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낡은 목조 주택촌 꽃처럼 피어나다
  • 일본 오사카·교토/장일호 기자
  • 호수 632
  • 승인 2019.10.29 11:3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내 집 마련이 힘든 시대, 하지만 한국의 지방도시에는 빈집이 넘칩니다.

빈집이 왜 문제인지, 한국의 지방도시에는 얼마나 많은 빈집이 있는지 취재한 <시사IN> 특별 기획 ‘빈집 프로젝트’. 우리보다 먼저 빈집 문제를 겪은 일본·미국·독일을 찾아 빈집 문제 해결을 위한 실마리를 찾아보았습니다. - 일본 편
ⓒ시사IN 조남진오사카시 아베노구에 위치한 카페&바 ‘린도노하나’에서 바라본 길거리 풍경.

여느 날과 다르지 않은 아침이었다. 무심코 <요미우리 신문>을 넘기던 고야마 다카테루 씨가 가위를 들고 기사 하나를 정성껏 오려냈다. 기사는 새롭게 등록유형문화재에 지정된 건물 세 곳을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그중 한 곳인 ‘데라니시케 아베노 나가야(寺西家 阿倍野 長屋)’가 고야마 씨의 눈길을 끌었다. 1932년 지어진 이 건물이 연립주택으로는 최초로 문화재에 지정됐다는 내용이었다. 고야마 씨가 할아버지-아버지에 이어 3대째 운영하고 있는 마루준(丸順) 부동산이 위치한 오사카시 아베노구 쇼와초(昭和町) 지역에 있는 건물이기도 했다. 2003년 9월21일 오전, 고야마 씨는 오려낸 기사를 들고 당장 그곳을 찾아갔다. “보는 순간 ‘이런 나가야(長屋)는 이 마을에 얼마든지 있잖아’ 싶었어요. 저를 비롯해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가치를 몰랐지만 마을이 그야말로 문화재투성이였던 셈이죠.”

오사카 도심에서 지하철로 15분 거리인 쇼와초 지역은 ‘오래된 마을’이다. 100년 전만 해도 전형적인 교외 농촌지역이었던 이곳은 쇼와 시대(1926~1989) 시작과 함께 오사카의 팽창하는 인구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일본에서 최초로 토지구획정비 사업이 시행된 곳이기도 하다. 성장하는 도시에 발맞춰 좁은 골목마다 비슷한 모양의 나가야가 단기간 동안 한꺼번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나가야는 2층짜리 서민형 목조 주택으로 3~4가구가 나란히 이어져 있으면서 출입문은 각각 갖되, 외벽은 공유하는 형태로 지어진 집이다. “쇼와초 지역에 있는 나가야는 최소 85~90년 된 집들인데, 여기가 당시의 ‘뉴타운’이라고 할 수 있죠.”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다. 쇼와 시대가 막을 내리고 헤이세이 시대(1989~2019)가 출범하면서 장기 불황이 시작됐다. 저출산·고령화도 심화되었다. 일본 전체 인구는 현재 약 1억2000만명이지만 50년 뒤에는 8000만명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으로는 1970년대 주택법이 느슨하게 개정되며 노후 건물이 점차 수요를 잃게 되었다. 손이 많이 가는 불편한 목조 주택 대신 콘크리트로 지어진 아파트와 맨션이 있는 도심으로 이동하는 사람이 늘었다. 쇼와초 지역에도 한 집 건너 한 집꼴로 빈집이 생겨났다. 무더기로 지어진 나가야가 골칫거리 취급을 받기 시작했다. 단적으로 90년 전 개교한 쇼와초의 한 초등학교 졸업생은 30년 전 2000여 명이었지만 현재는 300여 명으로 85%가량 줄었다.

오사카시의 빈집 문제는 일본 내에서도 꽤 심각한 수준이다. 공가율이 17.2%로 일본 평균(13.5%)을 상회한다. 집을 철거해 나대지로 두는 것보다 그냥 빈집으로 방치하는 게 재산세를 훨씬 덜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에서 나고 자라 그 과정을 목격한 사람인 동시에 부동산 회사 대표인 고야마 씨의 고민도 깊어졌다. 부동산 업자로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자문자답하는 날이 늘어갔다. 나가야는 골칫거리인 동시에 빈집 문제 해결의 실마리이기도 했다.

