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중순 내내 베트남은 반중 시위로 시끌시끌했다. 수도 하노이 등 베트남 곳곳에서 ‘중국 타도’ ‘중국은 베트남의 바다에서 나가라’ 등의 피켓을 든 이들이 시위를 벌였다. 과격 시위대는 중국 기업의 창고를 털거나 기자재를 파손했다. 사망자도 나왔다. 2명이 숨진 것으로 알려졌지만 중국 외교 당국은 사망자가 10명이 넘을 것으로 보고 5월 말까지 현지 조사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결국 1만명에 가까운 중국인들이 중국으로 돌아가거나 인접국 캄보디아로 피신했다.

타이완, 싱가포르, 홍콩 사람도 중국 대륙인과 외모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위험에 노출됐다. 타이완 학생들이 다니는 국제학교 앞에는 베트남 국기와 함께 목매달린 마네킹이 걸리기도 했다.

ⓒAP Photo5월2일 중국이 남중국해 파라셀 군도에 석유시추선을 설치하자, 베트남 국민들이 호찌민 시내에서 반중 시위를 벌였다.

한국인도 예외는 아니었다. 중국 식당을 운영하는 한국인들은 한자 간판 때문에 피해를 볼까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한국 공장들은 건물 밖에 태극기를 내걸었고, 베트남에 사는 한국 교민들은 인터넷 카페와 SNS를 통해 안전 상황을 수시로 공유했다. 한국인 사망자는 없었지만 부상자가 한 명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5월19일 호찌민 생일을 맞아 시위 규모가 더욱 커지리라는 전망이 우세했지만 예상과 달리 시위는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베트남 정부가 불법 시위자에 대해 엄중처벌 방침을 밝혔기 때문이다.

이번 반중 시위는 지난 5월2일 중국이 베트남과 영유권을 놓고 분쟁 중인 남중국해의 파라셀 군도에 석유시추선을 설치한 것이 도화선이 되었다. 베트남 정부와 국민은 중국이 일방적으로 약속을 깼다며 분노했다. 2013년 10월, 중국 리커창 총리가 베트남을 방문했을 당시 남중국해의 유전·가스전을 공동으로 개발하자고 합의했는데 이 합의를 불과 1년도 안 되어 어겼다는 것이다. 5월2~12일 중국과 베트남 선박이 벌인 물대포 공방 등도 베트남 국민의 반중 감정을 자극했다.

베트남 국민이 반중 감정을 표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가깝게는 1979년 중국이 베트남을 침공해 전면전을 벌였던 때부터, 멀게는 중국에 침략당하고 조공을 바쳐야 했던 과거에 이르기까지 베트남에는 알게 모르게 반중 감정이 퍼져 있었다. 중국과 베트남 양국이 남중국해를 둘러싸고 소규모 전투를 벌인 것도 올해가 처음은 아니다. 1988년과 2011년에는 양측이 해전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분쟁은 여느 때와 달리 쉽게 끝나지 않으리라 전망된다. 5월21일 베트남 정부가 중국의 영유권 공세에 국제법적 조치 등을 검토하고 있다는 뜻을 최초로 내비쳤기 때문이다. 베트남에 앞서 유엔 국제해양법재판소(ITLOS)에 중국을 제소한 필리핀과 공조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5월14일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 영상뉴스인 〈WSJ 라이브〉는 “이번 갈등은 1979년 중국·베트남 전쟁 이래 가장 심각한 수준이다”라고 보도했다.

베트남은 중국의 남중국해 원유 시추가 국제법 위반이라고 주장한다. 자국의 배타적 경제수역(EEZ) ‘호앙사’(파라셀 군도의 베트남명)에서 중국이 석유 시추시설 설치 공사를 진행하는 것은 명백히 불법이라는 것이다. 반면 중국은 자국의 ‘시사 군도’(파라셀 군도의 중국명) 해역에서 합법적으로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맞선다.

영유권 다툼의 시발점이 된 한 보고서

사실 남중국해를 두고 중국과 다투는 국가는 베트남만이 아니다. 필리핀·말레이시아·브루나이 등 남중국해와 맞닿은 동남아의 다른 국가들도 이 구역의 작은 섬들에 대한 실효 지배를 주장한다. 반면 중국은 과거 역사를 내세워 영유권을 주장한다. 이곳의 대결 구도는 중·미 대결 구도로도 연결된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필리핀·베트남 등을 돕는 것이다. 2010년 힐러리 클린턴 당시 미국 국무장관은 “이 지역(남중국해)은 미국의 국가적 이익이 걸려 있는 곳이다”라는 발언으로 남중국해를 둘러싼 중·미 대결 구도에 쐐기를 박았다.

ⓒAP Photo베트남 내 반중 시위가 거세지자 중국이 대형 선박을 급파해 자국의 노동자들을 귀국시키고 있다.

이처럼 여러 국가가 남중국해를 두고 치열하게 다투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이곳에 매장된 석유와 천연자원이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1968년 말 남중국해에 석유, 천연가스, 주석, 망간 등 천연자원이 대량으로 매장돼 있다는 내용이 담긴 유엔 아시아·극동경제위원회 보고서가 나온 뒤부터 이곳은 영유권 다툼의 각축장이 되었다(남중국해 석유 매장량이 사실은 그리 많지 않다는 얘기도 일각에서는 나온다).

그렇다면 중국이 주변국의 반발을 무릅쓰고 남중국해에 유전을 건설하려는 까닭이 무엇일까. 5월20일 러시아 국영방송 ‘러시아의 소리’는 “러시아 전문가들은 중국의 남중국해 유전 건설작업 착수에 대해 경제적 이윤 추구 활동이 아니라 지정학적 전략을 염두에 둔 행보로 분석한다”라고 보도했다. ‘러시아의 소리’ 방송에 따르면, 최근 모스크바에서 ‘러시아·베트남 외교관계’를 주제로 열린 학술회의에 참석한 그레고리 로크신 교수(러시아과학아카데미 극동연구소)는 “중국이 최근 남중국해 유전 플랫폼 건설에 착수한 것은 아시아 지역 국가들에 미국의 무력함을 보여주기 위해서다”라고 지적했다. 베트남 잡지 〈남동아시아 지역 연구〉의 찬한 수석 편집장도 이날 학술회의에서 “강대국들이 개입된 지정학적 충돌이다”라는 견해를 밝혔다.

영토분쟁 당사국이 아닌 국가의 시각은 대체로 중립적이다. 분쟁 당사국에게 ‘갈등 격화를 자제해달라’고 요구하는 수준이다. 이런 가운데 미얀마(버마)는 남중국해 분쟁과 관련해 중국에 반기를 들었다. 중국은 지난 5월10일부터 이틀간 미얀마에서 열린 아세안 정상회담의 폐막 공동성명에서 남중국해 분쟁이 언급되지 않기를 원했다. 그러나 개최국 미얀마는 중국의 요구를 거부하고 “남중국해 분쟁의 모든 당사국은 긴장을 악화시킬 수 있는 행동을 자제하라”는 문구를 넣었다.

5월20일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은 중국 상하이에서 정상회담을 한 뒤 “양국은 다른 나라의 내정간섭에 반대한다”라고 공동성명을 냈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남중국해 문제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차단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기자명 허은선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les@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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