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도한 태평양 최초의 팬데믹 ‘스페인 독감의 교훈’ 탁재형 (팟캐스트 <탁PD의 여행수다> 진행자) 지난 세기부터 오늘날에 이르는 감염병의 연대기에는 한 시대를 풍미한 질병의 목록이 빼곡하다. 코로나 이전에 신종플루가 있었고, 그 이전에 메르스 (MERS)가, 사스(SARS)가, 에볼라가, 홍콩 독감이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서막에는 스페인 독감이 있었다. 1918년 시작되어 1920년 그 기세가 수그러들 때까지, 이 바이러스성 전염병은 당시 세계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5억명을 감염시켰고 5000만~1억명의 목숨을 앗아갔다.시작은 명확하지 않다. 혹자는 프랑스에 주둔하던 영국군의 야전병원을, 혹자는 미국의 군사기지를 그가 만든 ‘팜플레무스 식물원’에 온다면… 탁재형 (팟캐스트 <탁PD의 여행수다> 진행자) 20대를 온통 투자했던 모험은 처참한 실패로 끝났다.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열대의 정글에서, 꿈을 이루기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남은 것이라곤 성치 않은 몸과 아픈 기억들뿐이었다. 다행히 중년 운은 그리 나쁘지 않아, 고향에서 양갓집 규수와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집도 마련했다. 예상치 않은 계기로 사회적 명성과 안정적인 수입도 얻게 되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다시금 고향을 떠나 지구 반대편으로 향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글에서 만신창이가 되어 고국으로 향했던 피에르 푸아브르는 달랐다.1756년 프랑스로 돌아온 그 ‘후추’라 불린 이 사람 향신료 독점을 깨다 탁재형 (팟캐스트 <탁PD의 여행수다> 진행자) ‘존버’라는 말이 있다. ‘존재를 걸고 버티다’라는 의미다. 요즘처럼 미증유의 위기가 전 세계적으로 지속될 때, 저마다 ‘존버’하는 것 외엔 답이 없다. 이것을 해낸 것만으로도, 우리 삶은 충분히 보상을 받기도 한다. 영원할 것만 같던 네덜란드의 향신료 독점 체제에 구멍을 내고, 결국에는 무너뜨린 남자의 삶도 이를 증명하는 좋은 예다.피에르 푸아브르(1719~1786)는 프랑스 리옹에서 잡화상의 아들로 태어났다. 향신료와 관련된 일을 한 것은 어쩌면 운명이었다. 그의 성 ‘푸아브르’는 프랑스어로 ‘후추’를 의미한다. 그는 프랑스 외 잔인하고 악랄했던 대항해 시대 탁재형 (팟캐스트 <탁PD의 여행수다> 진행자) 17세기 중반 네덜란드인들이 후발주자임에도 불구하고 향신료 제도(현재의 인도네시아 몰루카 제도)에서 포르투갈을 누르고 독점적 지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합리적인 비즈니스 마인드에 힘입은 바가 컸다. 포르투갈은 원주민들을 야만인 취급하며 향신료를 거저나 다름없는 가격에 빼앗고, 그들을 가톨릭으로 개종시키는 데 열심이었다. 반면 네덜란드인들은 현지인 군주(술탄)들을 상대로 포르투갈보다 더 나은 향신료 가격을 제시했고, 가톨릭 선교 따위는 관심이 없었다. 원가 대비 20배 이익을 볼 수 있는 향신료가 생산되는 섬들은 이렇게 17세기 주식회사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탁재형 (팟캐스트 <탁PD의 여행수다> 진행자) 네덜란드의 아시아 진출은 16세기 말이 되면서 본격화한다. 바스쿠 다가마가 포르투갈-인도 직항로를 열고, 아폰수 드 알부케르크가 1511년 향신료 무역의 요충지 말라카(현재의 말레이시아 믈라카)를 점령한 이래, ‘포르투갈령 인디아’는 유럽으로 공급되는 향신료 물량을 독점해 천문학적인 수익을 올렸다. 13세기부터 이 지역에 전파되기 시작한 이슬람교가 15세기 들어 지배층의 종교로 확고하게 자리 잡고, 이를 구심점 삼은 토착 세력들이 연합전선을 형성해 포르투갈 함대를 습격하는 일이 잦아졌다. 