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돌’이란 딜레마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 이상원 기자
  • 호수 623
  • 승인 2019.08.26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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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는 리얼돌 수입 금지가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실현하는 데 어긋난다고 봤다. 한 연구팀은 리얼돌 구매자들이 해소하려는 것은 타인을 지배하려는 욕망이라고 분석했다.
ⓒ시사IN 조남진8월6일 성인용품 업체 이상진 대표가 리얼돌을 조립하고 있다.

 

‘리얼돌(real doll)’이라는 명칭은 모순적이다. 가짜일 수밖에 없는 ‘사람의 모형’을 ‘진짜’라고 부른다. 겉보기에 사람과 몹시 흡사하다는 의미이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인간의 피부, 체모 등을 질감까지 재현한 인형이다. 사람 체온과 비슷한 것도 있다. 무엇보다 리얼돌의 가장 큰 특징은 성기가 달려 있다는 점이다. 머리 없는 리얼돌은 있지만 성기 없는 인형은 리얼돌이 아니다. 주된 목적이 성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리얼돌은 섹스돌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음지의 취향에 머무르던 리얼돌은 한국 사회에 여러 난제를 던진다.

리얼돌을 막는 법 조항은 없다. 형법은 ‘음란한 문서, 도화, 필름 기타 물건’을 공연히 전시하거나 반포, 판매, 임대하는 행위를 금지하는데, 리얼돌이 여기에 해당하는지는 판례가 없다. 다만 수입은 불가능했다. 세관이 관세법을 근거로 막아왔기 때문이다. 관세법 제234조에 따르면 ‘풍속을 해치는 서적·간행물·도화, 영화·음반·비디오물·조각물 또는 그에 준하는 물품’은 수출입이 금지된다. 성인용품 업체인 부르르닷컴의 이상진 대표는 이 제약이 치명적이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제작된 리얼돌을 파는 것은 금지가 아니었지만 한국 업체는 정교한 리얼돌을 만들 기술이 없다.” ‘쓸 만한’ 리얼돌을 사는 방법은 불법적 루트뿐이었다. 이 대표는 “일부 보따리상이 미국이나 일본에서 밀수한 리얼돌을 암암리에 파는 업체들이 있었다. 위험부담 때문에 중국산 싸구려 제품도 500만~600만원 이상에 거래된 걸로 안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조남진8월6일 성인용품 업체 이상진 대표가 리얼돌을 조립하고 있다.

이상진 대표는 2017년 일본 업체에서 리얼돌을 수입했는데, 세관은 관세법에 따라 수입통관 보류 처분을 내렸다. 이 대표는 처분 취소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해 1심에서 인천지방법원은 이를 기각한 반면, 올해 서울고등법원은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고 지난 6월13일 대법원에서 이 판결을 확정했다.

지난 7월 청와대 홈페이지에 ‘리얼돌 수입 및 판매를 금지해주세요’라는 국민청원이 올라왔다. “리얼돌은 다른 성인기구와 달리 머리부터 발끝까지 여성의 신체적 특징을 그대로 떠와 만든 마네킹과 비슷한 성인기구다. 심지어 원하는 얼굴로 커스텀 제작도 할 수 있다고 한다. (…) 본인도 모르게 본인의 얼굴이 리얼돌이 된다면 정신적 충격은 누가 책임져주는가? (…) 움직임 없는 리얼돌에 만족하지 못한 사람들은 살아 있는 여성에게 성범죄를 행할 가능성이 있다.” 8월7일까지 진행된 서명에 26만3792명이 참여해, 청와대가 답변을 해야 하는 기준인 20만명을 넘겼다. ‘리얼돌 사건’의 전말이다.