ⓒ시사IN 조남진아베노구에서 마루준 부동산을 운영하고 있는 고야마 씨는 15년 전부터 빈집에 관심을 갖고 활동해왔다.

“집이 이렇게 남아도는데 신축은 계속되고 있죠. 자동차 운전에 비유하면 액셀을 밟으면서 동시에 브레이크를 밟는 거죠.” 2004년 문화재로 등록됐지만 빈집 상태로 있었던 ‘데라니시케 아베노 나가야’의 소유주 부탁으로 리노베이션에 참여한 고야마 씨는 이후 본격적으로 빈집을 발굴하기 시작했다. 그의 아이디어로 식당과 카페로 변신한 데라니시케가 전국적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자신감을 얻었다. “쇼와초처럼 빈집이 많은 지역의 경우는 한 집, 한 집의 문제가 아니라 마을 전체의 문제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여기서 살아보고 싶다’ ‘여기서 놀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해서 마을 전체의 가치를 높이는 게 좀 더 근본적인 문제 해결 방법입니다.”

고야마 씨는 “빈집에 지원하는 정부 보조금은 일시적인 해결책일 뿐이다”라고 단언했다. 자력으로 승부하기보다 보조금에 기댄 채 사업을 시작했다가 몇 년 뒤 지원이 끊기면 사업도 망하는 사례를 많이 보았다. 민간 차원에서 ‘작은 대책’을 여럿 만들어 쌓아가는 게 더 중요하다. 취재팀이 오사카시 도시계획부에 일본 빈집 대책과 관련해 활용 사례를 물었을 때 고야마 씨를 제일 먼저 추천해준 까닭이기도 했다. 오사카시 히가시스미요시구의 모리모토 노부유키 정책추진과장은 “민간 차원에서 빈집 활용은 고야마 씨가 으뜸 사례다”라고 말했다.

2018년 7월 기준으로 아베노구 안에빈집을 활용한 상점은 모두 46곳이다. 골목마다 같은 업종의 가게가 겹치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치한다. 작은 공간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다. 업종도 다양하다. 갤러리·카페·식당부터 꽃집, 서점, 옷가게, 요가학원, 디자인 상점 등이 한적한 주택가 골목마다 점처럼 박혀 있다. 이를테면 현재 복합문화공간이자 식당인 ‘보 스페이스(Vow’s Space)’는 애초 창고나 주차장으로 쓰일 운명이었다. 도산한 상태에서 수년간 방치되어 외벽이 다 무너진 사무실을 마루준 부동산에 내놓은 소유주의 요청이었다. 고야마 씨가 소유주의 마음을 돌렸다. “건물을 활용할 수 있는 좀 더 재밌는 방법을 생각해보자고 제안하는 거죠. 그리고 이 골목에는 어떤 상점이 부족한지, 또 무엇이 어울릴지 궁리합니다. 어디를 가도 있는 가게라면 누가 일부러 찾아오겠어요. 보통은 빈집이 골칫거리기 때문에 아이디어를 내면 흔쾌히 받아주죠.”

고야마 씨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지역 내 연구자·건축가·조경업체 등 전문가를 찾아다니며 ‘마을의 가치를 높이자’는 데 뜻을 모았다. 2013년 4월 출범한 ‘바이 로컬(buy local)’은 그 결실이다. 바이 로컬은 ‘지역 내 가게는 동네 주민이 지킨다’라는 생활방식을 제안하는 일종의 운동단체다. 지역 주민이 동네에 어떤 상점이 있는지를 아는 게 중요하다. 46개 상점을 소개하는 지도가 실린 소식지를 만들고, 그중 14개 식당은 따로 레시피를 수집해 요리책을 만들어 배포했다.

