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중국 편인 것처럼 보였다. 중국은 자국의 상위 경쟁자들(미국을 비롯한 서방 선진국)에게는 없는 ‘무기’를 갖고 있다. 바로 ‘시장 규율에 대한 무시’다.

시장경제에서 특정 산업이 성장하려면 먼저 ‘자본시장’이라는 인기투표에서 승리를 거둬야 한다. 문제는 자본시장이 각자의 이해관계를 가진 무수히 많은 투자자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시장에서 ‘뽑혀’ 자금을 조달받게 된 산업은 국가경제의 미래를 짊어질 만한 업종일 수도 있지만 낭비적 사업인 경우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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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는 유망한 미래 산업이 굳이 자본시장의 인기투표를 거칠 필요가 없다. 정부와 공산당의 ‘현자’들이 해당 산업을 지목해서 자금을 몰아주면 그만이다. 중국 정부는 업체에 ‘빌린 돈을 빨리 갚으라’거나 ‘배당금을 내놔라’고 하지 않는다. 이런 과정에서 정경유착과 지대추구가 이뤄지지만 유망 산업에 대한 대규모 장기 투자가 가능해진다. 서방국가의 시장경제에서는 어려운 일이다. 중국 경제의 가장 무서운 무기는 ‘사회주의’가 아니라 ‘시장 규율에 대한 무시’인 것이다.

중국 정부는 글로벌 경제의 미래를 결정할 것으로 확실시되는 첨단산업(인공지능 등) 육성에도 같은 방법을 적용하려 했다. 정보통신 기술에 기반한 미래 산업의 특징 중 하나는 선두 주자의 절대적 우위다. 구글과 아마존 등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ITC 관련 산업의 선두 주자는 산업의 구조는 물론 경쟁 규칙까지 좌지우지하게 된다. 이렇게 형성된 독점의 성채를 후발 주자가 허물기는 쉽지 않다. 중국은 서방국가들에게는 허용되지 않는 방법으로 글로벌 미래 산업에서 선두 주자로 도약하려 한 것이다. 일단 도약하면 서방국가들이 그 자리를 탈환하기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시간은 중국의 편이었다.

그래서 미국이 먼저 시비를 걸었다. 지난해 7~8월, 전자·기계 부품 등 5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대해 25% 관세를 부과했다(미국의 1차 공세). 이에 맞서 중국 정부는 같은 규모(500억 달러)의 미국산 수입품에 관세율 25%를 부과했다(중국의 1차 보복). 콩 등 미국산 농작물을 포함한 것은 농촌 지지율이 높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일종의 협박이었다. 미국은 그해 9월, 추가로 20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을 선정해서 일단 10%의 관세를 물렸다. 이 제품들의 관세율은 3개월여 뒤인 2019년 1월1일부터 25%로 다시 인상할 예정이었다(미국의 2차 공세). 중국 정부도 복수했다. 600억 달러 규모의 미국산 수입품에 5~10%의 관세를 부과했다(중국의 2차 보복).

정리하면, 2018년 미국은 두 차례에 걸쳐 모두 2500억 달러 규모의 중국 제품에, 중국 역시 1100억 달러 규모의 미국 제품에 관세를 부과했다. 다만 미국에겐 남은 총알이 많았다. 최근 미국이 수입하는 중국산 제품의 총액은 연간 5000억 달러(지난해 5390억 달러)를 웃돈다. 미국이 2018년에 관세를 부과한 중국산 제품(2500억 달러)은 총수입액(5000억 달러)의 절반 정도에 그친다는 이야기다. 반면 중국의 미국산 수입액은 연간 1200억 달러(2018년)다. 그중 1100억 달러 규모의 품목에 이미 관세를 부과해버렸다(14쪽 그림 참조).

