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깔 공세 다음은 ‘경제 망국론’이다. 자유한국당과 보수 언론이 좀 더 강력하고 전염성 강한 ‘무기’를 꺼내들었다. 정부의 경제 기조인 소득주도 성장론을 “망국적 경제 기조”라고 몰아붙인다. 참여정부 당시의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체감 경기가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명박·박근혜 집권기와 비교해도 “망쳤다”라는 표현을 서슴지 않을 정도로 최악인가? 때마침 야권으로서는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경제지표가 등장했다. 통계청이 지난 8월 중순에 발표한 ‘2018년 7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올해 7월의 취업자 수는 지난해(2017년) 7월에 비해 5000명 많은 데 불과했다. 2017년 7월의 취업자 수는 그 전해(2016년) 같은 달보다 31만명이나 많았다. 언론사들은 ‘신규’ 취업자가 ‘2016년 7월의 31만명에서 5000명으로 크게 줄었다’라는 취지로 보도했다.

ⓒ연합뉴스9월6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2018 포용국가 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제 경제를 망친 범인을 밝혀낼 차례다. 올해 7월까지 2년 동안 경제 충격으로 간주할 만한 가장 큰 사건은 무엇인가? 문재인 정부의 집권, 그리고 소득주도 성장의 일환인 최저임금 인상이다. 잡았다!

상당수 언론 보도를 보면, 지난해 월 30만여 개씩 생기던 ‘새로운(신규) 일자리’가 올 들어 5000개로 줄어들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실수였든 악의였든 치명적 오보다. 통계청 자료에 나오는 ‘취업자 수’는, 두 시점을 1년 간격(예컨대 2017년과 2018년 7월)으로 단순 비교한 결과에 불과하다. 1년 동안 어떤 사람들은 취업하고 다른 사람들은 퇴직했을 것이다. 취업자 수는 취업이 많고 퇴직이 적으면 늘어난다. 반대의 경우에는 줄어든다. 1년에 걸친 취업과 퇴직의 결산이지 ‘새로운 일자리’가 아니다. 또한 ‘취업자 수’라는 경제지표는 ‘5000명’까지는 아니더라도 앞으로 계속 하향 추세를 밟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자유한국당이 집권해도 마찬가지다. 출산율 저하로 인한 인구구조의 변화라는 도도한 흐름에 맞서기는 힘들다.

퇴직자는 앞으로 더욱 증가할 것이다. 한국 인구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가 2010년대 중반부터 퇴직하기 시작했다. 반면 취업 측면에서는, 직장을 구하려고 시도하는 사람의 수 자체가 줄어든다. 경제활동인구(15세 이상 인구 가운데 취업했거나 구직활동 중에 있는 사람)가 급격히 감소 중이라는 이야기다.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생산연령인구(15~64세)가 2017년 말 현재 3620만명으로 그 전해보다 11만명 줄었다. 사상 초유의 사태다.

이런 흐름이 취업자 수라는 지표에 반영되었다. 2016년과 2017년 7월 사이에는 경제활동인구가 30만명 증가했다. 그러나 2017년과 2018년 7월 사이에는 8만6000명 늘어났을 뿐이다. ‘취업자 후보’의 원천인 경제활동인구가 덜 증가한다면 취업자 수의 증가 역시 더 느리게 될 수밖에 없다. 물론 ‘5000명’은 적은 수치다. 고용 상황에 큰 문제가 발생한 것 아닌가라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 그러나 고용 상황의 다른 지표인 실업률과 고용률이 의외로 멀쩡하다.

고용률은 ‘15세 이상 인구’ 가운데 취업자의 비율이다. ‘15세 이상 인구(2018년 7월 현재 4418만7000명)’는 전업주부, 재학생, 취업 준비자, 구직 단념자 등 비경제활동인구(1606만4000명)를 포함하므로 경제활동인구(2812만3000명)보다 훨씬 많다. 지난 7월의 고용률은 61.3%. 2010년 1월 이후 103개월 동안 고용률이 61.3% 이상이었던 시점은 9개월에 불과하다. 지난해 7월의 고용률은 61.6%였다.

실업률은 경제활동인구 가운데 실업자의 비율이다. 지난 7월의 실업률은 3.7%. 올해 2월의 4.6%에 비해 오히려 상당히 개선되었다. ‘취업자 증가 수’가 고용 상황을 잘 반영하는 수치라면, 31만명이 늘어난 지난해 7월의 실업률은 올해보다 현격히 낮아야 한다. 그러나 올해보다 겨우 0.3%포인트 낮은 3.4%에 불과하다.

