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공동취재단

사법농단은 왜 일어났을까? 이 물음에는 비교적 공인된 답변이 있다. 상고법원 도입 등 법원의 숙원 사업을 관철시키기 위해 사법부가 재판을 볼모로 행정부와 거래에 나섰다는 것. 이 혐의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사진)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피고인석에 섰다. 그러나 정권의 의중을 파악하고, 그 방향대로 재판이 흘러가도록 방안을 검토하고, 비판적인 판사들의 동향을 조사하고, 이를 정리해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련의 작업은 최고위급 법관 몇몇이 가졌던 야욕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법관의 독립을 해치는 업무에 기꺼이 손을 보탠 판사들이 있었다. 검찰은 사법농단 사건과 관련해 법원에 현직 판사 66명의 비위 사실을 통보했다. 그러나 대법원이 징계를 결정한 판사는 8명. 이 가운데 5명은 감봉과 견책 같은 가벼운 처분을 받았다. 사법농단에 관여한 판사들 중 여럿이 여전히 일선 법원에서 재판을 하고 판결을 내린다. 법원 조직 곳곳에서 손발이 되었던 판사들이 있었기에 사법농단이라는, 헌법적 가치의 근간을 흔드는 대사건이 가능했다. 이들 역시 책임을 피할 수 없는 이유다.

법원이 징계에 미온적이고 국회가 법관 탄핵에 미적거리는 상황에서 시민들이 보여줄 수 있는 힘은 ‘잊지 않는 것’이다. 〈시사IN〉은 기억과 기록의 작업을 시작한다. ‘사법농단 연루 의혹 현직 판사 열전’은 일선 판사들이 어떻게 사법농단의 손발이 되어 움직였는지를 날것으로 기록하는 연재 기획이다.

 

엘리트 판사님의 두 얼굴

김민수(43)  창원지법 마산지원 민사1단독 부장판사

일명 ‘로열 로드(Royal Road)’를 밟아. 사법연수원 성적이 가장 우수한 법관들이 가는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판사 생활을 시작. 이후 부임지에서도 기획법관으로 임명돼 ‘사법행정’ 업무를 맡았다. 사법행정은 본래 재판을 지원하는 보조적인 개념이지만 법원에서는 고위직 법관으로 가는 코스로 통한다. 사법농단 사태를 일으킨 법관들 대부분이 이 사법행정 라인을 걷는 “잘나가는” 판사들. 2014년 해외연수를 다녀와 10년 차인 2015년 사법행정의 정점인 대법원 법원행정처에 기획조정실 심의관으로 입성. 보수적인 성향의 엘리트 판사들이 모인 ‘민사판례연구회’와 진보적 색채를 띤 ‘우리법연구회’에서 모두 활동. 동료 법관들의 신망도 두터워 송오섭, 차성안, 박노수 등 소장파 판사들과도 두루 어울려. 그래서 일명 판사 뒷조사 파일을 만드는 데 적임자였다는 평도. ‘양승태 사법농단 공동대응 시국회의’이 1차로 발표한 판사 탄핵소추 대상자 6명 가운데 이름을 올렸다.

 

 

 

기자명 김연희·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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