 


관세는 주된 의제가 아니었다

지난해 12월 초, 미국과 중국은 휴전에 들어가면서 무역협상을 개시했다. 미국은 2차 공세의 대상인 2000억 달러 규모 중국 제품의 관세율을 25%로 올리는 조처도 잠정 유예했다. 이후 양국의 협상은 가끔 삐걱거렸지만 대체로 순조롭게 진행 중이라고 보도되어왔다. 급기야 지난 5월 초엔 대다수 해외 언론들이 ‘미·중 무역협상 5월10일쯤 타결 유력’ 등의 헤드라인을 내보냈다. 류허 총리 등 대규모의 중국 협상단이 5월8일에 워싱턴을 방문하기로 되어 있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5월3일 기자들에게 “무역협상은 잘 진행되고 있으며 역사적이고 기념비적인 합의에 가까워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덧붙이긴 했다.

그러던 중 갑작스럽게 파국이 밀어닥친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트위터로 돌연 ‘2000억 달러 규모 중국 상품(2차 공세 대상)에 대한 관세율을 25%로 올리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미·중 무역협상이 진행되고 있긴 하지만 속도가 너무 늦어. 게다가 중국 측은 재협상까지 시도해, 짜증 나(No)!”

중국이 발끈한 것은 당연했다. 일부 중국 언론은 ‘류허 총리가 미국 방문 일정을 취소할 것’이라는 미확인 정보까지 흘렸다. 그러나 류허 총리는 예정대로 워싱턴을 방문해서 5월9~10일 이틀 동안 협상을 벌였다. 합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5월10일 미국은 즉각 그동안 미뤄두었던 2차 공세 대상 제품들(2000억 달러 규모)의 관세율을 10%에서 25%로 올렸다. 그뿐만이 아니다. 과세 부과 대상이 아니었던 3250억 달러 규모 중국산 품목들(미국이 남겨뒀던 총알이다)에 대해 25% 관세를 부과할 준비에 들어갔다고 위협했다. 이 위협이 실현되면 미국은 모든 중국산 제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게 된다.

중국은 사흘 뒤인 5월13일, 보복 조처를 발동했다. 다만 새롭게 관세를 부과할 미국산 수입품이 많지 않았다. 이미 대부분의 미국산 수입 품목(연간 총수입액 1200억 달러 중 1100억 달러)에 관세를 부과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2차 보복 대상인 600억 달러 규모 미국산 수입품에 대해 부과한 5~10%의 관세를 5~25%로 올리기로 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협상이 결렬된 까닭은 무엇일까? 현재의 시점에서 양국의 그동안 움직임을 복기해보면 관세 자체는 싸움을 위한 ‘마중물’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미국 측 보도를 종합해보면, 양국이 가장 쉽게 합의한 사안은 지난해 9월 미국 측 2차 공세의 대상 품목(20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10% 관세의 철회였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7~8월의 1차 공세 당시 500억 달러 규모의 중국 제품에 부과한 25% 관세를 다음 대선 때까지 유지하려고 했다. 나름의 논리가 깔려 있다. 예컨대 양국은 수입품 중 일정 비율에 대해 자국 사정에 맞춰 관세를 부과하도록 합의할 수 있다. 다만 그 비율은 쌍방 간에 동일해야 한다. 미국은 연간 5000억 달러 규모의 중국 상품을 수입하므로 예컨대 그 10%인 500억 달러 품목에 대해 고율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 대신 중국도 연간 1200억 달러 규모의 미국 상품 수입액 중 120억 달러(10%)에 대해서는 자율적으로 관세를 매겨도 좋다는 이야기다. 액수 기준으로 볼 때 미국에 훨씬 유리한 조항이다. 중국 측은 이를 받아들일 용의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번 협상에서 관세는 주된 의제가 아니었던 셈이다.

중국이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

양국의 무역협상을 좌초시킨 것은 ‘중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을 시정하라는 미국의 완강한 태도와 이에 대한 중국의 반발이었다. 양측의 입장이 너무나 달랐다.

 

 

ⓒReuter5월10일 미국 워싱턴 DC에서 고위급 무역협상을 마치고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가운데)과 류허 중국 부총리 가 악수하고 있다.


