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북극곰의 눈물’은 필요치 않다. 올여름 사상 최악의 폭염과 기록적인 홍수는 우리가 북극곰처럼 벼랑 끝에 서 있음을 깨닫게 했다. 멀게, 그리고 뿌옇게 느껴졌던 기후변화가 전 세계와 일상을 파국으로 몰고 갈 수 있음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올여름 ‘기상이변’은, 어쩌면 기후변화를 체감하게 한 고마운 현상일지 모른다.

SNS에서 기후변화 이슈는 공감을 부르는 이야기다. 포털사이트 주요 이슈 난에는 ‘지구온난화 가속화’ ‘파리기후협약’ 같은 카테고리가 등장했다. 여름 이후 댓글이 수백 개씩 달린다. 몇 년 전만 해도 크게 관심 없던 이슈들이다.

이제 더 이상 “겨울철에 이렇게 추운데, 무슨 지구온난화야”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지구온난화가 도대체 어디 있습니까? 저는 지금 얼어 죽을 것 같습니다. 춥네요!”라고 말한 도널드 트럼프만 빼고(2016년 겨울 대선 후보 당시 뉴욕 유세).

ⓒAP Photo그린란드 일룰리사트의 빙하 해빙 현장. 얼음 녹은 물이 모여 긴 호수가 형성되었다.

사람들이 유독 민감하게 반응한 기사가 있었다. ‘북극 최후의 빙하’가 녹고 있다는 뉴스였다. 인류가 빙하 관측을 시작한 이래 여름에도 한 번도 녹은 적 없는 그린란드 북쪽, 캐나다 북쪽 빙하가 처음으로 녹기 시작했다는 소식이었다. 30년 전과 비교해 이미 여름철 기준 빙하 면적이 4분의 1로 준 상태에서 수만 년 동안 버텨온 최후의 빙하마저 녹고 있다는 소식은 기상학자들마저 경악하게 했다.

김백민 극지연구소 북측해빙예측사업단 책임연구원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2030년이면 여름철 북극 빙하가 전부 녹을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내놓았다. 빙하가 녹으면 어떻게 될까. 최악의 경우 기온이 훨씬 낮은 남극 빙하까지 녹을 경우 해수면이 몇 미터씩 상승하면서 해안도시가 수몰될 수도 있지만, ‘다행히’ 재앙은 그보다 훨씬 빨리 찾아온다.

문제는 ‘제트기류’다. 빙하가 사라지면 북극 공기는 따뜻해진다. 따뜻해진 공기는 상공 9~16㎞에 있는 제트기류를 불안정하게 만든다. 빠르게 도는 제트기류는 북극의 찬 기운과 남쪽의 따뜻한 기운이 섞이지 않게 막아주는 구실을 한다. 이 차단막이 깨지면, 이른바 기상이변이 찾아온다.


지난해 겨울에는 북극 지방 제트기류가 약해지면서 찬 기운이 밀려와 한반도에 한파가 닥쳤다. 올여름에는 반대로 북극의 제트기류가 평소보다 강해지면서 찬 공기가 남하하는 것을 막았다. 반면 중위도 지역 제트기류가 느려지면서 대기가 정체돼 폭염이 기승을 부렸다. 물론 내년에는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 어느 해 여름에는 기록적인 폭우와 태풍이, 그 이듬해에는 최악의 가뭄이 올 수도 있다.

온난화로 인한 해수 온도 상승은 상상을 초월하는 강력한 태풍을 자주 발생시킨다. 2012년 미국을 쑥대밭으로 만든 허리케인 샌디, 2013년 필리핀에 수만명의 이재민을 발생시킨 슈퍼 태풍 하이옌, 2015년 인도 첸나이에 닥친 100년 만의 홍수, 그리고 최근 일본을 강타한 태풍 제비···.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든 국가와 도시가 기후변화에 따른 기상이변에 시달리는 중이다.

미국 해양대기청(NOAA)이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은 기록 측정을 시작한 1880년 이래 네 번째로 더운 해로 기록될 전망이다. 가장 더웠던 해는 2016년, 그다음으로 2015년, 2017년 순서다. 지난 138년 동안 최근 4년이 가장 더웠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 기록은 앞으로 계속 경신될 가능성이 높다.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과학자들

기후변화를 이해하는 데는 두 가지 사실만 알면 된다. 첫째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는 열을 가둔다. 둘째 인간은 화석연료를 태우는 행위 등으로 점점 더 많은 이산화탄소를 방출해왔다. 즉 인간이 기후변화의 주범이라는 것이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IPCC)’ 역시 인간이 배출하는 온실기체(이산화탄소 등)가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주요 원인이라고 이미 2007년에 지적했다.

하지만 인간이 지구온난화를 일으킨다는 ‘사실’은 오랫동안 아주 강력하게 부정되었다. 일부 과학자들은 기후변화에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 대기과학과 교수 마이클 만과 〈워싱턴포스트〉 시사만평가 톰 톨스가 함께 쓴 〈누가 왜 기후변화를 부정하는가〉, 하버드 대학 과학사 교수인 나오미 오레스케스 등이 쓴 〈의혹을 팝니다〉에 이런 과학자들의 면면이 자세히 소개됐다.

ⓒAFP PHOTO전 세계 195개국이 2015년 12월12일 프랑스 파리에서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를 열어 ‘파리기후협정’에 합의했다.

