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4년생 이춘식이 드러낸 세계
  • 천관율 기자
  • 호수 623
  • 승인 2019.08.27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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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노동 피해자 이춘식의 끈질긴 법정투쟁은 보편주의의 언어로 한·일 관계를 인식하는 사람들의 출현을 알렸다. 게다가 이 투쟁은, 우리가 사는 세계가 어떤 맨얼굴을 하고 있는지 드러냈다.
ⓒ주용성일본 강제노동 피해자 이춘식씨가 지난해 10월 광주광역시 북구 자신의 집에서 사진 촬영에 임했다.

 

이것은 한 사람의 이야기다.

이춘식은 1924년생이다. 전남 나주군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이춘식의 남동생까지 낳은 후 재산을 싸들고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인 여성과 살림을 차린다. 화병이 난 어머니는 22세에 세상을 떠났다. 이후 아버지는 고향으로 돌아와 다시 한국인 여성과 결혼한다. 이춘식은 새어머니가 들어온 집을 떠나고 싶었다. 태평양전쟁 직전인 1941년, 17세 이춘식은 대전시장이 모집한 보국대에 자원해 일본으로 건너간다. 조선보다 수입도 나을 것이고 기술도 배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와테현에 있는 일본제철 가마이시 제철소에 투입됐다. 코크스를 용광로에 넣고 뒤섞고, 불순물을 걷어내고, 용광로에서 나온 철을 가마에 넣었다. 현장은 먼지가 지독했다. 일본인은 기술 쓰는 일을 주로 했고, 조선인은 힘들고 위험한 일을 주로 했다. 이춘식은 녹다 만 불순물에 발이 걸려 복부를 크게 다쳐 3개월간 입원한 적이 있다. 노동강도가 셌다. 일을 회피하면 일본 헌병이 와서 발길질을 했다. 헌병은 보름에 한 번씩 인원을 파악했다.

3년간 일하면서 월급을 받은 적이 없었다. “나라에서 저축해준다”라는 말만 들었다. 얼마가 저축되는지도 몰랐고,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다. 1944년에 징병 대상 연령이 되었다. 고베의 일본군 부대에서 미군 포로 감시원으로 일하다가 전쟁이 끝났다. 밀린 월급을 받으러 제철소에 가보니 전쟁통에 공장이 다 부서지고 없었다. 그는 빈털터리로 고향으로 돌아왔다.

ⓒAP Photo1945년 11월20일 독일 뉘른베르크 정의의 전당에서 주요 전쟁 범죄자들의 재판이 열리고 있다.

 

“나 때문에 대한민국이 손해가 아닌지…”

2005년, 여든한 살 고령이 된 이춘식은 다른 강제노역 피해자 4명과 함께, 일본제철의 후신인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밀린 월급과 강제노동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냈다(1심 패소 후 한 명이 항소를 포기해 원고는 네 명으로 줄어든다). 2008년에 1심, 2009년에 2심을 모두 졌다. 반전은 2012년에 일어났다. 당시 대법원 1부(김능환·이인복·안대희·박병대 대법관)는 원고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해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낸다. 2013년 고등법원에서도 패소한 신일본제철은 다시 대법원에 상고한다. 허망한 시도로 보였다. 대법원 판단을 따라 고등법원이 판결한 사건을 다시 대법원으로 가져가서 뒤집겠다는 얘기였다. 그런데 일이 요상하게 흘러갔다.

2013년 박근혜 정부가 출범했다. 강제노동 배상 사건은 한·일 관계의 시한폭탄이었다. 박근혜 청와대는 이 시한폭탄을 불발로 만들고 싶어서 양승태(당시 대법원장) 대법원과 ‘긴밀하게 소통’했다. 박근혜·양승태 사법농단 중에서도 최악의 사례로 꼽히는 강제노동 배상 사건 조율 의혹이다. 양승태 대법원은 딜레마에 빠졌다. 판결을 다시 뒤집으면 대법원 망신이다. 그대로 확정하면 숙원사업인 상고법원 도입이 물 건너갈 판이었다.

