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TV 방송 화면 갈무리사우디아라비아의 자전거 타기 동호회원들.

사우디아라비아 여성들에게도 자동차 운전이 허용된다는 뉴스가 나온 지 벌써 꽤 되었다. 그 소식에 가려져서 안 나온 다른 소식도 하나 있다. 자전거 운전 허용이다. 원래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여자가 자전거를 탈 수 없었다. 2013년에야 남자 가족과 동반하고, 이동이 아닌 놀이 목적일 때 자전거를 탈 수 있도록 허용됐다.

자전거 운전이 완전히 허용된 건 2018년이다. 여성 혼자서도 자전거를 타고 이동할 자유가 주어진 것이다. 물론 ‘아바야(이슬람 국가의 여성들이 입는 전통 복식의 한 종류로, 얼굴과 손발을 제외한 전신을 가리는 복장)’를 입어야 한다. 그나마 자전거를 운전할 때 입어야 할 아바야 색상 제한은 풀렸다. 원래는 검정색 아바야만 허용됐다.

자전거가 여성 건강에 해롭다는 논문도 발표

예전의 유럽 또한 여성들이 자전거 타는 것을 막으려 했다. 초기 형태 자전거는 19세기 초반 등장한다. 기능은 제한적이었다. 길이 잘 닦여 있는 정원에서만 운전이 가능했다. 여기에 페달이 달리는 등 지금과 같은 형태의 현대적인 자전거로 바뀐 것이 1860년대부터다. 남자와 달리 집 안에 주로 있었던 여자들은 자전거 등장과 함께 파리 시내를 누비고 다녔다.

남성들은 이를 곱게 보지 않았다. 의사들은 자전거가 불임을 부를 수 있다는 진단을 내리기도 했고(현대의 사우디아라비아 역시 자전거가 불임을 초래한다며 여자들의 자전거 타기를 막았다), 여성 건강에 안 좋다는 논문이 의학 저널에 실리기도 했다. 당시 자전거가 너무 고가였던 점이 남성들을 자극했다는 게 지배적 해석이다. 자전거 한 대 값이 그 시절 일반적인 노동자 수개월치 월급이었기 때문이다.

당시까지 맹아(萌芽) 상태였던 자동차보다야 자전거는 훨씬 저렴한 대안이었고, ‘악담’을 퍼부어봤자 여성들이 자전거 타는 걸 막을 수 없었다. 여성들도 그 의미를 알았다. 이동의 자유야말로 남자들의 감시를 벗어나 해방으로 가는 중요한 한 걸음이었기 때문이다. 가령 1896년 파리에서 열린 한 페미니스트 회의에서는 ‘평등한 자전거가 여성해방을 가져오리라’는 발언도 나왔다. 이후 19세기 후반부터는 자전거 값도 많이 내려갔고, 기업들도 자전거 광고 그림에 주로 여성을 등장시켰다.

당시 간접적으로 여성들의 자전거 타기를 막는 법률이 하나 있었다. 여성의 바지 착용을 금지하는 조례였다. 1800년에 제정된 이 조례는 당시 남장한 여자가 남성만 할 수 있는 각종 직업 영역에 넘어오는 걸 금지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이 조례에 따르면 여성이 바지를 입으려 할 경우, 관할 경찰서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코르셋을 착용하고 롱드레스를 입더라도 자전거를 타기 위한 여성들의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자전거를 편하게 탈 수 있도록 스커트를 개조했다. 개조한 스커트를 19세기 중·후반 미국의 여성운동가 아멜리아 블루머의 이름을 따 ‘블루머(bloomer)’라 불렀으며, 당시 남자 저널리스트들은 블루머를 입은 사람이 여자인지 남자인지 모르겠다며 자전거가 제3의 성 ‘여성 자전거 운전자(bicyclette)’를 창조해냈다고 빈정거렸다.

결국 조례도 바뀌기 시작했다. 1892년과 1909년을 거쳐 “자전거 손잡이를 잡고 있는 한” “말고삐를 쥐고 있는 한”이라는 단서가 붙으며 여성에게도 바지 착용을 허용하기 시작했다. 참고로 이 조례는 사문화되다시피 했지만 이후에도 남아 있었다. 프랑스 제5공화국 헌법에 위헌이라고 판정받으며 2013년에야 폐지된다. 아무리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지만 여권 신장의 길은 역사적으로도 참 고되었다.

기자명 위민복 (외교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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