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트래블 참가자 박기수 제공킬리만자로가 보이는 암보셀리 국립공원에서 풀을 뜯는 코끼리들.

어쩌면 나는 여행을 믿지 않았던 것 같다. 높게 쳐줘봐야 주말의 확장 정도라고 할까. 그렇다. 나에게 여행은 일하는 상태의 반대말에 불과했다. 아프리카 대륙을 밟기 전까지 ‘재방문 욕구’를 강하게 자극하는 여행지 역시 없었다. 다시 가도 좋을 게 뻔하지만 간절하진 않았다는 의미다. 물론 처음엔 좀 무서웠다. 그럼에도, 영화 〈그녀(Her)〉의 다음 대사를 부여잡고 〈시사IN〉의 ‘함께 걷는 길-나의 첫 아프리카 여행’에 동참했다. “가끔씩 앞으로 내가 느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경험한 듯싶어. 새로움을 느끼지도 못할 것 같고, 그저 이미 느낀 것을 반복하는 게 아닐까. 그것도 예전보다 덜한 감정으로.” 내 인생에 있어 가장 거대한 미지의 땅, 아프리카행을 결심한 이유다.

완전한 기우였다. 아프리카는 무섭지 않았다. ‘하쿠나 마타타’라는 표현만큼이나 친근했다. 현지인이 웃는 얼굴로 ‘잠보’ 인사를 전해오면 나도 미소와 함께 인사를 건넸다. 아프리카는 불편하지 않았다. 예상 이상으로 모든 게 쾌적했다. 심지어 음식도 맛있었는데 적어도 내가 방문한 케냐와 탄자니아에서 먹었던 음식 전부가 입에 잘 맞았다. 이것은 아프리카를 향해 부치는 내 통렬한 반성문이다.

아프리카에 다녀온 뒤 누군가 반문했다. “관광지 다녀온 거 아니냐”라고. 그렇다. 관광지 다녀온 거 맞다. 한데 잠깐, 모든 여행은 어차피 다 관광지를 가는 거 아닌가. 현지인이 되려고 가는 여행자는 없다. 나는 이게 장소를 불문하고 여행을 대하는 우리의 본질적 태도라고 생각한다. 관광지에 가서 다소는 무책임해진 자신을 마음껏 즐기는 것. 물론 최소한의 예의와 배려는 지키면서 말이다.

사파리, 즉 ‘게임 드라이브’를 즐겼던 케냐 암보셀리 국립공원도 마찬가지다. 공원의 크기는 대략 서울과 맞먹는데 찾는 사람은 모조리 관광객이다. 헤밍웨이도 관광객으로 온 뒤 저 멀리 킬리만자로 산을 바라보며 〈킬리만자로의 눈〉을 집필했다. 아마 오늘도 수많은 관광객이 경이로운 표정으로 코끼리를 보고, 기린을 보고, 버팔로를 봤을 것이다. 운이 좋았다면 우리 일행처럼 사자도 봤겠지.

나는 다시 아프리카에 갈 것이다

정리한다. 관광객이 된다는 것, 겉핥기에 불과할지라도 의미 있을 수 있다. 일상의 책임을 잠시나마 내려놓은 상태이기에 할 수 있는 것들이 관광지에서는 존재한다. 그것은 좀 더 너그러워진 나를 발견하는 것일 수도, 매일 혼자서만 놀다가 타인과 어떻게든 소통하려는 나 자신의 모습에 놀라는 것일 수도 있다. 바로 내가 그랬다. 이런 내 생각들은 〈약한 연결〉, 이 책에서 영감을 얻었다. 꼭 한번 읽어보길 권한다.

킬리만자로의 중턱에 위치한 산장에서 빛나는 별을 바라보며 본 이베어의 ‘Naeem’을 들었다. ‘The Lion Sleeps Tonight’을 틀어놓고 비하인드 스토리에 대해 일행들과 얘기를 나눴다. 각자 알아서 즐기다가도 어느새 모여 웃고 떠들며 술잔을 비웠다. 며칠 전 적금 통장을 새로 만들었다. 나를 사로잡은 아프리카에 다시 가기 위함이다. 언젠가 이 소망이 현실화된다면 그것은 아프리카의 치명적인 매력 덕이기도 하지만 그분들 덕이기도 하다. 함께한 24명의 일행에게 감사를 전한다.

모르는 것에 관해, 경험해보지 못한 것에 관해,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 침묵하려 한다. 대신 조금은 알게 된 것을 조금이라도 더 알기 위해 경주하는 태도만은 잃지 않을 것이다. 평생에 걸쳐 실천해야 할 내 인생의 숙제다.

기자명 배순탁 (음악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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