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A지난해 11월22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가운데)이 로하니 이란 대통령(왼쪽),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오른쪽)과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중동 분쟁을 이해하는 세 축을 따라 연재를 이어왔다. 국가, 지역, 그리고 세계라는 세 층위가 그것이다. 나라 안에서 싸우고, 중동 전체의 구조적 갈등이 만연하며, 중동 밖 외세의 개입으로 더욱 어지럽다. 각각의 갈등은 서로의 영역을 넘나들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중동 분쟁 해결이 어려운 이유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레바논 내전, 시리아 내전 등 1차 세계대전 이후 인위적으로 그어진 국경선 안에서 벌어진 국가 내부의 갈등은 헤아릴 수 없이 목도했다. 역사적·문화적 맥락을 무시하고 임의로 만들어진 국가가 평화롭게 유지되기는 무리였다. 국가를 넘어 지역 차원에서 중동의 독특성도 분쟁을 가속화하는 요소다. 부족 간 경쟁과 갈등, 이슬람의 분파성, 아랍 내부 정치의 균열 요소가 한가득이다. 지역의 세력 판도를 다투는 갈등은 1960년대 아랍민족주의로부터 시작되었다. 통합을 추구하는 세속주의 공화정과 개별 국가 주권을 앞세우는 걸프 왕정 간 대립은 꽤 오래 이어졌다. 최근에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간의 종파 갈등이 중동 분쟁을 견인하고 있다.

여기에 덧대어진 외부 요인이 있다. 열강의 개입이다. 중동 정치 질서의 태생 자체가 외세에 의한 불행한 작품이었다. 전간기,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 열강의 개입은 분쟁의 씨앗을 뿌렸다. 이어진 냉전기에는 미국과 소련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중동 정치는 이념의 진영론에 포획됐다.

미국 소프트파워, 맥없이 추락

냉전을 승리로 이끈 미국은 독자적 초강대국으로 떠올랐다. 미국은 압도적 힘을 과시하며 중동의 민주화와 평화를 주도하려 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2001년 9·11 테러와 이라크 전쟁이 변곡점이었다. 테러와의 전쟁으로 시작된 미국의 본격 개입은 녹록지 않았다. 이라크에서 민간인 피해가 심해지자 중동의 반미 감정은 치솟았다. 미국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내세우며 중동에 개입했지만 아부그라이브 감옥 사건이나 민간인에 대한 오폭 등이 겹치면서 위선적이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미국이 세워준 이라크 신정부는 무능했다. 견고한 민주주의 수립은커녕 이란 시아파 신정주의의 영향력에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민주주의를 중동에 이식하면 평화가 따라온다는 이른바 ‘민주평화(democratic peace) 이론’은 첫 단계부터 삐걱거렸다. 미국 소프트파워의 추락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Reuter트럼프 미국 대통령(아래)은 중동의 민주주의와 인권, 자유주의 등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오바마 정부는 중동에서 발을 빼기 시작했다. 부시 정부가 중동 독재정권의 교체나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면서 개입하다가 상황만 악화시켰다는 반성적 성찰의 결과였다. 막대한 희생과 전비를 감수하고 간신히 사담 후세인 독재정권을 무너뜨렸는데, 그러고도 민주주의가 뿌리내리지 못했다. 상황을 간파하고 한발 뒤로 물러섰던 오바마 대통령은 나름으로 현실적인 판단을 했다. 중동은 중동 내부의 역학 질서로 움직여져야 균형이 잡힌다는 판단이었다. 중동에서 외세의 개입은 필연적 반발을 부른다는 점에 주목했다. 임기 내내 중동에서 직접 개입을 축소하고 역외 균형을 추진했다. 내심 시리아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을 완료하고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는 태평양 전략에 방점을 찍은 정책이었다. 아시아 재균형 정책이다.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2011년 아랍 전역을 휩쓴 민주화 운동이 그것이다. 아랍의 봄은 이집트·리비아·튀니지·예멘 등 강고한 독재 체제를 무너뜨렸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불행히도 독재자의 빈자리를 채운 것은 극도의 혼돈이었다. 수십 년의 폭압적 권위주의가 물러선 공간을 메울 민주 역량이 약했다. 경험 없는 약한 정부가 들어서면서 중동 전역은 내전과 혼란의 공간으로 바뀌어갔다. 속수무책이었다. 테러와 난민이 확산되자 유럽과 미국 등 서방은 점차 중동에서 손을 떼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장 극단적인 고립주의를 천명한 트럼프 정부가 등장했다. 이제 미국은 더 이상 중동에서 민주주의나 인권, 자유주의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물러난 미국의 자리를 꿰찬 새로운 외부 강대국이 있다. 바로 러시아다. 판도가 완전히 바뀌어 이제 중동 어느 정권이든 러시아의 눈치를 보고 있다. 사실 역사적으로 중동은 러시아와 큰 인연이 없다. 제1차 세계대전 후 중동 질서는 영국과 프랑스가 주도해서 판을 짰다. 냉전기에는 미국이 우세했다. 영국과 파키스탄을 잇는 바그다드 조약을 내세운 미국의 소련 봉쇄망은 그런대로 잘 작동했다. 1950년대 아랍에서 일어난 일련의 군사 쿠데타로 군부 권위주의 공화정이 열풍처럼 등장했지만 이들도 소비에트 블록에 직접 가입하지는 않았다. 기본적으로 반미·친소 성향이 있었지만 아무래도 이슬람권이었기에 소련의 유물론 공산주의를 지지하기란 부담스러웠다. 결국 시리아 정도만 소련과 각별하게 가까웠고 여타 아랍 군부 공화정은 적극적 중립주의를 표방했다. 탈냉전기 러시아의 추락 이후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이렇듯 중동과 별 인연이 없던 러시아가 중동에서 가장 유력한 강국으로 돌연 떠오른 것이다.

