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은 대체로 두 가지였다. 철없다는 시선과 팔자 좋다는 비아냥.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도 30대 후반으로 접어들자 제각각 육아로 바빴다. 억지로 동네 친구를 만들었지만 온종일 아이 얘기만 듣다가 왔다. 대화란 주고받는 것인데 늘 청자였다. 이수희씨(41)와 이용원씨(45) 부부는 아이를 갖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도 사는 지역의 학군과 그 학교의 교사 이름을 외우고 있었다. 그만큼 무용한 만남이었다.

ⓒ시사IN 신선영아이 없는 삶을 선택한 이수희씨(오른쪽)와 남편 이용원씨.


이수희씨는 ‘과업 중심형’ 인간이었다. 생애 주기별 과업을 무난히 해결해왔다. 4년제 대학을 나와 취직했고 부모 도움 없이 독립했다. 한 몸 먹고사는 게 항상 숙제였다. 아이도 마찬가지였다. 간절히 원했던 건 아니지만 30대 중반에 접어들자 주변의 성화가 심해 병원에 갔다. 이상은 없지만 난임이라고 했다. 난임 정보를 공유하는 인터넷 카페는 서로의 고단함을 위로하지만 결론은 ‘다시 싸우자, 임신하자’로 끝났다. 두유와 아보카도를 매일 먹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환자 유치에 혈안이 된 병원은 희박한 성공률을 부풀려 난임 부부들의 근거 없는 희망을 키웠다. 과배란 시술, 다음은 인공수정, 그런 뒤 시험관 시술. 정해진 순서가 있었다. 이수희씨는 병원에서 검사를 받는 순간부터 굴욕감을 경험했다. 실격당한 느낌이었다. 과배란 주사를 맞고 생리통이 심해졌다. 자궁유착과 난소 물혹이 생겼다. 출근길에 식은땀과 코피가 멈추지 않았고 두 달 가까이 하혈을 했다. 매달 시험지처럼 받아드는 임신 테스트기는 늘 한 줄이었다. 해외영업을 하던 이씨는 건강 문제로 회사를 그만두었다.

일을 그만두니 조바심이 났다. 남편과 긴 상의 끝에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심했다. 살면서 늘 해결해야 할 미션이 있었는데 아무것도 없는 상태는 처음이라 멍했다. 지금 생각하니 남편이 출근하며 불안했을 것 같다. 무릎 나온 트레이닝복을 입고 내내 남편만 기다렸다. ‘딩크’ 모임에 갔더니 자발적 딩크냐고 물으며 선을 그었다. 남편 이용원씨도 그를 안타까워했다. 일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었다. 어느 날 퇴근하는데 아내가 집 근처에서 고양이랑 놀고 있었다. “너와 비슷한 친구를 찾아보면 어떨까.” 그가 제안했다.  

아이는 가족의 매개체가 아니다

이씨는 지역 인터넷 카페에 글을 올렸다. ‘아이가 없고 앞으로도 없이 살 텐데, 혹시 비슷한 사람이 있으면 차 한잔 하자’는 내용이었다. 과연 반응이 있을까 의아했는데 300여 명에게서 연락이 왔다. 오프라인 모임을 열었는데 초반에 20~30명이 왔다. 따로 인터넷 카페를 만들었고 현재 회원만 450명이다.

아이 없는 부부가 생각보다 많았다. 안 보일 뿐이었다. 아이를 좋아하지 않아서, 건강 때문에, 난임으로, 둘이 행복하려고, 경제적인 문제 등 다양한 이유에서 ‘무자녀 가족’으로 살아간다. 그중에서도 경제적 문제가 특히 컸다. 두 사람도 아이를 낳을지 말지 1년간 고민했다. 대출금 등 경제적인 부분도 고려해야 했다. IMF 세대라 학창 시절 경제 문제로 해체되는 가정을 많이 봤다. 그때의 경험이 인생에 영향을 미쳤다. 임신 과정도 까다로웠고 그렇게까지 할 건 아니라는 결론이었다.

임신의 어려움에 직면한 난임 부부도 많았다. 지인 중 시험관 시술만 열 번을 한 사람도 있었다. 가족 중 누구도 그에게 그만둬도 된다는 말을 안 했다고 했다. 이수희씨 부부같이 아이 없이 살기로 결심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이제 그만둬도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마음을 놓으면서 부부관계가 회복되고 마음이 편해졌다. 이수희씨는 친구들의 어두운 표정이 바뀌는 걸 목격했다.

이용원씨와 이수희씨는 각각 서른여덟, 서른넷에 결혼했다. 아이가 있으면 좋겠지만 아이를 가지려고 결혼한 건 아니다. 이용원씨는 “행복하게 살려고 결혼했다”라고 말했다. 2011년 결혼한 두 사람은 지금도 가끔씩 크게 다툴 때가 있다. 각각 SF 장르와 일본 드라마를 좋아하는 등 취향도 다르다. 걷는 속도도 마찬가지다. 남편이 천천히 걷는다고 하는데도 차이가 난다. 아이가 없을 뿐 사는 모습은 평범하다. 이수희씨는 말한다. “애가 있으나 없으나 내가 사는 것이다. 내가 바로 서 있어야 상대와 동등하게 대화할 수 있다.”

이수희씨는 아이 없는 사람들을 인터뷰해 지난해 책을 냈다. 〈엄마가 아니어도 괜찮아〉가 출간된 이후 출판사로 전화해 울면서 작가의 연락처를 알려달라는 사람도 있었다. 지금 세대는 아이를 두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용원씨 역시 혈육이라고 해서 가족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고등학교 때 부모의 이혼을 겪으며 실감했다. 아이를 매개체로 가족이 되는 게 아니고 평생 같이하고 싶은 마음이 들면 그게 가족이다. 이수희씨는 책에서 말한다. ‘임신이 축하받아 마땅한 일이라면 심사숙고 후 선택한 아이 없는 삶도 이해와 지지를 받을 가치가 충분하다.’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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