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자 잡는 ‘DNA법’ 문제도 있다는데?
  • 김영화 기자
  • 호수 629
  • 승인 2019.10.08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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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DNA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경찰이 화성 사건 용의자를 특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개인정보결정권 침해 우려도 계속 제기된다. 집회·시위 참여자들도 DNA 채취 대상이 될 수 있다.
ⓒ연합뉴스1987년 1월 화성 연쇄살인 5차 사건 현장을 경찰이 살펴보고 있다.

30년이 지나도 DNA는 증발하지 않았다. 경기남부경찰청 미제 사건 전담팀이 오산경찰서(옛 화성경찰서)에 보관돼 있던 현장 증거물을 다시 꺼내든 건 지난 7월이었다. 화성 연쇄살인사건 아홉 번째 사건 피해자의 유류품이었다. 지난해 DNA 재감식을 통해 두 건의 미제 사건 용의자를 특정한 것이 결정적인 계기였다. 사건 발생 당시에는 DNA가 검출되지 않았다. DNA 감식 기술이 더 정밀해지면서 소량의 체액으로도 DNA를 검출할 수 있게 되었다. 미제 전담팀은 7월15일 화성 사건 증거물 일부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에 DNA 감정을 의뢰했다.

국과수 감식 결과 피해자의 속옷에 남아 있던 체액에서 한 남성의 DNA가 검출됐다. 8월9일 국과수는 대검찰청이 관리하는 수형인 DNA 데이터베이스에 신원확인 조회 여부를 요청했고, 해당 DNA 정보와 일치하는 대상자가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 다른 현장 증거물에 대한 추가 DNA 감식이 이어졌다. 5차, 7차 사건의 피해자 속옷에서도 동일한 DNA가 발견됐다. 부산교도소에 무기수로 수감 중인 이 아무개씨(56)의 것이었다.

“정말 천우신조다. 하늘이 도와서 이 사건을 해결하려고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건 기록을 보면서 33년이 지난 지금도 억장이 무너진다.” 반기수 화성 연쇄살인사건 수사본부장은 지난 9월19일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2006년 4월부로 공소시효는 끝났지만 역사적 소명의식을 갖고 미제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겠다.” 경찰에 따르면 30여 년 전 이씨는 경찰의 용의선상에 세 차례나 올랐지만 뚜렷한 증거가 없어 수사망을 번번이 빠져나갔다. 그는 9월18일부터 24일까지 진행된 네 차례 조사에서 자신과 화성 사건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립과학수사연구원 연구원이 증거품에서 유전자를 추출해 분석 작업을 하는 모습.

경찰과 검찰이 각각 따로 관리하는 현실

화성 연쇄살인사건은 경찰에게 트라우마를 남긴 사건이다. 1986년부터 1991년까지 4년7개월간 화성 태안읍 반경 10㎞ 안팎에서 여성 10명이 살해된 채 발견됐다. 당시 연인원 205만명 경찰 인력이 용의자를 찾기 위해 동원됐다. 수사 대상자만 2만1280명, 지문 대조 작업은 4만116명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모방 범죄로 확인돼 범인이 검거된 8차 사건을 제외하고 나머지 사건의 범인은 끝내 붙잡히지 않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1992년부터 DNA 감식 기법이 국내에 처음 도입됐다. DNA는 사람마다 다르고 죽는 날까지 변하지 않아 개인을 변별하는 가장 고유한 정보다. DNA를 이루는 여러 유전자의 길이가 개인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유전자는 유전 형질을 결정하는 DNA 이중나선 구조의 한 부분이다. 극소량의 혈흔, 정액, 타액, 모발, 피부, 땀 등에서도 DNA가 검출되기 때문에 범죄 증거가 된다. 화성 사건 당시에도 현장에서 담배꽁초·속옷·정액 등 증거물을 수집했지만 국내에 감식 기술이 없어 일본에 맡겨야 했다. 9차(1990년)와 10차(1991년) 사건에서 DNA가 검출되었지만 용의자를 찾지는 못했다.

어떻게 33년 만에 유력한 용의자가 ‘특정’될 수 있었을까. 10년간 축적돼온 DNA 데이터베이스가 주효했다. 경찰청의 DNA 인적관리시스템에 따르면 DNA 데이터베이스에는 10년간 총 22만4574명의 DNA 감식 시료가 채취되었다. 수형인이 16만1988명, 구속 피의자가 6만2586명이다. 사건 현장에서 증거로 수집한 DNA도 8만6085건 있다. 2008년 조두순, 2009년 강호순 사건 등 강력범죄가 잇따르면서 흉악범을 조기 검거하고 재범을 막아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쳤다. 그 결과 2009년 12월 말 DNA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위한 ‘디엔에이 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DNA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2010년 7월26일부터 경찰과 검찰은 수형인 및 구속 피의자의 DNA를 채취해 데이터에 저장해왔다. DNA법에 따르면 수형인 DNA 데이터베이스는 검찰이, 구속 피의자와 범죄 현장 유류물의 DNA 데이터베이스는 경찰(국과수)이 따로 관리한다. 경찰과 검찰이 각각 국과수와 과학수사과 유전자감식실을 내세워 DNA 관리 일원화를 주장했지만 결국 무산되었다. 오남용 및 유출 위험, 비용 증가 등의 문제가 있음에도 결국 DNA 데이터베이스를 이원화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검찰과 경찰이 서로의 데이터베이스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상호 의뢰를 거쳐야 한다.

