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전쟁을 이해하려면 지난해 하반기 상황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당시 한반도 정세에 영향을 미칠 두 개의 선거가 치러졌다. 하나는, 지난해 11월6일(현지 시각) 미국 중간선거다. 다른 하나는 11월24일 시행된 타이완 지방선거다.

미국 중간선거에서 집권당인 공화당은 상원 과반수를 지켰지만 하원 주도권은 민주당으로 넘어갔다. 이는 트럼프 정부의 대북정책에 중대한 변수로 작용한다. 당시 상황에서 볼 때, 하원 구성이 마무리되는 올해 2월쯤이면 민주당이 각 상임위 위원장을 모두 차지하게 될 것이었다. 물론 민주당도 (트럼프 행정부의 기조인) 제재에 기초한 대북 압박 정책을 지지한다. 그러나 민주당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견제 차원에서 사사건건 시비를 걸 경우 정부의 대북정책 추진에 상당한 어려움이 닥칠 것으로 예상되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민주당이 하원 주도권을 완전히 틀어쥐기 전에 북한과 큰 틀에서 합의를 이루는 것이 최선이었다. 즉 하원 구성이 마무리되는 지난 2월 이전에 비핵화 협상의 윤곽을 도출해내야 했던 것이다.

ⓒAFP PHOTO트럼프 미국 대통령(맨 오른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맨 왼쪽)이 2018년 12월1일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만찬을 하고 있다.


상황이 별로 좋지 않았다. 지난해 남북 정상 간의 ‘9월 평양 공동선언’에 이어 10월7일에는 폼페이오 장관의 4차 방북까지 이뤄졌다. 그러나 이후 북한은 후속 회담에 응하지 않았다. 지난해 11월8일 뉴욕에서 북·미 고위급회담을 갖기로 했으나 북측 대표인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이 갑자기 불참을 통보했다. 그 뒤 북·미 간 협상 채널이 중단되었다.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당시까지 북측 파트너와 소통 채널조차 만들지 못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대북 압박 수위를 끌어올릴 수밖에 없었다. 북한 무기 수출 분야 전문가인 브루스 벡톨 미국 에인절로 주립대학 교수가 방한해 ‘북한이 매년 중동과 아프리카로 30억 달러어치의 무기를 수출해 김정은 위원장 통치자금으로 활용하고 있다’라고 폭로한 시점도 지난해 말이었다. 트럼프 행정부로서는 ‘북한의 무기 수출’이 새로운 대북 압박 이슈로 떠오른 것이다. 미국은 또한 공해상에서 북한이 정유 불법 환적으로 이미 유엔안보리 대북 제재에서 정한 ‘연간 50만 배럴’ 이상의 석유를 초과했다고 지적하면서 대북 원유 공급 문제를 이슈화하기 시작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역대 정부와 다른 점

미국이 아무리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해도 중국이 협력하지 않으면 북한을 압박할 수 없다. 미국은 해상에서 이뤄지는 북한의 정유 환적이나 무기 수출을 차단할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을 통해 육로로 이뤄지는 (북한으로의) 원유 공급과 (북한으로부터의) 무기 수출은 통제하기 어렵다. 미국의 해법은 간단했다. 중국이 북한에 공급하는 원유량을 줄이면 된다. 또 중국이 북한에 열어준 육로 수출 길을 차단하면 된다.

과거에는 북한이 주로 석탄 수출로 통치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한다고 의심받았다. 노동당 39호실이 석탄 수출로 매년 10억 달러 정도의 수입을 거뒀다. 이 경로가 2017년 8월 유엔안보리 대북제재 2371호로 차단되었다. 남은 경로는, 원유와 무기 판매를 통한 수입이다. 이런 수입 덕분에 김정은 위원장이 핵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버틸 수 있다는 게 미국의 판단이었다. 북한을 협상장으로 나오도록 하려면 통치 자금의 원천인 원유와 무기 판매에 압박을 가해야 했다. 이 같은 수단이 유효하려면, 중국의 협조가 필요했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중국이 협조할 리 없었다. 중국이 김정은 위원장의 생명줄이나 다름없는 원유와 무기 수입에 손을 대는 것은 북·중 관계의 파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유엔안보리 제재 사항인 ‘북한에서의 의류 임가공 금지’ ‘북한 수산물 수입 금지’ 등에 대해서도 미온적이라는 의심을 받아왔다. 결국 미국이 자신의 의지에 중국을 복속시키려면, 중국을 압박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 일환이 바로 무역전쟁이다.

