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시대에 고려를 방문했던 중국인 서긍은 이런 기록을 남겼어. “고려는 삼림이 풍부해서 나무꾼을 업으로 삼는 사람은 없고 소년이나 장년들이 한가할 때 힘닿는 대로 나무를 해 쓴다.” 즉 전문적으로 나무를 베어 파는 나무꾼이란 한참 뒤에 나온 직업이라는 뜻이야. 호랑이의 포효가 끊이지 않았을 만큼 높은 산과 깊은 숲으로 뒤덮인 한반도였지만 조선 후기로 가면서 양상이 급변하게 돼.
일단 인구가 늘고 또 서민들에게까지 온돌이 보급되면서 땔감용 나무 수요는 엄청나게 증가했지. 또 화전민들은 숲을 불사르고 그곳을 개간해서 농토를 마련했어. 이래저래 조선의 나무들은 수난을 겪는다. 한양 등 인구가 집중된 도시 주변의 산은 금세 벌거벗은 민둥산이 됐고 그 면적은 점차 넓어져갔어.
이 민둥산 공포의 최대치를 체험한 건 다름 아닌 북한이란다. 한때 북한이 ‘주체 농법’이라고 자랑했던 ‘다락밭 사업’은 산지를 개간해 경작지를 만드는 일이었다. 당연하게도 이 사업을 위해서는 나무가 깡그리 베어져야 했지. 이 외에도 조선 시대처럼 연료용으로, 또 목재 수출용으로 나무를 베어내다 보니 북한의 산림은 황폐해졌어. 이 와중에 벌어진 일이 1990년대 북한의 ‘고난의 행군’이야. 민둥산이 많았던 북한에서는 대규모 자연재해가 잇따랐고 수십만명이 굶어 죽어갔던 것이지(얼마나 많은 이들이 죽었는지 정확히 모른다).
다행히 일찌감치 산림 황폐화가 이뤄졌던 남한은 여러 사람들의 노력으로 민둥산의 복수로부터 한 발짝 비켜갈 수 있었지. 2001년 4월4일 산림청은 ‘숲의 명예전당’을 제정하고 국토 녹화와 임업 발전에 크게 기여한 분들의 이름을 올렸다. 산림녹화에 관한 한 강력한 추진력을 보여주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롯해 여러 이름이 등장하는데, 그 가운데 임종국이라는 분도 있다.
임종국은 오늘날 이른바 힐링 관광지로 유명한 전남 장성에 있는 축령산자연휴양림의 빽빽한 편백나무 숲을 수십 년 동안 가꿔 대한민국의 ‘조림왕’이라 불렸던 분이야. 그는 전북 순창에서 평범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어. 고향을 떠나 각지를 전전하며 사업도 하고 각종 특용작물 재배와 양잠업으로 쏠쏠한 재미를 보는 등 이재에도 밝은 사람이었지. 그는 일본인에게서 구입한 땅을 일구며 조림(造林)에 관심을 갖게 돼. 밤낮 없이 농사짓고 나무를 가꾸던 그는 전쟁 때 피란 갈 생각조차 하지 않았어. 지주를 몹시 미워했을 공산당조차 임종국의 노력에 탄복했단다. “동무, 이렇게 멋진 묘포지(어린 나무를 키우는 밭)를 본 적이 없소(〈월간조선〉 2018년 1월호).”
이미 임종국은 자신만의 전쟁을 시작하고 있었을지도 몰라. 임종국의 회고야. “한국 농림부에 파견돼 있던 미국 고문단들이 ‘무서운 것은 전쟁이 아니라, 산의 황폐화로 토사가 밀려와 전 농토가 폐허화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나 혼자만이라도 그런 사태를 막아보자는 것이 내 신념이었지요(〈매일경제〉 1980년 4월5일).”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엄청난 풍경 하나와 마주하게 돼. 쭉쭉 뻗은 나무들이 도열하여 바다처럼 넘실대고 그 사이에서 소슬바람이 불고 향긋한 나무 내음까지 주변에 지천으로 떠돌고 있었지. 넋이 나간 임종국이 나무들에 대해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어. “여긴 인촌 김성수 선생 땅이고 저 나무들은 인촌 선생이 일본에서 묘목을 갖고 들어와 심으신 거요.”