네덜란드의 진출은 이 타이밍에 맞춰 이뤄졌다 네덜란드 일으킨 염장 청어의 힘 탁재형 (팟캐스트 <탁PD의 여행수다> 진행자) ‘기니의 영주, 정복왕, 항해왕, 에티오피아·아라비아·페르시아·인도의 무역왕.’ 포르투갈의 마누엘 1세가 1499년 바스쿠 다가마의 인도항로 개척 직후 유럽의 왕들에게 보낸 서한에 표기한 공식 칭호다. 포르투갈이 이슬람 상인들을 건너뛰고 인도에서 향신료를 직수입(이라 쓰고 수탈이라 읽는다)하는 데 성공한 것은 유럽 사회에 충격을 안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포르투갈이 아득히 먼 인도의 식민지를 완벽히 통제하는 데는 그다지 철저하지도, 강력하지도 못했다는 것을 누구나 알게 되었다. 감시망을 피해 새어나오는 향신료 물량이 정식 루트를 르네상스 시대의 보물섬 찾기 탁재형 (팟캐스트 〈탁PD의 여행수다〉 진행자) 16세기 초, 바스쿠 다가마와 알바레스 카브랄의 원정으로 인도 서해안에 대한 지배를 확고히 한 포르투갈은 거기서 멈출 생각이 없었다. 해마다 후속 함대를 동쪽으로 파견했다. 이미 진귀한 향신료가 모여드는 집산지인 캘리컷과 스리랑카, 말라카(현 믈라카)를 차지했지만 성에 차지 않았다. 향신료 중의 향신료로 여겨지며 가장 비싼 가격에 거래되는 정향(Clove)과 육두구(Nutmeg)의 원산지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육두구는 중세 이후 유럽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으며 귀족들의 식탁에 올랐다. 자두 크기의 열매에 타원형 씨앗이 들어 있는데, 후추제국과 식료품의 왕 탁재형 (팟캐스트 〈탁PD의 여행수다〉 진행자) 1498년 11월, 바스쿠 다가마는 인도를 떠났다. 인도 서해안 무역도시 캘리컷의 군주 자모린이 그들을 놓아주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감 속에서 몇 달을 보낸 뒤였다. 자모린은 백인들에게 어느 정도의 향신료를 구입해 돌아갈 수 있도록 관대함을 베풀었다. 향신료의 품질이 최상급은 아니었다. 포르투갈인에게는 문제 될 게 없었다. 그들이 지난 세기 동안 찾아 헤맨, 약속의 땅에 다녀온 것을 입증하는 증거였기 때문이다.이 인도 원정대가 돌아온 뒤 1500년 3월, 32세의 젊은 사령관 페드루 알바레스 카브랄이 지휘하는 13척 규모의 함대가 포 15세기 탐험가의 인도 가는 길 탁재형 (팟캐스트 〈탁PD의 여행수다〉 진행자) 군중이 집으로 데려온 백인을 본 북아프리카 출신 상인은 놀라서 말을 잇지 못했다. 한동안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건넨 첫마디가 “빌어먹을, 당신네들이 여기까지 어떻게 온 거지?”였다. 1498년 5월, 인도 서해안의 무역항 캘리컷에서 벌어진 일이다.백인은 포르투갈 함대의 일원인 죄수였다. ‘데그레다두(Degredado)’라고 불렸던 이들은 낯선 세계를 탐험하는 장거리 항해에서, 오늘날의 탐사용 로봇 같은 역할을 맡았다. 본국에서 사형 또는 추방에 해당하는 죄를 지은 이들 중, 학식이 있고 건강한 이들을 골라 함대에서 복무하게 했다 ‘낙원의 씨앗’ 찾아 바다로 바다로 탁재형 (팟캐스트 〈탁PD의 여행수다〉 진행자) 왕자는 바다에 대한 이야기라면 누구보다 좋아했다. 아프리카에 대해서도 어린 시절부터 동경을 키워오고 있었다. 1415년, 지금의 지브롤터와 마주 보고 있는 세우타 항구가 포르투갈 차지가 되었을 때, 꿈은 많지만 직접 몸을 쓰는 일은 싫어하는 왕자는 세우타의 총독으로 부임했다. 그는 바로 ‘항해 왕자’로 알려진 엔히크 왕자(1394~1460)다.젊은 시절부터 즐겨 먹던 마니게트(후추 맛이 나는 서아프리카 원산의 향신료)의 향기는 그를 미지의 세계로 이끌었다. 어디에서 자라는지, 어떤 과정을 통해 서유럽까지 오는지 알 길이 없었던 이 마겐브로트 향 속에 담긴 대양의 역사 탁재형 (팟캐스트 〈탁PD의 여행수다〉 진행자) 한입 크기의 조각으로 잘려 있는 빵은 볼품없다. 