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처지에서 ‘오보’란 일종의 숙명 같은 존재일 수 있어. 다른 언론사보다 더 빨리 기사를 내고 싶다는 욕망은 언론인을 오보의 늪에 빠뜨리기 십상이지. 이 오보에 대한 부끄러움을 팽개치고는 “어쩔 수 없고,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치부하는 순간, 언론은 더 이상 언론이 아니게 되고 저 유명한 ‘아니면 말고’ 주문을 되뇌는 장터의 야바위꾼으로 전락하게 되는 거란다. 동시에 그들의 오보는 실수를 넘어 오보를 접하는 사람들의 뇌리를 점령하고, 역사의 흐름을 돌리고, 수많은 일을 그르치는 재앙이 되기도 해. 오늘부터 몇 주간은 한국 언론사에서 돌출했던 오보와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줄게.
아빠가 배웠던 국어 교과서에는 〈붉은 산(교과서상 제목 ‘조국’)〉이라는 단편소설이 실려 있었어. 지은이는 김동인. 배경은 1930년대 초반 만주. 만주에 살던 조선인들 마을에는 아주 질 나쁜 불한당이 한 명 있었는데, 살쾡이를 뜻하는 ‘삵’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어. 어느 날 만주인 지주의 횡포로 조선 사람이 해를 입자 난데없이 삵이 만주인 지주에게 항의하러 찾아갔고 그는 죽도록 두들겨 맞은 뒤 조선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두게 돼. 그때 삵은 마지막 소원이라며 ‘동해물과 백두산이’를 불러달라고 했고 마을 사람들의 노래를 들으며 죽어간다는 내용이야.
어떻게 이런 소설이 일제의 검열에 걸리지 않았을까. 여기에는 시대적 배경이 존재해. 이 소설이 나온 건 1933년. 그로부터 2년 전 일본은 만주사변을 일으켰고 만주를 장악했지. 일본은 그 전초 작업으로 지역의 조선인과 중국인들을 이간질했고 중국인 지주 밑에서 고생하는 조선 동포들에 대한 이미지 조작을 꾸준히 했거든. 역사학자 전우용이 김동인의 소설을 두고 “중국인에게 박해받던 ‘과거의 재만주 조선인’에 대한 기억을 감동적 필치로 소환함으로써, ‘현재의 재만주 조선인’들이 일본인에 의해 ‘해방된’ 존재임을 새삼 깨우치려 했던 듯하다(〈한겨레21〉 제910호)”라고 해석하기도 했던 건 그 때문이야.
이 소설이 나오기 2년 전, 만주사변 발생으로부터 두 달쯤 전, 만주에서는 ‘만보산 사건(완바오산 사건)’이 터졌지. 소설에 묘사된 것처럼 만보산이라는 곳에서 중국인 지주들이 조선인들을 못살게 굴고 급기야 유혈 사태가 벌어졌다는 보도가 날아들면서 흥분한 조선인들이 각지에서 중국인들을 학살한 끔찍한 사건이야.
이 모두는 어처구니없는 오보가 낳은 사태였어. 만보산에서 조선인 농민들과 중국인들이 관개수로를 놓고 다툼이 있었고 이와 관련해 조선인 박해 소식이 수시로 날아들었던 건 사실이야. 식민지 조선의 언론계 양대 산맥이라 할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관련 소식을 경쟁적으로 보도했어. 그러던 중 중국 농민들이 또다시 들고일어나 조선인들이 만든 관개수로를 매몰시켜버린 거야. 이 때문에 일본 영사관의 무장 경관들과 중국인 경찰까지 출동했던 것도 틀리지 않았어. 하지만 1931년 7월2일, 〈조선일보〉 창춘 특파원으로 있던 김이삼 기자가 보낸 기사는 엄청난 오보였다. “중국 관민 800여 명과 200명의 동포와 충돌, 조선인 다수 살상, 중국 주재 (일본) 경관 교전 급보로 창춘 주둔 일본군 출동 준비” 등 흡사 전쟁이라도 나고 다수의 희생자가 발생한 듯 보도했지만 만보산 사건에서 죽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거든. 〈동아일보〉와 보도 경쟁을 하던 〈조선일보〉는 김이삼 기자가 전한 기사를 호외로 만들어 뿌렸고, 이 치명적인 오보는 반(反)중국인 폭동의 도화선이 되고 말아.
