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TFLIX 〈우산혁명:소년 vs. 제국〉 갈무리2011년 14세의 나이로 ‘학민사조(Scholarism)’라는 학생 단체를 설립한 조슈아 웡(가운데)을 집중 조명한 〈우산혁명:소년 vs. 제국〉.

■ 사회·역사 다큐멘터리

조지훈 (무주산골영화제 프로그래머)

다큐멘터리는 여러 표현으로 정의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실제 상황을 사실 그대로 찍었거나, 현실을 사실적으로 기록한 영상 또는 영화’로 정의된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믿곤 한다. 다큐멘터리에는 객관적인 사실이, 더 나아가 진실이 담겨 있다고.  

사실 다큐멘터리는 현실의 이미지들을 조합하여 진실을 탐구하는 치열한 스토리텔링의 과정이다. 선택된 이미지로 현실을 재구성하는 주관적인 이미지텔링의 산물이다. ‘좋은’ 다큐멘터리는 주제에 상관없이 어떤 논픽션보다 기록된 이미지와 사실 또는 진실이 맺는 관계를 끊임없이 성찰하는 지적인 노력의 과정 속에서 태어난다. 이런 다큐멘터리들은 단순히 새롭고 객관적인 사실이나 정보를 전달하는 일차적인 기능을 넘어선다. 그 어떤 영화보다 흥미로운 방식으로 현실 너머의 현실을 통찰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계기와 성찰의 시간을 선사한다. 결국 우리의 인식을 새로운 세계로 인도한다. 이런 좋은 다큐멘터리들은 자주 혹은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전체를 보기 전까지는 그 가치를 알아채기 어려울 때가 많다. 지금부터 소개할 다큐멘터리 두 편은 이런 의미에서 언제든 기억해두었다가 볼만한 좋은 다큐멘터리라고 할 수 있다.  

첫 번째 다큐멘터리는 〈우산혁명:소년 vs. 제국(Joshua:Teenager vs. Superpower)〉(넷플릭스)이다. 현재 홍콩은 아시아에서 가장 극심한 변화와 혼란을 겪고 있다. 지난 몇 개월간 거의 내전에 가까운 상황이다. 200만명이 넘는 시민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시위를 하고 벌건 대낮에 시위대를 공격하는 백색 테러가 벌어졌다. 지하철에서는 시위대를 무차별로 공격하는 무장 경찰의 폭력 진압이 일어나고 있다. 급기야는 중국 정부가 홍콩에 군대를 투입하려 한다는 소식까지 들려온다. 2014년 우산혁명 때와 마찬가지로 제2의 톈안먼 사태를 우려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홍콩 ‘우산혁명’ 과정 감동적으로 담아내

홍콩 시민들은 동맹 휴업과 동맹 휴학에 대거 동참하며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금 홍콩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홍콩 시민들은 도대체 왜 분노하는 것일까? 직접적으로는 홍콩 정부의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추진 때문이다. 사실 이 문제의 기원을 따지자면 멀리는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까지, 가깝게는 2014년 우산혁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7년 선댄스 영화제에서 월드 다큐멘터리 부문 관객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14세의 나이로 2011년 ‘학민사조(Scholarism)’라는 학생 단체를 설립한 조슈아 웡을 집중 조명한다. 그는 친구들과 함께 10만여 명 규모의 시위를 조직해 중국의 국가주의 이념 교육을 의무화하는 정책을 저지했다. 17세가 되던 2014년에는 ‘우산혁명’을 주도한 핵심 인물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지금도 여전히 반정부 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 다큐멘터리는 그의 정치적 행보를 축으로,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를 관철하기 위해 시작되었으나 결국은 실패한 ‘우산혁명’의 과정을 드라마틱하면서도 감동적으로 담아낸다. 미국적인 영웅 서사를 바탕으로 한 스토리텔링 때문에 다양한 정치세력이 주도했던 우산혁명을 단순화했다는 비판도 있다. 그 점을 감안하고 본다면 동시대 홍콩의 정치·사회 문제를 이해할 수 있는 안내서가 되어줄 것이다.  