어쨌든 1년 동안 실업률이 3.4%에서 3.7%로 0.3%포인트 증가한 것은 사실이다. 그 배경엔 영세 소기업 및 자영업체들이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고용을 포기한 경우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이 단기적으로 고용을 줄인다는 것에는 대다수 연구자들이 동의한다. 다만 장기적으로는 기업들이 노동자들의 임금 상승으로 인한 소비지출 증가에 따라 생산을 늘리는 과정에서 다시 고용이 늘어난다고 설명한다. 현 시점에서 ‘실업률 0.3%포인트 상승’의 더 직접적 원인은 제조업 위기 및 구조조정이다. 지난 8월 말 통계청에서 나온 ‘2018년 상반기 지역별 고용조사 시군별 주요고용지표 집계 결과’에 따르면, 경남 거제시의 실업률은 1년(2017년 7월~2018년 7월) 동안 2.9%에서 7.0%로 치솟았다. 조선산업 구조조정 때문이다. 이 외에도 에릭슨엘지가 빠져나간 안양시 실업률은 3.3%에서 5.9%, 현대중공업 조선소 가동 중단 및 한국GM 공장 폐쇄를 함께 겪은 군산시도 1.6%에서 4.1%로 상승했다. 거제, 통영, 안양, 군산, 구미, 울산 등 6개 산업도시에서만 3만명 이상이 1년 사이에 일자리를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가계동향조사와 상이한 ‘노동소득분배율’ 추이

‘소득주도 성장 비판’ 진영에게 또 하나의 선물이 주어졌다. 통계청이 지난 5월과 8월에 각각 발표한 1·2분기 ‘가계동향조사’다. 소득 기준 최하위 20%(1분위)에서 최상위 20%(5분위)까지 계층별 소득분배 추이를 알 수 있다. 지난 2분기(4~6월),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1분위가 132만5000원, 5분위가 913만5000원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가난한 1분위 소득이 지난해 같은 시기보다 7.6% 떨어진 반면 5분위 소득은 10.3%나 올라갔다는 점이다. 1분기 조사 결과도 비슷하다. 1분위 소득이 8% 감소한 반면 5분위는 9.3% 증가했다.

소득주도 성장 비판 진영에겐 손꼽아 기다리던 결과다. 소득주도 성장 정책이 오히려 저소득층의 소득을 줄인 것이다. 정부의 시장 개입을 비난할 때 흔히 사용되는 격언인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가 현실에서 입증되었다.

이에 대해 ‘소득주도 성장 지지’ 세력은 잘못된 통계라며 반발한다. 통계청은 5년마다 인구총조사를 시행한다. 그 결과에 맞춰 8000여 가구를 표본으로 선정한 뒤 소득 관련 사항들을 직접 대면 방식으로 설문해왔다. 예컨대 인구총조사에서 서울 인구가 전체의 20%, 노령층 비율이 30%라면, 이에 비례해서 표본을 구성해야 한다. 인구총조사는 지난 2010년과 2015년에 각각 이뤄졌다. 당초 통계청은 분기별 가계동향조사를 1년 단위로 개편할 계획이었다. 그래서 지난해엔 약식으로 5500가구만 표본으로 선정해서 설문을 진행했다. 그 표본은 2010년 인구총조사를 바탕으로 설계되었다. 그러나 정부와 사회 각계에서 분기별 조사를 계속하라는 여론이 일자 통계청은 방침을 바꿨다. 올해의 소득조사 표본은 2015년 인구총조사에 따라 선정한 8800가구다. 표본 수가 크게 늘어났다. 또한 2010년과 2015년 사이의 5년 동안 노령화가 급속히 진행되었다. 2015년 인구총조사를 바탕으로 설계된 표본에는 2010년 기준 표본에 비해 노령층의 비중이 훨씬 높다. 예컨대 전체 가구에서 ‘60세 이상 가구주’의 비율이 2016년 2분기에는 32.4%이지만 2017년 2분기에는 34.7%, 올해 2분기는 37.2%다. 한국 노령층의 빈곤율은 OECD 국가들 중에서 최악이다. 노령층이 대거 편입된 표본에서 소득격차가 더욱 크게 나타나는 것은 당연하다. 표본의 수뿐 아니라 구조도 크게 달라진 것이다. 소득주도 성장 지지자들은 표본 수와 구조가 다른 두 조사를 단순 비교해서 ‘소득격차가 더 커졌다’는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 옳으냐고 항의한다.

통계청은 억울할 수 있다. 올해 들어 현실을 좀 더 잘 반영하는 표본을 선정했을 뿐이다. 다만 지난해의 표본 선정부터 2015년 인구총조사 결과를 반영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통계청은 지난 2분기 ‘가계동향조사’의 ‘일러두기’에 다음과 같이 명시해두기도 했다. “새로 편입된 표본가구를 중심으로 1인 가구와 고령층 가구의 비중이 크게 증가하여, 전년도와 올해의 결과를 직접 비교하여 결과를 해석하는 데는 주의가 필요하다.”

