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8일 결국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국가 안보를 이유로 철강과 알루미늄 수입에 대해 각각 25%와 10% 관세 부과에 서명했다. 이 조치가 각국의 보복관세와 세계적인 무역전쟁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유럽연합(EU)은 이에 대응해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는 물론 미국산 청바지, 위스키 등에 대한 관세 부과를 천명했다. 중국은 미국 국채 매입 축소를 운운하며 반발했다.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는 선거운동 때부터 예고되었다. 그는 선거운동 기간에 세계화와 이민자 유입이 미국인의 일자리를 빼앗아갔다며 중국 수입품에 45% 관세를 부과하고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설치하겠다는 등 반(反)세계화를 외쳤다. 러스트벨트라 불리는 쇠락한 공업지대의 하층 백인 노동자들에게 열광적 지지를 받은 것이 당선에 결정적 구실을 했다. 이번 관세도 11월 중간선거를 고려한 정치적 결정으로 보인다.
데이비드 오터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 경제학과 교수 등의 연구에 따르면, 중국 제품 수입으로 인해 1999~2011년 미국 일자리가 최대 240만 개나 사라지고 임금도 악영향을 받았다. 주류 경제학계는 지난 30년 동안 불평등 심화의 주된 요인이 기술 변화라고 주장해왔지만, 최근 실증 연구들은 세계화에 상당한 책임이 있다고 인정하는 셈이다.
세계화가 경제 전체적으로 삶의 질을 높여준다 해도 그 과정에서 승자와 패자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무역개방도가 높은 선진국일수록 사회복지를 포함한 정부지출 비중도 크다. 그러나 미국은 정부의 이런 기능이 매우 부실했다. 1970년대 이후 무역개방도가 2배나 높아졌지만 정부지출 비중은 유럽과 반대로 오히려 낮아졌다. 1980년대 이후 미국 정치는 부자들에게 장악되었고 미국은 세계화의 패자를 감싸안는 데 실패해 이들의 불만과 분노가 크게 높아졌다.
역사를 돌아보면, 2차 대전 이후 세계경제는 국제적으로 자유무역과 자본 이동의 규제 그리고 국내적으로 재분배와 복지국가로 대표되는 이른바 배태된 자유주의 질서가 작동해왔다. 이 자유주의 질서는, 1980년대 이후 자본 이동 자유화로 약화되었지만 여전히 국제 시스템의 기초였다. 지금은 부자와 기업들만 살찌운 세계화에 대한 노동자들의 반란이 트럼프로 상징되는 포퓰리즘의 발흥으로 이어졌다. 자유주의 국제 질서와 세계화의 앞날마저 위협받고 있다.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가 미국 노동자들에게 도움이 될 리 없다. 철강 수입에 대한 관세가 8만4000여 명에 이르는 ‘철강 직접 생산’ 기업의 노동자들에게 단기적으로 이익이 될지는 모르지만, 철강 제품 가격을 상승시켜 그것을 사용하는 산업의 수백만 노동자에게 피해를 끼칠 것이다. 또한 다른 산업들도 보호무역을 요구하여 경제 전체의 무역장벽을 높이거나 무역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 폴 크루그먼 등 유수한 경제학자들은 보호무역주의가 국제무역을 축소해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무역적자가 심각한 미국에 좋은 것이고, 이기기 쉽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부과를 추진하면서 ‘무역전쟁은 무역적자가 심각한 미국에 좋은 것이고, 이기기 쉽다’라는 트윗을 날렸다. 미국 무역적자(2017년 5680억 달러)를 거시경제적으로 분석해보면, 미국 민간 및 정부가 벌어들이는 것보다 더 많이 지출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당연한 결과다. 한편 트럼프의 감세 정책은 재정적자를 확대하고 국내 지출을 자극하여 무역수지 적자를 더욱 심화시키는 모순마저 안고 있다.
무역전쟁은 미국에 나쁘고 이길 수도 없으며, 나아가 모두를 패자로 만들 것이다. 문제는 잃을 것도 없는 세계화의 패자들에게 트럼프 보호무역주의가 솔깃하게 들릴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혹시 먼 훗날 역사책은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가 결정되고 트럼프가 당선한 2016년을 세계화의 종말이 시작된 해로 기록하는 것은 아닐까. 바야흐로 기로에 선 세계경제에 반세계화 포퓰리즘을 넘어서는 정치적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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