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uters=Newsis타이는 지금 사막 순다라벳 정권을 지지하는 세력(탁신파).
8월1일 방콕에 공짜 시내버스가 등장했다. ‘시민을 위한 버스’라는 이름을 단 이 버스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기름값 때문에 고통받는 저소득층을 위해 타이 사맛 정부가 내린 또 하나의 포퓰리즘(대중주의) 선물이다. 이 공짜 버스는 찜통처럼 푹푹 쪄대지만 한 푼이 아까운 가난한 사람들은 버스 정류장에 길게 줄을 서서 공짜 버스를 기다린다.

방콕 공짜 버스는 한때 쿠데타로 쫓겨난 탁신 세력이 어떻게 지난해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는지를 설명해주는 좋은 사례다. 2006년 9월 군부 쿠데타로 탁신 총리가 해외로 떠돌게 됐을 때만 해도, 15개월 뒤 2007년 12월 총선에서 탁신계 정치인이 만든 정당 ‘국민의 힘’(PPP)이 승리할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지난해 12월23일 총선 이후 최대 정당이 된 PPP 총재 사막 순다라벳은 현재 타이 총리를 맡고 있다.

PPP가 선거에서 승리한 것은 가난한 서민이 표를 몰아줬기 때문이다. 서민이 PPP를 지지한 것은 탁신 전 총리가 집권 시절 펼친 포퓰리즘 정책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30바트 의료보험’이다. 타이 국민 모두가 30바트(약 1000원)만 내면 공공 의료기관에서 대다수의 질병을 치료받을 수 있다. 60여 만명이 감염된 것으로 추정되는 에이즈 또한 여기에 포함되어 있다. 도시와 농촌 간의 소득 격차를 줄이기 위해 마을마다 100만 바트(약 3000만원)를 일괄적으로 나눠준  ‘농촌살리기 프로그램’도 여기에 포함된다. 한국의 새마을운동을 연상시키는 농촌 부흥 프로젝트였다. 과거 정부라면 질질 끌기만 했을 이 모든 정책을 탁신은 집권 6개월 만에 해치웠다.

반면 방콕의 중산층을 중심으로 한 반(反)탁신 세력은 총선이 끝나자마자 정권 퇴진운동을 벌이고 있다. 반탁신 운동 세력에는 ‘왕당파’ 그룹이 많다. 이들 시위대를 보면 왕의 색을 뜻하는 노란색 물결이다. 시위대 농성장 가운데는 ‘기념품’을 파는 좌판이 벌어지기도 한다. 가장 눈에 띄고 잘 팔리는 것은 ‘I Love Thailand’ ‘I Love The King’이라고 쓰인 티셔츠다. 이 왕 찬양 티셔츠는 반탁신 시위를 주도하는 ‘민주주의를 위한 인민연합’(People’s Alliance for Democracy·인민연합)의 성향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Reuters=Newsis타이는 지금 사막 순다라벳 정권을 지지하는 세력(탁신파)과 현 정권의 퇴진을 촉구하는 세력(왕당파·인민연합, 사진)으로 분열해 있다.
현재 타이의 진보 시민운동가들은 딜레마에 빠져 있다. “타이의 시민운동은 지금 전례 없는 분열을 맞이하고 있다. 2006년 이전에는 반정부·반탁신이라는 구호 아래 하나로 단결했지만 이제는 그게 불가능해졌다.” 유명한 반세계화 운동 단체인 남반부초점(Focus on Global South)의 연구원이자 타이-미국 FTA 감시기구 ‘FTA Watch’의 활동가인 자크차이는 이렇게 토로했다.

탁신 배만 불린 ‘30바트 의료보험제도’

그는 지난 12월 총선 이후 타이 시민운동은 크게 3개 그룹으로 갈라졌다고 설명했다. 첫 번째는 탁신과 현 정부에 반대하는 그룹이다. 이 반탁신 그룹에는 공공부문 노조 등 노동운동가가 포함돼 있다. 이들은 과거 탁신이 공공부문 민영화와 노동 고용 유연화를 밀어붙였던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다. 두 번째는 과거 쿠데타 집권 세력(왕당파)에 반대하는 그룹이다. 세 번째 그룹은 ‘둘 다 안 돼’!(Double No) 그룹이다. 이 그룹은 ‘쿠데타도 반대, 탁신도 반대’하는 그룹이라고도 불린다.
미묘한 차이지만 세 그룹 사이에도 화해할 수 없는 감정 싸움이 번진다. 무슨 말을 던지든 “그래서 탁신이냐? 쿠데타냐?”라는 식의 이분법으로 귀결된다.

자크차이는 “굳이 따지자면 나는 탁신 반대에 좀더 초점을 둔다. 아무래도 신자유주의 정책을 막는 것이 우리 단체의 중심 활동이니까…”라고 말했다. 자크차이는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하는 동안 개정된 헌법이 몇몇 조항에서 대단히 진보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고 전했다. 새 헌법은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그 상세한 정보를 의회에 통보하고 협력을 구해야 하며 유권자에게도 공청회를 통해서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는 것을 명시적으로 못 박았다. 이 신헌법은 탁신 시대 때보다 상대적으로 진보적이다.