중국은 자국 내에 투자하는 해외 기업 중 상당수에게 중국 측과 합작법인을 만들도록 제도화해둔 상태다. 그렇게 구성한 합작법인에서 중국 측은 외국 기업에게 기술 이전을 강요한다. 중국 측이 해외 테크 기업들의 첨단기술을 사이버 해킹이나 직원 매수 등을 통해 빼돌리는 ‘지식재산 절취’는 고질적 문제다. 〈이코노미스트〉(5월16일)에 따르면, 미국 FBI의 한 관계자는 지난 4월26일 “중국은 경제 고도화의 방법을 미국으로부터 훔치려고 작정한 것 같다. FBI의 거의 모든 부서가 경제 스파이 행위를 수사하고 있는데 대다수 사건의 배후에 중국이 존재한다”라고 말했다. 이미 미국 법무부는 지난해 10여 명의 개인과 조직을 ‘중국 정부의 지시를 받아’ 미국 첨단 테크 기업 15곳으로부터 상업적 기밀을 절취한 것으로 기소한 상태다. 이와 함께 중국은 미래의 글로벌 경제를 지배할 것으로 추정되는 10대 첨단기술(인공지능 등) 부문에서 2025년까지 글로벌 리더로 부상하겠다는 국가전략으로 관련 국내 기업들에 엄청난 규모의 산업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중국제조 2025’). 미국 측은 지난 협상에서 이 같은 불공정 행위의 중단과 그 내용의 법제화를 요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 측으로서는 ‘보복관세 철회’보다 ‘불공정 행위 중단’이 훨씬 어려운 문제다. 지식재산 절취에 대한 중국의 공식 발표는 ‘정부 차원에서 그런 문제에 개입한 적은 없다’이다. 그렇다면 정부로서 합의할 수 있는 것 역시 ‘지식재산 절취를 규제하겠다’라는 약속 수준을 넘어가지 못한다. 실제로 협상이 진행되던 당시 〈파이낸셜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중국 측이 전향적인 약속을 한다면 미국 측이 양해하는 방향으로 합의가 이뤄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합의로 끝났다면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정치권에서 집중 공격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이미 오바마 정부 시절에도 중국 측은 ‘중국 정부는 온라인상 지식재산권 도적질에 개입하거나 혹은 사정을 아는 상황에서 지원하지 않겠다’라고 합의한 바 있다. 일종의 구두 약속이었다. 이후 중국의 지식재산 절취가 오히려 더욱 심해졌다는 것이 미국 측의 시각이다.

산업보조금에 대한 미국의 문제 제기 역시 중국으로서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사안이다. 정부 주도의 산업정책을 시행해왔으며, 정부와 기업 사이의 경계가 흐릿한 중국에게 산업보조금 금지는 ‘국가 시스템을 바꾸라’는 요구와 다르지 않다. 중국 정부 스스로가 이후 첨단 산업의 글로벌 리더가 되려면 기업들에 대한 지원이 필수적이라고 믿고 있다.

이에 더해 미국 측은 이른바 ‘강제이행 조치(enforcement mechanism)’를 합의하자고 요구했다. 미국 측에서 볼 때 중국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 나라’다. 무역협상을 타결한 뒤 중국 측이 합의를 어겼다고 간주할 만한 행위를 하면 미국이 중국 상품들에 다시 고율 관세를 부과할 권리를 갖겠다고 요구했다. 이에 대한 중국 측의 보복관세 부과는 금지된다. 사실상 미국이 중국에 관세 제재를 가할 일방적 권리를 갖겠다는 이야기다. 중국 측에서 볼 때는 엄연한 ‘불평등조약’이므로 호락호락하게 합의할 리가 없다. 미국은 무역협상 초기부터 ‘강제이행 조처 없이 합의 없다’라는 방침을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이 이랬으니 양측이 모두 만족할 만한 합의 따위는 처음부터 기대하기 어려웠다. 사실상 미국은 중국에게 ‘세계 패권의 야망을 버리고 미국 주도의 질서 밑으로 편입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일종의 무장해제 요청이다. 중국이 응할 리 없다. 물론 개별 국가끼리의 무역분쟁을 조정하는 세계무역기구(WTO)가 건재하긴 하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은 WTO의 조정에 응한다기보다 그것을 조정할 힘을 가진 국가이다. 질서에 종속되기보다 질서를 만드는 나라끼리 벌이는 분쟁은 벌거숭이 힘들의 대결로 귀착되기 마련이다. 여기에 북한 문제도 끼어 있다(18~21쪽 기사 참조).