대법원은 장고에 들어갔다. 사실 지나치게 장고에 들어갔다. 2012년에 자신들이 이미 내린 판단을 재확인하는 사건을 몇 년씩 쥐고 뭉갰다. 이춘식은 이제 아흔을 훌쩍 넘겼다. 함께 재판을 진행한 네 명 중 세 명이 세상을 떠나고 그만 혼자 남았다. 양승태 대법원의 장고는 해법을 찾는 시간이 아니었다. 그 자체가 해법이었다. 다수의 국익과 소수의 피해자 권리가 충돌할 때, 권리 구제를 뭉개면서 결국 피해자에게 짐을 돌리기. 피해자 한 명만 침묵하면, 피해자 한 명만 희생하면, 피해자 한 명만 사망하면 복잡한 문제는 뒤로 제쳐둘 수 있었다. 국익을 위해 그게 더 낫다는 논리가 꼭 따라붙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당하고 대법원장도 김명수로 바뀐 2018년, 홀로 남아 아흔넷이 된 이춘식은 마침내 승소 확정판결을 받는다. 그 여파로 2019년부터 한·일 무역분쟁이 발발한다. 그는 JTBC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마음이 아파서 눈물이 나온다. 나 때문에 대한민국이 손해가 아닌지 모르겠다. 나 하나 때문에 그러는가 싶다.” ‘국익을 위해 한 명만 희생하면 될 일’이라는 정서가 피해자의 말에도 짙다.

바로 여기다. 이 ‘소수의 피해자와 다수의 국익 문제’를 한국 사회가 다루는 방식이, 미묘하지만 분명하게 달라졌다. 그리고 이 중요한 차이는, 기존의 한·일 관계 문법으로 읽으면 보이지 않는다.

한·일 관계를 놓고 갈등이 벌어질 때면, 친미·친일 보수파와 반일 민족주의 그룹, 이 둘이 갈등의 축이었다. 보수파는 시장과 재산권의 자유, 법치주의, 인권 존중 등 미국식 가치동맹에 한국이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반대편에는 권위주의 중국이라는 훨씬 나쁜 옵션이 있다). 일본이 역사적으로 가해자이긴 하나, 이 미국식 가치동맹에서는 동아시아의 핵심 파트너였다. 그러므로 친미·친일은 역사 문제를 뛰어넘어 한국이 도달해야 할 고지였다.

기존 문법으로 읽으면 보이지 않는 것들

친미·친일 보수파의 관점에서 보면, 반일 민족주의는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다. 미국식 가치동맹을 거부하는 것은 국제정세를 보는 눈이 엉터리라는 증거다. 더 큰 문제도 있다. 미국식 가치동맹이 제안하는 시장 자유, 법치주의, 인권 존중은 특정 국가의 이데올로기라기보다는 인류 보편의 가치다. 즉 친미·친일 보수파의 관점에서, 반일 민족주의는 보편 가치에 합류하길 거부하는 미성숙이다. ‘보편 대 특수’ 구도다. 그리고 친미·친일이 보편이다.

이런 세계관은 아전인수일까? 꼭 그렇지만도 않은 장면이 있다. 미국에서 한인 유권자 조직을 만들었던 한 활동가는, 스스로 진보 성향이지만 진보적인 한국 정치인들의 미국 의회 방문을 꺼린다. ‘위안부’ 문제가 이슈일 때 특히 그랬다. 그의 설명은 이렇다. “미국 하원이 ‘위안부’ 문제로 결의안을 채택한 것은, 이것이 ‘전시(戰時) 성노예’라는 우리 주장이 통했기 때문이다. 노예제는 ‘인도에 반하는 죄(crime against humanity)’로 국제사회의 보편적인 관심사다. 한국의 민족주의적 정치인들은 이 문제를 자꾸 ‘조선의 딸들이 일본에 유린당했다’라는 식으로 설명한다. 이러면 ‘한·일 간에 알아서 할 특수한 문제’가 되어버린다.”  

일본이 한국을 상대할 때도 거의 언제나 이 보편 대 특수 구도가 깔려 있다. 일본을 보편으로 한국을 특수로 규정하려 든다. 2015년 일본 외무성은 홈페이지의 한국 소개자료에서 “자유와 민주주의, 시장경제 등의 기본 가치를 공유한다”라는 문장을 삭제했다. 가토 다쓰야 <산케이 신문> 전 서울지국장이,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로 검찰에 기소를 당한 시점이 이때다(<시사IN> 제619호 ‘한·일 무역전쟁 불씨는 박근혜 정부 때 발화했다’ 기사 참조). 언론 자유는 보편가치에 속한다. 일본은 한국이 보편가치를 공유하지 않는다고 때렸다. 강제노동 배상 판결 이후에 일본은, 한국이 “국가 간 약속을 지키지 않는 나라”라는 신호를 국제사회에 보낸다. 마찬가지 시도다.

