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이명익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 대표는 “현재 청와대와 백악관의 좋은 관계가 기회가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북한과 미국이 밀고 당기기 끝에 어렵게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기로 했다. 하지만 워싱턴 상황이 심상치 않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스캔들’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급기야 대통령 탄핵에 소극적이던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9월24일 탄핵 조사 개시를 선언했다.

트럼프 대통령 탄핵과 미국 대선, 그리고 북·미 협상의 함수관계는 무엇일까? 마침 한국을 방문한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KAGC) 대표를 만났다. 27년간 뉴욕과 워싱턴을 오가며 재미 한인의 정치참여 운동을 이끌어왔다. 그는 연방 의회를 중심으로 워싱턴 정가의 흐름을 꿰뚫고 있는 미국통이다. 2007년 미국 하원에서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을 통과시키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 탄핵 문제가 심각하게 돌아가는 것 같다. 결론이 어떻게 날까?

냉정하게 볼 필요가 있다. 탄핵 정국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오히려 유리할 수 있다. 민주당이 하원 다수당인데도 그동안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탄핵에 망설였다. 선거 국면에 들어가면 민주당에 유리하지 않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지금 민주당에서 탄핵파는 지역구가 탄탄한 의원들이다. 이른바 ‘스윙 스테이트’(경합주) 의원들은 중도주의자들이다. 이들은 변화를 싫어하고 탄핵도 반대한다. 그동안 민주당 지도부는 트럼프 대통령 재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잘못 말려들면 다수당 자리도 빼앗길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탄핵 조사를 찬성하는 여론이 절반을 넘었다고 하는데 정작 대선에 들어가면 분위기가 달라질 것이라는 얘긴가?

우선 공화당이 상원의 과반수를 차지해 상원에서 탄핵안 통과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리고 탄핵과 미국 대선의 관계를 좀 더 깊이 알려면 3가지 지표를 봐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와 당내 지지도 그리고 의회에서 다수당이 될 확률 등이다. 클린턴 대통령 때도 하원에서 탄핵안이 통과됐지만 국민의 지지도가 떨어지지 않았다. 상원에서 부결되고 클린턴은 재선에 성공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지금 고정 지지층이 흔들리지 않고 있다. 국정 수행이나 당내 지지도가 오히려 올라가는 중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도 “나를 좀 탄핵시키라”고 오히려 큰소리친다.

그렇게 큰소리치는 이유는 뭘까?

탄핵 국면이 선거에 유리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를 탄핵하려면 미국에서 혁명이 일어나야 할 거다”라고 주장한다. 자신의 지지층이 어떻게 움직일지를 잘 알고 있다. 민주당이 트럼프 대통령을 공격할수록 트럼프 지지자들은 상대방에 대한 분노로 더 결집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탄핵 국면을 일찍 맞는 게 낫다는 계산도 한다.

왜 그런가?

작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상원 다수당을 지킨 것은 당시 공화당 의원 8명, 민주당 의원 27명의 임기가 끝나 선거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불리했다. 내년 선거에서는 공화당 의원 22명, 민주당 의원 9명의 임기가 끝난다. 민주당이 선전하면 상원 다수당이 될 가능성이 있다. 민주당 지도부는 다수당이 되고 나서 탄핵하자는 입장이었던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 탄핵 정국을 만들어야 유리하다고 본 측면도 있다.

그렇다면 민주당 지도부가 탄핵 조사 개시를 선언한 것은 대선에서 반드시 불리하지만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인가? 이는 하원의 각 상임위원장을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어서 우크라이나 스캔들에 관련된 대통령 측근이나 행정부 고위 당국자들을 소환해 이슈를 끌고 갈 수 있다고 본 것인가?

맞는 얘기다. 그 때문에 트럼프 캠프도 조금 긴장하고 있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북·미 관계다. 북한과 미국이 실무회담을 시작한다지만 실무회담은 언제나 진행되다가 중단된다. ‘톱다운’으로 풀어야 한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탄핵 문제에 집중하느라 북한 문제를 다룰 여력이 없을까 봐 걱정이다. 외교·안보나 한반도 문제는 워싱턴에서 ‘넘버원’ 이슈가 아니다.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 회담에서 국내 정치적으로 도움이 되는 건 거의 다 받아냈다. 일단 미사일 공격 위협이 없어졌고 북한에 억류된 미국 사람들도 데려왔고 미군 유해도 송환받았다. 앞으로 더 얻을 게 뭘까? 중국을 견제하는 데 북한이 도움이 된다면 움직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 밀착된 북한을 한국과 손잡고 중국에서 떼어내는 데 관심이 있긴 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평양에 오거나 김정은 위원장이 유엔을 방문하는 이벤트가 있을 수 있지 않을까?

6월30일 판문점 회동 때 김정은 위원장이 그런 제안을 했다. 그 정도라면 관심을 끌 것이다. 대선에 돌입하면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어젠다 우선순위가 중요하다. 미국에서 한반도 이슈는 어지간해서는 우선순위가 높지 않다.