횃불 들고 물지게 지고 산에 올라
대한민국 부통령을 지낸 인촌 김성수는 그 조상들의 터전이었던 전남 장성에 일본에서 들여온 나무를 소중히 심었고 그것들이 하늘을 찌를 듯 자라 있었던 거야. 이 잘생긴 나무들은 임종국의 운명을 바꿔놓는다. 모든 열정과 재산을 나무 심기에 ‘올인’하게 된 거지.
임종국은 1956년 봄부터 장성군에 본격적으로 나무를 심기 시작했어. 나무는 곧 땔감이고, 집 짓는 재료이며, 배의 널빤지였을 뿐, 그 누구도 나무 심을 생각은 하지 않았고 그럴 여유도 없던 시절이었지. 임종국은 주변의 손가락질을 물리치고 줄기차게 나무를 심었어.
1967년과 1968년은 기록적인 가뭄의 해로 한국 현대사에 기록돼 있어. 호남 지역은 특히 가뭄 피해가 컸어. 임종국의 임야도 마찬가지였어. 벼도 말라죽어 가는 판에 나무를 돌볼 여력은 없었지. 임종국은 포기하지 않았어. 물동이를 지게에 지고 험한 산자락을 올라 물을 퍼붓고 또다시 내려와 물을 채워서 산을 탔다. 보다 못한 가족들이 함께 물지게를 졌고 처음에는 냉소를 보내던 마을 사람들도 힘을 보탰지. 가뭄이 계속되자 밤이고 낮이고 물을 뿌려줘야 했는데, 이를 어쩌나, 머리를 맞댄 마을 사람들 일부는 물지게를 들고 일부는 횃불을 들고 산에 올랐다고 해. 그야말로 장관이었겠지. 산허리를 수놓은 횃불 사이로 나무를 살리는 물길이 흘렀으니.
당장 ‘돈이 되는’ 숲도 아니었어. “1971년까지 총 8200만원을 투입, 565정보의 임야에 280여만 본의 나무를 갖고 있다. 조림 사업의 회임 기간이 너무 길어 앞으로도 1973년까지는 매년 600만원의 적자를 감수해야 한다(〈매일경제〉 1972년 4월11일)”라면서도 그는 내 생전에는 베어내지 않겠다고 절치부심하고 있었거든. 그야말로 ‘밑 빠진 숲에 물 붓기’라고나 할까. 그가 뿌린 땀의 물줄기는 하늘을 향해 팔 벌린 가지와 그것을 뒤덮은 무성한 잎사귀로 되돌아오고 있었어.
임종국은 경제적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평생을 바친 숲과 이별하게 된단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들어가는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지난 1976년 빚에 몰려 이를 넘겨야 했고 이후 속을 끓이다가 1987년 타계하고 말았다(〈매일경제〉 1992년 4월4일).” 울분의 10여 년을 보낸 뒤 세상을 떠날 때에도 그는 외쳤다고 해. “나무를 더 심어야 한다. 나무를 심는 것이 나라 사랑하는 일이다.”
2002년 산림청은 임종국의 혼이 서린 숲의 상당 부분을 사들였어. “장성군 서삼면 모암리와 북일면 문암리 일원 258㏊의 ‘임종국 조림지’를 김모씨(69) 등 9명의 소유주로부터 40억6800만원에 매입했다(〈남도일보〉 2002년 4월9일).” 임종국이 가꾼 숲 570㏊의 일부이기는 했지만 그가 소망했던 대로 국민들이 자연을 즐길 수 있는 국립 휴양림으로 돌아온 것이지.
즐비한 나무들 사이를 걸으며 심호흡하고, 콧노래를 부르고, 아이들과 함께 웃음을 터뜨리는 오늘날의 사람들을 보면서 하늘 위의 임종국 역시 흐뭇하게 미소를 짓고 있을 거야. 바로 그가 원하는 풍경이었을 테니까. 기억하려무나. 임종국 선생 같은 분들 덕택에 오늘 우리는 푸르른 숲(아직 많이 모자란다 해도)을 보며 살고 있는 거란다. 아울러 그 숲 덕택에 우리는 수많은 재앙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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