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추천하는 책 어긋나고 구멍 나서 아름다운 식물처럼 [기자의 추천 책] 문상현 기자 다른 사건을 취재하다가 우연히 접한 일이었다. 아동학대 혐의로 부부가 경찰 수사를 받고 있었다. 그들은 밥 먹듯이 가출하는 중학생 딸과 다투다 생긴 일이라고 했다. 오히려 딸이 흉기를 들고 난동을 부리는 탓에 다친 적도 있다고 했다. 속상하고 서럽다고 했다.아이의 눈은 날카롭고 말은 거칠었다. 한여름인데도 긴팔 후드티를 입고 있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소매를 계속 당겨 내렸다. 소매를 걷어볼 수 있냐고 물었다. 머뭇거리다 보여준 손목에는 길게 그어진 흉터가 가득했다.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그 사람들’과 같이 있고 싶지 않 먼저 좋은 노래를 많이 주고 할 말 변진경 기자 “엄마 앞에서 짝짜꿍/ 아빠 앞에서 짝짜꿍/ 엄마 한숨은 잠자고/ 아빠 주름살 펴져라(‘짝짜꿍’, 원제는 ‘우리 애기 행진곡’).” 온 국민이 아는 이 동요를 지은 사람은 정순철 작곡가(1901~?)이다. 1920~1930년대 윤극영·홍난파·박태준과 함께 ‘4대 동요 작곡가’로 불린 근대 음악가이자, 방정환과 함께 ‘색동회’를 만들고 어린이 인권과 문화 증진에 앞장선 교육자·어린이 운동가였다.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로 시작하는 ‘졸업식 노래’도 그의 작품이다.10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 노래는 아직 불리는데 ‘정순철 저출산 해결 위해 정치인이 봐야 할 단 한 권의 책 [기자의 추천 책] 전혜원 기자 합계출산율이 2023년 0.72명으로 또다시 최저치를 갈아치웠다. 각 정당이 총선을 앞두고 저출산 공약을 내놓았다고 하지만, 어디도 성에 차지 않는다. 한국은 이대로 소멸되는 걸까.지금 저출산과 관련해 무언가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 즉 정치인들에게 단 한 권의 책을 권한다면 〈인구 위기〉를 꼽겠다. 스웨덴의 경제학자 군나르 뮈르달과 그의 아내인 사회학자 알바 뮈르달이, 당시 유럽 최저 합계출산율(1.74명)을 기록하던 스웨덴 인구 위기의 해법을 제언한 책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1세기 전인 1934년 스웨덴에서 나온 책이 국제분쟁 뉴스의 효용을 묻는다면 [기자의 추천 책] 김영화 기자 “한국은 국제 뉴스가 충분히 나오지 않는 것 같아요.” 국내에서 활동하는 국제연대 활동가나 외신기자들을 만나면 종종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비서구권 이슈는 주로 전쟁, 재난, 사고가 벌어졌을 때 집중 보도되고 평소에는 주변적으로만 다뤄진다는 것이다. 우리(한국)만의 관점이 안 보이고 서구의 주류 언론을 받아쓰는 데 급급하다는 비판도 늘 제기된다. 그래서인지 가끔 이런 얄궂은 반응도 만난다. ‘우리도 먹고살기 힘든데, 그 나라에서 벌어지는 사정까지 알아야 하나?’ 국제 기사를 ‘잘’ 쓰는 이들은 여기에 답한다, 어쩌면 한국 사회가 당 그 의사는 왜 배관공을 찾아갔을까 [기자의 추천 책] 김연희 기자 ‘코드블루.’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지만 병원에서 쓰는 말인지는 잘 몰랐던 이 단어가 심정지를 뜻하고, 병원 내에서 유일하게 안내 방송으로 알리는 진단이라는 사실을 이 책을 보고 알았다. 다른 장기는 기능이 멈추면 몇 분, 몇 시간 또는 며칠 후에 죽음이 찾아온다. 뇌사의 경우는 수년 동안 생존하기도 한다. 그러나 심장이 멈추면 불과 몇 초 차이로 생사를 오간다.심장박동에 이상이 생기는 심정지가 “전기적인 문제”라면 심근경색은 “배관의 문제”다. 