ⓒNETFLIX 〈미국 수정헌법 제13조(13th)〉 갈무리미국의 인종차별 문제를 거시적이고 구조적인 시선으로 들여다본 〈미국 수정헌법 제13조(13th)〉.

두 번째 다큐멘터리는 〈미국 수정헌법 제13조(13th)〉(넷플릭스)다. 〈셀마〉를 연출한 에바 두버네이 감독의 다큐멘터리다. 이 작품은 노예제도를 폐지하고 ‘범죄자를 제외한’ 흑인의 비자발적 예속을 금지한 미국 수정헌법 제13조의 내용 중 ‘범죄자를 제외한(except as a punishment for crime)’이라는 문구에 집중한다. 이 문구로 인해 지금도 모습을 달리하며 지속되고 있는 미국의 인종차별 문제를 거시적이고 구조적인 시선으로 들여다본다. 감독은 백인 여성을 강간한 범인과 흑인을 동일시한 최초의 영화 〈국가의 탄생〉(1915)과 짐크로법이라고 불리는 흑백분리법으로 다큐멘터리를 시작한다. 범죄, 마약과의 전쟁으로 대표되는 닉슨과 레이건 정부의 강력한 법 집행 시대를 경유한다. 삼진아웃제, 선고 진실법, GPS 모니터링, 양형 거래 등 범산복합체와 결합한 클린턴 정부의 대량 투옥 시대에 이르기까지 약 100년간의 인종차별 역사를 범죄라는 필터를 통해 새로운 시각으로 재구성한다.  

미국 정부의 강력한 범죄 정책이 어떻게 흑인 또는 유색인종을 악마화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구축해왔는지 살펴본다. 미국 사회가 인종차별 문제를 어떻게 범죄의 문제로 대체하고 은폐해왔는지 폭로한다. 결국 1970년 약 35만명에 불과했던 수감자 수가 2014년에는 230만명에 달하고, 미국 인구의 6.5%인 흑인 남성이 미국의 전체 수감 인구의 40.2%를 차지하고 있는 끔찍한 현실을 보여준다.
이 다큐멘터리를 보면 아직도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지 못하는 동시대 한국 사회를 성찰할 수 있다. 

■ 자연·과학 다큐멘터리

둥글레 (필명·IT 기획자)

수학과 과학은 그저 견뎌야 하는 고난일 뿐이었다. 학창 시절 내게는 그랬다. 주머니에서 빨간 공이 나올 확률을 계산하거나 마찰이 없는 빗면에서의 운동을 예상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반면 글을 읽는 건 늘 즐거웠다. 그게 설령 ‘강호애 병이 깊퍼 듁님의 누엇더니’ 유의 수수께끼 같은 문장이라 할지라도 고난으로 느껴지진 않았다. 수식을 보면 식은땀이 났지만, 활자를 보면 웃음이 났다. 나는 전형적인 문과생이었다.  

그런데 정신을 차려보니 IT 업계에서 10년째 일하고 있다. 인생 참 알 수 없다. 업계 특성상 이곳에서 만나는 사람 대부분은 이과생이다. 그들과 협업하면서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던 단단한 편견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과생은 아름다움을 몰라, 이과생은 재미가 없어, 이과생은 차가워…. 과학 다큐멘터리를 찾아보게 된 건 순전히 그 편견을 바로잡고 싶었기 때문이다.  

ⓒBBC AMERICA 갈무리1926년생인 데이비드 애튼버러(위)는 50년 넘게 BBC에서 일하며 동물학자이자 방송인으로서 다양한 자연 다큐멘터리 제작에 힘써왔다.

〈데이비드 애튼버러의 자연 이야기〉 (넷플릭스)에 출연하는 데이비드 애튼버러는 대학에서 동물학을 전공한 아주 멋진 이과생이다. 〈아름다운 바다(The Blue Planet)〉, 〈살아 있는 지구(Planet Earth)〉 등 BBC의 대표적인 자연 다큐멘터리에서 내레이터로 활약하며 전 세계 사람들에게 자신을 알렸다. 그의 커리어는 내레이터 이상이다.  