“먼 데보다 가까이서 오는 사람이 중요”

매년 ‘바이 로컬의 날’을 정해서 플리마켓을 열기도 한다. 지난해에는 아베노구에 사는 주민 약 10만8000명 중 4000명이 플리마켓을 다녀갔다. 제7회 바이 로컬의 날은 11월10일 나가이케 공원에서 열릴 예정이다. 올해는 55개 상점이 참여하고, 소식지에는 80개 매장이 이름을 올렸다. 1년 새 참여 매장이 훌쩍 늘었다. 빈집이 그만큼 줄어들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주택가에 근사한 공간이 생기면 사람들이 자부심을 갖게 됩니다. 자부심과 마을 전체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연결되고요. 우리 활동은 관광객 유치가 목적이 아닙니다. 오히려 관광객이 늘까 봐 걱정돼요. 오래된 건물을 활용함으로써 위축된 지역을 살리고 이를 지역 주민들이 환영하는 모델을 만들고 싶어요. 멀리서 오는 사람보다 가까이서 오는 사람들이 더 중요합니다.”

고야마 씨가 초창기 입점시킨 12년 차 카페&바 ‘린도노하나’는 골목의 터줏대감이다. 10년 넘게 흉물이었던 나가야를 대대적으로 리모델링하지 않고 집 형태를 거의 그대로 살렸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면 나무 바닥 위에 다다미가 깔려 있다. 좌식 탁자는 네 개뿐이다. 네 명이 쪼르르 앉을 수 있는 바는 주방 가까이 위치했다. 메뉴는 그때그때 식재료에 따라 한두 가지만 내놓는다. 앉은자리에서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니 자연스레 감탄사가 나왔다. 건물과 울타리 사이에 만들어진 작은 정원(坪庭·쓰보니와)은 빛과 바람을 품은 채 움직이는 액자가 되었다. 상점 주인 오와다 마사코 씨는 부산에서 했다는 눈썹 문신을 자랑하며 한국에서 온 손님을 환대했다.

쇼와초 지역에서 만난 상점은 린도노하나처럼 끊어진 역사를 잇고 저마다의 이야기를 쌓아가고 있었다. 지하철역 부근에도 프랜차이즈 매장 한 곳 찾아보기 어렵지만, 그만큼 마을 표정은 다양해졌다. 쇼와초 역 3번 출구에서 나오면 바로 보이는 60년 된 4층짜리 소형 상가 쇼난빌딩도 인상적이었다. 대로변에 위치했지만 입주자를 구하지 못해 7년 넘게 방치돼 있던 건물은 여성 사업자만 입주할 수 있도록 조건을 걸고 입주자를 모집한 후 활기를 되찾았다. 인형과 머리끈 등 수공예품을 만드는 이들이 대부분으로 월 25만원의 저렴한 임차료가 주효했다. 입주자 오사키 루이 씨는 “입주할 때 ‘이 공간을 어떻게 쓰고 싶다’라는 꿈을 밝힌 프레젠테이션을 한 후 선발됐다”라고 말했다.

고타니 요시카즈 씨는 3년 전 도쿄에서 일부러 쇼와초로 이주했다. 95년 된 나가야를 최소한으로 고쳐 입주했다. 가게 이름은 ‘PERK’이지만 변변한 간판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의상 디자이너인 고타니 씨와 그의 아내는 중고 옷을 구입해 분해한 다음 좋은 부분만 사용하여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옷을 만든다. 고타니 씨는 바느질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작업과 판매를 함께 해야 하기 때문에 일부러 한산한 곳을 고르다 여기까지 왔다”라고 답했다. 손님들은 주로 인스타그램을 보고 찾아온다고 했다.

ⓒ시사IN 조남진의상 디자이너 고타니 요시카즈 씨는 도쿄에서 아베노구로 이주했다. 그의 가게는 95년 된 나가야다.

지난 2월 구제 옷과 액세서리를 함께 파는 ‘KAZE MACHI ROMAN’과 카페 ‘텐트’ 등이 입점한 나가야는 고야마 씨의 속을 가장 많이 썩인 건물이다. 20년 가까이 비어 있던 집은 차라리 개미굴이라고 부르는 게 더 적합해 보일 정도로 상태가 좋지 못했다. 사실상 허물고 다시 짓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도면과 사진을 들고 ‘재현’하기 위해 여러 사람이 머리를 맞댔지만 도무지 옛날 느낌을 살리기 어려웠다. 공사비가 오르면서 임차료는 월 160만원으로 지역에서 가장 비싼 축에 속하지만, 입주자들은 새집의 쾌적함과 옛집의 구조를 함께 경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여긴다.