심장으로 가는 혈관 중 하나에 연필심처럼 아주 작은 혈전(피떡)이 생기면서 산소와 영양 쇠락과 축소 ‘잘’ 하는 방법 [기자의 추천 책] 김동인 기자 얼마 전 한 외신기자에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서구권 언론사들이 한국의 저출생 문제에 관심이 많고, 한국 주재 기자들에게 관련 리포트를 계속 주문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그 기자가 설명하는 ‘관심의 배경’이 의외였다. 미국과 유럽 언론들이 한국의 저출생을 ‘이색적인 뉴스’가 아니라 ‘우리에게 곧 일어날 예고편’으로 여긴다는 것이었다. 외신들에게 한국은 전 세계적인 ‘인구와 사회의 축소’를 먼저 겪는 ‘테스트베드’로 평가받고 있었다. 한국 상황에만 몰두해 취재하던 입장에서 신선한 충격이었다.그 이야기를 들은 뒤 곧바로 이 책을 이 책 읽으면 ‘아바타’와 너구리 ‘로켓’이 달리 보인다 [기자의 추천 책] 김다은 기자 ‘어차피 모든 것은 망했다’라는 종말 시나리오가 돈이 되는 세상이다. 한때는 종말을 상상하는 일이 근대적 인간에게 미약한 자성을 촉발했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아니다. 대중은 미디어 속 “멸종의 스펙터클”을 소비하면서 “오, 넷플릭스에서 본 이야기!”라며 반가워하거나 지겨워할 뿐이다. 그러니까, ‘파국’은 오염됐다.그래서 〈손상된 행성에서 더 나은 파국을 상상하기〉라는 책의 제목은 낯설면서 의아하다. 이를테면 ‘더 나은 파국을 상상하는 일’과 ‘파국을 상상하는 일’은 무엇이 다른가? 어차피 끝장나는 건 똑같은 것 아닌가. 설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면 [기자의 추천 책] 주하은 기자 종종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지 않나요? 누군가는 올해 서른 살인 저를 보고 참 좋은 나이라고 합니다만, 이런 저 역시 과거로 돌아가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제가 떠올리는 시기는 고등학교 시절입니다. 기억력이 나빠 초등학교 시절은 잘 기억나지 않고, 중학교 시절에는 인성 함양이 더뎌 부끄러운 일을 많이 했습니다. 비록 입시에 지치긴 했지만 추억이 많은 고등학교 시절을 가장 그리워하는 것은 저에겐 당연한 일처럼 느껴집니다.작가 사사키 아이 역시 저와 비슷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표제작을 비롯해 단편소설 정말 양당제가 문제일까, 〈책임 정당〉이 던지는 질문 [기자의 추천 책] 전혜원 기자 더불어민주당은 여당이던 2019년 12월, 소수당이 비례대표 의석을 더 많이 가져가도록 하는 선거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지역구 의석을 많이 얻은 민주당이 비례대표 의석은 좀 손해를 보더라도, 진보정당을 의회에 더 많이 진출시켜서 ‘진보파 전체’를 다수파로 만들자는 기획이었다. 거대 양당이 위성정당을 만들며 개혁의 취지는 사라졌지만, ‘비례대표제를 강화해 다당제로 가야 한다’는 논의는 주로 진보 진영에서 꾸준히 제기돼왔다.미국 예일 대학의 두 정치학자가 쓴 〈책임 정당〉은 이런 통념을 깨는 책이다. ‘크고 강한 두 개의 정당’이 경 ‘읽다가 자야지’ 했는데 실패해버렸다 [기자의 추천 책] 이종태 기자 ‘잘 모르는 나라’에 대한 읽을거리로는 크게 두 종류가 필요하다. 하나는 이론적 설명이다. 다른 하나는 구체적 이야기(소설)다. 구체적 이야기는 이론적 설명을 보완하거나 심지어 반박하면서 그 나라에 대한 ‘앎’을 입체적으로 만들어준다. 나 개인적으로는 ‘중국 공산주의’에 대한 마오쩌둥의 저서(〈모순론〉 〈실천론〉 등)를 읽던 시절, 이른바 ‘상흔 문학(문화혁명을 비판하고 부정하는 문학 조류)’을 접할 수 있었던 것이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최근 타이완의 존재감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이 나라는 반도체 제조업의 글로벌 허브라는 꾹꾹 눌러쓴 “사랑을 담아” [기자의 추천 책] 이은기 기자 지난해 겨울 최은영 작가를 만난 적이 있다. 