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지난 8월23일 고려대 학생들이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딸의 입학 과정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이른바 ‘조국 대란’을 겪으면서 교육 불평등 문제가 논의되는 영역은 전에 없이 넓어졌다. 교육 불평등 이슈가 사회·경제·정치 영역을 넘나들고 있다. 늘 공기처럼 우리를 감싸고 있던 교육 불평등의 얼굴이 처음 그려졌기 때문이다. 눈 따로, 코 따로, 귀 따로 묘사되기 일쑤였던 교육 불평등의 민낯이 한 장의 몽타주로 완성됐다. 형상화된 교육 불평등 앞에서 국민은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어떤 개혁인가? 이 질문 앞에서 교육 불평등 문제는 또다시 좁은 영역 안에 갇혀버렸다. 대입제도 개편, 그중에서도 수학능력시험(수능)과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의 황금비율을 찾는 방안이 교육 불평등 문제를 푸는 핵심인 것처럼 논의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교육개혁을 주문하자 언론은 과연 교육부가 수능 반영 비율을 높일 것인가 말 것인가를 전망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학종 폐지하고 수능으로만 대학 가게 해주세요’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교육 불평등에 대한 국민의 분노를 대변하는 목소리로 자주 소개된다. 이런 ‘국민 여론’에 힘입어 자유한국당 김재원 의원은 대입 전형을 정시 100%로 바꾸는 고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민주당 김병욱 의원도 “학종이 정의를 담보하기 전까지 50% 이상 정시를 확대하는 것이 대안이 아니냐”라고 말했다.

지금 가장 선명한 대안으로 떠오른 ‘수능 강화’가 교육 불평등을 완화한다는 실증적 증거는 거의 없다. 오히려 반대로는 많다. 지난해 교육부 차관이 서울 주요 대학들에 정시 비율을 높이라고 요구하자 서울대가 시뮬레이션해본 결과를 공개했다. 수능 중심의 정시 일반전형을 현행(2018년) 27%에서 40~50%로 늘리자 서울 특히 강남 3구 거주 합격자 수가 크게 증가했다. 특목고·자사고 출신 합격자 수도 늘었다. 일반고 출신 합격자 수는 크게 줄었다.

상류층의 수능 선호 현상 ‘명확’

‘금수저는 학종을, 흙수저는 수능을 선호한다’는 세간의 믿음 또한 사실이 아니다. 지난해 한국교육개발원의 교육 여론조사에서 “대입 전형에서 가장 많이 반영되어야 하는 것은?”이라는 질문에 ‘수능 성적’이라는 답변 비율이 가장 높은 집단은 월 소득 600만원 이상의 상위계층이었다(38.2%). 월 소득 400만~600만원 집단도 수능 성적을 1순위로 꼽았지만(29.7%) 월 소득 600만원 이상 집단보다는 그 비율이 낮았다. 월 소득 200만원 미만, 월 소득 200만~400만원 집단은 ‘수능 성적’보다 ‘특기 적성’이나 ‘인성 봉사’가 대입 전형에 더 많이 반영되어야 한다고 답했다(아래 표 참조).

최근 발표된 논문 〈배제의 법칙으로서의 입시제도〉(문정주·최율, 〈한국사회학〉, 2019)는 상류층의 수능 선호 현상을 더 명확하게 보여준다. 선호하는 대입제도를 물었을 때 주관적 계층의식이 상층일수록 수능을 선택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38쪽 〈표 1〉 참조). 상층일수록 입시제도에 대한 이해 수준도 높게 나타난다. 논문은 기회의 평등, 평가의 공정성 따위 외피를 쓴 ‘금수저 학종’ 비판 담론이 사실은 입시제도를 자신들에게 좀 더 유리하게 변화시키려는 상류층의 전략적 계층 투쟁의 결과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 계층 투쟁은 금수저에 대한 흙수저의 투쟁이 아닌, 다이아몬드 수저에 대한 금수저의 투쟁일 가능성이 높다(39쪽 딸린 기사 참조).

