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대학 총장의 발언이 화제가 됐다. 교육부가 2022학년도 대학입시 개편안에서 신입생의 30% 이상을 정시모집으로 선발하도록 권고했는데, 이 총장이 “우린 그렇게 못하겠다”라며 공개적으로 거부하고 나섰다. 이행 여부를 재정지원사업과 연동시키며 사실상 정부 방침을 강제한 교육부에 반기를 든 것이다. 발언의 주인공이 과학기술계 명망가인 데다 이명박 정부 시절 교육과학기술부(현 교육부) 장관을 역임한 사실을 고려하면 현 정부와 대립각을 세울 법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대학 총장이 대놓고 교육부와 맞서는 모습이 흔치 않은 건 분명하다.
〈교수신문〉은 ‘독립선언’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발언에 의미를 부여했다. 설득이나 논리보다 돈으로 압박하거나 청와대나 장차관 지시라는 점을 내세우는 관료들 앞에서 “대학 독립 만세”라도 외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재정 지원을 무기로 대학을 좌지우지하려는 정부가 밉더라도 정부 사업에 기댈 수밖에 없는 게 지금 대학의 현실이다. 캠퍼스에서는 인력과 공간, 연구비가 부족하다고 아우성인데, 등록금 수입은 줄고 발전기금 모금이나 자체 수익사업에서 성과를 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정부 방침이나 지원사업에 대응하는 역할은 주로 부서명에 ‘기획’ ‘전략’ ‘협력’ 같은 단어가 포함된 행정부서에서 맡고 있다. 동시에 이들 부서에서 대학의 발전계획과 전략을 세우고 각종 평가에 대비하며 조직·인력·예산을 주무른다는 점은 상징적이다. 대학의 장기 비전이나 정체성 수립, 돈과 사람의 배분에 정부 입김이 항상 중요한 고려 사항이 된다는 걸 보여준다.
“우리 학교가 뜻대로 안 움직이려고 하니까 ‘그러다 찍히면 다른 예산 지원이 재검토될 수 있다’며 노골적으로 협박하는데 한마디 하려다 꾹 참았다.” 기획부서 경험이 많은 한 동료 직원은 정부-대학의 갑을 관계를 피부로 느낀 경험을 이렇게 이야기했다. 실무자 선에서 정부 부처와 이견이 좁혀지지 않을 경우 대학은 처장-부총장-총장, 정부 부처는 사무관-과장-국장으로 이어지는 결재·보고 라인을 따라 서로 ‘체급’이 맞는 상대와 협의 후 결론을 내리기도 한다.
정부 처지에서야 세금이 투입되는 곳에 관리와 감독, 통제와 제재가 뒤따르는 일은 당연하다. 예술 분야와 달리,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말은 고등교육 정책에는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 우리나라 여건에서 대학입시를 대학 자율에 맡긴다거나, 학령인구 감소에 대비한 구조조정을 각 대학이 알아서 하도록 놔두는 일은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적어도 정부가 보기에, 대학은 스스로 내부의 벽을 허물고 교육과 연구의 쇄신을 통해 현재를 변화시키고 미래에 대비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대학기본역량 진단 결과 그리고 움츠린 대학들
정부-대학의 관계가 합리적이고 건설적인 상호 신뢰 관계로 조정될 수 있을까. 전망이 그리 밝지 않아 보인다. 얼마 전 발표된 대학기본역량 진단 결과가 안 좋은 일부 대학들은 총장과 보직교수들이 사표를 내는 등 잔뜩 움츠린 분위기다. 진단 결과의 후폭풍이 가시적으로 드러나면 대학들은 정부 눈치를 더 볼 수밖에 없다.
“대학이 대학답게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던 교육부 장관이 고등교육 정책을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하고 물러난 혼란의 시기에, 구조조정 자체가 목적이 아닌 교육의 질 제고와 지역·대학 간 균형을 위한 수단이 되는 정책이 가능할까. 어느 때보다 혹독할 겨울을 맞이할 대학 사회는 내부 구성원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인구 절벽 시대를 제대로 준비할 수 있을까. 통제와 자율, 그 거리만큼이나 이 질문에 대한 답도 멀게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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