책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에서처럼, 창문 밖에 눈이 흩날리던 날이었다. 감기를 앓고 있던 최은영 작가는 북토크 동안에 혹여나 재채기할까 걱정된다며, 양해를 구하곤 사탕을 꺼내 먹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이런 마음도 있구나, 생각했다.이날 북토크에는 최은영 작가가 책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의 한 부분을 발췌해 낭독하는 순서가 있었다. 그가 고른 단편은 ‘답신’, 수감 중인 이모가 자신의 얼굴도 모르는 조카에게 보내는 편지글 형태의 소설이다. 편지를 보낸 적도 없는 조카에게 보내는 답신은 마트에 갈 때마다 두려운 당신에게 [기자의 추천 책] 이오성 기자 기후위기에 관한 기사를 쓸 때마다 벽을 느낀다. 사람들은 둔감하다. 한파가 몰아쳐도 폭염이 기승을 부려도 그때뿐이다. 올겨울 체감온도 영하 50℃를 기록한 미국의 한파, 몇 해 전 한반도 면적과 비슷한 땅을 불태운 오스트레일리아의 산불도 남의 나라 이야기다. 마다가스카르의 바오밥나무는 알아도, 이 나라가 사상 최악의 가뭄으로 굶주렸다는 이야기는 접하기 어렵다.먹거리 이야기라면 어떨까. 시장과 마트에 갈 때마다 실체적 공포를 느낀다. 사과 한 알에 4000원, 쪽파 한 단에 1만원이다. 배춧값이 치솟으면서 김장을 포기한 집이 한둘이 인류의 발자취 쫓으며 질문을 던지다 [기자의 추천 책] 이상원 기자 3년 전 이사를 준비하다가 책 한 권을 집어 들고 오래 고민했다. 좋은 책이지만 다시 읽을 것 같지는 않았다. 중학생 때부터 닳도록 읽어 질린 게 한 이유였고 시의성을 타는 몇 대목이 세월에 떠밀린 느낌도 들었다. 〈질문하는 역사〉(2021)는 2002년 나온 〈테이레시아스의 역사〉의 개정판이다. 아쉽다고 느낀 부분이 모두 정비되어 오늘날의 독자에게도 추천할 만하다.제목은 무겁지만 어렵지 않게 읽히는 책이다.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의 인터넷 기고를 엮었다. ‘서양근대사의 주요 사건을 묶었다’는 식으로 책의 성격을 요약하기는 둥글둥글한데 뾰족한 공간, ‘맘카페’를 관찰하다 [기자의 추천 책] 변진경 기자 동네 맘카페에서 여러 번 도움을 받았다. (24시간 편의점에서 상비약을 판매하지 않던 시절) 밤중에 아기 해열제가 똑 떨어졌을 때 맘카페에 SOS 글을 올리면 줄줄이 도와주겠다는 댓글이 달렸다. 잃어버린 아이 킥보드와 어린이집 가방도 맘카페를 통해 찾았다. 인기 많은 떡집 앞에 선 대기줄 실시간 상황이 어떤지, 불규칙하게 출몰하는 순대 트럭과 찰옥수수 리어카가 오늘 우리 동네에 나왔는지 어쨌는지도 맘카페가 아니면 얻기 힘든 귀한 정보였다.맘카페에서 여러 번 상처도 받았다. 쓰던 물건을 무료 나눔(드림)할 때 ‘내가 먼저 손 들었는데 보이기 때문에 좁아지는 시야 [기자의 추천 책] 문상현 기자 책 곳곳에 그림과 작품이 배치되어 있다. 그렇다고 예술을 말하며 고상한 척은 하지 않는다. 장애인이 주인공이다. 그러나 장애인의 입장이 되어보자며 얄팍하게 폼잡는 이야기는 없다. 책 속의 예술과 장애는 도구다. 책장을 넘기며 이야기를 ‘듣다 보면’ 여러 줄기로 뻗어 나가는 탈선의 길이 보인다.시라토리 겐지는 선천적 전맹이다. 눈이 보이지 않아 색깔도 구분할 수 없지만 매년 수십 번씩 미술관에 다닌다. 대학 시절, 비장애인이자 관심 있는 여성 동기가 미술관에 데려가 작품을 말로 설명해줬다. 이후 시라토리는 여러 미술관에 전화를 걸었다 공공병원에는 ○○이 있다 [기자의 추천 책] 김연희 기자 이제는 익숙하지만 공공의료 분야 취재를 막 시작할 무렵 여러 차례 다시 확인했던 숫자가 있다. 5%. 한국에서 전체 의료기관 가운데 공공병원이 차지하는 비중이다. 