미·중 무역전쟁은 겉으로는 양국 간의 무역 불균형 시정을 위한 것처럼 보인다. 그 이면에는 중국으로 하여금 북한에 압박을 가하도록 강제하는 수단이라는 측면이 있다. 한국에서는 주로 무역 불균형 시정의 관점에서 상황을 본다. 북한에 대한 압박과 관련된 인식은 결여되어 있다. 중국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미국이 북한과 관련된 요구를 제기하는 경우 주로 ‘협조 요청’이라는 형식을 취한다. 이로 인해 중국 측은 그 요구의 무게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고 놓쳐버리는 경향이 있다.

 

ⓒAP Photo경제제재 위반 혐의로 미국에 압류된 북한 화물선 ‘와이즈 어니스트’호. 미국 법무부가 5월9일 사진을 공개했다.


중국을 통한 북한 압박이야말로, 트럼프 정부가 미국의 다른 역대 정부와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미국 공화당은 2016년 대선 전 정강정책을 발표했다. 그해 7월18일 공화당은 대선 후보로 트럼프를 확정한 전당대회에서, 트럼프 후보가 대통령에 선출되었을 때 펴나갈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북한과 중국에 관한 내용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리더십’이란 항목에 들어 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시사IN〉 제585호 ‘미국, 북한 볼모로 중국 잡는다’ 기사 참조). “일본, 한국, 오스트레일리아, 필리핀, 타이 등 조약 동맹국들과 경제적·군사적·문화적 유대를 가진 태평양 국가로서 그들과 함께 북한 인민들의 인권을 확립하기 위해 노력할 것” “김씨 가문이 이끄는 노예국가의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핵 재앙으로부터 모두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한반도에서의 긍정적 변화를 앞당기도록 중국 정부에 촉구한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리더십을 확보한다고 하면서 모두 북한 관련 내용으로 채워졌다. 첫 번째는 ‘북한 주민의 인권 확립’, 두 번째는 ‘중국의 협조를 통한 북한 핵문제 해결’이다. 세 번째는 핵문제 해결 방법으로서의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핵 폐기)다. 즉, 2016년 7월의 시점에서 트럼프 후보가 대통령이 되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리더십’을 확립하기 위해 할 일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모두 북한 문제 해결이었던 셈이다. 그 수단은 ‘중국의 협조’였다. 바꿔 말하자면, 중국이 협조하지 않는 경우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중국이 협조하지 않을 수 없게 하라는 이야기다. 그 수단 중 하나가 바로 무역전쟁이라 할 수 있다. 먹이사슬 구조를 연상하면 이해하기 쉽다. 미국 공화당이 먹이사슬의 최상위에서 정강정책을 지키도록 트럼프 대통령에게 압력을 넣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대북정책에 협조하도록 시진핑 주석을 압박한다. 시진핑 주석은 다시 북한 김정은 위원장에게 압력을 넣는 구조다.

이런 와중에 중국이 북핵 문제 해결에 협조해도 시원찮을 판인데, 오히려 방해하는 사태가 지난해 여러 차례 나타났다. 대표적인 사건은 지난해 5월 다롄에서 열린 북·중 정상회담이다. 그 뒤부터 김정은 위원장이 중국을 믿고 말을 듣지 않게 되었다고 미국은 판단했다. 지난해 6월 미국은 5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25% 관세를 부과한다. 관세전쟁이 불붙기 시작했다. 중국은 보복관세로 맞대응하고, 심지어 9·9절 때 시진핑 주석의 북한 방문까지 추진하는 등 미국에 계속 비협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미국은 지난해 9월 추가로 20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10% 관세를 부과했다. 이 상품들에 대한 관세는 2019년 1월1일부터 25%로 인상될 예정이었다.

무역전쟁 중에 치러진 지난해 11월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하원을 장악하게 되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과의 협상을 서둘러야 하는 형편으로 몰렸다. 미국의 대중국 압박도 폭주하게 되었다. 트럼프 주변의 전략가들 사이에서 중국을 압박할 추가 카드에 대한 논의가 제기됐다. 시진핑 주석이 김정은 위원장의 생명선인 원유와 무기 공급 루트를 차단하게 만들려면, 중국을 더욱 압박할 추가적 수단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미국은 무역전쟁을 벌일 때부터 중국의 대응 여하에 따른 시나리오를 준비해놓고 있었다. 그중에는, 지난 5월5일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에서 언급한 대로 ‘추가로 325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을 선정해서 25% 관세를 부과한다’는 내용도 있었다고 한다. 지난해 관세를 부과한 25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과 합치면 사실상 중국의 모든 대미 수출품에 고율 관세가 부과된다는 이야기다.

