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조남진김정희씨가 작업복을 갈아입기 위해 현장소장실로 들어가고 있다. 김씨의 일터에는 여성 탈의실이 없다.

 

8월13일 오전 6시, 현장 식당(함바집)에 김정희씨가 보이지 않자 한 남성이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농담’을 했다. “꽃단장하고 있는 거 아냐?” 좌우에서 웃음이 터졌다. 그 시간 김씨는 비어 있는 현장소장 사무실에 들어가 재빨리 옷을 갈아입었다. 김씨가 일하는 김포 한강신도시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에는 여성 탈의실이 따로 없었다.

여성 목수인 김씨는 2000년부터 건설 현장에서 일했다. 외환위기 이후 남편의 사업이 어려워지자 건설 현장 일을 시작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8년 6월 기준으로 김씨처럼 건설업에서 일하는 여성 비율은 11%다. 건설 현장은 노동강도가 높아서 남성 사업장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 10명 중 한 명은 여성이다. 이 수치는 매년 꾸준히 늘고 있다.

작업 시작 전 김씨가 속한 팀을 이끌고 있는 임 아무개 팀장은 눈 밑까지 마스크로 가린 김씨에게 “얼굴이 타야 진정한 목수”라며 핀잔을 주었다. 김씨는 익숙한 듯 말없이 웃었다. “얼굴이 타는 건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뙤약볕에서 일하면 살갗이 따갑고 쓰라리다. 남자들도 많이 쓴다.”

김씨는 목수가 되기 전 14년 동안 ‘먹 아주머니’로 일했다. 먹매김은 도면을 보고 시공할 위치를 표시하는 일이다. 보통 아파트 6개 동을 두 명이 작업하지만, 혼자 7개 동을 하면 1만원을 더 주기도 했다. 여성 노동자 하루 일당이 4만~5만원이던 때였다. 그렇게 한 달을 휴일 없이 꽉 채워 일해야 3남매를 키울 수 있었다.


2014년 교통사고를 당한 뒤 일을 쉬던 김씨에게 함께 일했던 동료가 형틀을 배워보라고 권했다. 형틀은 콘크리트를 부을 곳에 세우는 나무 거푸집이다. 형틀을 세우고 해체하는 목수는 먹매김보다 더 많은 일당을 받는다. 보통 15~20명이 한 팀이 되어 일한다. 경력에 따라 일당이 정해져 있는 만큼 형틀팀 내 위계질서가 강하다.

면끼(콘크리트 모서리를 둥글게 만들기 위해 붙이는 틀) 작업은 김씨가 먹매김을 할 때 늘 하던 일이었다. 김정희씨는 눈대중으로도 정확하게 면끼 길이를 맞춰 붙였다. 모서리 처리까지 빈틈이 없었다. 김씨가 작업한 곳과 다른 사람이 작업한 곳은 한눈에 봐도 차이가 났다. 김씨가 누구보다 잘하는 일이지만, 팀에서 김씨에게 일을 맡긴 건 최근이다. 처음 형틀팀에 들어온 남성도 한동안 잡일을 하지만, 여성에게는 그 기간이 유난히 길고 험하다. 형틀 목수 공정 중 하나인 먹매김을 했던 김씨의 14년 경력 역시 인정되지 않았다.

김정희씨는 전국건설노동조합(건설노조) 경기중서부지부에서 운영하는 안산건설기능학교 출신이다. 2009년 문을 연 학교는 2015년에야 처음으로 여성 노동자를 받았다. 이후 여성을 받아주는 유일한 학교라는 입소문이 나면서 이곳을 찾는 여성이 꾸준히 늘었다. 김씨의 동기 25명 중 7명이 여성이었다. “상대적으로 여성은 남성보다 수업을 더 열심히 듣는다. 건설 현장이 남성 위주라는 걸 알기 때문에 훨씬 더 많은 고민 끝에 학교를 찾아온다. 성실함을 넘어 절박함에 가깝다. 현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여성 노동자의 ‘절박한 성실함’은 남성 노동자에 비해 떨어지는 체력을 보완한다.

ⓒ시사IN 조남진김정희씨(위)는 동료들이 자신을 ‘아줌마’나 ‘여사’가 아니라 목수라 불러주기를 바란다.