친미·친일 보수파는 무역분쟁 이후의 반일(反日) 기류도 같은 렌즈로, 반일 민족주의와 친미·친일 보편주의 둘의 대결로 바라본다. 지금 국면을 이 구도로 해석하다 보면 자꾸 오류가 발생한다. 친미·친일 보수파와 반일 민족주의자 두 축이 동시에 간과하는 ‘제3의 축’이 있다.

류영재 판사(춘천지방법원)는 법률가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강제징용 배상 사건을 해설하고 비전문가들과의 댓글 대화도 이어간다. 류 판사가 왜 이리 치열한지 궁금했다. 법률가의 의견 말고, 시민으로 갖는 의견을 물었다. “시민으로서요? 저는 사람들이 한국인이라서 분노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두 가지죠. 첫째, 개인의 가장 기본적인 인권은 국가가 국익을 내세워 침해해서는 안 된다. 둘째, 그 기준으로 볼 때 일본이 명백히 잘못을 저지른 사안이다. 이 두 가지 판단 때문에 사람들이 분노한다고 생각해요. 저도 그렇고요.”

청년 이춘식이 겪은 일을 가장 잘 묘사하는 말은 ‘강제노동’이다. 이것은 청년 이춘식이 자원해서 일본에 일을 하러 간 사실과는 무관하며, 일터에서 겪은 경험이 강제노동의 조건을 충족시킨다는 의미다. 국제법학자들은 강제노동도 넓은 의미에서 노예제에 속하며, 그러므로 노예제에 준하는 정도로 금지된다고 해석한다. 이것은 국가가 침해할 수 없는 기본권이다. 한국 대법원은 이 기본권을 보장하는 판결을 내렸으므로, 이에 문제를 제기하는 일본 정부는 잘못을 저질렀다.

이 논리 어디에도 한·일 관계의 특수성이나 민족주의적 역사 해석은 논거로 쓰이지 않는다. 대신에 등장한 것은 기본권은 불가침이라는 원칙과, 노예제가 ‘인도에 반하는 죄’라는 국제법 원리다. 보편 대 특수의 구도로 보면, 이보다 보편적이기도 어렵다. 친미·친일 보수파와도 반일 민족주의자와도 결이 다르다. 우리는 이들을 ‘공격적 보편주의자들’이라고 부르자.

 

ⓒ시사IN 조남진8월6일 서울 중구청 관계자들이 ‘노 재팬’ 깃발을 철거하고 있다.

‘인도에 반하는 죄’ 개념은 20세기 국제법의 가장 위대한 성취 중 하나로 손꼽힌다. 역사의 아이러니는, 가장 참혹한 전쟁범죄를 저지른 나치 독일 ‘덕분에’ 이 개념이 태어났다는 사실이다. 이 역동적인 드라마를 국제법학자이자 논픽션 작가인 필립 샌즈가 <인간의 정의는 어떻게 탄생했는가>라는 책에서 소개한다.

고전적인 국제법은 국가만이 유일한 행위자라고 본다. 국제법은 전쟁, 휴전 등 국가들끼리의 상호관계를 다루는 도구였다. 개인의 권리는 각 국가가 국내법으로 보호할 뿐, 국제법으로 보호하지는 않는다. 전쟁범죄라는 개념도 성립하기 어렵다. 국가가 민간인에게 어떤 잔학행위를 하든 국제법의 적용 대상은 아니었다. 당시는 국가를 넘어서는 국제적 권력을 상상하기 어려웠고, 기본권의 최종 보장자가 국가일 수밖에 없던 시대였다. 국가 주권이 최종적이고 불가침의 권리라는 생각도 자명해 보였다.

