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릿 우먼 파이터〉, 춤·싸움 그리고 우정이 있는 곳 김윤하 (대중음악 평론가) 여자가 춤을 춘다. 그리고 여자가 싸운다. 별다른 꾸밈 없이 깨끗한 사실만 적시한 이 문장들은 그러나 듣는 이로 하여금 분명 달갑지 않은 이미지들을 떠올리게 한다. 에너지와 기교보다는 귀여움이나 애교를 강조한 춤사위들, 뚜렷한 목표를 위해 때로는 목숨까지도 내놓아야 하는 냉혹한 승부가 아닌 서로를 견제하며 헐뜯는 게 주가 되는 미묘한 공기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미디어를 통해 반복적으로 노출되어온 여성과 춤, 여성과 싸움의 이미지는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흡사한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재생산하며 사람들의 머릿속에 고정된 이미지를 심어왔 ‘샤이니스러운’ 게 뭐였더라 김윤하 (대중음악 평론가) ‘샤이니스러운’ 음악. 2년 반 만에 발매된 샤이니의 일곱 번째 앨범 〈돈 콜 미(Don’t Call Me)〉를 듣고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한 말이다.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다가 궁금해졌다. 그런데 샤이니스러운 음악이라는 게 뭐더라. 총 9곡의 노래를 담고 있는 앨범은 여느 케이팝 앨범이 그렇듯 한 단어로 뭉뚱그려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다채로웠다. 묵직한 힙합 리듬을 베이스로 짓누르듯 강박적으로 반복되는 주문 같은 후렴구가 강렬한 타이틀곡 ‘Don’t Call Me’로 시작한 앨범은 활기찬 신시사이저 사운드와 펑키한 리듬으로 단번에 웰컴, ‘재재만의 유니버스’ 김윤하 (대중음악 평론가) 연예인도 일반인도 아닌 ‘연반인’. 얼핏 ‘반반 무 많이’처럼 들리는 이 단어는 PD이자 진행자, 유튜버이자 방송인인 재재를 표현하기에 더없이 어울리는 말이다. 연예인만큼 유명한 일반인 또는 일반인 같은 연예인을 뜻하는 말로 대상의 처지에 따라서 얼핏 애잔하게도 들릴 만한 이 말을, 재재는 자신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로 만들어 거침없이 가로지른다. 그는 일반인의 눈높이에서, 이름과 얼굴이 알려진 이로써 보유해야 할 최소한의 상식과 필터를 장착한 채 온 세상을 궁금해하고, 만나며, 대화한다.재재가 대활약을 펼치고 있는 유튜브 이달의 소녀 희진의 근거 있는 야망 김윤하 (대중음악 평론가) 피부에 와닿는 바람이 조금씩 차가워지던 2016년 10월 어느 날, 도시는 낯선 소녀의 얼굴로 뒤덮였다. 버스 정류장에 설치된 대형 광고판을 가득 채운 새 얼굴에 대한 힌트는 포스터 우측 상단에 쓰인 ‘이달의 소녀’라는 문구와 필기체로 쓰인 ‘희진’, 그리고 SF 영화에서나 볼 법한 알쏭달쏭한 형태의 상형문자뿐이었다.이동통신사나 쇼핑몰 광고로 착각한 이들이 많았던 이 색다른 마케팅은 사실 걸그룹 ‘이달의 소녀’의 데뷔를 위한 사전 프로모션의 일환이었다. 캐치프레이즈는 ‘매달 우리는 한 명의 소녀를 만난다’. 희진은, 한 달에 한 명 옹성우의 필살기는 ‘꼼수 없는 반듯함’ 김윤하 (대중음악 평론가) 옹성우는 반듯하다. 작은 얼굴 안에 뚜렷하게 자리 잡은 이목구비에서 곧게 뻗어 나가는 목소리, 무대 위나 카메라 앞과 뒤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 모두 하나같이 반듯하다. 일반적으로 칭찬일 수밖에 없는 이 말은 그러나 그 대상이 연예인일 때 다소 의미가 모호해진다. 