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신선영

네이버 데이터랩은 이용자들의 검색 결과를 데이터로 제공한다. 8월3일부터 9월3일까지 1개월간, 네이버에서 ‘조국’을 검색한 결과를 뽑아봤다(〈그림 1〉). 8월9일은 조국 교수(서울대 로스쿨)가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날이다. 검색량은 한동안 잠잠하다가 8월19일부터 들썩이기 시작하더니, 8월20일에 급격하게 치솟아서 8월21일 정점을 찍는다. 8월19일은 웅동학원 문제, 사모펀드 문제 등 각종 의혹으로 논란이 확산되던 시기다. 8월20일 〈동아일보〉가 ‘딸 의학 논문 1저자’ 보도를 내놓는다. 이때부터 조국 후보자 이슈가 그야말로 블록버스터가 된다. ‘조국 대란’의 방아쇠는 단연 논문 문제였다.

조 후보자의 딸은 한영외고에 다니던 2008년에 단국대 의대 의과학연구소에서 인턴으로 2주 동안 활동하며 의학 실험을 도왔다. 단국대 의대 장영표 교수는 이 실험으로 의학 논문을 쓰고 책임저자로 자신의 이름을, 제1저자로 조 후보자 딸의 이름을 올렸다. 장 교수는 그 고등학생이 조 후보자의 딸이라는 사실은 몰랐지만, 자녀가 같은 고등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어머니들끼리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고 언론에 밝혔다. 이 일이 불법은 아니라도 부적절하다는 데에는 대체로 이견이 없다. 9월2일 기자회견에 나선 조 후보자는 “고등학생이 제1저자라는 건 제가 봐도 좀 의아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여론은 조 후보자의 딸이 보통 학생들에게는 접근하기 어려운 네트워크를 통해 부적절하게 ‘스펙’을 만들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에 분노한다.

문재인 정부의 핵심 지지층에서는 “보수 인사들은 훨씬 심한 비리가 많은데도 눈을 감고, 진보 인사들은 사소한 흠집만 있어도 크게 부풀린다. 사회의 기득권을 여전히 보수가 잡고 있기 때문이다”라는 불만을 쉽게 들을 수 있다. 이 관점으로 보면, ‘조국 대란’의 본질은 좌우 진영 대결이고, 과제는 보수 기득권의 부당한 공격에 맞서 조 후보자를 지키는 것이다. 이에 동의하는 문재인 정부 핵심 지지층이 결집하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조 후보자 임명 반대 의견이 여전히 높기는 하지만, 찬성 의견이 눈에 띄는 상승세다.

좌우 진영 대결이 정말 본질일까? 청년노동자 단체 ‘청년전태일’은 8월31일 공개 대담회를 열었다. 대담회 이름은 “조국 후보 딸과 나의 출발선은 같은가?”였다. 이 대담회에 나온 정주영씨는 23세 청년이다. 그는 19세에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메트로 하청업체인 은성 PSD에 취업했다. ‘구의역 김군’으로 알려진 구의역 사망사고 희생자가 다니던 그 회사다. 이날 정씨는 “지금 논란은 모두 대학에 갈 수 있는 사람들에게나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대학을 일찌감치 포기한 채 열아홉 살 때부터 노동을 해야만 했던 저희에게는 딴 세상 이야기입니다”라고 말했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딸이 단국대 의대 의학연구소에서 인턴으로 일한 뒤 제1저자로 올라간 논문.

좌우 구도는 가장 직관적인 정치적 세계관이다. 이 직관은 때로 현실을 보지 못하게 눈을 가린다. 구의역 김군의 동료 정주영씨가 토로하는 현실은 ‘좌우로 갈린 세계’가 아니라, ‘울타리 안과 울타리 밖으로 갈린 세계’다. 울타리 안에는 좋은 대학을 다니고, 괜찮은 일자리를 구하고, 상위 20% 안쪽으로 돈을 벌어, 대도시에서 중산층으로 자리 잡는, 공론장에서 발언권이 큰 사람들이 있다. 울타리 밖에는 머릿수로 다수이지만 목소리를 얻기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 논문 제1저자 파동은, 정치를 바라보는 상상력을 ‘좌우의 세계’에서 ‘울타리의 세계’로 바꿔낸다.  

‘울타리 게임’은 불법과 비리로 작동하지 않는다. 교육과 입시 문제를 예로 들어보자. 중상류층 가정은 집값이 비싼 동네에서 살 수 있다. 이런 곳은 대부분 학군이 좋다. 자녀에게 다양한 체험을 시켜줄 여유가 있다. 자녀를 인턴으로 보낼 대학교수 인맥이 있을 가능성도 더 높다. 그 결과, 이른바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라 불리는 최상위 명문 대학일수록 고소득층 비율이 높아진다. 격차는 합법의 테두리 안에서 벌어진다. 합법이야말로 ‘울타리 안쪽’의 무기다.