전국적으로 100명이 넘는 중국인들이 목숨을 잃고 거주 구역이 통째로 불타버렸단다. 험악하기로 이름난 일본 경찰은 폭동을 수수방관했어. 아니 오히려 부추겼다고나 할까. 윤치호는 이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기고 있지. “〈조선일보〉는 호외를 발행했지만, 동일인으로부터 똑같은 소리를 접한 〈동아일보〉는 호외를 발행하지 않았다. 그러자 이름만 대면 다 알 만한 종로경찰서 형사가 동아일보사에 전화를 걸어 이토록 중대한 사건에 대해 호외를 발행하지 않은 이유를 추궁했다(1931년 7월13일, 윤치호 일기).”
윤치호는 이 오보를 전한 김이삼 기자가 밀정이라고 알려져 있다고 썼는데 김 기자에 대한 평가는 여러 갈래로 엇갈린다. 독립운동가 이강훈에 따르면 그는 청산리 전투의 영웅 김좌진 장군이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암살됐을 때 정확한 소식을 전하는 등 신망 있는 기자였지만, 그와 함께 일했던 장소봉이라는 자가 일제의 밀정이었고 김이삼 기자는 이를 몰랐다고 해. 일제가 이 장소봉을 조종하여 허위 소식을 전달하고 김이삼 기자로 하여금 속보를 날리게 했다는 것이지.
김이삼 기자, 사죄 기사 낸 직후 피살
어찌 되었든 분명한 것은 7월14일자 〈조선일보〉에 김이삼 기자 본인이 “일본의 정보에 근거해서 기사를 썼지만 오보였다”라고 사죄문을 게재했다는 거야. 사죄문 내용대로 그는 일제 당국의 농간에 넘어가 엄청난 오보를 냈고, 수백명의 목숨과 헤아리기 힘든 재산 피해를 낳았으며 만주의 조선인들은 독을 품은 중국인들의 박해를 경험해야 했어.
김이삼 기자는 사죄 기사를 낸 직후 피살당해. 이 죽음을 두고도 많은 설이 엇갈리고 있어. 어떤 이들은 일제의 지시를 받은 김이삼 기자가 고의로 오보를 냈다고 믿은 독립운동 진영이 그를 처단했다고 보고, 또 어떤 이들은 뒤늦게나마 진실을 밝히려던 그를 일본의 밀정 이종형 등이 주도하여 살해했다고 주장하니까.
김이삼 기자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영원한 미스터리로 남겠지만, 그의 책임은 명백해. 김 기자가 밝혔듯 현장을 취재하지도 않고 일본 측 정보에만 근거해서 기사로 썼고, 기사는 사실이 아니었어. 거기에 속보 경쟁을 벌이던 〈조선일보〉는 그가 보낸 정보의 진실 여부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않고 호외를 만들어 뿌렸지. 끊임없이 보도돼온 ‘만주 중국인들의 조선인 박해’ 뉴스에 증폭돼가던 조선인들의 분노는 ‘조선인 살상’이라는 충격적 오보에 맞닥뜨리며 폭발했다. 본의였든 그렇지 않든 김이삼 기자는 나치의 선전장관 괴벨스의 이론을 입증해 보인 셈이야. “100%의 거짓말보다는 99% 거짓말과 1% 진실의 배합이 더 큰 효과를 발휘한다.” 바로 오늘날 우리가 일상으로 접하는 ‘가짜 뉴스’의 위력이기도 하지. 김이삼 기자는 저승에서 자신의 과오를 곱씹는 한편으로 엄청난 오보를 낸 뒤에도 대개 ‘아니면 말고’의 자세로 버티는 〈조선일보〉 후배들에게 분개하고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이 무책임한 사람들아. 당신들이 그러고도 기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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