1926년생인 그는 무려 50년이 넘는 시간을 BBC에서 일하며 동물학자이자 방송인으로서 다양한 자연 다큐멘터리 제작에 힘써왔다. 고속 촬영, 접사 촬영 등 현재는 보편화된 촬영 기술이 전무하던 시절부터 그는 맨몸으로 현장을 누비며 대중에게 자연의 아름다움을 소개해왔다.  

데이비드 애튼버러는 적극적으로 카메라 앞에 서는 진행자다. 그는 소년처럼 상기된 표정으로 카멜레온이 얼마나 아름답고 대단한 생명체인지 이야기한다. 카멜레온이 아름답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지만, 한껏 들뜬 모습으로 이야기하는 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면 어느 순간 카멜레온이 정말 아름답게 보인다. 이 진귀한 체험을 당신도 꼭 해보길 바란다.

ⓒWATCHAPLAY 〈24 아워즈 온 어스〉 갈무리동물들이 각자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그린 〈24 아워즈 온 어스〉

〈24 아워즈 온 어스(24 Hours on Earth)〉(왓챠)는 내가 책임감에 질식할 것만 같던 시기에 접한 다큐멘터리다. 유난히 힘든 하루를 보내고 나면 이 세상 온갖 것이 부러워진다. 나무 그늘에서 한가롭게 쉬고 있는 치타, 아름다운 날개를 팔랑대며 꽃밭을 누비는 나비…. 카메라는 다양한 공간을 넘나들며 지구상의 생명체가 어떤 식으로 하루를 영위하는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차분하게 보여준다.  

지상에서 가장 빠른 생물인 치타는 사냥 성공률이 높은 것으로 유명하지만, 사실 그들에게 허락된 사냥 시간은 일출 후 단 몇 시간에 불과하다. 한낮이 되면 달궈진 지표면이 뿜어내는 아지랑이가 시야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냥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시간을 앉아서 혹은 누워서 보낸다. 쓸데없는 에너지 소모를 막으려는 나름의 궁여지책인 셈이다.  

한가로워 보이는 황제나비에게도 특별한 사정이 있다. 그들은 멕시코의 추운 밤을 견디기 위해 수만 마리씩 한데 모여 시간을 보낸다. 날이 밝았다고 해서 바로 먹이를 찾아 떠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태양열에 날개를 충분히 녹인 뒤에야 비로소 날아오를 수 있다. 날개가 있다고 해서 항상 날 수 있는 건 아닌가 보다.  

무용가를 ‘과학 다큐’ 진행자로 쓴 깊은 뜻

각자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며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지켜보다 보면, 그들이 모두 나의 동지처럼 느껴진다. ‘아, 나의 고단한 하루가 딱히 유별난 게 아니었구나, 살아가는 건 원래 이렇게 힘든 거구나.’ 체념 섞인 한숨을 몇 번 쉬고 나면 이상하게도 기운이 난다. 지구상에 흩어져 있는 동지들을 생각하면 또 하루 열심히 살아볼 마음이 난다.  

과학에는 관심도 없던 내가 굳이 코펜하겐의 닐스보어 연구소를 찾아갔던 건 순전히 〈빛의 물리학〉(EBS) 때문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자전거로 코펜하겐 시내를 달리던 진행자의 모습이 무척 좋아 보였기 때문이다.  

ⓒEBS 〈빛의 물리학〉 갈무리빛을 키워드로 삼아 물리학 전반을 다룬 〈빛의 물리학〉.