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 독일이 저지른 민간인 살해와 노예노동은 역사상 초유의 사태였다. 국제법학자 허쉬 라우터파하트는 ‘인도에 반하는 죄’라는 국제법 혁명을 준비했다. 이것은 “민간인에게 자행된 살인, 말살, 노예화, 추방, 기타 비인도적 행위”를 범죄로 규정한다. 국가 주권으로도 침해할 수 없는 기본권’이라는 아이디어는 혁명적 접근이었다. 전쟁이 막바지에 이른 1945년, 라우터파하트는 전후 처리를 준비하던 미국과 영국 법률가들에게 국제법의 보호 범위를 개인까지 넓히는 구상을 심어주었다. 이 아이디어는 전쟁이 끝난 후 역사적인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서 관철된다. 이후 ‘인도에 반하는 죄’는 국제법 원리로 확립된다. 샌즈는 이렇게 쓴다. “인간의 기본권이 국가법에 우선한다는 새로운 접근방법을 천명했다.” 이 문장이 그리 새로워 보이지 않는다면, 우리가 뉘른베르크 이후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공격적 보편주의자들의 무기가 확인됐다. 일본은 ‘인도에 반하는 죄’를 저질러놓고도 그를 인정하지 않는 ‘보편의 적’이 된다. 일본은 그 특수한 사정을 관철시키겠다고, 이웃 나라 행정부더러 사법부 독립 원칙을 훼손하라고 요구한다. 심지어 그 요구를 집행시킬 무기로 자유무역 원리를 흔들고 있다. 이 관점으로 보면, 일본이야말로 “기본 가치를 공유”하는지 의심스러운 이웃이다.

공격적 보편주의자의 세계에서는 흥미로운 역전이 일어난다. ‘소수의 피해자와 다수의 국익’이 충돌하는 문제를 다루는 방식이 극적으로 뒤집힌다. 오히려 피해자 한 명의 기본권을 지키기 위해 다수가 희생을 나눠 질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8월9일자 한국갤럽 정례조사에서, 우리 정부가 한·일 분쟁에서 대응을 ‘잘하고 있다’는 응답은 54%였다(‘잘못하고 있다’ 35%). 이 ‘잘하고 있다’ 응답자들도, 더 큰 피해가 예상되는 나라를 꼽아달라는 질문에는 한국(38%)과 일본(36%)을 비슷하게 답했다. 그러니까 한국 정부 대응을 지지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우리가 이길 것 같아서’ 지지하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우리가 옳아서’ 지지한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닮은꼴

다시 류영재 판사의 말이다. “2015년 ‘위안부’ 합의 때도 그랬거든요. 아니 피해 당사자가 싫다는데 그걸 왜 국익이라고 강요하지? 국가가 그럴 권리까지 있는 건가? 그 관점이 지금 여론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봐요. 개인의 인권에 대해 물러설 수 없는 선을 넘으라고 하고, 그걸 안 하면 손해를 본다고 하면, 봐야죠 손해. 어쩌겠어요. 그럼으로써 구성원들이 나라에 소속감과 애착을 갖게 되는 게 길게 보면 더 국익이라고 봐요 난.” 이런 의미라면, 공격적 보편주의자들도 애국주의적 열정에 사로잡혀 있다는 평가는 옳다. 다만 이익을 극대화하는 국익이 아니라, 가치를 극대화하는 국익이다. 이들은 애국주의를 극복하지 않았다. 그저 보편가치에 기반해 애국주의를 재구성했다.

 

ⓒAP Photo문재인 대통령이 6월28일 오사카 G20 정상회의에서 아베 신조 총리와 악수한 뒤 이동하고 있다.

이것은 민족주의 서사와 닮은 구석이 없다. 오히려 이것은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년)의 서사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한 이 영화는, 2차 세계대전에서 고립된 라이언 일병 한 명을 구하려고 여덟 명이 적진에 투입되는 이야기다. 라이언 일병의 형제 셋이 모두 2차 대전에서 전사하고 라이언만 남았기 때문이다. 미국식 애국주의는 이런 식으로 작동한다. 아흔다섯 고령의 이춘식이 “나 때문에 대한민국이 손해가 아닌지 모르겠다. 나 하나 때문에 그러는가 싶다”라고 말하는 순간, 이 힘없는 노인은 한국이 보편가치를 지키기 위해 손해를 감수하는 나라인지를 보여주는 리트머스지가 된다. 그리고 공격적 보편주의자들은 그 질문에 예민하게 감응한다. 이들은 아흔다섯 노인 한 명의 권리를 지키자고 ‘전쟁’을 감수하는 나라를 자랑스러워한다.

