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 Photo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왼쪽)와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

 

독일은 일본과 달리 과거사 청산 작업에서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평가받지만, 배상 문제는 매듭짓지 못한 상태다.

지난 6월, 그리스 정부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끼친 피해 배상 협상을 독일 정부에 요구했다. 그리스 특별위원회는 나치 독일의 침략으로 인한 피해 규모가 최대 2900억 유로(약 396조원)에 이른다고 계산했다. 독일군 점령 당시 그리스에서는 저항군 약 8만명이 목숨을 잃고, 유대계 그리스인 6만명이 수용소에서 학살당했다. 민간인 학살이 자행된 지역도 있다. 경제적 수탈 때문에 발생한 기근으로 최대 45만명이 죽었다는 분석도 있다. 특별위원회에 따르면 독일은 당시 그리스 중앙은행에서 8억8600만 제국 마르크화를 대출받아 1억6600만 제국 마르크화만 갚았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는 독일에 대한 배상 요구를 “역사적이고 도덕적인 의무”라고 표현했다.

그리스뿐만이 아니다. 폴란드에서도 추가 배상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있다. 폴란드 정부가 공식적으로 제기하지는 않았지만 정치권을 중심으로 이러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집권 여당인 법과정의당(PIS) 소속 국회의원 아르카디우스 물라르치크는 의회에서 전쟁 피해 금액을 산출하고 이를 입증할 초안을 준비하는 위원회를 이끌고 있다. 나치 시절 목숨을 잃은 폴란드인은 약 600만명으로 추정된다.

독일 정부는 그리스에 대한 공식적 배상이 끝났다는 입장이다. 1960년 독일은 1억1500만 마르크를 배상금으로 그리스에 지불했다. 현재 가치로 따지면 약 6700만 유로(약 914억원)이다. 당시 그리스 정부는 추가 배상을 요구할 권리가 남아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독일 정부는 1990년 맺은 ‘독일 관련 최종 해결에 관한 조약’이 전쟁 책임을 마무리하는 평화조약이었다고 주장한다.

나치 독일 점령지 정책에 대한 연구 권위자인 카를하인츠 로트는, 그리스의 배상 요구는 원칙상 정당하다는 의견을 언론에 여러 차례 밝혔다. 로트는 이전에 이루어진 보상은 일부 생존자로 한정됐고, 배상금도 현재 가치로 1인당 300유로에 미치지 못하는 적은 액수였다고 지적한다. 그는 독일이 그동안 외교적 이익에 따라 전쟁 배상을 불공정하게 집행했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미국 시민권을 가진 나치 수용소 생존자와 후손들은 1990년대와 2000년대 협상 평균 10만 달러 이상의 보상금을 받았다.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로 가나

로트는 그리스가 당한 피해 규모가 현재 가치로 1900억 유로(약 259조원)에 이를 것으로 계산했다. 그렇다고 이를 모두 배상해야 한다는 주장은 아니다. 로트는 점령에 의해 심각한 피해를 본 국가가 여럿 있기 때문에 배상 규모를 두고 현실적인 협상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독일 연방의회의 학술 업무 분과는 지난 6월 배상 관련 보고서를 냈다. ‘그리스와 폴란드의 독일에 대한 배상 요구’ 보고서는 좌파당의 요구로 작성되었는데, 독일 정부의 주장을 반박하는 내용이 담겼다. 보고서에 따르면 독일 정부와 그리스 사이의 전쟁 배상 문제는 아직 명확하게 합의되지 않았다. 정부가 근거로 드는 ‘독일 관련 최종 해결에 관한 조약’은 배상 문제를 다루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동·서독과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 사이에서 이루어진 조약일 뿐이라는 것이다. 보고서에는 독일이 이 문제를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ICJ)에 가져가는 방안이 제시되었다. 이 보고서에서는 폴란드가 1953년과 1970년 두 차례 배상 협상을 거치며 청구권을 포기했기 때문에 더 이상 배상을 요구할 권리가 없다고 지적했다. 폴란드는 두 협상은 소련의 압력에 못 이겨 이루어졌기 때문에 효력이 없다고 주장한다.

기자명 프랑크푸르트∙김인건 통신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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