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에 이어 8월16일부터 8월23일까지 홍콩 시위 현장을 취재했다. 떠나기 전 현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최루탄이 난무했고 ‘빈백건(bean bag gun: 알갱이가 든 주머니탄)’ 탄환에 맞아 한 시위 여성이 실명했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갔다. 취재 기간 내내 시위는 평화로웠다.

‘중국군 개입설’이 퍼지자, 빌미를 제공하지 않기 위해 시민들이 평화 집회를 이어갔다. 경찰도 부담스러워했다. 전 세계에서 모여든 외신 기자들 앞에서 시위대 170만명을 강제 해산하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홍콩을 떠난 뒤 시위 참가자 수가 줄어든 8월24일, 경찰이 또다시 무력 진압에 나섰다.

“가만 보면 한국 언론은 홍콩 시위에 뭔 일이라도 나길 바라는 뉘앙스”라는 댓글이 아프게 다가왔다. 나 역시 취재 기간 내내 지속된 평화집회에 살짝 당황했다. ‘충돌 격화’나 ‘평화 시위’ 등 시위 형태만을 중계하기엔 홍콩 시민들의 고민이 깊어 보였다.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해에 태어난 반환둥이들에게 초점을 맞췄다. 집, 학교, 퇴근길에 따라붙어 그들이 사는 홍콩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홍콩은 높은 취업경쟁률, 비싼 집값, 낮은 임금 등 경제적 여건이 한국보다 더 좋지 않았다. 반환둥이 에디 렁 씨(가명)는 “우리는 잃을 게 없어서 (체포되어도) 괜찮다”라고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취재하며 만난 반환둥이들에게 ‘일국양제가 끝나는 2047년에 어떻게 될 것 같으냐’는 공통 질문을 했다. 네 명 모두 대답이 같았다. “잘 모르겠어요.”

이들이 요구하는 송환법 철회, 행정장관 직선제 등이 받아들여질지 알 수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번 시위를 거치며 젊은 세대가 민주주의에 대한 감각을 내면화했다는 점이다. 한 시위 참가자는 “마음의 혁명은 이미 일어나고 있다”라고 말했다. 다른 시민은 “홍콩은 다시 예전처럼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홍콩 시민들은 지난 3개월간 주말을 반납하며, 최전선 시위대를 위한 보호 장비를 구매하고, 떨어진 포스트잇을 다시 붙이며 싸우고 있다. 그 이유를 시민 각자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체포되기 전까지 우리는 계속 갈 거야.” 시위가 다시 격화된 8월24일 ‘괜찮으냐’라고 문자를 보내자 에디 렁 씨가 답을 보내왔다. 홍콩 시위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기자명 김영화 기자 다른기사 보기 you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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