마루준 부동산을 중심으로 반경 2㎞ 안의 빈집을 취급하는 고야마 씨가 입주자를 고르는 기준은 한 가지뿐이지만 꽤 까다롭다. 차를 타고 이동할 만한 거리도 일부러 함께 걷는다. 골목을 소개하고 주변 상가를 보여주고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다. “차를 타고 휙 와서 ‘물건’만 보면 괜히 허름하고, 아무래도 마음에 안 드는 점이 먼저 보일 수밖에 없잖아요. 하지만 걸어오는 동안 이웃과 환경이 어떤지 본 사람들은 좋은 점을 먼저 보려고 합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매직’이죠(웃음).”

마법은 오사카에서 기차로 한 시간 남짓 떨어진 교토에서도 벌어지고 있었다. 나루카와 게이치로 교토시 주택공급공사 사업추진과 과장은 8년 전 ‘운명’을 만났다. 일본 국토교통성 산하기구에서 일하는 나루카와 씨는 빈집 문제와 관련된 연구를 주로 해왔다. 자연스레 현장에서 빈집을 접촉할 일도 잦았다. 그의 관심이 직접 살아보는 일로 옮아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시사IN 조남진나루카와 게이치로 교토시 주택공급공사 사업추진과 과장은 30년간 방치돼 있던 교마치야를 인수해 리모델링했다.

“신축을 하는 건, 빈집을 만드는 일”

1950년 건축기준법이 만들어지기 전 지어진 목조 주택 마치야(町屋)는 상가와 주거를 결합한 일종의 주상복합으로 일본 전역에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과거 1200년간 수도였던 교토에서 만들어진 마치야는 특별히 교마치야(京町屋)라고 부른다. 교토시 공가율도 14%로 높은 편이지만, 일본 전역은 물론 해외에서도 관광객이 지속적으로 유입되며 정책적으로 교마치야를 보전하고 보급하는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다.

1997년 10월 당시 교토시는 교마치야 보전을 위한 공익재단 ‘교토시 경관·마을 만들기 센터’를 설립했다. 운영비는 여전히 시에서 90% 가까이 부담하지만 교마치야 재생과 관련된 사업은 대부분 개인이나 단체의 기부를 통한 펀딩으로 진행된다. 센터는 교마치야를 전수조사해 개별 주택 이력을 관리하고, 이를 통해 추후 예상되는 문제를 사전에 파악해 멸실을 방지하는 일을 한다.

잘 보존된 교마치야일수록 가치도 매우 높은 편이다. 하지만 오래전 지어진 교마치야는 내진 설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오늘 날 빈집으로 남겨진 경우가 많았다. 8년 전인 2011년 나루카와 씨가 선택한 집도 비슷했다. 1932년 6월 지어진 집은 30년 가까이 방치되었다. 처음 문을 열고 들어서자 그를 맞이한 건 족히 30㎝ 이상 쌓인 낙엽이었다. 움직이기 어려울 정도로 푹신한 낙엽을 헤치고 걷는 동안 평생 가장 많은 벌레를 만났다. 후다닥 몸을 숨기는 족제비 가족에게는 미안할 정도였다. 서류만 없었지 낙엽과 벌레와 족제비가 주인인 집이었다.

그와 동행했던 도편수(우두머리 목수)의 의견은 달랐다. 노후한 겉모습과 달리 건축 당시 지금은 구하기 어려운 고가의 재료가 사용됐으며, 구조 자체가 큰 손상 없이 남아 있다고 판단했다. 쓰레기더미 속에서 목수 이름과 건축일자 등이 적혀 있는 상량(上樑)을 발견한 순간 나루카와 씨는 집 구입을 결정했다. 상량에는 과거 교토 제일이라 불리던 도편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리모델링을 하기까지 과정이 간단치는 않았다. “구입을 결정하고 가족과 함께 다시 방문했을 때 아내와 어머니는 문을 여는 순간 바로 문을 닫고 돌아설 정도였습니다(웃음).” 못을 사용하지 않고 나무를 짜맞추는 전통 방식으로 리모델링했다. 현재는 일부 전문가밖에 할 수 없는 방식이라 비싼 값을 치렀다. 물을 사용하는 주방과 화장실은 현대식으로 고칠 수밖에 없었지만 나머지 부분은 ‘옛것’을 지키는 데 집중했다. 본격적인 공사에 앞서 4개월은 매일같이 청소만 했다. 청소를 하는 동안 집 구석구석을 더 잘 알게 되었다.