이 의미심장한 변화를 놓쳤다가 봉변을 당하는 정치가도 등장했다. 상징적인 사건은 서울 중구에서 있었다. 서양호 중구청장(더불어민주당)은 중구 일대에 ‘NO 재팬’ 현수막을 걸겠다고 발표했다. 일본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명동 일대가 중구에 있다. 그는 8월6일 현수막 걸기를 강행하며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경제판 임진왜란이 터져서 대통령조차 최전선에서 싸우는 비상한 때입니다. …한·일 야구전에서 일본 투수의 빈볼에 부상당한 한국 타자 …전쟁 중에는 관군, 의병의 다름을 강조하기보다 우선 전쟁을 이기는데 집중해야 합니다. …몸에 좋은 입바른 말도 전쟁 전에 했어야 했고, 지금은 화살 한발이라도 아껴서 전쟁에 써야 할 때 …중구의 현수기는 대장기를 지키며 국민과 함께할 것입니다.” 임진왜란, 한·일전, 화살 한 발, 대장기 등의 단어는 이 정치가가 전형적인 반일 민족주의 구도로 국면을 읽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남시훈 교수(명지대)는 경제학자다. 그는 중구청이 현수막을 걸 계획이라는 소식을 듣고 청와대 국민청원 페이지에 정부가 중단시켜달라는 청원을 올렸다. 하루 만에 2만여 명이 동의했다. 그는 왜 중구청의 현수막 계획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저는 불매운동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시민입니다. 현수막이 잘못된 이유는 불매운동이 일본과 관계를 끊으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일본 정부가 잘못해서 분노한다는 것을 일본 시민에게 알려주기 위해서인데, 그 현수막은 일본 전체를 반대한다는 인상을 주겠죠.” 민족주의적 총동원은 보편주의를 훼손하므로, 공격적 보편주의자에게는 원칙으로든 전략으로든 선택지가 되기 어렵다. 현재 국면을 타개할 방안으로 한·일 시민사회 연대 전략이 논의되고 있는데, 반일 민족주의 접근법은 총력전 깃발을 내걸기 때문에 일본에 속한 모든 사람을 잠재적 적으로 취급한다. 공격적 보편주의는 보편가치를 고리로 한·일 시민사회 연대를 구성할 공간이 더 넓다.

내친김에 물어봤다. ‘경제학자가 자유무역의 원리에 반하는 불매운동을 지지해도 됩니까?’ “무역분쟁을 멈추는 게 둘 다에게 좋겠죠. 하지만 현대 경제는 글로벌 분업으로 돌아가고 있고, 이 체제의 기반은 국가들이 개별 기업의 자유로운 거래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런데 일본 정부가 이 체제를 뿌리부터 흔들었으니 책임이 워낙 큽니다.” 역시 공격적 보편주의자의 전형적 태도다.

비판이 쏟아지면서 서양호 구청장은 당일에 바로 현수막을 내리고 사과문을 올려야 했다. 현재의 강고한 반일 여론은 반일 민족주의 블록과 공격적 보편주의 블록의 연합으로 구성된다. 서양호 구청장만큼은 아니라 해도, 좌·우파 모두 이 미묘한 차이를 포착하는 데 애를 먹었다. 우파에서는 돌풍을 일으킨 책 <반일 종족주의>가 한 전형을 보여준다.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는 <반일 종족주의> 서문에서 이렇게 썼다. “한국의 민족주의는 서양의 민족주의와 구분됩니다. 한국의 민족주의에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개인이란 범주가 없습니다. 한국의 민족은 그 자체로 하나의 집단이며 권위이며 신분입니다.”

옳은지 그른지를 떠나서, 이 문장은 친미·친일 보수파가 반일 민족주의 블록을 때리는 논리의 전형을 보여준다. 친미·친일이 보편(‘자유롭고 독립적인 개인’)이고 반일 민족주의가 특수(‘집단이며 권위이며 신분’)다. 그렇기에 제3지대에 있는 공격적 보편주의자의 눈에는 완전히 엉뚱한 해석으로 읽힌다. 지금 국면은 일본이 보편가치를 훼손하고 있다고 이들은 본다. 강제노동 금지라는 국제법 원칙, 사법부 독립이라는 민주주의 원칙, 자유무역 보장이라는 시장 원칙을 모두 일본이 흔든다.  