입안에 넣는 순간,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이국적인 향기가 풍겨온다. 혀를 감싸는 초콜릿의 진한 단맛과 어우러져, 오래 지나도록 가시지 않는 여운을 남긴다. 이 맛과 향기는, 독일과 스위스 사람들에게는 크리스마스 시즌이 왔음을 의미한다. 마겐브로트 (Magenbrot)라는 빵 이야기다.스위스의 아름다운 호반 도시 루체른의 가을은 로체르너 메에스(Lozärner Määs)라는 축제와 함께 시작된다. 크리스마스까지 이어지는 이 축제의 상징은 호반을 따라 늘어선 임시 상점들이다. 차가워진 날 끝나지 않는 대마도 수난사 탁재형 (팟캐스트 〈탁PD의 여행수다〉 진행자) 대마도(쓰시마섬)는 일본 본토보다 한반도와 거리가 더 가까운 섬이다. 규슈까지는 82㎞이지만 부산까지 거리는 50㎞가 채 안 된다. 날씨가 좋을 때면 부산에서 육안으로 대마도를 볼 수 있다. 부산항에서 불꽃놀이라도 벌어지는 날에는 대마도에서 폭죽 불빛에 비친 광안대교까지 볼 수 있다고 한다. 이를 위해 아예 ‘한국 전망대’라는 망루까지 세워 관광 상품으로 홍보하고 있을 정도다.이렇게 한국에서 가깝다 보니 한국 관광객이 많고 지역경제 상당 부분도 그에 의존한다. 대마도는 최근 일본 불매운동의 성패 여부를 가름하는 바로미터 같은 존재가 영국은 홍콩에 갈등의 씨앗 뿌렸나 탁재형 (팟캐스트 〈탁PD의 여행수다〉 진행자) 1997년 7월1일 오전 6시, 장갑차와 작전용 트럭에 탑승한 인민해방군 병력 4000여 명이 홍콩과 중국 본토 사이의 경계지점인 선전 검문소를 통과했다. 장대비가 내리는데도 홍콩 주민 1만여 명은 도로변에서 오성홍기와 홍콩특구기를 흔들며 이들을 환영했다. 따뜻한 포옹과 꽃다발 세례가 이어졌지만, 주민들의 얼굴에 스쳐가는 긴장감은 감출 수 없었다. 홍콩 역사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이 장면에서 묘한 기시감을 느꼈을 터였다.178년 전, 홍콩섬은 영국 군대에 함락되었다. 자강의 열망과 기득권층의 발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청나라 조정은 전함 야마토는 바다에 가라앉아 있다 탁재형 (팟캐스트 〈탁PD의 여행수다〉 진행자) 최근 일본 해상자위대 군악대의 대민 행사 영상을 보게 되었다. 시민을 상대로 하는 행사이니만큼, 영화음악이나 애니메이션 주제가 등 익숙한 곡들로 리스트를 채우는 것은 당연했을 터이다. 기왕이면 바다나 함선을 주제로 하는 작품의 OST를 연주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그 노래’를 연주하면 안 되었다. 1980년대에 MBC에서 방영한 일본 원작 애니메이션 중 〈날으는 전함 V호〉라는 작품이 있었다. 거대한 전함이 하늘로 떠올라 우주를 항해하는 이미지가 퍽 낭만적이었기에, 꽤 자주 보았던 기억이 난다. 시간이 지나 〈마징가 죽음으로 지켜낸 발리가 달리 보인다 탁재형 (팟캐스트 〈탁PD의 여행수다〉 진행자) 인도네시아는 1만8000여 개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다. 섬이 많다 보니, 어떤 곳은 인도네시아의 영토라는 것을 모르고 지내다가, 한참 뒤에야 ‘아, 거기도 인도네시아 땅이었어?’ 하는 경우도 있다. 그중 한 곳이 발리다. 세계 여행자들이 인도네시아의 다른 섬보다 유독 발리를 좋아하는 데엔 이유가 있다. 독특한 전통문화가 잘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는 이슬람 신자가 90% 이상을 차지하는 나라다. 헌법 전문에도 ‘유일신에 대한 신앙’이 명문화되어 있다. 그런 상황에서 발리 사람들은 인구보다 신의 숫자가 많다고 하는 힌...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바다를 건넜을까 탁재형 (팟캐스트 〈탁PD의 여행수다〉 진행자) 인류가 자신이 태어난 동굴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주하기 시작할 무렵부터, 위치정보를 파악하는 방법이 하나둘씩 등장하기 시작했다. 