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영 그림

리처드 하버스의 〈블루노트:타협하지 않는 음악〉 (태림스코어, 2019)은 타블로이드 판형보다 조금 작은 가로 22㎝, 세로 28㎝ 판형으로 제작된 400쪽짜리 책이다. 시선을 흡입하는 대형 화보가 본문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이 책은 재즈광이 소유해야 하는 보물이다. 나는 지금 〈시사IN〉 독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나만을 위해서, 그리고 재즈 애호가들과 함께 즐거움을 나누기 위해서
글을 쓴다.

흑인 노예들이 불렀던 영가에서 발전한 재즈는 유일하게 미국에서 발생한 음악 형식이다. 무도장의 반주 음악으로 오랫동안 명성을 날린 재즈가 미국을 대표하는 예술로 격상하게 된 데에는 중요한 고비마다 재즈를 혁신한 뛰어난 재즈 아티스트가 있었기 때문이지만, 재즈가 무도장을 벗어나 음악 그 자체로 향유되기 위해서는 재즈 전문 레이블(음반사)이 없으면 안 되었다. 버브(Verve)· 컬럼비아(Columbia)·사보이(Savoy)· 프레스티지(Prestige)·리버사이드(Riverside)·컨템퍼러리(Contemporary)·임펄스(Impulse!) 등 무수한 재즈 명가(名家)가 있지만, 그 가운데 단연 앞에 놓아야 할 레이블이 블루노트(Blue Note)다. ‘재즈를 들으려면 무엇부터 들어야 해?’라는 질문을 받을 때면, 재즈광들은 힘들이지 않고 ‘블루노트부터 들어봐’라고 대답하곤 한다. 이것은 결코 귀찮아서가 아니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많은 초심자들은 ‘블루노트’를 ‘푸른 공책’ 정도로 알아듣는다. 이런 오해는 알파벳 철자가 같기 때문에 생겨난 완벽하게 합리적인 오해라고 할 수 있다. 블루노트는 재즈와 블루스에서 3도(미)와 7도(시)를 반음 낮게 처리하는 것을 뜻한다. 흑인음악인 재즈와 블루스가 왜 블루노트를 사용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대중적인 속설은, 백인이 가르쳐주는 대로 하지 않겠다는 흑인 노예의 저항이 3도와 7도를 비튼 형식으로 드러났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5음계(궁상각치우)로 되어 있는 한국의 전통음악이 그렇듯이, 세계 각지의 민속음악에서 5음계를 찾기는 쉽다.

블루노트는 재즈의 역사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음반사이지만, 이 회사를 설립한 사람들은 미국인이 아니다. 이 사연은 흥미롭다. 블루노트를 세운 알프레드 라이언(1908~1987)은 베를린에서 태어난 유대계 독일인이고, 그를 도와 함께 회사를 운영했던 프랜시스 울프(1907~1971)도 같은 동네 친구였던 유대계 독일인이다. 사진가이기도 했던 울프는 블루노트의 앨범 재킷을 고유의 스타일로 확립하는 데 공헌했다.

1920년대 중반, 베를린은 세계에서 재즈를 가장 사랑했던 도시 가운데 하나였고 두 사람은 십 대 때부터 재즈에 심취했다. 그러나 히틀러가 집권하면서 재즈는 독일에서 추방되었다. 인종주의자들인 나치에게 재즈는 게르만 문화를 좀먹는 열등한 인종의 저급한 문화를 상징했다. 재즈를 금지한 나치 정책에 대항하여 숨어서 재즈를 듣던 젊은이들은 관제 청소년 단체인 ‘히틀러 유겐트(Hitler-Jugend)’에서 일탈했다는 의미에서 ‘스윙 청소년(Swing- Jugend)’이라는 딱지가 붙여졌다. 데틀레프 포이케르트의 〈나치 시대의 일상사〉(개마고원, 2003)의 한 대목을 보자.

