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사고가 잇따를 수밖에 없던 ‘추측항법’
비교할 대상이 아무것도 없는 망망대해 한가운데라면, 이야기는 또 달라진다. 나침반이 항해에 이용되기 시작한 이래, 항해자들은 목표 지점이 출발점으로부터 어느 방향에 있는지 알게 되었다. 그 방향으로 나침반의 바늘을 설정하고 출항한다 해도, 도착은 또 다른 문제였다. 항해 도중 마주치는 해류와 바람이 배를 끊임없이 오른쪽으로 혹은 왼쪽으로 밀어냈기 때문이다. 대양을 건넌 배는 일단 도착한 지점에서 목적지가 어느 방향인지를 알아내 해안선을 더듬어 가야 했다. 이런 항해 방법을 ‘추측항법’이라고 부른다. 당연히 사건·사고가 잇따를 수밖에 없었다. 한번 발견한 섬에 다시 가는 것은 하늘의 뜻에 맡겨야 할 판이었고, 이미 이름까지 붙여놓은 암초가 바로 앞에 있다는 것을 몰라 수많은 뱃사람이 목숨을 잃기 일쑤였다.
14세기 이후, 유럽은 본격적인 ‘대항해 시대’에 돌입한다. 완전하지 않은 위치정보를 가지고도 항해자들은 용감하게 대양을 향해 나아갔고, 수많은 이국의 섬에 자국의 깃발을 꽂았다. 이제는 위치정보 파악 기술이 다른 의미에서 중요하게 되었다. 새롭게 ‘발견되는’ 땅이 어느 나라의 영역에 속하는지를 결정하지 못하면 그로 인해 전쟁이 발발할 지경이 된 것이다. 좀 더 확실한 위치정보 파악 기술이 시급히 필요했다.
지구상에서의 정확한 위치는 두 가지 숫자로 나타난다. 바로 위도와 경도다. 지구본에 그어진 가로줄이 위도, 세로줄이 경도를 나타낸다. 물론 지구 위에 진짜로 그런 선이 그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수치화를 위해 가상으로 그은 선이다. 상대적으로 위도는 경도에 비해 파악이 용이하다. 북반구의 경우엔 밤에 뜨는 북극성의 각도를 재어봐도 되고(북극에서 북극성은 머리 위 90°에 위치하고, 적도에선 해수면 위를 맴돌게 된다), 해가 가장 높이 떴을 때 각도를 재어 그것을 1년간 해의 움직임이 기록되어 있는 연감(Almanac)과 비교해보는 방법을 사용할 수도 있다. 경도의 경우에는, 지구의 자전에 직접 영향을 받는 위치정보이기 때문에 이처럼 외부 천체와 비교해 값을 알아내는 일이 불가능하다.
사실 경도는 시간대와 동의어나 다름없다. 지구 위의 어느 경도에 위치하는가에 따라 해가 뜨고 지는 것을 포함한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하루의 시간대가 달라지기 마련이다. 출발 지점의 시각을 정확히 알고 현장의 시각을 그와 비교할 수 있다면 경도 파악은 쉽게 끝날 일이다. 문제는 진동이 심한 배 위에서 출발 지점의 시각을 그대로 가리키며 동작하는 시계를 만들기가 쉽지 않았다. 진자를 이용하는 시계(괘종시계)는 배에 싣는 순간 무용지물이 되었다. 이 문제를 해결한 이가 존 해리슨이라는 영국의 시계공이었다. 독학으로 시계 제조 기술을 연마한 그는, 1735년 H1이라는 이름이 붙은 태엽시계를 영국 경도위원회에 제출한다. 그 후로도 자신의 시계에 대한 연구와 개선을 멈추지 않고, 1759년에는 손바닥 크기만 한 H4라는 이름의 시계를 내놓는다. 우리가 현재 ‘크로노미터’라고 부르는 항해용 시계의 원형이다. 바다 위에서 진동에 영향을 받지 않는 이 시계가 나온 이후에야, 항해자들은 비로소 자신이 지구상에서 점한 정확한 위치를 알아낼 수 있게 되었다.
오늘도 우리는 빌딩의 바다에서, 약속 장소라는 보물섬으로 가기 위해 스마트폰이라는 항해도를 펼친다. 그 과정에서 매번 표류하곤 하는 길치들이여, 좌절하지 마시라. 적어도 당신들은 붉고 파란 점만 좇으면 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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