어떤 의미로, ‘조국 대란’은 한국 정치를 글로벌 정치의 대세에 합류시켰다. ‘좌우로 갈린 세계’에서 ‘울타리 안팎으로 갈린 세계’로 바뀌는 경향은 세계적인 추세다. 불평등은 커지고, 계층 이동 가능성은 낮아진다. 계층과 불평등 문제를 연구하는 영국 출신 미국인 리처드 리브스는 ‘유리 바닥’과 ‘기회 사재기’라는 개념을 히트시켰다. 유리 바닥은 상위 20%가 계층의 하향 이동 가능성을 낮추기 위해 설치하는 각종 안전망들을 말한다. 여기에는 육아 환경, 학군, 대학 입시, 부모들의 네트워크가 모두 포함된다. 이 트랙을 탄 상위 20% 가정의 자녀들은 계층 하락을 겪을 위험이 낮아진다. 물론 합법이다. 기회 사재기란 자녀가 다른 아이들보다 더 많은 기회를 갖도록 기회를 싹쓸이하는 전략이다. 부모의 연줄을 동원해 자녀에게 무급 인턴 기회를 잡아주고 생활비를 부모가 부담해준다면, 연줄과 경제력이 없는 집 자녀보다 더 많은 기회를 쟁여두는 셈이다. 역시 합법이다.

지식인 대 부유층의 ‘울타리 안 싸움’  

악순환 고리가 드러난다. 불평등이 커질수록, 중상류층은 계층 하락을 더 두려워한다. 중상류층 부모가 자녀에게 유리 바닥을 깔아줄 필요도 커진다. 기회 사재기가 만연한다. 이 노력이 성공하여 유리 바닥이 튼튼해지면, 이제 중상류층은 자녀가 계층을 유지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면 가난한 사람을 돕는 정책에 세금을 쓰지 말라고 요구하게 된다. 다시 불평등이 증가한다. 리브스에 따르면, 현대 사회에서 계층 이동성이 떨어지는 이유는 하위 계층의 무기력이 아니다. 그보다는 상위 계층이 자기 자리를 유지하려고 쓰는 여러 전략이 성공해서다. 우리 용어로 울타리 게임이 성공해서다.  

‘좌우로 갈린 세계’와 ‘울타리 안팎으로 갈린 세계’가 서로 다른 것이라는 인식은 새롭게 떠오른 아이디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한동안, 이 두 세계관은 같은 말이었다. 대체로 좌파 정당은 가난한 사람을 대변하고 우파 정당은 부자를 대변했으니, ‘좌우’란 ‘울타리 안팎’과 동의어였다. 그런데 이게 흔들렸다. 그 때문에 21세기 정치의 최대 지각변동이 등장했다.

토마 피케티는 불평등 연구서인 〈21세기 자본〉으로 세계적인 스타가 된 경제학자다. 그는 후속 작업으로 “왜 정치는 불평등의 증가를 막지 못했나?”라는 질문을 던졌다. 2018년에 나온 논문 ‘브라만 좌파 대 상인 우파:불평등의 증가와 정치 갈등 구조의 변화(Brahmin Left vs Merchant Right:Rising Inequality & the Changing Structure of Political Conflict)’에서 그는 이 수수께끼에 도전한다. 2차 대전 이후인 1950~1960년대에, 좌파 정당의 핵심 지지 기반은 저학력·저소득 노동자였다. 1970년대 이후로, 고학력 유권자가 좌파 정당의 핵심 지지층으로 부상했다.  

대학에 가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났는데, 고학력자들은 대체로 진보 성향이 강했다. 이것은 좌파 정당에게 기회로 보였다. 〈그림 2〉는 미국·영국·프랑스 세 나라의 좌파 정당 득표를 교육수준에 따라 분석한 결과다. 대졸 유권자들이 좌파 정당에 투표한 비율에서, 고졸 이하 유권자들이 좌파 정당에 투표한 비율을 뺀 값이다. 즉, 그래프에서 플러스 값이 클수록 고학력 유권자의 영향력이 강하고, 마이너스 값이 클수록 저학력 유권자의 영향력이 강하다. 세 나라 모두에서, 좌파 정당(미국 민주당, 영국 노동당, 프랑스는 좌파 계열 정당 합산)을 고학력자들이 장악하는 추세가 뚜렷하다.

ⓒ연합뉴스8월30일 고려대 학생들이 조국 후보자 딸 입시 의혹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고학력자들이 핵심 지지층이 되면서 좌파 정당들은 저학력·저소득 노동자와의 연결고리를 놓쳐버렸다. 좌파 정당은 재분배 정책을 밀어붙여야 한다는 압력을 점점 덜 받게 되었다. 고학력 유권자들이 관심 있는 인권, 환경, 정치적 올바름, 정체성 문제가 중요하게 떠오른 반면, 불평등과 재분배 이슈가 시나브로 뒤로 밀렸다. 피케티는 이 새로운 좌파 정당을 ‘브라만 좌파’라고 불렀다. 인도 카스트 제도의 최상층이면서 지적 기능을 수행하는 사제 계급이다. 여전히 부자들의 대변자인 우파의 별명은 ‘상인 우파’다.  