구입에서 입주까지 1년 가까이 걸렸다. 조명 하나부터 나무 바닥과 계단 손잡이, 얇은 나무를 세로로 세워 방과 창문을 막는 격자(格子)까지 지어진 당시 모습과 재료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애썼다. “제가 이 집의 네 번째 소유자인데, 저는 이 집을 소유한 사람이 아니라 거주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집은 빌려 쓰는 거니까요. 이전에 살았던 사람의 역사를 존중하고 싶었어요. 대신 이 집에 들어올 다음 세대를 위해 내진 같은 안전을 확보하는 건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나루카와 씨가 내밀한 공간인 집 구석구석을 취재팀에 스스럼없이 공개한 데도 이러한 생각이 작용했다. 과거의 지식을 공유하는 공간으로서 교마치야를 알리는 일은 그에게는 지역을 위한 일이기도 했다.

ⓒ시사IN 조남진
ⓒ시사IN 조남진나루카와 씨의 교마치야는 주방과 화장실은 현대식으로 고쳤지만(아래) 나머지 부분은 건축 당시 구조와 자재를 최대한 살렸다(위).

살면 살수록 교마치야에는 숫자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고 나루카와 씨는 생각한다. 교마치야는 1년 열두 달 중 4월과 5월 단 두 달을 제외하면 덥거나 추운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경험해야 하는 ‘가혹한’ 집이다. 그래도 봄과 초여름 사이 두 달의 쾌적함을 경험하고 나면 추위와 더위는 견딜 만하다. “냉난방이 완벽한 집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감각”이라고 그가 말했다. 여름이 오면 다다미방의 창호를 떼고 발을 걸었다. 빛과 바람이 집 안팎을 드나들도록 창틀과 문틀을 바꿔 다는 동안 매일 조금씩 집과 친해졌다. 그는 사람이 옷을 갈아입듯 집도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집에 깃든 역사를 조곤조곤 설명하던 나루카와 씨가 목소리를 높인 순간은 딱 한 번이었다. “신축을 하는 건 빈집을 만드는 일이다”라고 말할 때였다. “요즘 일본 사람들은 주택을 ‘산다’고 얘기해요. 그런 감각에서 탈피하지 않으면 빈집 문제 해결은 어려울 거라고 생각해요. 옛날에는 집 을 ‘짓는다’고 했거든요. 옛사람들은 집 하나를 제대로 짓기 위해 산을 먼저 사서 나무를 키운다고 했어요. 애초부터 제대로 짓지 않은 집이 결국 빈집을 만들고 암처럼 도시를 좀먹는 것 같아요.”

 

 

일본의 ‘빈집 특별조치법’

권용수 (전 서울연구원 일본 통신원)

 

 

ⓒ시사IN 조남진교토 시내에 10년 이상 버려져 있던 교마치야 두 채를 연결해 하나의 공간으로 만든 ‘이토노와’는 청년 창업시설이다.