북한은 미국과 직접 채널이 마련됐기 때문에 남쪽 역할은 더 이상 필요 없다고 한다는데.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북한이 한국을 볼 때 믿음직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반도 이슈는 문재인 대통령이 재촉하지 않으면 진행이 잘 안 되었다. 문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한 문제는 종속변수일 뿐이었다. 지난해 무산될 뻔했던 싱가포르 회담이 성사되는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도 문재인 대통령의 역할을 인정했다. 그동안 존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 때문인지 문 대통령이 부지런히 움직였지만 가시적인 결과는 안 나왔다. 연내 미국과 협상해서 김정은 위원장이 얻는 게 없다면 장거리미사일을 또 쏠지 모른다.

존 볼턴 전 보좌관은 왜 갑자기 해임됐나?

먼저 트럼프 대통령이 그를 기용한 이유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의 세계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그것과 일치했다. 볼턴 전 보좌관은 힘으로 미국의 이익을 지켜야 한다고 믿는 인물이다. 또 유태인 우파들이 그를 기용하라고 압력을 가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왜 해임됐을까. 그가 북한과 협상에서 리비아 모델을 강조해 그런 것은 아니다. 지난 9월11일은 9·11 테러 18주기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탈레반과 협상해 내년 선거 시점에 맞춰 아프간 주둔 미군을 철수시키려고 했다. 해외 주둔 미군을 본국으로 데려오는 것이야말로 미국 대통령의 최고 덕목 중 하나다. 볼턴 전 보좌관이 반대해 결국 무산됐다. 협상 실패에 대한 책임 차원에서 사임 의사를 표명했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전격 수용해버린 것이다.

한국 언론이 인터뷰하거나 기고를 받는 워싱턴 전문가들은 실제 어느 정도 영향력이 있나?

두 가지를 지적할 수 있다. 워싱턴에서 나름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아시아 전문가들은 거의 예외 없이 일본을 중심에 놓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한반도 전문가로 잘 알려진 사람들 역시 속내를 보면 예외 없이 일본과 가깝다. 이들은 일본만 끼어들면 일본 편을 든다. 그런데 트럼프 정부 들어서 이런 사람들이 영향력을 상실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른바 워싱턴의 외교·안보 기득권 세력들, 그리고 전문가 그룹이 힘을 상실했다. 지금은 유권자 시대다. 시민사회의 힘이 막강해졌다. 워싱턴은 민주당과 공화당 그리고 이른바 시민당(풀뿌리 권력)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제는 기업이 권력에 기댄 로비스트에게 돈을 안 준다. 그들의 말이 더 이상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을 가장 우대하는 게 한국 언론이다.

외교·안보 문제와 관련해 국무부나 국방부의 전통적 접근과 트럼프 대통령의 방식 차이도 감안해야 하지 않을까?

맞다. 지금은 트럼프 시대다.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처럼 한·미·일을 엮어서 전략을 만드는 스타일이 아니다. 트럼프 정부 이전 미국의 동북아정책은 미·일 관계를 기본 축으로 봤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일 양국에 개별적으로 따로 베팅해서 미국의 이익을 추구한다. 당연히 국무부 등 기존 관료 조직과는 접근 방법이 다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우호적인 것 같지 않다.

1980년대 말 맨해튼을 다 사려고 할 정도로 일본 자본이 극성이었다. 당시 뉴욕시는 일본 사업가들에게 개발권을 많이 넘겨줬다. 그때 트럼프 대통령도 부동산 개발을 했는데 손해를 많이 봤다. 1990년대 초·중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부동산 사업에서 재미를 좀 볼 수 있었다고 했다. 2016년 선거 때 아시아 문제가 나오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 경험을 꼭 말했다. 일본에 대해 뼈에 사무친 경험이 있다고 했다. 개인적 경험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미국의 역대 정부들은 일본과 손잡고 북한 진출을 추구해왔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그럴 생각이 없는 것 같다.

국내 언론은 한·미 사이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으면 한·미 동맹이 위태롭다고 주장한다. 한·미 관계를 어떻게 보시나?

국가 관계에서는 정상 간 관계가 아주 중요하다. 과거 한·미 관계는 한국 외교부와 미국 국무부가 담당했다. 지난해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한·미 관계가 사실상 정상 간의 톱다운 방식으로 바뀌었다. 청와대와 백악관의 관계가 중요해졌다. 청와대와 백악관의 핵심 관리들이 맺고 있는 핫라인이 중요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년 선거에서 재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청와대와 백악관의 좋은 관계가 기회일 수 있다.  

ⓒ판문점 조선중앙통신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오른쪽)이 6월30일 판문점에서 악수하는 모습을 문재인 대통령이 바라보고 있다.

한·미 관계에서 백악관 외에 또 신경을 써야 할 곳이 있다면?

당연히 의회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워싱턴 권력은 공화당·민주당·트럼프 대통령(백악관) 3축이 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평화 프로세스를 반대하던 민주당 의원들도 지금 180° 달라졌다. 이제는 대통령 혼자 하지 말고 같이 하자는 것이다.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분위기 전환에 큰 기여를 했다. 또 하노이 회담 결렬이 미국에서는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의 애국심을 입증해주면서 의원들 사이에 인기가 높아진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의회는 시민이 움직인다. 그런 점에서 공공외교가 필요하다.

기자명 남문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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