이렇게 해서 정치는 상하 계층의 대결에서 상층 엘리트들 간의 대결(지식인 대 부유층)로 바뀐다. 이제 좌우 갈등은 울타리 안팎의 갈등을 대변하지 않는다. 좌우 모두가 울타리 안에서 싸운다. 울타리 밖에는 거대한 유권자 블록이 정치적 대변자를 찾지 못해 좌절하며 뒤처진다.

미국의 유명 정치 논객 토머스 프랭크는 일찍이 이 좌절에 주목했다. 2016년에 펴낸 〈민주당의 착각과 오만〉은 미국의 좌우 정당이 더 이상 울타리 밖 유권자를 대변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1960년대 이후 폭발적으로 늘어난 대졸자들이 대거 민주당으로 몰려왔다. 최초에 이들은 민주당을 급진화시키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대졸자들은 곧 지식인이라는 ‘새로운 계급’을 형성했다. 민주당은 지식인 계급의 정당으로 탈바꿈했고, 울타리 밖 목소리에 반응하는 능력을 잃어버렸다. 민주당 리더들은 이 변화를 알아채지 못한 채, 여전히 좌우 전선이 울타리 안과 밖의 전선과 같은 것이라고 착각했다. 즉, 실제로는 동료 지식인 계급에 충성하면서 울타리 밖을 대변한다고 스스로를 속였다.  

ⓒ시사IN 신선영

프랭크가 ‘민주당이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일갈한 이 책은 2016년 3월에 나왔다. 8개월 후인 11월에는 울타리 밖 유권자들의 분노를 끌어당기는 데 성공한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 이 사건은 브라만 좌파(민주당)는 물론이고 상인 우파(공화당)마저 경악하게 했다. 한국에서는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2018년 9월에 이 책을 당내 개혁 성향 의원 연구모임에 돌려 화제가 되었다. 11개월 뒤인 올해 8월에는 ‘조국 대란’을 통해 한국에서도 울타리 게임이 정치 의제로 떠올랐다.

한국이 글로벌 정치의 추세를 따라가고 있을까. 그럴 토양은 있다. 〈그림 3〉은 한국노동연구원 홍민기 연구위원이 2019년 2월 〈월간 노동리뷰〉에 발표한 자료다. 소득수준 상위 10% 집단이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되는지를 보여준다. 상위 10% 집단은 2002년에는 전체 소득 중 37.1%를 가져갔다. 2017년에는 이 비율이 50.7%로 뛴다. 홍 연구위원은 “자본주의 발전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라고 논평했다. 2003~2007년 구간에 상위 10% 집단의 소득 집중도가 특히 크게 올라간다. 노무현 정부 시절이다.  

이철승 교수(서강대 사회학과)는 신간 〈불평등의 세대〉에서, 노동시장의 지위에 따라 계층을 구분하는 방법을 제시한다(〈그림 4〉 참조). 질문은 셋이다. 대기업에 다니는가? 정규직인가? 노조가 있는가? 셋 다 ‘예’인 그룹의 노동소득이 가장 높다. 전체의 6.8%가 이 그룹에 속한다. 대기업·정규직이지만 노조는 없는 그룹이 그다음으로, 전체의 2.9%다. 중소기업에 다니지만 정규직이고 노조가 있는 그룹이 세 번째다. 전체의 11%다. 대략 여기까지가 노동시장에서 상위 20%에 속한다. 이들과 하위 80%의 차이가 벌어지는 추세다.

노동시장 연구자들은 한국 노동시장의 대표 특성을 ‘노동시장 이중구조’라고 설명한다. 법과 노조로 보호받는 ‘내부 노동시장’과, 가혹한 ‘외부 노동시장’의 경계가 뚜렷하다. 울타리 밖 직장은 커리어의 디딤돌이 되는 게 아니라 커리어의 발목을 잡는다. 대졸 하향 취업자 10명 중 6명은 직장을 두 번 옮겨도 상향 이동을 하지 못한다. 첫 직장이 중소기업인 대졸자가 2년 뒤 대기업 정규직으로 ‘점프’에 성공한 비율은 7.5%다. 노동시장의 울타리 게임을 정확히 이해하는 한국의 구직자들은 취업 재수, 삼수를 해서라도 울타리 안쪽으로 들어가려 애쓴다.  