기후변화 부정론자들의 반격은 지구온난화를 방지하기 위한 교토의정서가 채택된 1990년대부터 본격화했다. 먼저 깃발을 든 이는 프레드릭 사이츠라는 물리학자다. 그는 미국 최고의 과학기관으로 평가받는 국립과학원장을 지낸 인물이다. 그는 1998년 교토의정서를 저지하기 위한 청원운동에 자신의 이름을 걸었다. 사이츠는 국립과학원이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자신의 논문을 받아들인 것처럼 행동했다. 하지만 소식을 접한 국립과학원이 그의 주장을 정면 반박했다. 청원운동도 엉터리였다. 한 학술지가 서명한 과학자들을 분석한 결과 상당수가 세상을 떠났고, 심지어 텔레비전 시리즈 주인공까지 끼워넣었다.

버지니아 대학 환경과학과 교수를 지낸 프레드 싱어는 로저 르벨이라는 동료 과학자를 팔아먹었다. 르벨은 화석연료가 온실가스 농도를 높인다는 연구를 발표하는 등 기후과학에 핵심 근거를 제공한 학자다. 학창 시절 앨 고어에게 환경운동의 영감을 준 인물이기도 하다. 르벨이 말년에 병마와 싸우는 틈을 타 싱어는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논문의 공저자로 그의 이름을 올린다. 물론 르벨 자신은 알지 못했다.

뒤를 이어 수많은 기후변화 부정론자들이 나타났다. 대표적 인물이 덴마크의 통계학자인 비외른 롬보르다. 그가 2001년에 펴낸 〈회의적 환경주의자〉는 커다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는 삼림 면적의 변화, 멸종위기종 통계 등을 통해 지구환경이 파괴됐다는 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당시 그의 주장은 국내 언론에서도 크게 다룰 만큼 충격적이었지만, 이후 일부 수치만을 이용해 사실을 왜곡했다는 반박에 직면했다. 예컨대 삼림 면적 통계의 경우 수종이나 수령 등을 고려하지 않고 반영했다는 것이다. 수백, 수천년 된 아마존 열대우림과 북반구 어느 지역을 동일하게 비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미국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인 마이클 크라이턴도 2004년 〈공포의 제국〉를 출간하면서 ‘전쟁’에 뛰어들었다. 그는 환경운동가들을 기후 재앙을 이용해 돈을 벌려는 탐욕스러운 ‘장사꾼’으로 묘사했다. 이 작품에서 환경운동가들은 기후 재앙이 일어나지 않자 인공 해저 폭발로 쓰나미를 일으키려 하는 등 악행을 서슴지 않는다.


‘기후 게이트’가 터진 적도 있다. 2009년 영국의 기후변화연구소 이메일 해킹으로 불거진 사건이다. IPCC가 발표한 보고서 가운데 “히말라야 빙하가 2035년 사라질 수 있다”라는 대목이 왜곡됐다는 논란이다. IPCC도 이 내용에 오류가 있음을 시인했다. 하지만 이 내용은 수천 쪽짜리 보고서 가운데 딱 한 쪽이었다. 기후변화 전체를 부정하기에는 미흡했다. 기후변화 부정론자들은 대대적인 공세를 펼쳤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의 공세는 이후 마이클 만, 나오미 오레스케스 등이 기후변화 부정론자의 행태를 비판하는 책을 쓰게끔 만든 계기가 되기도 했다.

마이클 만은 〈누가 왜 기후변화를 부정하는가〉에서 “기후변화 부정론자들은 화석연료 업계에서 후원금을 받은 수많은 기관 또는 어용단체들과 제휴를 맺고 그들로부터 돈을 받는다. 기후변화 논쟁에서 누가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 기록해두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기후변화 예측이 100% 완벽하지 않다고 해서 이를 근거로 그 위협을 통째로 부정하는 이들을 역사가 잊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최종 시한 2035년

최근엔 ‘2035년’이라는 데드라인까지 나왔다. 최근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대학 헨크 데이크스트라 박사 연구팀은 인류가 재생에너지 사용을 늘리고 온실가스 방출을 줄여 지구온난화 방지 노력을 시작할 수 있는 시점을 산정한 결과 2035년이 한계점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사실 2035년도 후하다. 2035년은 인류가 매년 2%씩 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려나간다고 전제할 때, 이를 시작할 수 있는 최종 시한을 뜻한다. 2017년 인류가 사용한 재생에너지 비중이 3.6%라는 점을 감안하면, 매년 2% 증가는 매우 힘겨운 수치다. 데이크스트라 교수는 “‘최종 시한 제시’가 정치인들이 행동에 나서게 하는 자극이 되길 바란다. 파리기후협정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시간이 매우 적다”라고 말했다.

앨 고어가 출연한 〈불편한 진실 2〉가 지난해 개봉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 영화에서 인상적인 장면이 있다. 2015년 파리기후협정을 앞두고 앨 고어는 인도 정부 각료를 만난다. 재생에너지 사용량을 늘려달라는 고어의 제안에 인도 에너지부 장관은 이렇게 답한다. “인도도 150년 뒤에는 그렇게 할 겁니다. 풍부한 화석연료로 기반시설을 세워서 1인당 국민소득이 5만~7만 달러가 된 후에 말이죠. 미국이 150년 동안 그렇게 탄소를 배출했죠.”

여기에 기후변화 문제의 어려움이 있다. 2017년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이산화탄소 배출량 상위 10개국은 중국, 미국, 인도, 러시아 순이다. 일본, 독일에 이어 한국도 7위에 올랐다(41쪽 표 참조).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최신작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서 기후변화는 개별 국가나 민족이 아닌 전 지구적 차원에서밖에 해결할 수 없다며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재활치료에 들어가야 한다. 내년이나 다음 달이 아니라, 오늘 말이다. ‘여보세요, 저는 호모 사피엔스인데요, 화석연료 중독입니다.’”

이 중독을 당장 끊지 않는다면, 하라리의 말처럼 북극곰과 함께 호모 사피엔스도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기자명 이오성 기자 다른기사 보기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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