러시아, 아무것도 안 하며 이익 챙겨

사실 러시아는 미국처럼 구체적인 전략을 갖고 중동에 들어온 건 아니다. 국제사회의 비판을 무릅쓰고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을 흔들림 없이 지지하는 것 이상의 주목할 만한 행보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현재 러시아의 존재감은 한껏 고양되어 있다. 무슨 까닭일까?

미국이 이란 핵 합의를 탈퇴하면서 이란 제재를 복원하자 자연스럽게 이란은 러시아에 더욱 다가갔다. 러시아와 이란은 애초부터 시리아 알아사드 정권을 지키는 데 한편이기도 했다. 나토 동맹국이자 러시아의 적성 국가라 할 수 있는 터키 역시 미국과 삐걱거리며 슬쩍슬쩍 나토의 궤도를 벗어나는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정적인 귈렌의 송환 문제 등으로 사사건건 미국과 각을 세우더니 최근 미국 전투기 F35와 러시아 S400 수입 건을 두고 충돌 양상이 격해지고 있다. 딱히 러시아가 이란과 터키를 품기 위해 노력한 것도 아닌데 이들이 자연스레 러시아 쪽을 향하고 있다. 신기할 정도다.

이 역설적인 현상은 미국의 중동정책 실패의 역작용이라 할 수 있다. 무언가를 의욕적으로 해보려다 미국이 판을 헝클어뜨렸다면, 러시아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이익을 줍는다. 9·11 이후 미국은 중동을 민주화하겠다는 노선으로 막대한 물량 공세와 더불어 전쟁을 통해 개입했다가 실패했다. 반면 러시아는 시리아 라타키아에 공군을 주둔시키고 있지만 전쟁에 직접 참여하는 것도 아니다. 여타 중동 국가에 재정 지원이나 원조도 별로 해주지 않는다.

대신 어떤 경우에도 타국의 국내 문제에는 개입하지 않겠다는 주권 불간섭 원칙을 명확히 내세운다. 이 원칙을 앞세워 잔인하고 폭압적인 아사드 정권을 지켜주고 있다. 시리아 국민이 아무리 고통당해도 리비아 카다피를 실각시켰던 ‘보호책임(responsibility to protect)’ 발동을 러시아가 확고히 막았다. 보호책임이란 특정 국가에서 인도에 반하는 범죄가 발생하여 국가가 국민들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국민을 지킬 힘이 없을 때, 국제사회가 개입하여 그들 시민을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규범이다. 국제사회가 주권국가에 개입하는 형태를 띤다.

ⓒAP Photo2011년 아랍 전역을 휩쓴 민주화 운동으로 이집트·리비아·튀니지·예멘 등에서 독재가 무너졌다. 위는 2011년 2월25일 총리 퇴진을 요구하는 튀니지 시위대.

이 장면은 중동의 숱한 독재자들에게 꽤 인상적이었다. 국민 다수가 들고일어나 정권에 저항하는 상황이 생겨도 러시아가 힘이 되어줄지 모른다는 기대감이 생겼다. 시리아 알아사드 대통령이 자국민 50만명 사망, 400만 난민을 초래한 21세기 최대 비극의 장본인인데도 러시아가 꿋꿋하게 지켜주고 있지 않은가.

러시아는 권위주의 연대의 중심이 되는 모양새다. 호사가들은 2차 세계대전 추축국을 빗대어 러시아가 이끄는 21세기판 ‘권위주의의 축(authoritarian axis)’을 논하고 있다. 자기 백성을 탄압하는 독재자들은 내심 푸틴 대통령의 장악력과 통치력을 선망하고 있을지 모른다. 선출된 지도자이지만 강력한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마치 독재자처럼 국가를 이끌어가는 모습은 여타 권위주의 정권에게 동경의 대상이다. 미국이 발을 빼는 중동에서 무위(無爲)로 영향력을 얻는 역설을 보여준 푸틴 대통령의 속마음과 미래 그림은 무엇일까? 그저 근대 국제정치 질서의 모판인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의 주권 불간섭 원칙만 지키며 버티는 것일까?

