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방에 끝내라.’ 화장실 벽에 붙은 작은 전단지에 눈이 갔다. 노조에서 만든 전단인 줄 알고 천천히 읽다 보니 회사가 만든 것이었다. 이른바 ‘주먹밥 이론’이라며 절차와 과정을 과감하게 건너뛰는 혁신을 강조하고 있었다. 그 옆에 노조에서 붙인 ‘총파업’이란 스티커와 묘하게 어울렸다. 회사가 강조하는 어떤 메시지에 가끔 실소를 금할 수 없는데 이 경우도 그랬다.

쌍용차 해고 사태 당시 매우 불쾌했던 회사의 구호 가운데 하나는 ‘가장 모범적이고 가장 존경받는 회사’였다. 얼마나 약이 오르던지 몇 번이고 지우거나 찢어버리고 싶을 지경이었다. 메시지가 지향하는 바와 메신저의 부조화야말로 얼마나 우스꽝스럽고 촌스러운가.

ⓒ윤현지 그림

 

복직 후 동료들과 함께 한 달에 한 번씩 어려움을 겪는 사업장을 방문하기로 다짐했다. 일하다 보면 한 달에 한 번 빠지는 사람 없이 모이기가 쉽지 않다. 시간을 내고 십시일반 돈을 모아 함께 찾아가고 있다. 지난 7월에는 충북 음성에 있는 일진다이아몬드 지회를 찾았다. 전면파업 일주일이 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일진다이아몬드 지회 소식을 알게 된 건 SNS에서 ‘몸 벽보’를 보고 난 뒤였다. 사정이 궁금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인지 만나보고도 싶었다.

충북 음성에 있는 대전충남지부 일진다이아몬드 지회는 2018년 12월 노조를 만든 신생 노동조합이다. 조합원 규모가 251명으로 아주 작은 곳은 아니다. 일진다이아몬드의 전신은 1988년 4월 설립된 일진다이아몬드공업사다. 1990년 5월 충북 음성공장을 준공하고 공업용 다이아몬드를 양산했다. 법인 전환과 인수합병 등으로 30년 가까이 공업용 다이아몬드 업계에서 발전을 거듭해왔다. 2012년 2월에는 경기도 안산공장의 시설을 준공했으며, 같은 해 11월 일진복합소재를 인수하고 복합재료 고압탱크 사업에도 진출했다. 특히 2017년에는 자회사인 일진복합소재를 통해 수소전기차 연료탱크 사업에도 나섰다. 2018년 일진다이아몬드는 매출액이 1300억원, 영업이익이 150억원이다.

2014년까지만 해도 일진은 지역에서 선망의 대상인 회사였다. 2015년 대표이사가 바뀌며 사달이 났다. 지난 5년 동안 임금 인상은 단 한 푼도 없었다. 기본급이 낮은 대신 정기상여금으로 부족한 임금을 맞춰왔는데, 그마저도 고정수당으로 변경했다. 회사는 최저임금 인상을 이유로 들었다. 최저임금에 겨우 맞춘 월급은 1년차 노동자나 10년차 노동자나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파업까지 나선 건 임금 때문만은 아니었다.

“현장직과 말도 섞지 말라”

‘현장직과 말도 섞지 말라.’ 신임 대표이사는 공공연하게 노조 혐오를 부추겼다. 현장직과 말도 섞지 말라는 주문을 팀장들에게 하고, 청소와 제설 작업 같은 일은 현장직에게만 시켰다. 공업용 다이아몬드를 만드는 회사이다 보니 현장에서 확인된 관리 대상 유해물질만 17종이나 된다고 한다. 환기 시설과 국소 배기장치는 전무하고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항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사업장의 작업환경 개선도 시급하다.

일진다이몬드 지회가 전면 파업 48일째를 맞은 8월12일 회사는 전격적으로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노조는 서울 본사와 음성공장을 지키겠다고 밝혔다. 물리적 충돌을 우려하는 이들이 많다. 지회 조합원들의 요구는 지극히 소박하다. 합법적 노조를 인정하고 대등한 노사교섭을 통해 사태를 해결하자는 것이다. 무리하기는커녕 당연하기만 한 요구가 왜 이토록 받아들여지기 어려운가.

기자명 이창근(쌍용자동차 노동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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