교육과정과 노동시장에 울타리 게임이 만연한 결과로 불평등이 증가한다. 이러면 유리 바닥이 튼튼해지고, 유리 바닥은 다시 불평등을 가속시킨다. 이 악순환을 해소할 힘은 정치가 갖고 있는데, 바로 그 정치가 울타리 안쪽에만 머무르는 순간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나빠진다. 21세기 세계 각국의 정치가 흘러가는 길인 동시에, ‘조국 대란’이 얼핏 드러낸 징후다. 먼저 이 길을 간 나라들의 교훈을 보면, 길 끝에는 포퓰리즘이 기다리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내놓을 메시지는?  

조국 후보자 딸의 논문 이슈는 울타리 안과 울타리 밖을 동시에 자극한다. 서울대와 고려대 등 명문 대학에서는 조국 후보자를 반대하는 촛불집회가 잇따라 열렸다. 이것은 울타리 안 사람들이 느끼는 박탈감, 적어도 울타리 안에서는 공정한 게임이 되어야 한다는 요구에 가깝다. 서울대에서는 이 촛불집회를 비판하는 대자보가 붙어 언론을 타기도 했다. 대자보는 이렇게 썼다. “지금 우리가 드는 촛불이 다수 청년들이 처한 구조적 모순과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냐. 우리에게 학벌 타이틀을 쥐여준 현 사회 제도를 보다 철저히 수호하고 강화하기 위한 촛불이냐.” 이 대자보는 조 후보자에게 분노하는 울타리 안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유리 바닥 위에 서 있다는 현실을 드러낸다. 그런가 하면 울타리 밖의 목소리는 대체로 들리지 않는데(‘구의역 김군’의 동료 정주영씨는 중요한 예외다), 목소리를 빼앗기는 현상이야말로 ‘대변되지 못하는 주권자’의 숙명적 특징이다.

장관 후보자가 검증 단계에서 문제가 되는 경우는 보통 두 가지다. 첫째, 중대한 불법 행위가 확인될 때다. 명확한 낙마 사유다. 조 후보자의 불법 의혹을 검찰이 쫓고 있지만(20~22쪽 기사 참조) 9월4일 현재 이 단계까지는 가지 않았다. 둘째, 도의적 책임론에 휘말릴 때다. 이 상황은 논쟁이 복잡해진다. 공직자는 분명 더 높은 도덕성을 요구받지만, ‘더 높은’이 어느 정도인지는 사람마다 판단이 다르다. 조국 후보자 딸의 논문 문제를 두고는, “부모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지원을 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꼴 아니냐. 공직자의 도덕성 기준으로 봐도 지나치게 가혹하다”라는 주장이 제법 공감을 얻었다.

그런데 조 후보자처럼 인사 문제가 전국을 들썩이는 이슈가 되면 제3의 기준이 떠오른다. 조 후보자의 미래는 이제 문재인 정부가 주권자들에게 내놓을 중대한 정치적 메시지가 되었다. 울타리 게임을 합법의 이름으로 승인할 것인가, 울타리 밖 사람들의 편이 되겠다고 선언할 것인가. ‘공직자로서 더 높은 도덕성’을 요구받는 게 아니다. ‘정치 세력으로서 더 높은 반응성’을 요구받는 것이다. 그러니 이것은 조 후보자가 직을 수행하는 데 적격인지 아닌지와는 결이 다른 질문이다. 울타리 게임에 항의하는 문제 제기가 터져 나왔을 때, 정치 세력이 어떤 의제와 노선으로 이 목소리를 받아안는가, 무시하는가의 문제가 되었다.

이렇게 해서 이 이슈는 조국 후보자 한 사람의 임명 강행과 철회의 양자택일을 넘어서는 과제를 집권 세력에 던진다. 9월2일 기자회견에서 조국 후보자는 이런 말을 했다. “정치적 민주화에 관심 가지면서도 사회경제 민주화와 불평등 문제에 소홀했다. 부익부 빈익빈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고, 거기에 앞장서 나서지 못했던 점, 저희 아이가 합법이라고 해도 혜택을 입었던 점을 반성한다.” 피케티 식으로 말하면, 이 말에는 두 가지가 동시에 담겨 있다. 브라만 좌파의 속성, 그리고 그 속성을 넘어서겠다는 의지. 어느 쪽 힘이 셀까. 장관 후보자 조국과, 그가 몸담은 정치 세력은 결국 어느 쪽을 향하게 될까. 이것은 조 후보자의 운명이 어느 쪽으로든 결정된 후에도 사라질 리 없는 질문이다.

선진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여러 좌파 정당이 이 갈림길에서 길을 잃고 포퓰리즘의 힘에 밀려나곤 했다. 그래서 ‘조국 대란’은 역설적으로 한국의 진보 정치 세력에게 귀중한 예고편이 될 잠재력이 있다. 한국 정치에서 오래 지켜볼 흥미진진한 질문이 하나 늘었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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