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카와 초등학생들은 왜 쓰나미로 목숨을 잃었나
  • 임지영 기자
  • 호수 629
  • 승인 2019.10.09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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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하라, 바다에 빠지지 말라> 리처드 로이드 패리 지음, 조영 옮김, 알마 펴냄

‘2011년 3월11일 두 번의 대재앙이 일본 동북부를 강타했다.’ 하나는 원자력발전소의 원자로가 녹으면서 시작됐고 그보다 먼저 쓰나미가 있었다. 영국 <더 타임스>의 일본 주재 기자인 리처드 로이드 패리는 그날 이후 일본 동북부의 작은 마을 가마야에 있는 오카와 초등학교 학부모들과 긴 시간을 보낸다. 모두 유족이었다.

왜 오카와 초등학교일까. 80여 명의 죽음은 어떻게 달랐던 걸까. 3월11일 당일, 어린이 75명이 선생님의 보호 아래 사망했는데 그중 74명이 오카와 초등학교에서였다. 많은 죽음 중에서도 예외적이었다. 파도에 휩쓸린 아이 78명 중 단 4명만 살아서 나왔다. 일본에서 학교는 가장 안전한 장소 중 하나다. 직접 굴삭기 자격증을 따 진흙 속에 파묻힌 아이들을 찾던 부모들은 사건 당일의 진실을 찾으려고 한다.

지진은 오후 2시46분에 일어났다. 학교의 시곗바늘은 3시37분에 멈췄다. 물이 들어온 시각이다. 첫 번째 사건과 두 번째 사건 사이 마지막 51분 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 유일하게 살아남은 교사의 말은 거짓임이 드러났고 높은 곳으로 달려가자는 누군가의 외침은 저지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언덕 기슭에 위치한 목조주택의 한 단란한 가정에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거대한 비극이 놓치기 쉬운 개인의 서사가 글 속에서 복원된다.

저자는 대피소의 질서정연한 풍경에서 현대 일본의 미스터리를 읽어낸다. 헌법, 독립적인 사법부, 자유 언론과 다수의 정당이 있지만 정치적 생명은 부재했다. 일본인의 특성인 인내심은 재난 직후 피난민들을 단합하게 만든 동시에 정치를 무력화했다. 예외적으로 오카와 초등학교의 부모들이 소송을 벌인다. 가족들은 이렇게 쓰인 배너를 들고 법정에 선다. “우리는 선생님이 하라고 하신 대로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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