 

ⓒ시사IN 신선영강제노동 피해자 이춘식씨(가운데)가 지난해 10월30일 대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받은 뒤 소감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집권 민주당 블록에서는 반일 연합의 어느 축에 초점을 맞출지를 놓고 조정에 어려움을 겪었다. 민주당이 설치한 일본경제침략대책특별위원회 최재성 위원장은 지소미아(GSOMIA·군사정보보호협정) 파기, 일본 여행 제한, 도쿄 올림픽 보이콧, 반도체 수출 제한 등 여러 카드를 들었다 놨다 하며 연일 뉴스를 탔다. 한·일 총력전 쪽으로 기울어 있다. 이해찬 대표는 7월30일 국회 기자간담회에서 반일 메시지 과잉 흐름에 제동을 걸었다. 이날 이 대표는 “한·일 사이엔 감정이 있어도 헤어질 수 없는 이웃이다” “저는 (지소미아가) 필요하다고 본다” “외교는 외교로, 문화 스포츠는 문화 스포츠로 병행해야 한다” 등으로 확전 자제령을 내렸다.

문재인 대통령의 메시지는 8월2일 국무회의 발언에서 양쪽을 넘나들었다. 반일 민족주의(“가해자인 일본이 적반하장으로 오히려 큰소리치는 상황을 결코 좌시하지 않겠습니다”) 성향과 공격적 보편주의(“‘강제노동 금지’와 ‘3권 분립에 기초한 민주주의’라는 인류 보편적 가치와 국제법의 대원칙을 위반하는 행위입니다”)를 동시에 구사했다. 언론은 반일 민족주의 발언을 더 크게 부각했다. 이날 일본이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배제하는 결정을 내렸고, 대통령 메시지의 강도도 가장 강한 축에 들어간다. 이후로는 반일 민족주의 색채가 점차 빠지면서 공격적 보편주의 쪽으로 이동하는 흐름을 보여준다. 광복절 경축사에서 명시적인 반일 메시지는 모두 빠졌다.

공격적 보편주의자라는 제3지대를 염두에 두면, 2012년과 2018년 대법원 판결의 진정한 의미가 드러난다. 원고 이춘식의 개인청구권은 왜 소멸되지 않았는가? 법 기술적인 쟁점을 제쳐놓고 보면, 핵심 문제는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 제2조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라는 문장을 어떻게 해석할지였다. 즉, 이 문장에도 불구하고 개인청구권이 살아 있다는 논리가 어떻게 성립하는지였다.

2012년 대법원이 내놓은 접근법은 크게 둘이었다. 첫째, 1965년 청구권협정 당시 양국은 한반도 식민지배의 불법성 여부를 합의하지 못했다. 불법성을 전제로 하는 ‘배상청구권’ 문제 역시 합의에 이르렀을 리 없다. 즉, 배상청구권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문제에 해당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헌법은 일본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명시적으로 인정한다. 그래서 피해자 개인에 대한 배상 책임은 청구권협정 이후에도 살아 있다.

둘째, 국가가 개인의 동의 없이 개인청구권을 직접 소멸시킬 수 있다는 발상은 근대법 원리와 충돌한다. 설사 국가가 이런 조약을 맺는 것이 가능하더라도, 개인은 국가와 별개의 법적 주체이다. 조약에 명시적으로 기록되지 않는 한, 함부로 유추하여 개인청구권이 소멸되었다고 해석하면 안 된다. 이것은 뉘른베르크의 국제법 혁명을 연상시키는, ‘주권을 넘어서는 기본권’을 강조하는 해석이다. 이 두 아이디어는 2018년 대법원 판결문에서 각각 다수의견(식민지배 불법성 논리)과 별개의견(개인청구권 소멸 유추해석 불가론)으로 갈라져 정교하게 다듬어진다.

2012년 판결의 주심 김능환 대법관은 “건국하는 심정으로 판결문을 썼다”라고 주위에 말했다고 한다. 이 말은 식민지배 불법성 논리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김 대법관은 그 논리를 보강하는 과정에서, 의도했든 아니든 ‘주권을 넘어서는 기본권’ 원리를 끌어들였다. 그럼으로써 대법원은 건국선언문을 쓰려다가 인권선언을 함께 썼다. <중앙일보> 권석천 논설위원은 7월30일자 칼럼에서 대법원 판결을 두고 이렇게 썼다. “한국 사회는 헌법 10조 앞에 서 있습니다. 대법관 몇몇이 아니라 시대정신이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헌법 제10조는 이렇게 규정한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이렇게 해서 한국 대법원은 급진적인 인권 옹호 판례를 남기게 되었고 또 다른 중대한 문제를 만들어냈다. 국제법적 인권 원리로 한발 다가간 이 판결은, 그와 동시에 현실주의적 국제질서 원리와의 마찰을 한 칸 끌어올렸다.

