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리비아에 취재하러 갔을 때의 일이다. 광업도시로 유명한 포토시(Potosi)의 골목길을 걸어가다가 한 떼의 어린아이들과 마주쳤다. 선생님 손에 이끌려 나온 것이 분명한 아이들은, 어떤 기념일을 맞아 피켓이며 깃발 따위를 들고 있었다.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며 길을 따라 행진했다. 가이드가 아이들이 든 손팻말에 쓰인 글귀를 통역해주었다.

“칠레 대통령님! 우리의 바다를 돌려주세요!” 이 기념일의 이름은 ‘바다의 날’. 해마다 3월23일이 되면, 내륙국인 볼리비아 전역에서 바다를 그리는 사람들의 행진을 볼 수 있다. 여기서 바다는 당연하게도, 태평양이다.

내륙국 볼리비아의 해군, 티티카카 호수에 주둔

ⓒ탁재형 제공‘바다의 날’에 행진하는 볼리비아 어린이들.

볼리비아는 사면이 다른 나라와의 국경선으로 둘러싸인 내륙국이지만 엄연한 해군 보유국이다. 해군은 현재 안데스산맥의 고산 호수 티티카카에 주둔하며 호수와 강을 무대로 하는 마약 거래를 단속한다. 이들은 언제나 태평양으로 돌아갈 날을 꿈꾼다. 칠레에 의해 해안선이 봉쇄되고 바다에 면한 영토를 잃어버린 1883년 이전으로 되돌아갈 날을 꿈꾸며, 오늘도 파란 해군기를 달고 티티카카를 누빈다.

페루와 칠레의 서해안(과거 볼리비아의 영해였던 곳을 포함하는)은 예부터 어족 자원의 보고였다.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플랑크톤의 사체가 해류를 타고 떠오르기에, 이것을 먹고 사는 물고기들의 먹이사슬이 탄탄하다. 이 생선을 주식으로 삼는 가마우지와 펠리컨도 3억 마리 넘게 모여든다. 이 새들이 만들어내는 또 하나의 보물이 있다. 바로 ‘구아노’다. 구아노는 다름 아닌 새똥이다. 가끔 차 유리 위에 떨어져 엉겨붙는 흰색 배설물과 동일한 성분이다. 몇억 마리의 바닷새가 수만 년 동안 배설한 것이 쌓이고 쌓여 거대한 산을 이루고 있다. 이것은 인간이 공기로부터 질소를 화학적으로 분리해내는 방법을 알기 전에는 세계에서 유일한 고농축 질소비료였다. 볼리비아와 가까운 태평양 연안에는 이러한 구아노로만 이루어진 섬이 여럿 있다.

18세기 말엽, 구아노는 지금의 석유를 능가하는 가치를 지닌 자원으로 떠올랐다. 당시 태평양에 면한 볼리비아의 해안 지역(안토파가스타 지역)에서도 구아노와 비슷한 성분을 지닌 초석과 은이 대량으로 발견되었다. 볼리비아 정부는 칠레 기업들에게 무관세 혜택을 제시하며 이 지역에 들어와 개발을 촉진해줄 것을 부탁했다. 하지만 볼리비아와 동맹을 맺고 있던 페루의 경제사정이 나빠지면서, 페루가 먼저 자국의 구아노를 국유화하는 조치를 발표했다. 이에 영향을 받은 볼리비아는 안토파가스타 지역에 대한 정부의 장악력을 확실히 하려는 목적으로, 자국 내에서 활동하던 칠레 기업에 거액의 세금을 부과하고 종국에는 재산을 압류하기에 이른다.

칠레 처지에서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문제였다. 자신들의 능력이 달린다며 개발하는 것을 도와달라던 때는 언제고, 고생 끝에 성과를 만들어놓았더니 날로 집어삼키려는 볼리비아가 괘씸하지 않을 수 없었다. 페루와 볼리비아는 비밀리에 군사 동맹을 맺었기에 병력 면에서는 우세했지만, 칠레 뒤에는 막대한 자금력과 전쟁 경험을 가진 영국과 프랑스가 있었다. 영국과 프랑스는 페루가 구아노를 국유화해 더 높은 가격을 매기는 것이 못마땅했다. 자국 기업 보호를 목적으로 볼리비아 영토로 진격해 들어가는 칠레를 지원한다면, 당연히 볼리비아의 ‘형님 나라’라 할 페루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을 터였다.

1879년부터 시작된 전쟁의 결과는 해전에서 페루 해군을 전멸시키고 볼리비아 해안 지역을  따라 페루까지 치고 올라간 칠레의 대승이었다. 칠레는 이때 점령한 지역의 영유권을 주장했다. 볼리비아가 태평양으로부터 유리된 내륙 국가로 전락하고 만 것은 이때부터다.

기자명 탁재형 (팟캐스트 〈탁PD의 여행수다〉 진행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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