설사 통계청의 발표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해도 소득주도 성장 정책이 실패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될지는 의문이다. 실제로 노동소득분배율(국민소득 가운데 노동소득의 비율)이 크게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올해 2분기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지난해 같은 분기에 비해 4.2% 증가했다. 가난하거나 부유하거나, 노동자로 일하거나 사업 혹은 금융소득으로 돈을 버는 모든 가구의 소득을 합쳐서 평균을 낸 결과다. 통계청 홈페이지(kostat.go.kr)에서 2003년 1분기 이후 ‘분기별 월평균 소득’을 ‘그 전해 월평균 소득’과 비교하는 방법으로 ‘노동자 가구’와 ‘노동자 외 가구’의 연간 소득성장률을 산출해봤다. 노동자 가구의 올해 1·2분기 월평균 소득은 지난해 같은 시기에 비해 각각 6.3%, 7.7% 늘어났다. 특히 2분기의 증가율은 2004년 1분기부터 2018년 2분기까지 13년6개월(54분기)을 통틀어 네 번째로 높았다. 노동자 가구 소득의 증가율은 2014년 2분기부터 2017년 4분기 사이에는 대부분의 기간에 1~2%대에 불과했다. 특히 지난해 2분기에는 마이너스 0.4%까지 내려갔다는 점을 감안하면 올해의 증가율은 매우 인상적이다. 그러나 ‘노동자 외 가구’의 1·2분기 월평균 소득은 지난해 같은 시기에 비해 각각 1.9%, 0.2% 상승한 데 불과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노동자들은 큰 혜택을 본 반면 사업 등의 수단으로 소득을 얻는 비노동자들은 거의 혜택을 보지 못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지난 10여 년 ‘이윤주도 성장론’의 결과

소득주도 성장 정책은 기본적으로 ‘임금 인상’을 마중물로 작동하는 기조다. 노동소득분배율을 높이는 것이 1차적 목표다. 궁극적 목표는 경제성장이다.

ⓒ연합뉴스8월29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소상공인 최저임금 제도개선 촉구 국민대회 참가자들이 솥 던지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최근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소득주도 성장 정책으로 분배 구조를 바로잡는 데 많은 문제점이 있는데도 오기도 아니고 너무한다”라며 문재인 정부를 비난했다. 그런데 소득주도 성장은 가난한 가계의 소득을 올려 ‘분배 정의’를 실현하려는 정책에 그치지 않는다.

지난 10여 년 동안 한국에서든 세계적 차원에서든 경제성장 정책의 정석은 ‘자본(공급 측면)에게 유리한 환경’을 만드는 것이었다. 감세와 규제 완화 등으로 자본 측이 마음껏 이윤을 취할 수 있도록 해야 투자 증가와 생산성 상승, 경제성장이 촉진된다는 이야기다. 일종의 ‘이윤주도 성장론’이다. 이론과 현실은 따로 놀았다. 경제성장률이 상승하지 않았다. 그 원인을 찾으려는 일군의 학자들은 낮은 노동소득분배율에 착안하게 된다. ‘공급 측(자본)’이 아무리 많은 상품을 효율적으로 생산해도 구입하는 사람(총수요)이 적다면 이윤을 높일 수 없다. 이윤율이 낮으면 투자 증가→생산성 상승→경제성장으로 이어지는 이윤주도 성장론의 선순환 고리가 끊어져버린다. 결국 총수요를 늘려야 하는데, 이를 위해 채택된 수단이 바로 임금 인상이다. 임금 인상으로 소비지출을 늘리면, 자본 측 역시 설비가동률 및 투자를 늘리게 되고 이에 따라 생산성이 상승하면서 경제성장이 촉진될 수 있다는 것이 소득주도 성장론의 일반적 견해다. 이른바 ‘이윤주도 성장론’은 공급 측면(자본)의 조건만 개선하면 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소득주도 성장론은 수요 측면(노동자 등 소비자)까지 함께 고려한다. 국내의 대표적 소득주도 성장론자인 주상영 건국대 교수는 최근 〈소득주도 성장론에 대한 비판과 반비판〉이란 논문에서 “소득주도 성장론을 장기 침체 예방을 위한 구조적 총수요 확대 전략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일방적 이윤주도 성장론에 따른 재앙(장기 침체)을 막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소득주도 성장이란 이야기다.

소득주도 성장의 마중물인 ‘최저임금 인상’은, 정부 처지에선 노동소득분배율을 높일 수 있는 그나마 가장 쉬운 정책 수단이다. 법정 최저임금으로 임금 인상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근로소득자들이 늘어난 소득을 소비하도록 강제하기는 어렵다. 소비지출 증가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더욱이 노동소득분배율이 상승한다고 소비지출 증가와 생산성 상승, 경제성장으로 이어지는 다른 목표들을 자동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높은 연봉을 받는 근로소득자의 임금 소득만 증가하고 ‘노동자 외 가구’들이 소외되어 계층 간 격차가 커지는 상황에서는 소득주도 성장론의 선순환 고리도 끊어진다.

이런 측면에서 문재인 정부가 예산 지출을 오는 2022년까지 연평균 7.3% 늘리기로 한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적 조치다. 최근 국민연금자문위원회의 재정추계에 따르면, 한국의 실질경제성장률은 현재의 3% 부근에서 2020년대에는 2%대, 2030년대에는 1%를 아슬아슬하게 넘으리라 추정된다. 올해 2분기 합계출산율은 0.97명이다. 진정으로 미래 세대를 위한다면 허술한 근거로 ‘경제 망국론’을 외치기보다 과감한 구조 전환을 통해 경제성장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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