넓은 의미의 교육 불평등에 따른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좁은 의미(주로 공정성으로 대변되는 ‘평가의 투명성’)의 교육 불평등을 해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최근 ‘정시로만 돌린 1996년 고교별 서울대 합격자 수’ 표가 몇몇 온라인 커뮤니티에 돌아다녔다. 대원외고 199명, 서울과학고 150명, 한영외고 128명, 한성과학고 120명 등 특정 특목고 몇 군데가 서울대 입학을 독식한 과거 통계를 보고 누리꾼들은 이렇게 반응했다. “그런데 지금보다는 저게 나은 듯” “설령 지금보다 쏠림 현상이 훨씬 심해져도 그게 맞죠. 최소한 부정한 방법으로는 대학 못 가니까요” “최소한 납득이라도 되죠”. ‘최소한의 평가 공정성’ 외에는 교육에 대한 기대가 없는 목소리들이다.

교육 ‘개혁’ 요구가 정말 이런 소박한 제도 ‘개편’일까? 국민들이 교육에 거는 기대를 제대로 헤아리기 위해서는 지난해 국가교육회의가 진행한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 조사 결과를 다시 돌아볼 만하다. 당시 시나리오 네 가지 가운데 1안과 2안이 팽팽히 맞섰다. 1안은 “자신의 목표를 향하여 노력할 때,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라는 교육 비전을 내걸었다. 교육의 결과(성적·등수), 그리고 그것을 판가름하는 평가 방식의 공정성을 중시하는 안이다. 2안의 비전은 “치열한 경쟁과 줄 세우는 학교 수업보다 다양한 소질과 적성, 배움이 실현되는 학교 수업이 가능해진다”였다. 줄 세우기 위한 수단이 아닌 배움 그 자체로서의 교육을 지향하는 안이다. 우리 사회 분위기를 감안할 때 다소 이상적이기까지 한 2안은 1안과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숙의를 거친 시민참여단은 중장기적 대입제도 개편 방향으로는 오히려 2안 쪽을 더 많이 지지했다. 수능 전 과목 절대평가와 절대평가 과목 확대로 ‘수능 약화’ 쪽을 택했고, 학생부 위주 전형과 수능 위주 전형 중에서도 전자를 골랐다. 이런 결정을 내릴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 요인은 ‘학교 교육의 정상화’였다. ‘선발 과정의 객관성’ 못지않게 ‘지역, 계층, 학교 유형 간 격차 완화’도 고려했다. 공론화 조사에 앞서 실시한 2만명 대상 대국민 조사에서도 중장기 대입정책이 ‘학생 선발의 객관성을 보장하는 방향’(16.2%)이기보다 ‘미래 인재를 양성하는 방향’(29.1%)이기를 더 주문했다. 좀 더 많은, 좀 더 숙의를 거친 목소리를 들어보면 국민은 가장 현실적이고 비정한 대입제도 영역에서조차 아직 교육의 여러 이상적 가치, 교육이 추구할 수 있는 최대한의 가치들을 포기하지 않았다.

흔히 “교육 문제는 답이 없다”라고 표현되는 자조 속에서 변화의 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공정한 평가에 적합한 입시제도, 교육 기회의 평등에 적합한 입시제도, 중등교육 내실화에 적합한 입시제도를 물었을 때 모든 계층을 막론하고(심지어 수능제도가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인식하는 상층조차) 다수가 “차이가 없다”라고 답했다(〈표 2~4〉 참조). 어떤 입시제도로도 우리 사회 교육 불평등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그렇다면 다시 교육 불평등 문제는 수능과 학종 비율, 대입제도와 같은 좁은 영역에서 사회·정치·경제 전 영역으로 확장된다. 국민의 요구는 입시제도 밖에서, 교육 부문 밖에서 해법을 찾으라는 주문일 수 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대입 공정성을 넘어 특권 대물림 교육 중단을 위해” 학종 개선과 자사고·외고의 일반고 전환 등에 더해 정부와 시민사회에 특권 대물림 지표 개발과 조사, 대학 서열체제 극복 국민 공론화, 출신학교 차별금지 법제화 등을 건의했다. 더 근본적이고 거대한 이야기들도 조금씩 흘러나온다. “교육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학 평준화 같은 과감한 상상력이 필요하다”(소래섭 울산대 국어국문학부 교수, 〈부산일보〉 9월17일) “대학 입시, 개선이 아니라 폐지가 답이다”(김누리 중앙대 교수, 〈한겨레〉 9월22일), “프랑스 사례를 참고해 공립대학교를 지역별 1대학, 2대학 등으로 재편하자”(페토 사회적협동조합 신택연 이사장, 9월25일 국가교육회의 주최 ‘청년 세대가 생각하는 교육의 공정성은 무엇인가’ 교육포럼)…. 이런 방안이 ‘정시 100%안’보다 나쁠 이유는 또 무엇인가.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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