물론 자크차이는 군부를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탁신을 반대하지만 그렇다고 왕당파라 불리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자크차이의 그룹이 2006년까지 인민연합에 속해 있다가 떨어져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왕당파는 사실 서민의 생활에는 관심이 없다. 그들은 권력을 장악하는 것에만 몰두해 있다. 공공연히 제2의 쿠데타를 이야기한다. 아무리 탁신을 같이 반대한다고 하더라도 왕당파와 함께 갈 수 없는 이유다.”

왕당파와 탁신파를 가르는 가장 주요한 기준은 의료보험 제도에 대한 견해이다. 왕당파와 타이의 중산층은 탁신의 포퓰리즘 의료정책이 곧 재정 파탄으로 귀결될 것이기 때문에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비판한다. 저소득층이 저렴하게 의료서비스를 받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의료의 질은 나빠졌고, 병원에서 기다리는 시간은 늘어났다(어디서 많이 들은 얘기다. 영화 〈식코〉를 보라). 이에 불만을 품은 중산층은 더 나은 사보험에 가입하고 자기 돈을 들여서 영리병원으로 간다. 중산층은 포퓰리즘이 없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탁신파도 아니고 왕당파도 아닌 진보 시민단체는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30바트 의료보험 제도는 나쁜 것이 아니다. 문제는 의료보험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과도하게 세금을 올리는 것이다. 그 대신 군비를 축소하고 부정부패를 척결해서 얻은 재정으로 의료보험 제도를 지원해야 한다”라고 자크차이는 말했다. 그는 의료보험 개혁의 내막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의료보험 개혁 직전에 탁신이 이미 방콕의 주요한 병원을 사서 자기 소유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Reuters=Newsis2006년 9월 쿠데타(위)로 탁신은 쫓겨났지만, 2007년 12월 총선에서 탁신파는 부활했다.
타이의 또 다른 시민운동가 찰리다를 만나봤다. 그녀는 1970년대 타이의 민주 학생운동이 유혈 탄압을 겪었을 때 정글로 들어가 싸웠던 베테랑 활동가로 지금은 ‘민중의 권리’라는 시민단체에서 일한다. 그녀 역시 이른바 ‘둘 다 안 돼!’ 그룹에 속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인민연합, 즉 왕당파를 반대하는 쪽에 좀더 무게중심을 두었다. “인민연합이 저지르는 가장 큰 잘못은 이 문제를 민족주의·애국주의 운동으로 몰아간다는 점이다.” 그녀가 자크차이와 달리 쿠데타를 좀더 반대하는 쪽에 무게중심을 두는 이유다.

얼마 전 캄보디아 정부가 국경지대에 있는 프레아 비헤아르 사원을 유네스코에 등록하려던 계획이 국경분쟁을 촉발했다. 비유를 하자면, 일본이 독도에 있는 문화유산을 유네스코에 등록시킨 것과 같은 일이다. 타이 국민이 발끈한 것은 당연하다.

탁신 죽인 것도, 부활시킨 것도 ‘민중’

이 영토 분쟁에 기름을 부은 것이 바로 반(反)탁신 왕당파이다. 언제나 영토 문제는 민족주의자에게 좋은 먹잇감이다. 이들은 ‘탁신 전 총리와 사맛 현 총리가 국왕에게 반대해왔으며, 국왕에게 반대하는 것은 결국 타이에 반대하는 것’이라는 논리를 폈다. 인민연합은 국경지대까지 시민 행진을 시도하기도 했다.

“피해자는 국경지대에 사는 양쪽 주민뿐이다. 이들은 그동안 사원 문제와는 상관없이 무역하고 교류하며 잘 살아왔다. 그런데 민족주의 바람이 불면서, 서로를 믿지 못하게 됐다. 물자와 교류가 막히면서 고통받고 있다.” 찰리다는 지금 캄보디아 시민단체와 함께 사원 문제의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 포럼을 준비 중이다.

왕당파와 탁신파라는 양대 권력투쟁 속에서 자크차이나 찰리다 같은 소수 진보 시민운동가의 입지는 좁다. 두 활동가가 모두 이야기하는 것이 있었다. 민주주의가 양날의 칼을 가졌다는 점이다. 탁신을 무너뜨린 것도, 탁신을 부활시킨 것도 민중의 힘이었다. 쿠데타 세력이 신헌법에 주권재민의 원칙을 강화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민중의 눈치를 봤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의 이름을 길거리에서 이야기하고, 그들의 정책이 연일 공격 대상이 되면서, 과거에는 여론의 향방에 눈도 꿈쩍하지 않던 정치인이 이제 거리를 두려워하게 됐다. 찰리다는 “바닥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제 우리가 누구이고 어떤 입장인지를 민중에게 제대로 알려야 한다. 그래도 믿을 것은 민주주의뿐이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방콕·엄기호 (연세대 강사·문화인류학)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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