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하지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 임지영 기자
  • 호수 629
  • 승인 2019.10.08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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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셀럽파이브의 신곡 ‘안 본 눈 삽니다’를 보며 다섯 여자의 태연자약한 표정에 웃음이 터졌다. 며칠 뒤 SNS에서 어떤 글이 눈에 띄었다. ‘안 본 눈 삽니다’라는 말을 시각장애인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라는 질문이었다. 반응이 다양했다. 공감하는 의견도 있었고 지나치게 예민하다는 비판도 있었다. 나도 잠시 핸드폰에서 손가락을 떼고 생각에 빠졌다.

SNS 상의 작은 소동을 지켜보며 <선량한 차별주의자> 저자 김지혜 강릉원주대 교수가 겪었다는 일화가 생각났다. 이쪽은 훨씬 선명하다. 한 토론회에서 ‘결정장애’라는 말을 썼고 누군가 왜 그 단어를 썼냐고 물었다. 바로 사과했지만 제대로 이해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저자도 그쪽 분야의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김원영 변호사는 장애인 당사자로 꽤 오래전부터 차별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써왔다. 지난봄부터 여름까지는 <시사IN>에 김초엽 작가와 함께 과학기술과 장애에 관한 글(‘김초엽·김원영의 사이보그가 되다’)을 연재했다. 지체장애인이자 남성 법학자, 청각장애인이자 여성 SF 작가의 시선에서 같은 듯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두 사람의 글 덕분에 정상성과 비정상성, 기술과 진보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시사IN 신선영

연재를 마무리하며 대담을 나눌 때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장애인이 기술을 통해 기능적 제약을 극복할 수 있지만 위계나 차별을 없앨 순 없다는 김 변호사의 말이었다. 그는 분명히 새로운 위계가 발생할 거라고 단언했다. 의족을 다리와 똑같이 만든다고 해도 의족을 벗어야 하는 순간은 온다. 장애를 ‘극복’하지 않아도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다. 그런 면에서 차별이나 위계를 감지하는 감수성은 앞으로의 사회에서 더 절실하게 요구되는 자질일 것이다.

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덤벼야 하는 순간은 당사자나 상대 모두에게 유쾌한 경험이 아니다. 하지만 뭔가를 감지한 이상 그 이전으로 돌아가긴 어렵다. 최근 차별과 몸의 위계에 대해 사유해보며 내가 얻은 소득은 SNS에서 발견한 한 문장 때문에 핸드폰에서 손을 떼고 잠시 생각에 빠지는, 그 감각을 지니게 되었다는 데 있다. 물론 그건 누군가를 비난하기 위한 게 아니라 스스로 차별하지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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