냉전이 무너질 때 러시아 국민들은 충격에 빠졌다. 주인 잃은 소련은 산산조각이 났고, 러시아는 소수 독점재벌이 나라를 유린하며 빈부 격차가 극심해졌다. 유라시아 대륙을 통틀어서 가장 광대한 영토를 갖고 있으며, 한때 세계를 반분했던 초강대국 소련의 몰락은 러시아에 수치를 안겼다. 옐친 시대의 악몽은 국민의 자존심 추락과 맞물려 상흔으로 남았다.

몰락한 러시아는 강력한 지도자를 염원했다. 푸틴 대통령이 나타났다. 그는 러시아의 패배감을 자극했다. 국민의 박탈감을 권력의 기반으로 활용했다. 소련은 이념의 제국을 지향했지만, 푸틴 대통령은 새로운 목표를 그려냈다. 정교회 사상과 러시아 민족주의를 결합시키면서 선민의식을 자극하는 공세적 대외정책을 꾸렸다. 공세적 대외정책의 깃발은 유목 문화의 확장성을 기반으로 기동력을 내세운 유라시아주의였다. 제국의 부활을 꿈꾸기 시작했다. 과거 소비에트의 범세계주의는 러시아 선민 민족주의로 바뀌었지만 확장을 추구한다는 면에서는 유사하다. 코민테른이 유라시아 인터내셔널로 변신한 셈이다.

부시의 미국이 푸틴의 러시아보다 나았다?

유라시아주의의 첫발은 과거 소련 동지들의 규합 시도로 시작되었다. 범유라시아연합 구상은 2015년 1월 출범한 유라시아경제연합으로 발현되었다. 지금은 아르메니아·벨라루스·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러시아 5개국 연합체지만 중앙아시아와 캅카스를 중심으로 더욱 확장할 기세다. 옛 소련 국가들은 이 덩치 큰 조직이 어떻게 움직여갈지 주시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 편을 드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거리를 두는 것이 나은지 면밀히 계산하고 있다. 유라시아 구상은 푸틴 대통령의 대외정책 골간이다.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푸틴 대통령의 주권 불개입 선언에 주목한다. 아직은 반신반의하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분명 강대국이지만, 경제적으로 허점이 많기 때문이다.

오히려 중동에서는 러시아의 존재감이 선명하다. 중동에서 보여주는 러시아의 ‘활약’이 유라시아 구상을 더욱 강화시키는 소재가 되고 있다. 시리아 내전이 격화되고 국제사회가 알아사드 대통령을 규탄할 때,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꿋꿋이 그를 옹호했다. 시리아 정부가 대량살상무기인 화학탄을 사용했다는 의혹이 증폭되었을 때도 시리아 편이었다. 이후 미국이 군사공격 가능성을 운위하자, 러시아가 나서서 협상을 중재하고 상황을 종료시켰다. 현재 시리아 평화 협상의 주도권을 유엔으로부터 완전히 가져왔다. 비록 경제력에서는 중국에 한참 못 미치고, 유가 하락과 크림반도 사건으로 인한 국제 제재로 어려움을 겪지만 중동에서의 존재감만은 최대치에 올라 있다.

미국의 자리에 러시아가 대신 들어선 중동은 앞으로 어떤 모습일까? 러시아는 시종일관 미국의 중동정책을 비판하며 외세가 들어와 좌지우지하면서 상황을 악화시켰다고 주장한다. 어떤 외세도 타국 정치에 개입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 역시 사실이 아니다. 러시아는 불개입을 통한 개입을 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약속인 보호책임을 러시아가 외면하면서 시리아 국민 상당수가 죽음에 노출되었고, 난민과 국내 피란민으로 전락했다. 중동과 아프리카 그리고 중앙아시아의 독재정권은 러시아의 이런 행보를 동경할지 모른다. 그러나 시리아와 아랍의 일반 국민은 다르다. 독재자이자 학살자인 알아사드 대통령을 어떻게 좀 해달라고 소리치고 있다. 폭압적 독재를 주권 불간섭의 원칙으로 포장하며 옹위하는 러시아로 인해 무수한 시민들이 죽어가고 있다.

대중은 차라리 부시의 미국이 푸틴의 러시아보다 나았다고 말하기도 한다. 말이라도 인권과 평화, 민주주의를 앞세우다 보니 일정 정도 제동장치가 작동했지만, 푸틴의 러시아는 학살에 눈 깜짝도 안 한다는 비판이다. 어려운 문제다. 외세의 개입으로 중동 평화의 판이 훼손된 것이 사실이다. 동시에 폭압적 독재에 대한 러시아의 일방적인 지지와 옹호 역시 그 땅의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다.

※ 이번 호로 ‘중동의 라이벌들-갈등을 알면 중동이 보인다’ 연재를 마칩니다. 수고하신 필자와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기자명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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