항소심(2심) 법원과 대법원은 왜 1심을 뒤집고 리얼돌 판매에 문제가 없다고 봤을까. 먼저 1심 논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관세법상 ‘풍속을 해치는’ 의미는 ‘음란함’을 뜻한다. 음란한 것은, 단순히 저속하다는 느낌을 주는 정도를 넘어 사람의 존엄성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왜곡했다고 평가할 정도로 사람의 특정 성적 부위 등을 적나라하게 표현·묘사하는 것이다. 이 사건 물품은 여성의 가슴, 성기, 항문의 모습이 사람 피부와 비슷하다. (…) 이 남성용 자위기구는 사람의 존엄성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왜곡할 정도로 적나라하기에 ‘풍속을 해치는 물건’이 맞다.” 존엄성을 해칠 정도로 사람을 몹시 닮은 성기구이기에 수입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반면 2심 재판부는 이 물건이 ‘풍속을 해치는’ 정도로 사람과 닮지 않았다고 본다. “성기나 항문, 유두가 실제 인체와 상당히 유사하다고 보기 어려우며 음모·혈관·근육 등 인체의 세세한 특징이 표현되어 있지 않다”라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다음 대목이다. 만약 유사하다고 하더라도, 재판부는 어떤 물건의 인체 묘사가 “사실적이고 적나라하면 풍속을 해하는 것”인지 의문을 제기했다. 외형이 기준이라면 “의학 수업을 위한 인형, ‘인체의 신비’를 주제로 한 박물관 전시 인형” 등도 문제가 된다. 성기구라는 용도를 배제한 채 인간과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음란한 물건은 아니라는 것이다.

성기구라는 목적을 인정한다면? 오히려 그렇게 본다면 더욱 제재할 수 없다는 게 2심 재판부의 판단이다. 2013년 헌재 결정의 보충의견을 근거로 인용했다. “성기구는 매우 사적인 공간에서 이용되는데, 이러한 사적이고 은밀한 영역에 대한 국가의 개입은 최소화되어야 한다. (…) 적어도 공중에게 성적 혐오감을 줄 만한 성기구가 공공연하게 전시·판매됨으로써 제재할 필요가 있는 경우 등이 아니라면 성기구를 음란한 물건으로 취급하여 수입 자체를 금지하는 일은 매우 신중하여야 한다.”

“성기구라면, 더더욱 규제할 수 없다”

재판부가 보기에 ‘사람과 흡사한 성기구’라는 리얼돌의 정체성은 딜레마다. 사람과 비슷한 외형이더라도 성기구로 쓰이지 않는다면 당연히 ‘음란’한 물건이 아니다. 성기구라는 목적을 인정한다면 이는 ‘사적이고 은밀한’ 영역에 속하므로 국가가 함부로 개입해선 안 된다.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은 이 인형이 사적 영역을 벗어나 공중에게 성적 혐오감을 주도록 쓰일 때, 즉 ‘공연성’이 충족되는 경우뿐이다.

재판부는 리얼돌이 “사회의 성도덕 관념과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서 원칙적으로 규제할 필요성이 인정된다 하더라도 (…) 성적 표현물인 음란물과 동일하게” 취급해선 안 된다고 봤다. 세관 조치가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실현하는 길”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종교색이 짙은 아프리카와 서남아시아 등 일부 국가들만 리얼돌 수입을 규제한다는 사실도 판결의 한 근거였다. 다만 영국과 캐나다·노르웨이 등은 아동 형상 리얼돌의 유통·구매를 금지한다. 법원은 청와대 국민청원에서 언급된 ‘커스텀 리얼돌’을 따로 다루지 않았다(이상진 대표에 따르면, 지금 기술로는 실존 인물의 얼굴을 완전히 본뜰 정도의 커스텀 리얼돌은 제작하기 어렵고 비슷하게 만든다 해도 가격이 천문학적으로 뛴다).