1965년 청구권협정의 수명

국제정치 연구자인 이근 교수(서울대 국제대학원)는 이렇게 진단했다. “2차 대전 이후 샌프란시스코 체제의 핵심 논리는 대략 이렇습니다. 식민지 이전 독립국가였던 나라가 독립전쟁을 통해 승전국으로 인정받으면 배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승전국으로 간주되지 않아서 배상을 받을 권리가 인정되지 않습니다. 우리 대법원 판결은 샌프란시스코 체제와 충돌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전후 국제질서를 만든 나라들이 ‘식민지배 불법성-배상 책임 인정’으로 이어지는 논리를 수용하기가 쉽지 않아요.” 일본이 내놓는 “한국이 전후 국제질서를 흔들고 있다”라는 주장은 따져보면 이런 논리 위에 서 있다. 일본이 자신들이 보편가치의 편이라고 주장할 때는, 이 전후 국제질서의 원리를 들이밀고 있는 것이다. 반면 한국의 무기는 ‘주권을 넘어서는 기본권’이라는 국제법 원리인데, 현실 국제질서에서는 발언권 차이가 좀 있다.

김기정 교수(연세대 정치외교학)는 대선 때 문재인 후보의 개인교사로 통했던 연구자다. 김 교수는 큰 틀에서 1965년 청구권협정의 수명이 다하고 있는 것 같다는 의견이었다. “1965년 협정의 두 축은 ‘반공’과 ‘식민지 청산’이었습니다. 반공은 미국의 요구였고, 식민지 청산은 샌프란시스코 협정의 후속조치였지요.”

이 해석틀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에 입체감을 부여해준다. “식민지 청산은 식민지배 불법성 문제 때문에 처음부터 불안정했습니다. 피해자의 목소리가 제대로 담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국제법이 개인의 권리를 적극 보장하는 혁신을 이뤄냈기 때문에, 1965년 당시에는 생각하기 힘들었던 해석적 변화가 일어납니다. 피해자의 목소리가 이제 들리게 된 것이지요. 대법원이 국제법 혁신을 판결로 끌어들였고, 피해자의 권리가 이 약한 고리를 크게 흔들어버린 사건이라고 나는 봅니다. 다른 한 축인 ‘반공’은 냉전이 끝나면서 이미 흔들렸기 때문에, 1965년 협정의 두 축이 모두 불안정한 상황입니다.”

한국은 강대국이 아니다. 한국 대법원이 전후 국제질서와 마찰이 있는 판결을 내놓는다고 해서, 한국이 국제질서를 재조정할 힘을 갖고 있지는 않다. 2018년 대법원 판결이 우리의 해석에 맞는 국제질서를 가져올 가능성은 낮다. 정영환 일본 메이지 대학 교수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과거 식민지배를 받은 나라들은 ‘인도에 반하는 범죄’를 적용해 식민지배 형사처벌도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 점이 국제사회에서 대립전이 되고 있는데, 한국이 이 차원으로 들어가 논의할 수 있는지 갈림길에 있다”라고 진단했다. 그 반대편에는 식민지배의 가해자였던 열강들이 있는데, 그들이 지금도 국제질서의 기획자다.

강제노동 피해자 이춘식의 끈질긴 법정투쟁은 훌륭한 기본권 판례를 남겼다. 보편주의의 언어로 한·일 관계를 다룰 줄 아는 새로운 사람들의 출현도 알렸다. 이 싸움은 더 멀리 뻗어가 있다. 이 투쟁은,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세상이 어떤 균열 위에 서 있는지, 평소에는 매끈하게 작동한다고 생각하던 체제가 어떤 맨얼굴을 하고 있는지 드러내는 더 특별한 기회를 만들어냈다. 우리 삶을 결정하는 근본 조건은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질서의 속살이 드러나고, 인권 가치와 국제질서가 충돌하는 딜레마가 떠오르고, 역사와 현실이 강하게 이어지는, 보기 드문 순간이다. 1924년생 이춘식이 이 드문 순간을 열었다. 그래서 이것은 한 사람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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