 어떤 정념도 깃들지 않는 듯하다. 다만 지독히 프로페셔널하다. 많은 이가 전소민에게 감탄을 보낸 이유이기도 하다. 귀엽고 상냥한 걸그룹들을 거쳐 살기등등한 카리스마를 선보인다는 극적인 반전까지 떠올리면, 상반된 모습으로 완벽하게 변신한 재능과 실력에 놀라지 않기 어렵다.
어쩌면 아이돌 시스템의 힘을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우리는 아이돌이 보여주는 인간형에 매료되지만 그것은 기획이 만들어낸 모습이기도 하다. 그리고 같은 사람이 전혀 다른 옷을 입었을 때에도 그 설득력이란 기획하기 나름이다. 동시에 어떤 사람에게 더 잘 어울리는 옷이 따로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전소민이 ‘충분히 잘 해낼 수 있는 것’에서 ‘정말 잘 맞는 것’으로 갈아탔듯이 말이다.
아이돌의 핵심이 기획에 있음을 부정할 순 없다. 그러나 전소민이 그저 자리가 만들어준 사람이 아님은 그의 무대를 보면 단번에 느낄 수 있다. 라틴 리듬으로 흐르는 곡선과 혼성 그룹으로서 합을 맞추는 파워풀한 동작 모두 그는 날카롭게 해낸다. 자주 매섭게 쏘아보는 그의 눈은 단순한 냉랭함이 아니라, 차라리 절도의 표정이다. 오직 완벽한 무대를 선보이는 데에 집중하고 있는, 그래서 다른 어떤 것도 불필요하게 끼어들지 못하는 얼굴이다. 그의 퍼포먼스가 관능과 담백함을 함께 담아내면서도 건조하지 않은 비결이다.
경력의 부침을 겪고 찾아낸 제자리여서일지도, 또는 그것이 제자리라서 그에게 찾아온 것일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그런 결의가 지금 그의 자리를 뒷받침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래하고 춤추는 직업인으로서 절도 있는 충실함, 그것으로 전소민은 자신의 생생한 삶을 빛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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