민간병원이 대부분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공공병원이 이 정도로 적을 줄이야. 기사 초고를 넘긴 뒤에 이 수치가 맞느냐고 편집팀에서 확인 전화가 오기도 했다.그러고 보니 아파서 병원을 간 적은 많지만 공공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기억은 없다. 취재 과정에서 알게 되었는데 의료계 종사자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했다. 워낙 적으니 공공병원에서 일해본 경험 자체가 한정적이고, 접점을 사이코패스 뇌를 가진 신경과학자의 이야기 [기자의 추천 책] 나경희 기자 2005년 어느 가을날, ‘젊은 사이코패스의 뇌를 이해하기 위한 신경해부학적 배경’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다듬던 한 신경과학자의 손이 멈칫한다. 정상 대조군으로 찍은 가족들의 뇌 스캔 사진 속에서 전형적인 사이코패스 뇌 모습을 띤 사진을 발견한 것이다. 보조연구원이 사진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한 장이 섞인 거라고 생각한 그는 모든 기록을 다시 점검하게 한다. “하지만 거기에는 처음부터 아무런 실수도 없었다. 그 뇌 스캔 사진의 주인공은 나였다.”성공한 신경과학자이자 의대 교수인 저자 제임스 팰런은 세 아이의 아버지이기도 했다. 사회 이토록 귀여운 영국 ‘아재’들 [기자의 추천 책] 김동인 기자 영국 금융 교육 기사를 준비하는 동안 영국 사회를 다룬 현지 저자들의 번역서를 찾아 헤맸다. 데이비드 굿하트의 〈엘리트가 버린 사람들〉이나 대런 맥가비의 〈가난 사파리〉 등도 흥미로웠지만, 재미 측면에서 이 책을 따라갈 순 없었다. 주말 카페 한편에서 큭큭대며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이토록 귀여운 ‘아재’들의 이야기라니. 〈빌리 엘리어트〉에 등장하는 파업 노동자 세대가 나이 먹고 〈빅뱅이론〉을 찍는다고 생각하면 딱이다.저자는 영국으로 이주한 일본인이다. 영국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책에는 노동계급인 남편 친구들의 이야기가 썰렁하고 집요한 사슴문답식 말장난 [기자의 추천 책] 김다은 기자 더이상 소설책을 읽지 않는다는 기자들을 종종 만난다. 소설보다 더 극적인 사건사고를 자주 접하기 때문이라거나, 팩트들을 정교하게 꿰매는 데 방해가 된다는 등의 이유 때문이다. 소설의 효용성을 자문하던 중 권여선의 단편집 〈각각의 계절〉을 펼쳤다. 그중 ‘사슴벌레식 문답’을 읽다가 탄복했다. 이 미로 같은 글은 삶에 드리운 고약한 비극을 거듭 말장난으로 만든다. 말장난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썰렁하지만 집요하다. 어떤 진실을 움켜쥔다. 하지만 원본은 반드시 훼손(변주)한다. 나는 권여선의 말장난에 매혹돼 허우적거리다 역시 소설은 무궁히 조르바보다 크레타를 보는 시간 [기자의 추천 책] 주하은 기자 최근 오랜만에 이 책을 꺼내들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냥 손 가는대로 집었을 뿐인데 우연히 이 책이 걸렸다.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 책의 주인공은 그리스인 알렉시스 조르바다. 평생을 책벌레로 살아온 ‘나’가 역동하는 삶의 화신 조르바를 만나 도전하고 춤추며 감탄하는 이야기다. 조르바는 모든 순간에 현존한다. 밥을 먹고 있다면 밥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일을 하고 있다면 일에 대해서만 생각한다. 그 어떤 해찰도 허용하지 않는다. ‘나’는 부처에 몰두해 있는데, 그런 그를 한심하게 바라보곤 하는 조르바가 오히려 진정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