재판부 논리와 현행 법체계를 종합해보면 향후 리얼돌의 커스텀 제작이 가능해진다고 하더라도 규제할 길은 마땅치 않다. 커스텀 리얼돌이나 그 촬영물이 ‘공연히’ 타인에게 노출된다면 명예훼손이 성립될 가능성이 있다. 민사상 초상권 역시 인정될 여지가 있다. 하지만 개인이 ‘사적이고 은밀’하게 보유한다면 현실적으로 적발해내기 어렵다. 행정상 어려움뿐만 아니라 이 행위가 특정인의 인격권을 침해하는지 자체도 논쟁거리다. 예를 들면 반정부 인사가 대통령의 사진에 불을 지르거나 조각가가 모델 조각의 목을 자르는 일이 일어나더라도, 타인이 인지하지 못한다면 법은 처벌하지 않는다.

여성계에서는 주로 성풍속의 관점에서 문제를 제기한다. 성기구의 여성화가 곧 여성의 성기구화로 번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온라인 일각에서는 리얼돌을 ‘강간 인형’이라고도 부른다. 이 명칭에는 ‘리얼돌을 사용하는 게 실제 강간의 예행연습’이라는 시각도 담겨 있다. 이들은 커스텀 리얼돌뿐만 아니라 사람을 모사한 리얼돌은 전부 판매를 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리얼돌을 규제하지 않는 해외에서도 비슷한 비판이 나온다. 런던 피학여성센터(London Abused Women’s Center)의 메이건 워커 대표는 지난해 ‘페미니스트 커런트’ 기고에서 “섹스돌의 무엇도 무해하지 않다”라고 썼다. 즉, 유해하다는 것이다. 이 단체가 있는 캐나다 토론토에서는 ‘리얼돌 매춘업소’가 문을 열었다. 돈을 내면 일정 시간 동안 비싼 리얼돌을 대여해주는 형식으로 운영된다. 워커 대표는 이렇게 적었다. “섹스돌은 포르노 문화의 반영이며,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남성이 언제, 어떻게든 성행위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남성 지배 사회의 한 징후이다. 남자가 강간하고, 목을 조르거나 때리는 것은 인형 하나가 아니라 그가 필적할 수 없는 모든 여자다.”

수백만원 이상을 들여 리얼돌을 사는 사람은 누구일까. 이들이 리얼돌에게 끌리는 이유는 여성에게 성적 폭력을 행사하는 기분을 느끼기 위해서일까. 2017년 데지레 시암브론 교수팀은 논문 <젠더를 가진 인조 애인:리얼돌과 친밀함의 형성>에서 리얼돌 구매자들이 판매업체에 남긴 후기 68건을 분석했다. 논문은 구매자들이 이 인형을 성적 목적만으로 쓰지 않는다는 데에 주목했다. 성행위는 리얼돌에 인격을 부여하고,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여러 작업의 일환일 뿐이었다. 구매자들은 이런 글을 남겼다. “리얼돌은 섹시하기만 한 게 아니라 달콤하고 사랑스럽고 매혹적이다! 그냥 섹스돌이 아니고 예술작품 이상이다. 이건 ‘영혼’이 있다!” “그녀는 대단한 동반자다! 보살피는 기쁨과 정서적인 지지라니!” 논문에 따르면 구매자들은 리얼돌의 성적인 면을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68명 가운데 단 2명만이 성적 쾌락에 대해 적었다. “성행위보다 두드러지는 것은 애착과 로맨스였다. (…) 리얼돌 웹사이트의 에로틱한 특성을 감안하면 다소 놀라웠다.”

시암브론 교수팀이 수집한 증언에서 인형에 대한 폭력과 착취는 드러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바와 달리 구매자들에게 리얼돌은 ‘인형이라서 학대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 ‘사람처럼 생겨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존재’에 가까웠다. 인형으로 연습을 하면서 실제 범죄를 준비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는 없었다. 타인과 관계를 맺기 어려워 인형으로 대체한 사람들이었다. 시암브론 교수팀은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아스퍼거 증후군 가능성을 조심스레 언급했다.