 

ⓒAP Photo무역협상이 결렬되면서 미국은 중국 화웨이와
그 계열사를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해외 기업 리스트’에 올렸다.


협상이 결렬되자 미국은 행동에 나섰다. 지난 5월15일 트럼프 대통령은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해외 기업 리스트’에 서명했다. 이 리스트에 오른 해외 업체가 미국 기업과 거래하려면 미국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5세대 이동통신(5G) 부문에서 글로벌 선도 기업인 중국 화웨이와 그 계열사 70여 곳이 명단에 포함되었다. 즉, 화웨이는 미국 기업에 제품을 팔 수 없을 뿐 아니라 미국 기업으로부터 반도체 같은 부품을 구입할 수도 없다. 이 같은 내용의 행정명령이 떨어진 뒤 퀄컴, 인텔, 브로드컴 같은 세계 굴지의 반도체 기업들이 앞으로 화웨이에 칩(chips)을 공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구글은 화웨이에 부여한 모바일 앱(플레이스토어, 지메일 등)의 사용권을 중단하겠다고 통보했다.

이후 중국은 결사항전의 분위기로 들끓고 있다. 중국공산당의 사실상 기관지인 〈환구시보〉는 사설에서 “미국과의 무역전쟁은 ‘인민전쟁’”이라는 극언을 서슴지 않는다. 중국 관영 CCTV는 5월16일부터 한국전쟁 관련 영화를 잇달아 방영하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중국은 대규모 인민해방군을 파병해 미국과 싸웠다.

현재로서는 양국 간의 충돌이 세계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속단하기 힘들다. 1990년대 이후 미·중 양국은 행복한 밀월 관계를 유지해왔다. 미국은 중국에 자본을 투자했다. 중국은 투자받은 공장에서 생산한 저렴한 상품을 미국에 수출했다. 미국인들은 값싼 소비재를 즐기고, 중국은 일자리와 외환보유액을 축적했다. 한국 같은 다른 나라들은 미·중 양국 간 자본과 상품의 흐름에 편승해 비교적 호경기를 누렸다. 당시의 글로벌 체제가 ‘차이메리카(‘차이나’와 ‘아메리카’의 합성어)’로 불린 이유다.

최근 미·중 무역협상의 결렬은 차이메리카 시대의 종언을 의미한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를 ‘새로운 종류의 냉전(a new kind of cold war)’이라고 부른다. “한동안 윈윈을 추구하던 양국이 드디어 제로섬 게임(한쪽이 이기면 다른 쪽이 패배하는) 국면으로 들어갔다”라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미국의 의도는 중국을 영구히 미국 중심 국제 질서의 밑으로 종속시키겠다는 것이다. 중국은 아시아에서 과거의 지위를 회복하겠다는 꿈과 미국의 방해로 몰락할지 모른다는 공포 사이에서 헤매는 중이다. 설사 미·중 무역협상이 6월에 일본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담에서 트럼프-시진핑 회동으로 극적 봉합이 이루어진다 해도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최근 상황을 통해 양국은 상대방의 의도를 확실히 간파했다. 미국에서 민주당과 공화당이 컨센서스를 이룬 몇 안 되는 사안 중 하나가 바로 ‘중국 견제’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을 거쳐 각종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하던 기존 시스템, 즉 ‘공급사슬(supply chain)’을 해체하고 싶어 한다. 지금까지는 미국 기업이 설계한 제품이 중국의 공장에서 실물로 만들어졌다. 미국 모기업이 중국에 자회사를 세우거나 혹은 중국에 있는 제3 국적의 기업에서 물건을 생산한 뒤 다른 나라로 수출하거나 미국으로 들여왔다. 이런 ‘사슬’에서 중국을 쳐내겠다는 것이다. 미국 기업이 중국에서 생산하지 않는다면 기술이전을 강제받지 않을 것이다. 첨단기술 부문에서 미·중 간의 협력을 억제하면, 중국 측의 지식재산 절취도 상당 부분 차단할 수 있을 것이다. 국가 안보의 문제도 있다. 중국이 의류나 신발, 나아가 가전제품 정도를 미국에 수출하던 때에는 안보 문제가 제기되지 않았다. 그러나 중국이 ‘중국제조 2025’의 야망을 실현해서 자율주행차나 항공기 등의 핵심 부품인 반도체 왕국이 되고, 장차 사람과 사람, 사람과 물건을 잇는 5G를 주도하게 된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민간업체인지 정부기관인지 정체가 모호한 화웨이 같은 기업의 5G가 미국과 동맹국에서 통신 인프라로 사용된다면, 자국의 주요 정보를 모두 노출시키게 될 수 있다. 중국 정부로부터 조종받는 화웨이가 유사시에 미국과 동맹국에 깔린 5G 네트워크를 중단시켜 사회 전체를 패닉에 빠뜨릴 수도 있다고 트럼프 행정부는 우려한다.