제일 간단한 것은 지형지물 이용이다. 이 방법은 여전히 사용된다. ‘삼거리에서 편의점 있는 골목으로 들어와서, 파란 대문 끼고 우회전’ 하는 식이다. 지도는 이런 작업을 좀 더 쉽게 해준다. 사건 사고가 잇따를 수밖에 없던 ‘추측항법’ 비교할 대상이 아무것도 없는 망망대해 한가운데라면, 이야기는 또 달라진다. 나침반이 항해에 이용되기 시작한 이래, 항해자들은 목표 지점이 출발점으로부터 어느 방향에 있... 아찔하게 무모했던 최초의 태평양 횡단비행 탁재형 (팟캐스트 〈탁PD의 여행수다〉 진행자) 인간이 최초로 배를 타고 태평양을 횡단한 것은 1521년 마젤란의 세계일주 항해 때였다. 비행기로 태평양을 건넌 것은 그로부터 410년이 더 흐른 뒤였다. 1929년, 1차 세계대전에서 미국 공군의 비행교관으로 활약했고 이후 곡예비행사로 이름을 날린 클라이드 팽본은, 부조종사이자 그의 재정적 지원자이기도 했던 휴 헌든과 함께 세계일주 비행 신기록 수립에 도전하기로 한다. 둘은 ‘미스 비돌’이라는 이름이 붙은 붉은색 벨란카 스카이로켓 기체를 몰고 뉴욕 공항을 이륙했다. 하지만 시베리아에서 신기록은 물 건너가고 만다. 중간기착지인... 바다를 누비던홍어 장수 문순득 탁재형 (팟캐스트 〈탁PD의 여행수다〉 진행자) 1801년, 동남아시아 원주민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제주도에 표류해 왔다. 그들이 외치는 말이라고는 “막가외(莫可外), 막가외!”뿐이었다. 그것이 자신들의 고향, 필리핀 루손으로 돌아갈 수 있는 국제도시 마카오를 가리키는 말이라는 사실이 알려진 건 그로부터 8년 후인 1809년이었다. 이들의 말을 알아듣는 조선 사람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그의 이름은 문순득. 흑산도 인근 우이도에서 홍어를 사고파는 상인인 그가 필리핀의 루손 지역 방언인 일로카노어(語)를 할 줄 알게 된 것은 무슨 까닭에서였을까. 문순득은 1777년생으로, 어려... ‘서핑 정신’ 지켜낸 파타고니아 CEO 탁재형 (팟캐스트 〈탁PD의 여행수다〉 진행자) 1907년 7월22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신문에 ‘파도를 타는 남자, 이목을 집중시키다’라는 기사가 실렸다. 베니스 비치의 파도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한 남자는 물 위를 걷는 것처럼 몸을 꼿꼿이 세운 채 바다를 누볐다. 그가 모래사장에 도착한 이후에나 나무판자 위에 발을 디디고 있었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아챘다. 조지 프리스. 하와이 출신의 24세 청년은, 지난 100년간 명맥이 끊겼던 ‘일어서서 물살을 가르는’ 파도타기 기술을 보여주었다. 파도타기는 하와이 사람들이라면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즐기던 유희였다. 물론 계급에... ‘새똥 전쟁’ 패배자, 볼리비아의 비애 탁재형 (팟캐스트 〈탁PD의 여행수다〉 진행자) 볼리비아에 취재하러 갔을 때의 일이다. 광업도시로 유명한 포토시(Potosi)의 골목길을 걸어가다가 한 떼의 어린아이들과 마주쳤다. 선생님 손에 이끌려 나온 것이 분명한 아이들은, 어떤 기념일을 맞아 피켓이며 깃발 따위를 들고 있었다.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며 길을 따라 행진했다. 가이드가 아이들이 든 손팻말에 쓰인 글귀를 통역해주었다. “칠레 대통령님! 우리의 바다를 돌려주세요!” 이 기념일의 이름은 ‘바다의 날’. 해마다 3월23일이 되면, 내륙국인 볼리비아 전역에서 바다를 그리는 사람들의 행진을 볼 수 있다. 여기서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