남들과 다르고 특별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끊임없이 새로운 모습으로 대중의 눈과 귀를 사로잡아야 하는 이들이 만든 숙명의 영토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곧고 바른 이들은 좀처럼 쉽게 살아남을 수 없는 차가운 생태계였다.그렇게 피도 눈물도 없는 먹이사슬 한가운데 떨어진 옹 엄정화라는 거대한 쇼 김윤하 (대중음악 평론가) 누군가의 롤 모델이 되는 걸 상상해본다. 자신과 흡사한 길을 걷는 이들과 스쳐 지날 때마다 ‘당신이 내 인생의 길잡이’라며 고백받는 삶. 겪어봐야 알 일이지만 당사자의 마음은 분명 벅찬 기쁨만큼이나 묵직한 책임감이 자리할 것이다. 올해로 활동 28년 차, 데뷔 1만 일을 넘어선 가수이자 배우 엄정화는 이 가설을 증명할 귀한 인물 가운데 하나다.1993년 데뷔곡 ‘눈동자’ 발표 이후 가수로서 그의 행보는 그야말로 전대미문이었다. 특히 짧은 생명이 당연하다 여겨온 여성 솔로 댄스가수로서 남긴 흔적이기에 더욱 소중했다. ‘배반의 장미’를 입술을 떼는 순간 세상이 멈춘다 김윤하 (대중음악 평론가) 노래하는 순간 세상을 멈추게 할 수 있다면, 사람들은 아마 그것을 마법이라 부를 것이다. 이소라는 그 신비로운 일을 능히 해낼 수 있는 보컬리스트다. 이소라가 노래를 시작하면 온 세상이 귀를 기울인다. 그곳이 모든 게 갖춰진 최고급 공연장이든, 촬영을 위해 마련된 호숫가 작은 무대든 상관없다. 그가 두 입술을 떼는 순간, 그곳에 모인 사람, 사물, 공기, 시간 모두가 그 소리에 홀린 듯 빠져든다.시작부터 남달랐던 그의 시작은 1993년 그룹 ‘낯선 사람들’의 1집 〈낯선 사람들〉이었다. 당시만 해도 흔치 않았던 재즈보컬 그룹으로 데 마침내 존재감 폭발한 카드(KARD) 전지우 김윤하 (대중음악 평론가) 아이돌 대부분은 그룹으로 데뷔한다. 때로는 한몸처럼, 때로는 가족처럼 한 덩어리로 움직이는 이들은 그러나 필연적으로 언젠가 모두 살아남을 수는 없는 가혹한 선택의 기로 앞에 서게 된다. ‘아이돌이고요, 시키는 거 다 합니다’ 식의 자세가 필수로 수반되는 차가운 현실 앞에서 모든 노력은 결국 하나의 목표로 수렴한다. 나만의 것, 그리고 그것으로 증명하는 나만의 존재감.혼성 그룹 카드(KARD)의 전지우는 그런 의미에서 시작부터 유리한 위치에 있는 인물은 아니었다. 우선 그룹 인지도가 그랬다. 카드는 해외에서 높은 인기를 바탕으로 활발 보미: 호쾌하게 빛나는 재능 김윤하 (대중음악 평론가) 에이핑크 보미를 일반 대중에게 가장 널리 알린 건 프로야구 시구였다. 그의 시구는 속칭 ‘개념 시구’로 불리며 이제는 구시대의 유물 같은, 속내가 뻔한 이유로 여성 아이돌을 마운드 위에 자주 올리던 프로야구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마운드 앞의 잔디나 최소한 선수가 밟는 투수판 훨씬 앞에서 하는 연예인 시구의 관행을 깨고, 보미는 투수판을 지그시 밟은 뒤 포수 글러브 정중앙으로 묵직한 볼을 던졌다. 특히 화제를 모았던 2015년 시구 영상은 단시간에 조회수 100만을 돌파하며 이후 보미에게 투수 매디슨 범가너의 이름을 딴 ‘뽐가너’ 오마이걸 그 자체, 유아 김윤하 (대중음악 평론가) 멤버 수도, 국적도, 하다못해 활동 연차도 다른 아이돌 그룹들이 공유하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멤버들에게 부여된 확실한 포지션이다. 아이돌이 한국 가요계의 상수로 자리하기 시작한 지도 어언 20년. 지금이 3세대니 4세대니 하는 와중에도 이것 하나만은 결코 변하지 않았다. 믿고 고음을 맡기는 튼튼한 성대를 가진 메인 보컬, 곡의 포인트 안무를 설명할 때 말없이 나가 묵묵히 춤을 추는 메인 댄서 등을 기본으로 한 포지션은 시간이 지나며 점차 세분화되었다. 이제는 연기나 예능, 진행 담당 같은 부업에 가까운 역할이나 리더나 막내 ‘긁는’ 창법의 성진 그 목소리의 힘 김윤하 (대중음악 평론가) 아이돌이자 록밴드 데이식스의 리더 성진은 아이돌 하면 흔히 떠올리는 ‘예쁘장한’ 이미지와 한참이나 거리가 멀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남쪽 사람 특유의 선 굵은 이목구비에서 시작해 서울에 온 지 10년 됐지만 아직 고치지 못한 걸쭉한 경상도 사투리로 완성된다.