〈빛의 물리학〉은 빛을 키워드로 삼아 특수상대성 이론부터 통일장 이론에 이르기까지 물리학 전반을 다루는 6부작 다큐멘터리다. EBS에서 약 2년을 들여 제작한 프로그램인데 최대한 쉽게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고 한다. 제작진의 노력 덕분에 나 같은 문과생조차도 흥미진진하게 볼 수 있었다. 아, 내용 전부를 이해했느냐 하면 당연히 그건 아니고….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과학자가 아닌 무용가를 기용한 것 역시 신선했다. 내용이 좀 어려워지는 것 같으면 진행자가 먼저 선수를 친다. “점점 더 어려워집니다” “미궁 속으로 빠져듭니다.” 그렇다 보니 외려 부담 없이, 심지어는 웃으면서 볼 수 있었다. ‘그치? 나만 어려운 거 아니지?’  

전반적인 과학사를 다루다 보니 유명한 과학자들의 이름과 업적을 되짚어볼 수 있는 것도 큰 장점이다. 거기에는 무언가에 뜨겁게 몰두한 개인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장면은 러더퍼드가 원자핵을 발견해내는 순간에 대한 묘사다.

명왕성이 태양계에서 퇴출당했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명왕성에게 왠지 모를 안쓰러움을 느꼈다. 명왕성 퇴출 반대 운동까지 벌어졌던 걸 생각하면 내 반응이 그리 유난스러운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당시에는 과학자들이 매정하다고 생각했지만 그간 열심히 본 다큐멘터리 덕에 이제는 그들이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다. ‘사실이라 믿고 있던 것을 반박하는 증거가 나왔을 때 기존의 믿음에 매달리기보다는 깨끗하게 물러나는 것. 그렇게 앞으로 계속 나아가는 것.’ 그게 바로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과학의 정신이겠지. 편견을 걷어내니 그들이 무엇을 지키려고 하는 건지 조금씩 보인다. 더 많은 편견을 걷어내기 위해 나는 오늘도 다큐멘터리를 본다. 

■ 여성 감독의 다큐멘터리

황효진 (칼럼니스트)

언젠가부터 여성이 만든 여성의 이야기를 열심히 읽고 듣고 또 본다. 그 점에서 여성이 만든 다큐멘터리는 더욱 소중하다. 지금, 나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여성들이 자신의 목소리로 어떤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는지 직접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제91회 아카데미 단편다큐멘터리상을 수상한 〈피리어드:더 패드 프로젝트〉(넷플릭스)는 생리에 관한 다큐멘터리다.  

ⓒNETFLIX 〈피리어드:더 패드 프로젝트〉 갈무리제91회 아카데미 단편다큐멘터리상을 받은 〈피리어드:더 패드 프로젝트〉.

인도 뉴델리 외곽의 하푸르 지역 농촌 마을에는 제대로 된 생리대가 없었고, 그렇기 때문에 생리를 하는 동안 여학생들은 학교를 빠지거나 오로지 생리대를 세탁하러 학교에서 멀리 떨어진 우물까지 걸어가는 등 학업을 꾸준히 이어가기 어려웠다. 다행히 어느 날 마을에 생리대를 만드는 기계가 설치되고, 여성들은 ‘플라이’라는 이름의 생리대를 직접 만들기 시작한다. 생리대는 제작하는 여성들에게는 경제적 자립의 기회를, 생리대가 없어 고통받았던 여성에게는 이전보다 조금 더 자유로운 일상을 가져다준다. 제대로 된 생리용품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단지 약간 더 쾌적하고 편안한 상태에서 생리를 하게 된다는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여성의 삶 전반을 더 나아지게 하는 것임을 이 다큐멘터리를 보며 확실히 알게 되었다.  

사실 이 다큐멘터리에서 가장 감동적인 부분은 따로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여학생들이 생리대 기계를 구입하는 데 필요한 초기 자금을 모으고, 인도의 여성들이 계속해서 생리용품을 사용할 수 있도록 모금하는 사이트인 ‘더 패드 프로젝트’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김보람 감독의 〈피의 연대기〉와 함께 보면 더욱더 재미있을 이 다큐멘터리는 생리의 고통을 알고 있는 여성들이 서로 연대할 수밖에 없음을 잘 보여준다.

