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10개월 남았어.” 주간 근무를 마치고 회사 동료들과 이른 저녁을 먹었다. 일에 적응하느라 힘든지 입술이 상해 있었다. 10년 만에 쌍용차에 복직한 형님이 둘러앉은 사람들 하나하나에게 차례로 동태탕을 떠주며 말을 이었다. “열심히 한다고 시간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있는 시간이라도 알차게 보내야지.” 나도 모르게 얼굴이 어두워졌나 보다. “야 그런 표정 짓지 마, 괜찮아. 복직 못하고 정년 맞은 형들도 있는데 뭘 그러냐.” 토막 난 시간이 좀처럼 이어 붙여지지 않았다. 10년 만의 복직인데 이제 3년도 채 남지 않았다니.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차마 꺼내지 못했다. 쌍용차 복직자들은 고령이 많다. 정년 60세를 한두 해 남겨둔 이들도 있고 5년 안에 공장을 떠나야 할 사람도 많다. 8년 뒤면 거의 모든 복직자가 정년을 맞는다. 싸웠던 시간보다 남은 회사 생활이 더 짧다.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 시대에 정년 타령이라니. 고용률이 떨어지고 청년실업과 고용절벽의 시대에 정년까지 다닐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란 얘기도 자주 듣는다. 복직자들은 그래서 냉가슴만 앓는다.  
 

ⓒ윤현지 그림


2월2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수영장에서 사망한 4세 어린이의 가족이 수영장 운영업체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가동연한(노동연한)을 만 65세로 인정했다. 이 판결로 그동안 육체노동자의 노동연한을 60세로 본 그간의 통념이 깨졌다. 30년 만이다. 노동연한이란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다고 인정되는 시점의 육체적 나이’다. 그러니까 육체노동자의 노동연한이 60세가 아니라 65세까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나라별로도 차이가 있다. 미국의 경우 65세, 영국은 72세, 독일은 67세, 일본은 67세로 한국보다 높다. 노동연한은 직업에 따라서도 달랐다. 변호사·법무사·목사는 70세, 소설가·의사·약사는 65세, 택시운전사 60세, 목공·기술사·보험모집인 60세, 미용사 55세, 프로야구 선수는 40세였다.

복직자들이 술렁였다. 당장 정년이 늘어나는 것도 아닌데 정년 연장 얘길 자주 꺼냈다. 그러나 이들의 정년이 연장되기까지는 물리적 시간이 길다. 국민연금 수령 시기 문제를 비롯해 각종 비용의 증가를 따져야 하기 때문인데, 그사이 이들의 정년은 끝난다.

남북 합작 자동차 회사가 북에 들어선다면…

해고 기간에 많은 일을 벌였다. 손해배상 금액 47억원을 갚겠다며 1000원짜리 김밥을 말아 팔기도 했고, 반드시 복직하겠다며 차량 10대를 밧줄에 연결해 평택과 서울 시내를 소가 되어 끌어보기도 했다. 경찰과 싸워도 봤고 항의도 했다. 높은 곳에서 고공 농성을, 낮은 바닥에서 천막 농성을 가리지 않고 했다. 구속도 되고 연행도 되었으며 월급보다 벌금을 더 자주 받았다. 그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일은 자동차를 직접 만든 일이다. 해고자들이 자동차를 조립한 것이다. 2만 개 부품을 일일이 조립할 순 없었지만 연장을 들고 녹슨 손을 움직여 번듯하게 자동차를 조립해낸 일만은 잊히지 않는다.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자동차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형님이 뜬금없는 말을 꺼냈다. “무슨 말이에요?” “자동차 조립 기술이 어려우니까 북한에 조립 노하우를 전수해줄 수 있지 않겠냐고.” 북한은 2001년 쌍용차 ‘체어맨’을 조립해서 ‘준마’라는 자동차를 만든 경험이 있다. 남북 교류와 경협이 순조롭게 이뤄진다면 남북 합작회사가 평양에 들어설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쌍용차 복직자 가운데는 자동차 정비나 검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이 대부분이다. 자동차 장인이라는 자부심이 남다르다. 정년 연장이 시간의 연장만이 아닌 물리적 공간의 연장으로 이어지고 고통과 아픔의 확장으로 이어진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오랜 아픔이 숨어 있는 쌍용차 복직자들의 정년이 공간을 뛰어넘어 뿌듯한 성취와 화합의 기회로 연장되기를 기대한다.

기자명 이창근(쌍용자동차 노동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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