목소리도 그렇다. 드럼 도운을 제외한 모든 멤버가 돌아가며 보컬을 담당하는 팀에서 성진의 파트는 언제나 테스토스테론 한 스푼이 결정적으로 필요한 순간이다. 메인 보컬답게 선이 굵고 허스키한 그의 목소리는 풋풋한 청춘을 그리는 멤버들의 맑고 촉촉한 미성이 만드는 느슨한 포물선의 한 겁 없는 무희 ‘사자왕’ 수진 김윤하 (대중음악 평론가) 무대 위에서 춤을 추는 그룹 ‘(여자)아이들’의 메인 댄서 수진은 세상 두려울 것이 없어 보인다. 장소가 어디든 관객이 누구든 한결같이 당당한 눈빛과 거침없는 몸짓은 그가 서 있는 곳이 바로 스테이지로 변하는 마법을 부린다.반면 무대 아래의 수진은 다르다. 2018년 데뷔와 동시에 그해 신인상을 모조리 휩쓸어버린 저력답게, (여자)아이들 여섯 멤버는 각자의 개성으로 반짝인다. 걸출한 프로듀서이자 리더인 소연을 중심으로 똘똘 뭉친 에너지 덩어리 속에서 수진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거나 가끔 작게 웃음을 지을 뿐이다. 두 눈을 케이팝 여왕 CL의 도전 김윤하 (대중음악 평론가) 씨엘(CL)은 군림하는 아이돌이다. 별 문제 없어 보이는 이 문장은 사실 비문에 가깝다. 이유는 간단하다. 세계적으로 널리 통용되고 있는 케이팝 사전 제1장 1절에 따르면 ‘아이돌은 팬들의 사랑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고 적혀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재미없는 농담이지만 이 농담은 반쪽짜리 진실이기도 하다. 주지하다시피 아이돌을 만드는 건 기획사이지만 아이돌을 성장시키는 건 팬들의 아가페적 사랑과 희생에 가까운 헌신이다. ‘팬 없는 아이돌’은 실질적으로 성립 자체가 불가능한 명제다. 팬에 죽고 팬에 사는 특수한 생태계 안에서 태어난 기다림의 미학 성실함의 가치 김윤하 (대중음악 평론가) 세상의 속도에 현기증이 난다. 노래 한 곡이 가진 생명력이, 유행어의 순환 속도가, 벼락 스타가 대중의 망각 속으로 흡수되는 시간이, 가끔은 너무 빨라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어제가 다르고 또 오늘이 다른 이 숨가쁜 속도는 금방이라도 세상 모두를 집어삼킬 듯 거세게 휘몰아치지만 그 안의 사람들은 의외로 초연하다. 대부분 살고자 하는 의지로 어느새 그 속도에 적응하거나, 어쩔 수 없다는 심정으로 시류에 몸을 맡긴다.2017년 8월, 어딘가 수상한 제목 ‘담다디’로 데뷔한 10인조 보이그룹 골든차일드의 와이(Y)는 이러한 세상의 소모 존재감 뿜뿜 연정의 가창력 김윤하 (대중음악 평론가) 특별한 재능을 지닌 이들이 모인 곳에는 언제나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천재, 영재가 흔한 스포츠나 문화예술 분야는 물론이고 수학·과학·문학 등 각종 능력치를 시험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걸음마 겨우 뗄 무렵부터 용 취급을 받던, 비슷한 연령대의 비슷한 실력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 흐르는 숨 막히는 눈치 게임. 그 안에서도 최종 승자는 기필코 가려진다.만약 지금 케이팝 신에서 그 삼엄한 긴장을 단번에 끝내줄 떠오르는 신예 보컬을 하나 꼽으라면 주저 없이 우주소녀 연정의 이름을 꼽겠다. 국내 걸그룹 최다 인원인 13명으로 구성된 우주소녀 ‘현아=패왕색’은 이제 그만! 김윤하 (대중음악 평론가) 여성의 섹시함은 종종 공포를 수반한다. 영화를 예로 들어보자. 