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성 그림

3월 학교 근처 고등학교의 내신 점수 소식이 중학교 3학년 담임들에게 전해진다. 학교 이름 옆에 195, 190… 같은 내신 점수가 서열화되고 표가 만들어진다. 점수가 높게 나온 학교일수록 이른바 ‘명문고’라 불린다. 이런 학교에 중학교 내신 점수가 월등히 높거나 수능 준비에 최적화된 학생들이 많이 지원한다. 중학교 최종 성적이 나오기 전까지 ‘가내신’이라고 불리는 점수가 산출된다. 경기도에서 가내신은 점수 산출 시점까지의 중학교 교과 성적(150점) 및 비교과 활동(50점, 출결 상황, 봉사활동, 학교활동)을 200점 만점으로 수치화한다. 학생들의 가내신 점수를 토대로 담임교사는 진학할 수 있는 주변 고등학교를 소개해준다.

이 광경이 낯선가? 그렇다면 당신은 고교 평준화만 경험했을 가능성이 높다. 평준화 지역에 있다가 온 학생과 학부모도 적잖이 당황한다. 일반고에 지원했다가 떨어지면 추가 모집 기간에 학생 정원이 미달된 학교에 지원해야 하기 때문이다. 성적이 어중간하면 괜히 지원했다가 떨어져 정원이 미달된 학교를 가야 할까 봐 불안하고, 하향을 하자니 학습 분위기가 좋지 않을까 봐 걱정이다. 학부모 상담 중에 내신 기준 중위권인 한 학교에 서울에서 상위권 학생들이 전학을 온다는 ‘카더라 통신’에 아이가 밀려날까 봐 많은 학부모가 불안해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평준화 지역이었으면 양상은 달랐을 것이다.

1974년 고교 평준화가 도입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일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고교 비평준화가 유지되고 있다. 지역 간 분위기가 다르고 학교 간 편차도 심하며 상대적으로 거리가 있는 지역에서 학생들을 ‘뺑뺑이’로 배정하면 통학하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 지역이 클수록 더욱 그러할 것이다. 모든 지역에 무작정 고교 평준화를 도입할 수도 없다. 교통 여건이 정비되어야 하고 구역 배정과 고등학교에 대한 적절한 지원도 이루어져야 한다.

물론 비평준화 지역에서 일반고에 가고자 하는 학생들은 대학이나 향후 진로를 알아보듯 통학 거리, 성적, 학습 스타일 등을 고려해 어떤 고등학교가 더 좋을지 비교하고 지원할 수 있다. 이 ‘선택’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성적이 되는 아이들에게만 주어진다. 점수가 낮은 학생들에게는 ‘선택’이 아니라, 신설 학교나 지역이 멀더라도 학생이 미달된 비인기 일반고나 특성화고에 어쩔 수 없이 지원해야 한다.

‘명문고’ 못 간 학생들, 자신을 패배자로 규정

비평준화 지역에서 서열화가 지속되는 이유는, 소위 ‘잘하는 학생’들이 모여 있으면 잘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시행된 ‘2015 개정교육과정’에서 강조하는 공동체 역량은 서열화된 교육에선 달성하기 어렵다. 경쟁을 뚫고 명문고에 들어갔다는 ‘부심’이 학생들에게 생기고, 그렇지 못한 학생들에게는 자괴감이나 패배감이 형성된다. 자괴감이나 패배감이 얼마나 무섭냐면, 이러한 생각이 한번 전염되면 자신들을 패배자로 규정하고 더 이상의 도전을 하지 않으려는 모습이 교실에 나타난다.

사회는 다양한 구성원들이 함께 존재한다. 나는 그들과 다르다는, 서로 차이를 강조하는 구조 속에서는 사회가 통합되기 어렵다. 성적이 비슷한 학생들로 구별된 집단 속에서 따로 지내면 제한된 경험을 하기 쉽다. 이질 집단에서,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폭넓은 경험을 할 수 있다. 이러한 경험은 모든 사람을 고려한 ‘유니버설 디자인’의 등장에 훨씬 긍정적이다.

올해만 벌써 경기도에서 고교 평준화와 관련한 토론회가 두 차례나 있었다. 물론 고교 평준화는 완벽한 대안이 아니다. 고등학교가 대입을 위한 기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상황에서 탈피하려면 대학 입시의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

기자명 차성준 (남양주다산중학교 교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