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학교에서 두 번의 토론 과정을 목격했다. 하나는 우리 학급의 체육대회 입장 행렬을 정하는 토론이었고 다른 하나는 학칙을 개정하는 토론이었다.

체육대회 때, 우리 학교에선 학급별로 공연의 성격을 지닌 입장을 하고 있다. 우리 반 학생들도 체육대회 몇 주 전부터 입장 콘셉트를 정하고 그에 맞는 의상과 음악을 선택해 안무도 구성했다. 중간에 시험 일정도 있었지만 틈틈이 준비했다.

그 과정에서 매우 사소한 것까지도 둘러앉아 토론을 통해 정했다. 어느 시점에 모자를 벗을지, 그리고 다시 쓰는 게 좋은지 아니면 멀리 던지는 게 좋을지 하나하나 정할 때마다 매번 30분 넘게 토론하며 정했다. 학생들 사이에 위계가 없다 보니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었다.

ⓒ박해성


대개 이런 경우 의견이 강한 학생이 자신의 의지대로 이끌려고 하거나 소수 의견을 무시하는 경우도 있어서 연습시간에 담임인 나도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하지만 매번 우려하던 일보다는 놀라운 모습만 목격했다. 의견을 제시할 때 대안도 함께 말했고, 그 대안을 들으며 무시하거나 비판하기보다는 수용하기도 했다. 체육대회를 하며 싸움만 나고 끝나진 않을까 늘 걱정했는데 아주 작은 것까지 함께 정하는 모습이 아름답게 보였다. 매번 토론하며 정하다 보니 많은 시간이 필요했기에 체육대회 전날까지도 오랫동안 남아 있어야 했다. 그 덕분에 체육대회가 끝난 뒤 힘들었다기보다 즐거웠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고 있다.

반면 학교 학칙을 정하는 회의를 보는 것은 즐겁지 못했다. 그동안 학생인권조례가 잘 지켜지지 않는 곳이 많아 올해는 서울시교육청에서 모든 학교가 토론을 통해 자율적으로 학칙을 만들라고 했다. 그에 따라 우리 학교도 얼마 전부터 소위원회가 구성되어 두발, 스마트폰, 교복, 화장과 액세서리 등에 대한 생활지도규정을 토론으로 정하고 있다.

이것이 학생들만의 토론이 아니라 교사, 학부모가 함께하는 방식이다 보니 그 안의 권력 위계만큼 회의 분위기도 경직되어 있다. 교육청에서는 인권친화적인 규칙을 정하기 위해 자율적으로 토론에 임해야 한다고 나름의 규정도 만들어놓았지만 그 규정이 매우 느슨하다 보니 학교장 재량에 의해 진행될 소지가 컸다.

교장 입장 의식할 수밖에 없는 교사위원들

실제로 소위원회에 참여할 교사를 정할 때에 민주적으로 정하기보다는 관련 업무를 하는 교사들로 구성했다. 나는 서울시학생인권위원회 위원이라는 대표성도 있으니 교사위원으로 참여하고 싶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하지만 교사위원을 뽑는 방식은 학교에서 알아서 할 수 있기에 불가하다는 대답뿐이었다. 학교에서 정한 교사가 교감, 생활지도부장, 학년부장이었는데 이는 모두 교장이 임명한 자리다. 심지어 업무분장에 대해 인사위원회의 심의도 제대로 거치지 않은 상태여서 교사위원들은 교장의 뜻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분들로 채워졌다.

교사들에게 개정 절차를 설명하는 시간에도 교장은 소위원회의 구성원도 아니면서 생활지도규정에 큰 변화를 주지 않기 원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며 교사들의 자유로운 의견 제시에 영향을 주고자 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교사위원과 학생위원 간에 자유로운 토론이 가능할까.

두 상황이 물론 완전히 같은 게 아니므로 비교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두 개의 토론 모습을 보며 생각이 많아졌다. 체육대회 날, 공연이 끝난 뒤 학생들의 만족해하는 웃음은 결과보다 그 과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부디 아직 끝나지 않은 학칙 개정 토론의 마지막에도 학생들이 만족해하며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

기자명 이윤승 (서울 이화미디어고 교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