해외로 입양된 한국 여자아이들 이야기

넷플릭스에 업데이트됐을 때 속으로 환호했던 여성 감독의 다큐멘터리가 한 편 더 있다. 2014년, 〈트윈스터즈〉 (넷플릭스)를 극장에서 봤을 때 나는 완전히 새로운 시대의 다큐멘터리 감독이 탄생했다고 생각했다.  

ⓒNETFLIX 〈트윈스터즈〉 갈무리아주 어릴 적 헤어진 일란성 쌍둥이 자매가 극적으로 만나 어떻게 서로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게 되는지를 그린 〈트윈스터즈〉. 왼쪽이 서맨사 푸터먼 감독.

이 작품을 만든 서맨사 푸터먼은 어느 날 페이스북을 통해 자신과 똑같이 생긴 여성, 아나이스 보르디에의 연락을 받는다. 20년 이상 살아오는 동안 단 한 번도 만난 적 없지만 서맨사와 아나이스는 자신과 너무 닮은 상대방을 금세 사랑하게 되고, 자신들이 따로따로 해외에 입양된 일란성 쌍둥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매일 스카이프로 통화를 하고 실시간으로 페이스북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유튜브와 페이스북, 스카이프 등 옛날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SNS와 인터넷 전화로 두 사람이 가까워지는 과정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들여다보면 한국에서 해외로 입양된 여자아이들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온갖 SNS와 ‘이모지(그림문자)’ 문화에 익숙한 1987년생 서맨사 푸터먼의 시점에서 연출된 〈트윈스터즈〉는 슬프거나 무겁지 않다. 아주 어릴 적 헤어진 일란성 쌍둥이인 두 여성이 어떻게 단숨에 서로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게 되는지, 입양되기 전에도 자신들의 인생이 존재했음을 어떻게 이해하게 되는지 걸핏하면 “팝(POP)!”이라고 말하는 두 사람의 입버릇만큼이나 명랑하게 그려진다.

ⓒNETFLIX 〈셔커스:잃어버린 필름을 찾아서〉 갈무리〈셔커스:잃어버린 필름을 찾아서〉(아래)는 사랑하는 태도를 생각하게 하는 영화다.

마지막으로 추천하고 싶은 다큐멘터리는 샌디 탄의 〈셔커스:잃어버린 필름을 찾아서〉(넷플릭스)다. 1992년, 싱가포르의 10대 소녀 샌디 탄은 친구 재스민, 소피와 함께 ‘셔커스’라는 제목의 영화를 찍기 시작한다. 영화에 푹 빠져 있던 세 사람은 어디에도 없을 특이하고 괴상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촬영을 이어가고, 그 과정에는 조지라는 성인 남성이 함께한다. 아무 문제없이 흘러가는 것처럼 보였던 영화 제작 과정은 어느 날 조지가 필름을 가지고 사라지면서 세 친구에게 상처를 남긴다. 20년이 흘러 조지의 부인으로부터 그의 사망 소식을 전해들은 샌디는 원본을 찾아가는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만들기로 한다. 샌디를 기다리는 것은 음성이 모두 사라진 〈셔커스〉의 원본 필름이었고, 샌디는 시간이 흘러 다시 보게 된 영화가 어릴 적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형편없었다고 담담하게 고백한다. 남아 있는 원본 〈셔커스〉보다 아름다운 것은 모두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며 여전히 영화를 사랑하는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는 샌디와 친구들의 모습이다.

그들, 그리고 새로운 사운드가 덧입혀져 완전히 새로운 작품으로 다시 태어난 원본 〈셔커스〉를 작품 속에서 보며 나는 무언가를 깊이 사랑하는 태도에 관해 생각하게 되었다. 다양한 여성들의 손끝에서 태어난 모두 다른 이야기를 끊임없이 발견하고 보고 듣고, 그에 대해 제대로 말하는 것이 현재를 살아가는 여성인 우리가 다른 여성들을 사랑하는 방법 중 하나라는 것 역시도.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