ⓒ인천본부세관 제공2017년 5월 인천본부세관이 적발해 압수한 리얼돌과 밀수 유통도.

 

리얼돌에게 인격을 부여한다는 것

논문이 이들의 행태에 대해 제기하는 문제는 폭력성이 아니라 ‘통제 욕구’였다. “이 남자들은 그녀(리얼돌)의 옷을 고르고, 화장을 하고, 그녀가 언제 피곤한지, 성적으로 흥분했는지, 무엇을 생각하는지 결정한다. 그들이 그녀의 목소리다. (…) 애정은 때때로 지배의 부드러운 면일 수 있다.” 이 관점에서 보면, 구매자들이 리얼돌에게 인격을 부여하는 것이야말로 문제를 드러낸다. 그들이 사람 형상의 도구로 해소하려는 것은 폭력적·가학적 성욕이 아니라 타인을 지배하려는 욕망이다.

1886년 오귀스트 드 빌리에 드릴라당이 쓴 소설 <미래의 이브>는 ‘여자 같은 인형’이라는 아이디어의 뿌리를 보여준다. 주인공은 ‘알리시아’라는 여성의 외모에 빠지지만 그녀의 내면은 혐오한다. 그가 보기에 알리시아는 정조를 경시하고 수치심이 부족하며 표리가 다른 여자다. “남의 말을 잘 경청하고, 조신하고, 신앙심이 깊고, 약간은 아둔하고 소박하면서도 놀라운 본능으로 말의 진의를 파악하는”, 지배하기 편한 여성이 그의 이상형이다. “누군가 그녀의 육체에서 영혼을 제거”해서 “아무런 사고도 할 수 없게” 되는 게 주인공의 꿈이다. 과학자 ‘에디슨’은 알리시아와 똑같이 생기고 지성을 갖췄지만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안드레이드’를 만들어준다. 의식을 가진 커스텀 리얼돌인 셈이다. 처음에 거부감을 느끼던 주인공은 결국 안드레이드가 “이상화된 그녀”임을 인정한다. “당신과 그녀를 비교해보았더니, 확실히 살아 있는 여자야말로 모형물이라는 사실을 방금 깨달았습니다!” 모순적으로 보이는 ‘리얼돌’의 뜻풀이와 일맥상통한다.

이 소설은 리얼돌 기술이 나아가게 될 방향을 암시하기도 한다. 안드레이드는 실재하는 인간의 완벽한 복제품이 아니다. 개발자는 ‘외형은 사람과 같지만 더 지적이되 순종적인 어떤 것’을 목표로 이 물건을 만든다. 구매자도 실제 사람보다 이쪽이 ‘진짜’에 가깝다고 여긴다. 이들이 관계 맺길 원하는 이상적 인간상은 아름답고 머리 좋은 노예에 가깝다. 리얼돌의 최종 목표는 ‘더 사람 같은 강간 인형’의 차원을 넘어서는, ‘사람보다 더 사람 같은 인형’이다.

리얼돌이 사람이 아니라 어떤 ‘이데아’를 추구한다면, 인간 역시 인형과 마찬가지로 불완전한 모사물에 가까워진다. 지적이고 실수가 없으며 거절하지 않는 리얼돌에 비해 사람은 더 존엄한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까? 라텍스 인형과 인간 여성을 분간하지 못하는 일군의 환자·범죄자들도 분명 위협적이지만, 리얼돌이 제기하는 이런 의문은 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올지도 모른다. 영국 인공지능 연구자인 데이비드 레비는 2007년 <로봇과 나누는 사랑과 섹스>에서 “남성이든 여성이든 2050년쯤에는 로봇과 성행위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결혼도 흔히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구글 엔지니어링 이사로 <특이점이 온다>로 잘 알려진 레이 커즈와일은 그 시점을 2029년으로 예상했다. 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이 ‘물건’은 어느 날 문득 인간 사회에 외통수를 둘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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