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희에게.

편지를 쓰게 될 줄은 몰랐어. 처음엔 그냥 평소처럼 써보려고 했는데, 편지가 아니면 안 되겠더라. 영화 후반부, 네가 영지 선생님(김새벽)의 편지를 읽는 장면, 이어서 답장을 쓰는 장면에 완전히 마음을 빼앗긴 탓이겠지. 아… 그 장면들은 정말, 너무나 뭉클하고 아름다운 순간이었거든.

내가 오래전에 지나와버린 그해 1994년을 자신의 현재로 살아내고 있는 열네 살 은희(박지후). 너의 소문을 처음 들은 지도 벌써 1년이 다 되어가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널 처음 본 사람들이 다들 같은 말을 했었지. “이 영화 진짜 진짜 좋아요.”

이제야 나도 너를 보았다. 영화가 끝나자마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너를 또 보고 싶어지더라. 너의 미소, 너의 눈물, 너의 낮은 어깨와 너의 작은 등까지, 차곡차곡 담아두고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어지는 거야. 이젠 내가 매일 네 얘기를 하고 다녀. 이렇게 말이지. “이 영화 진짜 진짜 좋아요!”

왜지? 사실 별것 없잖니. 흔히들 기대하는 ‘영화 같은 스토리’는 아니잖아. 친구가 많지 않은 중학교 2학년, 생각처럼 잘 풀리지 않는 연애, 아들이라서 모든 걸 누리는 오빠와 진즉 아빠 눈 밖에 난 언니, 꼴 보기 싫은 담임선생님과는 다르게 매일매일 보고 싶은 학원 강사 영지 선생님까지. 너를 둘러싼 사람들과 계속 부대끼고 부딪치는 날들의 연속일 뿐인데, 왜? 왜 이렇게 내 마음이 자꾸 네게로 기우는 걸까?

“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보라/ 손바닥 안에 무한을 붙들고/ 순간 속에서 영원을 느낀다(윌리엄 블레이크의 시 ‘순수의 전조’ 중에서).” 이 유명한 시가 답이 될지도 모르겠다. 언젠가부터 나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모두 이런 마음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어.

1994년 은희가 보여주는 커다란 세계

이번엔 네가 바로 그 ‘한 알의 모래’더라. 작은 너를 가만히 지켜보는 건 사실, 아주 커다란 세계를 찬찬히 살펴보는 일이야. ‘열네 살 소녀의 1994년’을 손바닥 안에 움켜쥔 영화 〈벌새〉는, 단지 ‘열네 살’과 ‘1994년’을 붙들고 있는 게 아닌 거야. 성수대교가 무너진 해를 사는 은희는, 대구 지하철 참사가 일어난 2003년의 은희이면서, 세월호가 가라앉던 2014년의 은희일 수도 있다고 나는 생각해.

열네 살이어서 안쓰러운 순간이 많았지만, 열네 살이어서 오히려 다행이다 싶은 순간도 적지 않은 은희의 여름. 한 송이 들꽃처럼 연약하지만 그래서 더 어여쁜 은희의 라스트신. 그 짧은 순간에 담긴 너의 마지막 얼굴에서 나는 감히 어떤 영원의 표정을 보았다고 말하고 싶어. 우리는 지금 어떤 세상에 사는 걸까? 우리 각자의 세계에선 지금 무엇이 무너지고 있을까? 다행히 너에겐 영지 선생님이 계셨는데, 나에겐 지금, 누가 있을까? 1994년의 은희 덕분에 2019년의 내가 생각이 많아졌다. 고마워. 부디 건강하렴.

기자명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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