검찰이 관리하는 수형인 데이터베이스에 이씨의 DNA 정보가 보관되어 있었다. 1994년 처제 강간살인죄로 검거돼 무기 복역 중인 이씨도 법이 시행된 이후 2011년 10월 DNA를 채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간·추행, 성폭력, 폭력행위 등 법령이 정한 채취 대상 11개 범죄에 해당했기 때문이다.

대검 DNA 화학분석과의 한 관계자는 “국과수가 범죄 현장 DNA 데이터베이스에 수록한 용의자의 DNA 신원 확인 정보와 우리 쪽 수형인 DNA 데이터베이스에서 일치자가 존재했다. 이 결과가 우연히 동일인일 확률은 10의 23승 분의 1이다”라고 말했다. DNA 채취는 면봉으로 구강상피를 긁어내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연합뉴스2014년 8월 쌍용차 노동자·용산 철거민 DNA 채취 사건과 관련한 기자회견이 열렸다.

2010년부터 2018년까지 DNA 데이터베이스 일치 판정으로 수사를 재개한 사건은 모두 5679건이다. 수형인이 일치했던 건수는 2177건, 구속 피의자가 일치했던 건수는 3502건이다. DNA 데이터베이스는 과거 수사의 빈틈을 효율적으로 메웠다. 특히 2011년부터 각 지방청에 17개 미제 사건 전담팀이 꾸려지면서 본격적으로 미제 사건들을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2001년 인천에서 6세, 10세 여아를 강간 상해한 사건의 범죄 현장 DNA를 지난해 재감식한 결과 현재 복역 중인 수형인 DNA와 일치한 사례도 있었다. 검찰은 17년 만에 용의자를 구속기소했다. 경찰청 과학수사과의 한 관계자는 “범죄 현장에서 찾은 DNA 지문을 DNA 데이터베이스에서 검색해 대조해보기만 하면 된다. DNA만큼 신원 확인이 정확한 게 없다”라고 말했다.

화성 사건의 용의자가 새로 등장하면서 그 실마리를 제공한 DNA법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DNA법이 제정될 당시부터 개인정보결정권을 침해한다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DNA가 개인의 생체 정보 및 가족 정보를 포함한, 매우 사적인 정보이기 때문이다. 서울지방변호사회가 발간한 <디엔에이 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의 문제점 및 개선 방향>(2019)에 따르면 DNA 수집부터 폐기까지 유전자 프라이버시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범죄 수사 목적 외에 유전정보가 오남용되어 개인정보가 유출되거나 다른 데이터베이스와 연동될 가능성이 있어서 엄격한 법적 통제가 필요하다.

채취 대상 범죄가 넓다는 것도 인권단체가 지적해온 부분이다. DNA법은 총 11개의 DNA 채취 대상 범죄를 지정했다. 방화·실화, 약취·유인, 절도·강도, 폭력행위, 강간·추행, 성폭력, 살인 등이다. 주거침입, 퇴거불응, 재물손괴 등도 폭력행위에 해당되어 집회·시위 참여자들이 DNA 채취 대상이 된다. 개인정보와 프라이버시권 관련 소송을 주로 다뤄온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이혜정 변호사는 “강력범죄가 아니라 경미한 위반 행위에도 채취가 남용되고 있다. DNA가 채취된 시위 참여자들은 언제든지 감시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안고 사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용산참사 철거민과 쌍용자동차 파업 노동자들도 DNA 채취를 요구받았다. 혐의 없음, 무죄 및 공소 기각 판결이 나지 않는 이상 사망할 때까지 수사기관의 DNA 데이터베이스에 보관된다.

대체 법안 없으면 앞으로 강제 채취 불가

이 같은 이유로 2011년과 2016년 DNA법에 대한 헌법소원이 제기되었다. 2014년 헌법재판소는 “제한되는 신체의 자유는 미약하고 범죄수사 및 예방의 공익에 비해 크지 않아 법익의 균형성이 인정된다”라며 재판관 5대 4 의견으로 합헌 결정했다. 4년 뒤 2018년 8월 ‘DNA 감식시료 채취 영장’에 대한 내용을 담은 DNA법 제8조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현재 법안에 따르면 DNA 채취는 대상자가 동의하는 경우 그대로 진행하지만, 동의하지 않을 시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발부받아 진행된다. 헌재는 영장 발부 과정에서 실질심사와 같은 절차가 없고 영장 발부 이후 불복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등의 구제 절차가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수형인 또는 구속 피의자에 대해 DNA 채취 영장을 집행한 건수는 2018년까지 총 1290건이었다. 전체 피채취자 수에 대비하면 0.57% 정도다. 올해까지 대체 법안이 마련되지 않으면 이 0.57%에 대해 채취를 강제할 수단이 사라지는 셈이다. 지난해 말 더불어민주당 권미혁 의원과 김병기 의원이 대표발의한 DNA법 개정안 2개가 상정되었다. DNA 채취 과정에서 의견진술권을 보장하고 영장에 의한 채취에 대한 불복 절차를 담았다. 그러나 지금껏 심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채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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