 

‘건설 현장에 여성 화장실 없다’ 12.1%

점심시간은 1시간이었다. 노동자들은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기 위해 빨리 밥을 먹었다. 새벽 4시30분에 일어나 출근하는 김정희씨도 보통 그늘진 곳을 찾아 눕는다. 휴게실에는 남성 노동자뿐이라 편히 누워 쉬기 어렵다. 쉬는 동안 김씨는 남편과 통화했다. 김씨는 집이 있는 전북 고창군에서 상경해 혼자 산다. 지방에는 여성 목수를 쓰는 현장이 없기 때문이다.

임 아무개 팀장은 “남성은 ‘여기서 일하고 싶다’고 하면 쉽게 들어올 수 있지만, 여성은 회사 측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여성 목수가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 회사도 있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5월 경기도 과천시의 한 건설 현장에서는 사측에서 여성 노동자가 교육받는 것을 거부해 논란이 된 적도 있다.

김씨는 팀원들에게 상경해 혼자 산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함께 일하는 ‘동료’가 아닌 ‘여성’으로 보는 시선이 언제나 가장 큰 부담이다. “여자는 혼자 산다는 말을 하면 안 된다. 여자는 남편이 없어도 있다고 말해야 한다.” 과거에는 남편이 있다고 해도 ‘마누라를 공사판에 내보내는 능력 없는 남자랑 살지 말고 나랑 살자’며 추근거리는 일도 일상이었다.

오후에는 옥상에 단열재를 까는 작업이 이어졌다. 기온은 32℃, 체감온도는 35℃를 넘어서고 있었다. 아직 콘크리트를 붓지 않아서 바닥에 철판이 깔려 있는 옥상은 땡볕에 달궈져 있었다. 마지막 계단을 밟고 옥상으로 올라서는 사람마다 “아이고!” 탄식을 내뱉었다. 대형 밥솥 크기의 보냉병에 담긴 얼음물은 금세 동이 났다. 30㎏에 달하는 냉장고 크기의 스티로폼 단열재를 나르던 김정희씨도 물을 자주 마셨다.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 김씨는 사람이 없는 아래층에 내려가 급하게 용무를 해결하고 왔다. 한번 화장실에 다녀오려면 적어도 20~30분이 걸리기 때문이다.

건설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건설근로자법)에 따르면, 총 공사금액 1억원 이상인 건설 현장에 사업주는 ‘화장실, 식당, 탈의실 등의 시설을 설치’해야 한다(제7조의 2). ‘화장실은 현장으로부터 300m 이내, 남녀 근로자가 함께 근무할 경우 구분하여 설치해야 한다(고용노동부령 시행규칙).’ 탈의실도 남녀 구분해 설치하도록 법에는 규정되어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는다. 건설근로자공제회가 지난해 발표한 ‘2018 건설근로자 종합실태조사’에 따르면 현장에 화장실이 없다고 응답한 여성(12.1%)의 비율은 남성(0.9%)보다 12배 이상 많았다. 또 화장실이 있더라도 접근성이 불편하다고 대답한 여성(41.4%)이 남성(29.2%)보다 10%포인트 이상 많았다.

김씨가 일하는 건설 현장에도 여자 화장실은 두 곳뿐이고, 그중 한 곳은 원청 사무실에 있어서 이용해본 적이 없다. 간이 화장실이 있지만 오래전부터 문이 고장 나 사실상 여성이 사용할 수 없는 상태다.

김씨의 가장 큰 바람은 여자 화장실이 더 많이 설치되는 게 아니라 동료들이 자신을 ‘목수’라고 불러주는 것이다. 김씨는 “옛날에 비해 직접적인 성희롱이나 성추행은 많이 사라졌지만, 여성 노동자에게 기술을 가르쳐주지 않으려는 경향은 여전히 남아 있다”라고 말했다. 팀에서 때때로 ‘아줌마’나 ‘여사’로 불리는 김씨는 동료를 부를 때 꿋꿋이 ‘동지’라고 한다. 노조에서 동료를 부를 때 쓰는 호칭이기 전에, 무엇보다 ‘동등한 인격체’라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기자명 김포·나경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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