〈블루노트:타협하지 않는 음악〉 리처드 하버스 지음, 류희성 옮김, 태림스코어 펴냄

“그들은 사랑놀음을 노래한 독일 가수들의 곡이나 전통 민요를 피하고, 음반으로든 공연으로든 모든 기회를 이용하여 재즈와 스윙을 들으려 했다. 공연이 금지됨에 따라 스윙 운동은 지하로 이동했고, 그곳에서는 당연히 더욱 강렬해졌다. 그들은 나치의 구호나 전통적인 부르주아 민족주의 모두에 대해 극히 냉소적이었다. 하인리히 히믈러가 스윙 청소년들에게 체벌과 처벌을 가하고 2년 내지 3년 동안 수용소에 투옥시켜 강제노동을 부과하려 했다는 사실이 이해될 수 있다.”

알프레드 라이언과 프랜시스 울프는 유대인 박해를 피해 독일에서 뉴욕으로 이민했고, 1939년 3월 처음으로 블루노트 상표를 부착한 12인치 음반 두 장을 출시했다. 블루노트에서 첫 번째 음반을 낸 영광의 주인공은 스윙 재즈의 모태인 부기우기를 전문적으로 연주하는 피아니스트 미드 룩스 루이스로, 알프레드는 두 장의 음반을 각각 스물다섯 장씩 찍었다. 음반사라고 부르기에는 아직 부족했던 블루노트는 같은 해에 녹음한 소프라노 색소포니스트 시드니 베셰의 〈서머타임〉이 발매 하루 만에 서른 장이 팔려나가면서 블루노트의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지은이는 이 곡을 연주한 수많은 버전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연주”로 베셰의 이 녹음을 꼽고 있다.

록의 침공에 응전한 블루노트의 재즈

이미 정평 있는 재즈 관련서를 무수히 섭렵했을 재즈 애호가에게 〈블루노트:타협하지 않는 음악〉은 그저 대형 화보를 실컷 감상하고, 간직하게 해주는 부록이라고 여기기 쉽다. 하지만 음악 전문 칼럼니스트이자 여러 음악가에 대한 평전을 쓴 리처드 하버스의 이 저작에는 권위 있는 재즈 관련서가 놓치거나 고의적으로 무시해버린 중요한 세부가 생생하게 살아 있다. 많은 재즈 관련서는 마일스 데이비스, 존 콜트레인, 오넷 콜먼, 빌 에번스 등 시대에 따라 재즈를 갱신해온 예술가 타입의 연주가들이 성취한 작업에 상당한 의의를 둔다. 하지만 블루노트의 역사를 개괄하고, 블루노트의 핵심 명반을 낱낱이 해설하고 있는 이 책에서는 앞서 열거한 아티스트들이 아무런 비중을 차지하지 못했다. 이들이 블루노트가 중요하게 모신 전속 아티스트가 아니었다는 점도 커다란 이유지만, 청소년 시절에 스윙 재즈를 들으며 재즈에 입문했던 창립자의 성향이 곧 블루노트가 추구했던 재즈였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지은이가 가장 블루노트다운 아티스트로 부각하는 피아니스트 호레이스 실버, 색소포니스트 행크 모블리·스탠리 터렌타인, 트럼페터 프레디 허바드·리 모건, 오르가니스트 지미 스미스, 기타리스트 그랜트 그린 등은 모두 정통 재즈보다는 소울하고 펑키한 재즈를 들려준다. 비틀스의 고객과 재즈의 고객은 너무나 달랐기 때문에, 록 음악의 확장에 재즈가 위축될 일은 애초에 없었다지만, 블루노트의 펑키하고 소울풀한 재즈는 록의 침공에 재즈가 응전했던 최초의 반응이 아니었을까?

1979년, 다국적 연예산업 기업인 EMI에 블루노트가 매각되고 알프레드 라이언이 회사에서 손을 떼면서 블루노트와 재즈는 커다란 변모를 겪는다. 시대와 대중은 재즈와 재즈 아닌 것의 경계를 점점 무너뜨렸고, 블루노트에서 음반 취입을 하는 뮤지션들조차 ‘나는 그냥 음악을 한다’라고 말하는 것이 쿨한 입장이 되었다. 폴 챔버스의 앨범 〈Base On Top)〉과 레이철 퍼렐의 〈First Instrument〉가 소개되지 않은 것이 아쉽다.

기자명 장정일 (소설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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