양국 갈등 속 타이완의 기민한 움직임

 

ⓒAP Photo폭스콘 창립자인 테리 궈(궈타이밍) 회장은 내년 타이완 대선에 나설 예정이다.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미국과 중국을 잇는 공급사슬이 워낙 강고하기 때문이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미국은 과거의 적인 소련과 연간 20억 달러 규모로 교역했다. 현재의 적인 중국과 미국의 교역 규모는 ‘하루’ 20억 달러다. 이 사슬을 서툴게 해체했다간 자칫 양국 사이뿐 아니라 글로벌 차원에서 사람과 기술, 상품과 자본의 흐름을 끊어 세계경제에 엄청난 충격을 줄 수 있다. 이미 한국에서도 가장 중요한 교역 대상국인 미국과 중국이 무역분쟁에 빠져들면서 경제성장률이 2%대 이하로 내려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원화 대비 달러 가격은 줄곧 상승세다. 세계경제가 혼란에 빠지면 달러화 가격이 오르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한국 정부 역시 세계경제가 차이메리카에서 ‘미국-중국 제로섬’ 상태로 이행하는 상황에 미리 대비할 필요가 있다. 이미 움직이는 나라가 있다. 타이완이다. 홍콩의 영자신문인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5월7일)에 따르면, 폭스콘(애플의 스마트폰을 중국 본토에서 조립하는 타이완 국적의 기업) 회장인 테리 궈(궈타이밍)는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 직후 타이베이에서 연 기자회견 때 “미국이 중국과의 임박한 기술전쟁을 준비하면서 미국 자체적인 공급사슬을 창출할 준비가 되었다”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앞으로 무역전쟁이 봉합되더라도 미·중 양국은 첨단 기술 부문의 선두 자리를 둘러싸고 경합할 것이다. 이에 따라 두 나라 모두 엄청난 구조 변동을 겪을 수밖에 없다. 미국은 중국에게 지식재산을 절취당하지 않고 국가 안보를 지키기 위해 공급사슬을 미국 내로 들여오거나 혹은 다른 나라로 빼낼 것이다. 중국 또한 미국의 투자가 철수한 빈자리로 다른 나라의 자금을 끌어들이기 위해 개방을 한층 강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려면 중국 내 시장 역시 좀 더 글로벌 표준에 가깝게 바꿔나가야 한다. 테리 궈 회장은 이런 상황이 타이완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미국의 공급사슬 재구축에 따라 중국에서 빠져나오는 해외 자본을 타이완으로 유치할 수 있다. 타이완은 또한 투자 부족에 시달릴 중국에 투자하고 시장개혁 및 기술발전 정책에 협조하는 것으로 이익을 얻을 수 있다. 테리 궈 회장은 내년 타이완 대선에 야당인 국민당 후보로 나설 계획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타이완 정부 역시 중국에 있는 자국 기업을 본국으로 돌아오게 하는 정책을 추진 중이다. 이 정책으로 52개 기업이 타이완에 90억 달러를 투자하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차이메리카의 해체는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틀림없이 한국 경제에 부정적 충격을 가할 것이다.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 차원의 경제를 감안하면서 중장기적인 글로벌 공급사슬의 변화에 대비하면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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