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대여성인권센터 사이버 또래 상담원인 김씨는 매일 트위터·페이스북 등 SNS와 ○톡·○챗·○팅 같은 랜덤 채팅 앱, 개인방송까지 50개 이상의 채널을 모니터링한다. 혹시 모를 위기 청소년을 위해 ‘핫라인’ 메시지를 심어두고, 성매매 정황이 포착된 채널을 갈무리해 구글플레이 스토어나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에 신고한다. 김씨 외에도 일곱 명이 십대여성인권센터 상담실을 지킨다. 김씨는 4월25일 하루에 대략 300여 개 핫라인 메시지를 보냈고, 30건 답장을 받았다. 조건만남을 그만하겠다고 했더니 불법 촬영된 사진을 유포하겠다고 협박을 받고 있다며 도움을 요청하는 내용이 주였다. 이런 식으로 사이버 상담을 진행한 횟수는 2018년 한 해 2929건. 이 중 19세 이하 청소년이 828명이다.
이 828명이 처한 상황은 우수명 교수(대림대학교 사회복지학과)의 논문 ‘사이버 상담 분석으로 본 채팅 앱 매개 청소년 성매매 현황’에서 구체적으로 확인된다. 상담을 요청한 이들의 평균연령은 만 16.75세로 99.5%가 여성이었다. 이 중 성매매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97명(11.7%)이었다. 696명은 아예 응답을 하지 않았다. 우 교수는 쉽게 말하기 어려운 경험인 만큼 응답을 회피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성 구매 남성과 일대일로 만나는 개인형 조건만남이 39명(68.4%)으로 가장 높았고, 알선자·매개자 등의 연결을 받아 성 구매 남성을 만나는 조직형 조건만남은 11명(19.3%)이었다. 노출 사진, 자위 영상 등을 판매해 대가를 받는 방식으로 이뤄지는 성매매를 경험한 사람은 7명(12.3%)이었다.
성인 인증 없고, 퇴장 시 대화 내용 자동 삭제
채팅방은 낮보다는 주로 심야 시간대에 활발해진다. 십대여성인권센터의 상담원들은 한 달에 한 번씩 저녁 11시30분까지 심야 상담을 한다. 요즘 주시하는 화상채팅 앱은 최근 10대들 사이 유행하고 있는 ‘아○○’라는 화상채팅 앱이다. 무작위로 걸리는 사람과 화상채팅을 할 수 있다. 이곳에서 화상채팅을 하다가 상대방 남성에게 몰래 찍힌 신체 사진으로 협박을 당했다는 피해 상담 사례가 속출했다. “갑자기 야한 말을 하거나 성기 노출을 할 수도 있으니 청소년처럼 보이는 계정을 발견하면 그럴 땐 꼭 신고를 하라고 일러줘요. 그런데 이미 절반 이상이 그런 일을 경험했다고 하더라고요.”
이외에도 상담원들이 모니터링하는 앱은 기자에게도 대부분 낯선 채팅 앱들이었다. 김씨의 도움을 받아 ‘○챗’을 다운받았다. 안드로이드 기반 핸드폰은 지난 4월부터 성인 인증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iOS 기반 핸드폰(아이폰)은 아직 별도 인증 절차가 없다. 프로필에 ‘미성년자’임을 적어넣은 계정을 만들자마자 폰이 울리더니 5분 만에 메시지가 수십 개 쏟아졌다. ‘용돈 필요해?’ ‘어디 살아?’ ‘고민 상담 해줄게.’ 메시지를 보낸 이는 20대부터 40대까지 다양했다. 조건만남을 제안하는 한 대화 상대방에게 미성년자임을 다시 한번 밝히자 “비밀을 유지하면 상관없다. 용돈을 주겠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김민정씨는 “채팅 앱을 모니터링하다 보면 성 구매를 위한 용도로 만든 게 아닌가 생각이 들 때가 많다”라고 말했다. 증거 화면으로 남기려고 다시 접속하자 채팅방이 사라졌다. 한쪽이 나가면 대화 내용이 자동 삭제되는 기능이 있었다. 대화 내용을 캡처하는 기능도 제한돼 있다. 조진경 십대여성인권센터 대표는 이 같은 채팅 앱이 성 매수자들에겐 안전한 공간이라고 말했다. “단속이나 신분 노출 위험 없이 성 매수자들이 채팅 앱을 통해 십대의 성을 구매하고, 채팅 앱은 상업적 이익을 얻고 있어요. 이런 게 ‘사이버 포주’ 아닌가요?”
최근에는 모니터링해야 할 채널이 더 늘었다. 유튜브와 개인방송 애플리케이션이 확산되면서 피해도 커졌다. 김민정씨는 녹화 프로그램을 켜놓고 BJ가 노출을 하거나 성행위를 묘사할 때, 성매매를 유인하는 정황이 있을 때 버튼을 누른다. 댓글 창도 수시로 확인해야 한다. 10대 여성 BJ의 경우 별풍선을 주며 ‘전화번호 알려줘’ ‘저 옷 입고 돌아봐’ ‘다리 보여줘’ 등의 요구를 하는 댓글이 많이 달린다. “인기 BJ가 하는 방송에 게스트로 여성 청소년들이 나오는 경우도 있어요. 남성 BJ가 성교육을 한다는 명목으로 성희롱을 하고, 허리 치수를 잰다며 스킨십을 하기도 해요. 출연료로 문화상품권을 주더라고요.” 개인방송을 모니터링하는 시민단체 ‘클린 UCC’ 유영기 대표는 “그런 식으로 찍힌 영상은 당사자 동의 없이 다른 방송 채널에 유출되거나 이후에 협박의 근거로 사용되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현행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만 13세 이상의 아동·청소년들이 조건만남을 통해 성매매 대상이 됐을 경우 ‘대상 아동·청소년’으로 분리해 보호처분을 내린다. 즉, 미성년자가 자발적으로 애플리케이션에 접속해 성매매에 가담한 것으로 본다. 성폭력 피해자인 ‘피해 아동·청소년’과 구분하는 것이다. 성 매수자와 알선자들은 이 점을 이용해 신고를 하지 못하도록 협박을 일삼는다. 조진경 대표는 “청소년을 ‘대상’과 ‘피해’로 구분할 게 아니라 성 구매자를 강하게 처벌해야 아이들을 보호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네 잘못이 아니야. 너는 누구보다도 소중한 사람이야.’ 십대여성인권센터로 들어가는 입구 벽면에는 포스트잇 수백 장이 붙어 있다. 지난해 11월 성 착취 피해 아동 청소년들의 작품 전시회를 방문했던 관람객이 쓰고 간 응원 메시지들이다.
김민정씨가 다시 상담원들이 공용으로 쓰는 휴대전화를 들었다. ‘홍보용’이라고 이름 붙은 폴더 안에 30개가 넘는 채팅 애플리케이션이 담겨 있다. “본인 인증 절차만 미리 만들어졌어도 그 많은 아이들이 피해를 보지 않았을 텐데.” 그가 한숨을 크게 쉬었다. 자극적인 성매매 광고를 지나, ‘가출팸’ 채팅방을 건너 김씨는 지금도 핫라인 메시지를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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