슈퍼히어로물에 등장하는 악당 가운데 여성 캐릭터는 대부분 어둡고 화려한 외양의 섹시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공포영화에서 초반부터 성적 매력을 뽐내는 여성은 십중팔구 가장 먼저 죽음을 맞는다. 이러한 클리셰에 대한 인문학적이고 심리적인 분석은 이미 다수 존재하므로 이곳에서까지 말을 보탤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확실한 건 하나. 성적 매력은 그것이 적극적으로 겉으로 드러날 때 특히 그 주체가 여성일 때 훨씬 위협적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사실이다.이쯤에서 케이팝으로 눈을 돌려보 60초 후에도 계속된 대국민 사기극 10년 김윤하 (대중음악 평론가) 불안한 눈빛을 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서 있다. 뜨거운 조명 아래, 사람들은 긴장과 더위로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다. 그런 이들의 상태는 아랑곳없이 늘어선 수십 대의 카메라는 사람들의 흔들리는 동공, 긴장감으로 흐르는 땀방울, 떨리는 손가락이나 입술을 클로즈업하느라 정신이 없다. 이 모든 상황의 칼자루를 쥔 진행자는 영원 같은 10여 분간 프로그램 이름, 무대에 서 있는 사람들 이름, 이들이 획득하게 될 상금 액수와 상품 등 이미 충분히 노출된 정보를 무의미하게 반복한다. 시청자의 참을성이 극에 달할 즈음 그가 마침내 외친다. 때를 기다리는 ‘재능 부자’ 헨리 김윤하 (대중음악 평론가) 헨리를 처음 봤을 때, 그는 전자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었다. 연주 장소가 낯설었다. 그는 열 명도 넘는 장정들과 치솟는 불기둥에 휩싸여 있었다. 불필요할 정도로 비장한 선율에 맞춰 격렬하게 관절을 꺾는 이들을 배경으로 헨리 역시 춤을 추며 바이올린을 켰다. 데뷔 2년째에 막 들어섰던 그룹 슈퍼주니어의 ‘돈돈(Don’t Don’t)’ 무대에 선 객원 연주자 헨리였다.아직 연습생 신분이었는데도 정식으로 무대에 난입해 바이올린 연주를 난사하던 그때도, 〈나 혼자 산다〉 〈비긴 어게인〉 등에 출연해 가수보다는 예능인으로 인지도를 높인 지 정세운, 기타 치며 나만의 속도로 김윤하 (대중음악 평론가) 누구나 ‘타고난’ 사람에 대해 찬양을 늘어놓지만, 동시에 누구나 타고난 대로 못 살게 만드는 게 이 세상이다. 개중에 타고난 인간들이 모여 타고난 대로 부수고 휘젓는다는 예술계도 크게 다를 건 없다. 타고난 대로 쓰고, 그리고, 노래하는 이들은 어느새 무리의 가장자리로 밀려난다.정세운은 그렇게 무자비한 세계에서 자신의 빛과 색, 속도를 시작부터 유지하고 있는 무척 드문 인물이다.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2013년 SBS 〈K팝스타 시즌 3〉에 출연해 ‘엄마 잠깐만요’ ‘익스큐즈 미(Excuse Me)’ ‘21세기 카멜레온’ 같은 자 태양 같은 아이 ‘유나’의 에너지 김윤하 (대중음악 평론가)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보다 보면 자주 등장하는 효과가 있다. 스토리 전개상 중요한 인물이 처음 등장하거나 결정적인 장면에 나타나는 영웅을 묘사할 때 보이는 의문의 빛. 보통 웅장한 음악이나 슬로모션과 함께하는 이 커다랗고 찬란한 빛을 우린 흔히 후광이라 부른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빛은 종종 현실에도 등장한다.올해 초 JYP엔터테인먼트가 트와이스 이후 3년4개월 만에 선보인 5인조 신인 걸그룹 ‘있지(ITZY)’의 데뷔 무대를 본 사람 가운데 적지 않은 이가 그 빛을 목격했으리라 믿는다. 있지는 다섯 멤버의 각기 다른 개성으로 201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