이뿐만이 아니다. 당시 거론된 내용 중에는 중국에서 제3국을 거쳐 미국으로 가는 상품들 역시 모두 관세 인상 대상으로 삼겠다는 것도 있다. 무역전쟁이 일어나자 중국의 수출업자들이 반제품 형태로 베트남이나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로 보내 완제품을 만든 뒤 미국에 수출하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이 액수도 약 2000억~3000억 달러 수준이라 하니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규모다. 이래도 중국이 말을 듣지 않을 경우 중국 기업이 미국이나 유럽 등의 은행에 빚진 채무를 모두 상환하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주특기인 환율이나 금융 분야로 확대하기 전인 실물거래 단계에서 동원할 수 있는 ‘빅 카드’들이 이처럼 많이 남아 있다.

‘타이완 카드’ 무산되면서 무역전쟁 가속

 

ⓒEPA차이잉원 타이완 총통(가운데)이 지난해 8월 미국 항공우주국(NASA)을 방문했다.


중국의 대북 압력을 유도하기 위해 여러 가지 통상 압박 수단을 거론하긴 했지만 구상 단계로 여겨졌다. 타이완 카드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타이완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무너뜨릴 수 있는, 시진핑 주석의 리더십을 흔들 뇌관이다. 타이완 독립에 적극적인 차이잉원 총통의 워싱턴 방문을 정식으로 추진하는 것만으로도 시진핑 주석을 흔들 수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 11월24일 타이완 지방선거에서 예상외로 국민당이 약진하고 차이잉원 총통이 이끄는 민진당이 참패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당분간 타이완 카드를 사용하는 것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무역전쟁을 통한 정면 돌파의 압박감이 더 커졌다고 할 수도 있다.

미국에게 민진당 참패는 타격이었다. 상황 관리를 위해 당분간 휴전이 필요했다. 지난해 12월1일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을 통해 20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25% 부과 시점을 2019년 3월1일로 90일 유예하는 조치가 취해진 배경이다. 그런데 같은 날 미국 수사 당국의 요청으로 세계 최대 통신장비 업체 화웨이의 멍완저우 부회장이 캐나다에서 체포되었다. 타이완 카드를 잃은 대신 시진핑 주석의 중국몽을 상징하는 화웨이 카드를 확보한 것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중국이 보인 모습은 지난해 여름 미국에 한 치의 물러섬이 없이 맞서던 모습과는 천양지차였다. 일각에서는 지난해 8월의 베이다이허 회의에서 장쩌민과 후진타오 등 중국공산당 원로들이 시진핑 주석에게 미국에 맞서지 말고 유화적으로 접근할 것을 강력히 주문한 결과로 본다. 지난해 12월19일 〈홍콩 경제일보〉는 시진핑 주석이 대미 강경 노선에서 전술적 후퇴를 의미하는 ‘21자 방침’을 채택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에) 대항하지 않고, 냉전을 종식하며, 점진적 지속적으로 개방을 향해 나아가고, 국가의 핵심 이익을 양보하지 않는다(不對抗 不打冷戰 按步伐開放 國家核心利益不退讓)’는 내용이다. 북·중 접경지역에서 이뤄지는 의류 임가공이나 수산물 교역, 중국인들의 북한 단체관광을 중단하고 원유 공급을 대폭 삭감해서라도 김정은 위원장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라는 주문이 구체적으로 들어갔다고 전해졌다.

중국도 노력하는 모양새를 보였다. 지난 1월8일 북·중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으로부터 ‘과감한 비핵화 계획’을 미국과의 협상에서 제시하겠다는 약속을 끌어낸 것이다. 그러나 2월27~28일 하노이 회담에서 보인 김정은 위원장의 모습은 전혀 달랐다. ‘과감한 비핵화’는 영변으로 축소되었다. 북한은 그 대가로 미국에 유엔안보리 대북제재 해제를 강력히 요구했다. 유엔안보리 대북제재 해제 요구는 시진핑 주석의 이해관계를 반영한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 처지에서는, ‘중국에 25% 관세까지 유예해주면서 핵문제 해결에 건설적 협조를 요구했는데, 중국은 김정은 위원장을 앞세워 교란 행위만 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미·중 무역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면,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기자명 남문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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