주택을 소유해 자산을 형성한다거나 임대수익을 창출한다는 ‘공식’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고령화와 인구 감소, 주택 노후화, 원도심 공동화 등 복합적 요인으로 발생하기 시작한 빈집이라는 문제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5년마다 토지이용계획이나 정책을 기획·입안·평가하는 기초자료로 주택·토지 실태를 파악한다. 이때 빈집 실태도 함께 점검한다. 일본 총무성의 2018년 주택·토지통계조사에 따르면 일본의 빈집 수는 846만 채(공가율 13.5%)에 이르렀고, 그중 별장 등 2차적 주택이나 임대·매매 목적의 빈집이 아닌 그냥 방치되고 있는 빈집은 무려 347만 채에 달했다. 빈집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2033년에는 그 수가 2000만 채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은 빈집과 관련해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다. 먼저 빈집을 적정 수준에서 관리하기 위해 철거를 우선시하는 관점이다. 각 지방자치단체는 정부 차원 대책이 나오기 전부터 낡고 위험한 빈집 증가를 눈여겨보고 있었다. 지역의 방재, 방범, 생활환경 보전, 경관 보호를 위한 독자적 조례를 제정해왔다. 조례는 법적 구속력이 없는 데다 빈집의 소유자를 알 수 없는 경우 철거를 하기 어려워 한계를 드러냈다.

이 때문에 일본 정부가 본격적 대책 마련에 나섰고, 그 결과물이 2014년 ‘빈집 등 대책 추진에 관한 특별조치법(이하 빈집 특별조치법)’ 제정이다. 어떤 이들은 빈집 특별조치법을 강제철거법 정도로 이해하기도 한다. 빈집 특별조치법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 둔 규정이 결과적으로 철거라는 선택지를 부각시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법이 정하는 특정 빈집으로 지정되면 고정자산세가 증가해 철거를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거나, 최종 수단으로 행정대집행을 통해 소유자 대신 빈집을 철거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시사IN 조남진

빈집 특별조치법을 좀 더 들여다보면, 빈집을 적정하게 관리함으로써 생활환경 악화를 방지하고 빈집 활용을 촉진하는 데 목적을 둔 것임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같은 수준의 빈집이라도 모두 철거라는 동일한 조치를 취할 필요는 없다. 지역 상황에 따라 위험도나 주변 생활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달리 평가된다면 그 조치도 달라질 수 있다. 실제 일본 지방자치단체는 지역 특성을 반영해 법에서 요구하는 빈집 대책 계획을 마련하고, 조언·지도, 권고, 명령, 대집행 등을 사례에 맞게 활용하고 있다.

또 하나는 빈집 활용이라는 관점에서 볼 수 있다. 낡고 위험한 빈집 관리를 철거라는 관점에서만 접근하면, 빈집 철거 후 생기는 공터가 또 다른 문제를 발생시킬 가능성이 있다. 빈집 활용을 촉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빈집 활용을 기대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활용 가치가 있는 빈집 정보를 충실하게 제공해야 한다. 일본에서는 ‘빈집 은행’ 운영 등을 통해 단순히 빈집 정보를 제공하는 것 외에 ‘역에서 1㎞ 이내로 간단한 수리를 통해 이용할 수 있는 빈집’이나 ‘도로에 인접한 일정 규모 이상의 조건이 좋은 빈집’을 파악하는 정부 차원의 움직임이 있다.

빈집 활용에 상당한 비용이 든다는 점을 생각하면, 빈집 활용 촉진을 위해서는 정보 제공에 더해 과감한 지원도 필요하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지역 요구를 반영한 빈집 활용 비용을 적극 지원한다. 예컨대 지역에 필요한 복지시설이나 공원, 주차장과 같은 공공시설, 청년이나 신혼부부를 위한 임대주택, 청년 창업시설 등에 빈집을 활용한다. 다만 빈집 활용을 지원하는 것은 재정 부담을 수반하기에 어쩔 수 없이 한계를 지닌다.

최근에는 빈집을 활용해 지역을 활성화한다는 목표로, 수익률을 떠나 지역에 보탬이 되고자 하는 뜻을 가진 사람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다소 성격은 다르지만 교토에서는 지역의 전통을 간직하고 있는 교마치야(京町屋) 재생사업에 200명 이상의 현지 투자자를 통해 사업비의 60%에 해당하는 6500만 엔을 조달한 경험이 있다.

 

 

 

※ ‘빈집 프로젝트 페이지(house.sisain.co.kr)’에서 더 많은 사진과 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소리없이 번지는 도시의 질병 <빈집>

<시사IN> 특별기획 ‘빈집’ 바로가기 

 

 

 

 
Magazine
최신호 보기 호수별 보기

탐사보도의
후원자가 되어주세요

시사IN 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