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동네북이 되었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실패가 마치 한국 정부 탓인 양 비판이 쏟아지더니, 4월11일 한·미 정상회담에 대해서도 쓴소리가 드세다. 주장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전략도, 준비도 없이 성급히 한·미 정상회담을 개최했다가 패착을 맞았다는 것이고, 둘째는 제재 완화 운운하며 북한 입장만 옹호하다가 한·미 동맹에 금이 갔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문재인 정부가 자존심을 손상케 하는 대미, 대북 외교를 전개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어느 것도 동의하기 어렵다.
문재인 정부의 전략은 분명하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미국의 ‘빅딜’과 북한의 ‘스몰딜’ 사이의 충돌 때문에 무산됐음을 감안해 그 절충안을 대안으로 제시한다는 것이다. 미국이 원하는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일괄타결과 포괄적 합의, 북한이 원하는 점진적 이행, 특히 이행에 대한 로드맵과 시간표를 마련하자는 게 우리 정부가 제시하는 큰 그림이다.
과연 현 시점에서 다른 대안이 가능할까. 일방적 핵무장 해제를 전제로 하는 빅딜을 평양이 수용할 가능성은 전무해 보인다. 반대로 미국이 영변 핵시설 해체를 조건으로 2016년 이후 유엔이 결의한 대북 제재를 모두 철회하는 조치에 동의할 리도 만무하다. 가능한 것은 그 절충안인 ‘충분히 괜찮은 딜(good enough deal)’뿐이다. 이를 두고 한국 정부에 전략과 대안이 없다고 비판하는 이들은 어떤 전략과 대안을 말하는 것일까.
하노이 정상회담 이후의 상황 전개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 톱다운 방식의 대화를 지속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는 점이다. 빅딜과 ‘완전화 비핵화 이전에는 제재 해제 불가’라는 원칙을 천명하면서도 스몰딜의 가능성을 언급하며 식량 원조 등 인도적 지원 허용 의사를 밝힌 것도 한국 측의 절충 요구를 일부나마 수용한 결과가 아닌가 한다.
비판자들은 이렇듯 절충안을 만들려는 정부의 시도를 제재 완화로 폄하하면서 ‘김정은 대변인 역할’ 혹은 ‘한·미 동맹 위해 행위’로 치환한다. 제재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비핵화를 위한 수단이다. 지난해 11월 이후 문재인 정부는 북한이 영변 핵시설의 완전한 영구 폐기와 같이 ‘불가역적 단계의 비핵화’ 조치를 구체적으로 취할 경우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사업 재개 등 남북한 경제교류협력 정도는 예외로 인정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시각을 내비쳐왔다. 물론 이후에 북한이 비협조적인 태도로 돌아서면 얼마든지 철회(snap back)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제재 지속하면 언젠가 북한이 무릎 꿇는다고?
끊임없이 제재를 지속하기만 하면 언젠가 북한이 무릎을 꿇을 것이라는 무모한 제재 만능주의가 더 나은 대안인가. 가능한 절충안을 만들어내려는 노력을 모두 포기하고 제재가 북한 경제를 붕괴시키기만을 앉아서 기다리는 게 현명한 대안이라는 뜻인가. 그 과정에서 벌어질 수 있는 모든 리스크를 무시하는 게 과연 책임 있는 정부의 태도라는 말인가.
내친김에 ‘2분 단독 정상회담’이라는 프레임으로 국격을 거론하는 주장도 따져보자. 오찬 겸 확대 정상회담, 그 앞의 소규모 확대회의 등을 통해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은 물론 배석한 폼페이오 국무장관이나 볼턴 국가안보보좌관과 심도 있는 얘기를 나누었다는 사실은 이미 공개돼 있다. 이를 모두 무시하고 굳이 ‘2분짜리 회담’이었다고 폄하하겠다면, 정작 비난받아야 할 것은 정중하지 못했던 미국 측이지 어떻게든 기회를 찾기 위해 태평양을 건너간 우리 대통령이 아니다.
비난하기는 쉽다. 난제를 해결하고자 다양한 대안을 궁리하고 제안하는 노력을 ‘김정은 대변인’ 정도로 공격하는 말도 누구나 할 수 있다. 어려운 일은 실제로 작동 가능한 방안을 만들고, 명분과 실리를 동시에 추구하며 이해 관계자들을 하나하나 설득해 국익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다. 손쉬운 비난과 거친 폄훼 대신 상식과 순리라는 전제 위에서 나온 비판, 정교하게 만들어진 정책대안을 우리 정치권에 기대하기란 정말 무망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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